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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수의 문학산책 #25 뭉클/이사라
강인수의 문학산책 #25 뭉클/이사라
뭉클 이사라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희로애락 가슴을 버린 지 오래인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사랑이 폭우에 젖어 불어터지게 살아온 네가 나에게 오기까지 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눈물이 가슴보다 먼저 북받친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네 뒷모습을 보면서 왜 뭉클은 아니다 아니다 하여도 끝내 가슴속이어야 하나 *시읽기 이사라 시인의 시집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에서 뭉클 이라는 시를 골랐습니다. 자카르타행 비행기 안에서 이 시를 타이핑 하면서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저녁이 쉽게 오는,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그야말로 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노쇠해져가는 우리들에게 뭉클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오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아니라고 부정하여도 삶 속에 뭉클은 네 가슴속이나 내 가슴속이나 어디든 들어 앉아 설움을 복받치게 하는 일들도 가득 하더군요! 눈물이 마르는 세월에 우리 가끔 뭉클해보면 어떨까요? *이사라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문학사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 『미학적 슬픔』 『숲속에서 묻는다』 『시간이 지나간 시간』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인수의 문학산책 #24 곱돌/강인수
강인수의 문학산책 #24 곱돌/강인수
곱돌 강인수 양재동 꽃시장에서 주운 곱돌 하나 사랑초과 함께 자전거에 싣고 왔다 광장에 떨어진 빛나는 돌이나 주홍색 피를 흘리는 꽃이나 내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불거진 뼈를 살에 숨기듯 위태롭게 혹은 속임수를 써야 하는 아슬아슬함이다 동그랗고 단단한 돌솥 마당 한가운데 앉혔다 자세히 보니 너는 귀가 한쪽 잘린 고양이인가 반듯한 얼굴로 웃고 있지만 화상을 입은 달이로구나 뜨겁게 달아올라 착색이 된 인생 을 위로해주려니 얼굴이 화끈거려 식지를 않는다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면서 귓불에 속삭인다 얼룩은 지워지지 않아 주름 사이 끼인 기름처럼 한 생애가 남았어 반질거리는 것은 빛조차 너를 닮은 비명이었어 사진(구본창 사진작가의 곱돌) *시읽기 매끈하고 세월의 때로 광택이 나는 돌! 솥의 기능을 한다는 곱돌은 사라져가는 것들 중의 하나겠지요!! 꽃과 함께 실려온 곱돌을 살피니 세월을 품고 살아온 화상 입은 달이기도 귀가 짤린 고양이기도 한듯 한 생애가 누군가의 삶과 닮아보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구본창작가의 사진전을 돌아보며…. 사진을 한컷!!!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연숙] 자카르타 한인의 공간, 꼼플렉과 쇼핑몰 그리고 코리아센터
[조연숙] 자카르타 한인의 공간, 꼼플렉과 쇼핑몰 그리고 코리아센터
[조연숙] 자카르타 한인의 공간, 꼼플렉과 쇼핑몰 그리고 코리아센터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들은 어떤 집에 살까? 한국인들이 만나는 곳은 어디일까? 한국인들의 역사성이 담긴 공간은? 주택단지와 아파트, 쇼핑몰, 코리아센터, 교회와 성당과 절, 한국슈퍼 등이 한국인들의 주된 공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산다면 가까운 거리에 공원과 산이 있어서 산책을 할 수가 있지만 자카르타에서는 좀 어렵다. 자카르타에서 경험한 공간과 앞으로 생겼으면 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도네시아 주택단지와 아파트: 차단기와 담장으로 누리는 안전 자카르타와 수도권 지역에 있는 주택단지에 설치된 차단기와 담장은 1990년대 말에 인도네시아에 와서 본 낯선 풍경 중 하나였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주택단지마다 입구에 차단기와 경비원들 그리고 단지 주변에 담장을 둘러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했다. 심지어 단지 입구에서 한 번, 다시 작은 단지로 들어갈 때 한 번 이렇게 차단기를 두세 번 거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 인도네시아에 확산하는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은 외부인에 대한 통제가 더 강하다. 위기가 발생하면 외부인의 출입을 더욱 제한한다. 1998년 5월사태 전후로는 동네 골목길도 주민들끼리 차단기를 설치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아예 설계부터 출입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주택단지는 더욱 통제가 심해졌다. 폭은 좁지만 사유지가 아닌 공용 도로와 골목길조차 외부인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한 점은 내 입장에서 당황스러웠다. 인도네시아 정치와 치안이 안정되면서 주택가와 주택단지 통행이 완화됐다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시 한번 통제가 강화됐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주택단지와 아파트의 출입관리시스템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여 범죄와 프라이버시 침해로부터 자유로운 주거환경을 제공한다. 또 물리적으로 외부로부터 분리된 공간을 되면서, 입주민들에게 영역성을 제공한다. 반면 지역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통행제한과 주변지역 단절 등을 야기하는 문제점도 있다. 자카르타 코리아센터 [한인뉴스 제공] 게이티드 커뮤니티,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구별하는 공간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렇게 주변을 담장으로 두르고 차단기를 설치해서 출입을 제한한 주택단지를 꼼쁠렉(영어 Complex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이라 부른다. 우리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주거공간은 콘도미니엄이라 부른다. 이렇게 외부와 구별되는 공간과 그 안에서 형성된 공동체를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라고 정의한다. ‘빗장 공동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빗장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낯선 느낌이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현대적인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시초는 미국의 ‘턱시도 파크’로, 1885년 미국 뉴욕에 직장을 둔 상류층을 겨냥해 근교에 사냥과 낚시 등의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최고급 리조트와 주변 건설된 주택단지로 구성됐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담과 게이트 설치가 용이해지고 경비원을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게 되면서 중산층 주거지만이 아니라 저렴한 아파트와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들도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됐다. 인도네시아 내 주요 주택단지와 콘도미니엄에는 주거용 건물과 더불어 쇼핑몰과 병원과 학교 등 각종 생활편의시설이 운영되고,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살면서 상호작용을 한다. 목포대학교 고고인류문화학과의 홍석준 교수는 차단기와 담장이 내부의 주민들과 외부의 비거주자들을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정서적으로 구분하는 가시적 장벽 역할을 수행하면서 거주자 자신의 지위를 확인시켜주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그는 차단기와 담장으로 이루어진 주택단지를 선택하는 이유로 공동체 추구, 안전 추구, 범죄에 대한 두려움, 타인(단지 외부자)에 대한 두려움, 질서정연함과 자산 가치의 보존, 단지 관리 서비스 제공 등을 꼽았다. 시티워크와 지하 물류 터널 인도네시아에는 쇼핑몰의 이름에 ‘시티워크’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깨끗한 바닥 그리고 2~4층을 터서 시원하게 보이도록 쇼핑몰 공간을 꾸민 곳으로, 공원을 대신해 쾌적하게 걸을 수 있게 했고, 복도 가장자리는 다채로운 컨셉의 식당과 카페 그리고 상점들로 채웠다. 자카르타 스나얀 플라자, 미드 플라자, 아시타몰 등 자카르타 시내 중심가에는 여러 건물의 지하를 연결해서 지하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게 상가를 만든 곳도 있다. 자카르타의 토지가 제한적이고 땅값이 비싸고 건물이 밀집한 덕분이다. 그럼에도 쇼핑몰은 공원과 거리 등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대체하기 어렵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학교 교수는 여러 강의와 저서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이 소통하면서 소셜믹스를 이룰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정부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카르타 남부에 위치한 뽄독인다몰은 주변 부촌과 아파트에 거주하는 고소득의 외국인과 인도네시아인들이 주된 방문객이고, 뻐자뗀몰은 주변 주택과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산층 소비자가 주된 방문객이다. 자리에 앉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와 식당은 취향과 가격대 등 기호나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이 이용한다. 상업공간에 내재된 견고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장벽을 넘어설 수단이 필요한 것. 그는 "서로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모를 때 선입견 없이 만나 사회가 융합될 수 있다" 며 "공원처럼 모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산업의 이해관계자들은 기존 도시에서 부족한 공간을 충당하는 방안으로 지하공간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유현준 교수는 서울에서 도심 공원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지하 물류 터널을 제안했다. 자율주행로봇이 드나들 수 있는 지하 물류터널을 개발해서 화물차 운행 감소에 따라 여유가 생긴 차선을 공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서울의 서부간선도로는 기존 도로의 지하에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를 하나 더 만들어서 교통량을 분산시켰다. 서울의 통일로에 지하도로로 만들고 지상을 공원으로 쓰는 공약을 제안한 정치인들도 있다. 자카르타도 이런 방안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담이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아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과 얼마나 교류하나? 아파트 또는 주택단지 밖에 이웃들과 얼마나 교류하나? 안전을 위해 만든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안전할까? 유럽과 미국의 연구자들은 고급 주택단지가 위치한 주변 이웃 마을과의 단절만이 아니라 주택단지 내 거주자 간의 단절로 인해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게이티드 커뮤니트의 폐쇄성으로 인해 담장 안에서 범죄가 증가하기도 한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르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주택단지의 담장이나 아파트의 보안검색대보다 이웃 간의 교류와 거주자들 간의 친밀한 공동체를 통해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들면 1998년 5월사태 때 평소에 현지인 이웃과 잘 지낸 사람은 이웃들이 폭도의 공격을 막아준 반면, 현지 이웃이나 고용인에게 못되게 군 사람은 피해를 입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 사람이 여럿이다. 인도네시아 한인들, 1인 가구 증가와 소통 기회 감소 자카르타에서 자연을 누리고 사람을 만날 공간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트랜드로 1인 가구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사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산책하고 다른 이들과 만날 공원이 적고, 예전과 달리 오프라인 모임도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물가가 오르고 작은 카페와 식당이 문을 닫고 새로 생기는 식당과 카페는 고급화됨에 따라 개인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감소하는 추세이다. 원격근무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직장에서 동료를 만나는 일도 줄었다. 온라인에서 만나서 업무를 논의하지만, 예전처럼 한 사무실에서 함께 보내고 식사하면서 쌓을 수 있는 유대감은 갖기 어렵다. 그럼에도 유현준 교수는 화상통화가 된다고 손잡는 데이트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프라인 공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코리아센터와 한인회관 자카르타에는 한인과 관련된 대표적인 공간으로 한인회가 입주해 있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영사동과 한국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코리아센터가 있다. 코리아센터에는 1980~1990년대에 설립된 회사들이 아직 있고, 이들의 사무실에는 설립 당시의 풍경이 남아있다. 교회, 성당, 절 등 종교시설과 한국학교도 있다. 하지만 종교시설은 포교가 목적이어서 종교가 다른 사람이 이용하기 부담스럽고, 한국학교는 시내에서 멀리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재인도네시아 한인회는 한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한인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인회관은 다양한 한인들이 만나서 화합하는 소셜믹스를 이루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코리아센터는 개인 소유이고 영사동도 한국정부 소유로 되어 있어서, 현재 자리보다는 다른 장소에 한인회관이 세워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안은 기존의 코리안센터에 한인회관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코리아센터는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재건축할 수 있을까? 한국대사관과 한인회 사무실 부지는 한인회를 중심으로 한국기업들이 구입해서 한국대사관과 한인회 사무실로 쓰고 있고, 1980~1990년대에는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건물로 사용됐다.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코리아센터 건물과 주차장을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고, 시설은 지하로 옮기면 어떨까? 새로 생길 한인회관이 인도네시아에서 파편화된 개인으로 사는 한국인들이 소통하고 화합하는 장소이자 한국인의 역사성이 보존되는 공간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유현준 교수는 "모든 것이 새로운 질서로 바뀌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100년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끝]
[신성철] 2024 대선 결산... 인도네시아 향배는
[신성철] 2024 대선 결산... 인도네시아 향배는
2024 대선 결산... 인도네시아 향배는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결선투표가 진행될 것이라는 정치전문가들의 예측을 뒤엎고, 지난 2월 14일 치러진 선거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72)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 되고 있다. 대선 직전에 실시한 여러 여론조사 기관들의 당선 가능성 조사 결과, 프라보워 후보가 50% 전후의 지지율을 보였으나 신속표본개표(quick count) 결과에서 과반을 기록함에 따라 프라보워의 당선이 기정사실화 됐다. 현 국방장관인 프라보워 후보는 신속표본결과 57% 이상의 득표율로 오는 6월로 예정된 결선투표를 거치지 않고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신속표본개표는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비교적 정확한 결과를 보여온 만큼 오차범위가 크기 않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 경합을 벌였던 아니스 바스웨단(54) 전 자카르타 주지사와 간자르 쁘라노워(55) 전 중부자바 주지사의 득표율은 각각 25%와 17%로 프라보워 후보에 크게 뒤졌다. 인도네시아 선거의 공식 결과는 투표일로부터 한 달 후 발표될 예정이다. 유력 대선 당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과 조코위 대통령 [자료사진=프라보워 공식 페북] 프라보워 후보의 주요 당선 요인들을 살펴보면, 경쟁 후보들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인다. 프라보워는 거의 5년 전부터 대선을 준비해 왔다. 2019년 대선에서 조코위 대통령에게 패한 직후 2019년 7월에 프라보워는 자카르타 도시철도(MRT)에서 정적인 조코위 대통령과 극적인 만남을 연출했다. 그해 10월 프라보워는 조코위 2기 정부에 국방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조코위와 손을 잡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이다. 수하르토의 전 사위인 프라보워는 국방장관으로 활동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와 지명도를 높였다. 프라보워의 당선에는 조코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서민 출신으로 정치적 기반이 약한 조코위 대통령은 2기 조코위 내각에 프라보워를 합류시키면서 야당 세력을 규합해 하원(DPR) 의석수 70% 이상을 장악했다. 이로써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해 고용촉진법(일명 옴니버스법)과 신수도 이전 관련 법률 등 주요 국정 과제를 신속하게 처리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임기 중 도로와 철도, 댐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 또 국민건강보험(BPJS) 확대와 저소득층에 현금과 기초식품을 지원하는 등 시의적절한 포퓰리즘과 집권 프리미엄을 활용해 임기 중 70%가 넘는 지지도를 보였다. 이렇게 높은 지지를 기반으로 한 조코위 대통령이 대선 직전에 프라보워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게 당선에 크게 작용했다. 또 조코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인 프로조(Projo)가 적극적으로 프라보워를 지지하면서 당선에 힘을 보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실시된 이번 선거운동은 기존의 거리에서 펼쳐진 방식과는 다르게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전개됐다. 프라보워 후보는 특히 짧은 비디오 영상을 제작·공유할 수 있는 틱톡(TikTok)을 통해 코믹한 춤인 조겟(joget)을 앞세워 젊은 유권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감으로써 기존의 강한 군인 이미지에서 부드러운 이웃 아저씨로 변신했다. 이는 특히 25%가량을 차지하는 Z세대들의 표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유학파로 최연소 인도네시아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아니스 후보는 이슬람 지식인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운동을 펼쳤다. 특이 사항은 아니스의 지지자 가운데 젊은 층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K-Pop 팬덤(Fandom) 문화를 활용했고 한국어로 소통하는 독특한 선거운동의 측면도 보여줬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총재가 이끄는 투쟁민주당(PDIP)의 지지를 받은 간자르 후보도 인스타그램 등 쇼셜미디어를 활용하고, 서민들의 생활 현장을 방문하는 블루스깐(blusuakan) 등 전통적인 선거운동 방식을 활용했으나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번 대선은 조코위와 프라보워 정치 세력이 협력함에 따라 기존의 대선과는 다르게 민족주의와 이슬람 정당의 경쟁 또는 온건 이슬람과 강성 이슬람이 경쟁하는 구도가 다소 약화된 모습을 보였다. 또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도 3명 후보 모두에게 지지하는 양상을 보여 양극화가 완화되는 다소 긍정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정당 정치가 더욱 약화되고 인물 정치가 강화되는 모습이 나타났고 지적했다. 또한 조코위 가문이라는 신흥 정치가문이 탄생함으로써 필리핀의 가문정치와 정치왕조 행태가 강화되는 모습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이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게 되자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조코위는 개헌 시도는 하지 않았지만, 선거법을 바꾸면서까지 자신의 장남인 기브란을 부통령 후보로 만들어 큰 논란을 낳았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프라보워가 조코위의 국정 운영을 이어갈 것인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독립적이며 중립적인 외교를 펼쳐왔으나, 조코위 2기 정부는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과 밀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프라보워 정부가 출범한다면, 미중 경쟁 구도에서 어떠한 균형점을 찾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프라보워가 집권한다면 행정수도 이전 사업인 누산타라(IKN) 메가프로젝트를 이어가겠지만, 조코위 대통령 재임기와 다른 경제정책을 쓸 것으로 보고 있다. 프라보워 후보는 2024년까지 세 차례나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경제체제를 좋아하지 않으며 큰 정부를 선호한다는 정책 메시지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에 따라, 경제학자들은 프라보워 집권기에 국영기업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네시아 농민단체(HKTI) 회장을 역임한 프라보워는 당장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전력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직후인 지난 2월 21일 조코위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아구스 하리무르띠(45)를 농지공간기획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아구스 신임 장관은 이번 대선에서 프라보워 후보를 지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구스 장관의 등용을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이자 프라보워의 러닝메이트인 기브란 라카브밍 라카(36)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2030년까지 세계 10대 산업국으로 진입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을 진행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겠다는 국가차원의 산업 로드맵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Industry 4.0’의 개념을 도입해 경쟁력을 강화해 5대 제조업(식음료, 섬유, 자동차, 전자, 화학)을 주력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인도네시아는 제조업 강국인 한국을 최적의 파트너로 꼽고 있는 만큼 향후 다양한 제조업 부문에서 양국 간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낙관한다. (끝)
"인도네시아 정치도 필리핀화 되는가?"
"인도네시아 정치도 필리핀화 되는가?"
2024년 대선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는 프라보워 대통령 후보와 러닝메이트 기브란. [자료사진] "인도네시아 정치도 필리핀화 되는가?"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1986년 2월 25일. 성난 필리핀 군중은 21년 장기 집권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을 붕괴시켰다. 당시 28세의 나이로 하와이로 쫓겨났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일명 봉봉)는 2022년 대통령에 당선돼 그해 6월 말부터 필리핀의 대통령 직을 수행하고 있다. 아버지가 피플파워로 축출된 지 36년 만에 필리핀 대통령에 올랐다. 32년간 철권 통치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998년 민주화 운동에 이은 폭동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한편 수하르토가 축출된 지 26년이 지났으나 수하르토 가문은 정치적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피플파워로 독재 정권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형태의 대통령중심제의 공화제를 채택했지만 각각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1998년 5월 수하르토가 사임하면서 수하르토 가문의 정치적 야심은 물거품이 되었다. 수하르토 이후 개혁시대(Era Reformasi) 초기에 강한 반(反) 수하르토 정서로 인해 수하르토의 자녀들은 즉시 수하르토의 정치 기반인 골까르당 지도부에서 추방됐다. 정치 분석가들은 수하르토 가문이 주요 정치 세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았다. 인도네시아 국제이슬람대학교에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사회운동을 연구하고 있는 정치전문가 마젤로 라이노 훼니스 연구원은 지난 1월 5일 자카르타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모두 민주적 틀 내에서 정치가 작동하고 있지만 권위주의적인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다고 보았다. 마젤로는 동남아시아 정치전문가인 안드레아스 우펜(Andras Ufen)을 인용, 이미 2006년에 인도네시아의 정당이 '필리핀화'(Philippinization) 현상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정치권에서 필리핀화는 당내 권위주의 강화와 대통령제 정당의 부상, 유권자 매수 등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정당정치 기반의 부족, 약한 정당 충성도, 새로운 정치가문의 등장 등을 지적했다. 비근한 실례로 2024년 대선 후보에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후보와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인 러닝메이트 기브란 라까부밍 라까의 조합을 예로 들었다. 마젤로는 인도네시아 정치의 역사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66년 수하르토의 권위주의적 통치 이전에는 정당 메커니즘이 충성심과 이념을 중심으로 작동했다. 수카르노 정권 당시에는 인도네시아국민당(PNI)과 같은 민족주의자, 마슈미(Masyumi)와 같은 이슬람주의자 그리고 공산주의자인 인도네시아공산당(PKI) 소속의 사회주의자 등 정치적 이념이 분명하게 구분됐다. 수카르노 집권기의 다양한 정치적 성향은 수하르토 정권 하에서는 억압돼 행정부와 인도네시아군 내로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산주의자뿐만 아니라 이슬람주의자, 민족주의자를 포함한 정권의 반대편에 선 인물들도 숙청 과정에서 제거되었다. 즉, 수하르토 정권은 수카르노 정권의 다양한 정치적 이념과 정당의 충성심을 억압하면서 통제된 정치적 환경을 조성했다. 1998년 수하르토의 몰락과 B.J. 하비비에게 권력 이양으로 민주화를 주도하는 개혁과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마르코스 이후 처음으로 1987년 민주적인 선거를 치른 필리핀과 비교하면, 인도네시아는 2004년에야 첫 대통령 직접선거를 실시했다. 2004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국민의 직접선거로 당선되기 전에는 국민협의회(MPR) 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선거였다. 2004년 인도네시아의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이념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인도네시아 정치는 필리핀의 정당체제와 유사해졌다. 수많은 민족주의 및 이슬람주의 정당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정당의 이념보다는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세력이 모이고, 이로 인해 정당 충성도가 감소하고 정당정치 기반이 약화되었다. 필리핀 민주화 이후 정당체제와 수하르토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대통령제 정당의 출현은 의미있는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마젤로는 평가했다. 일관성 있는 국정에 관한 논의는 줄어들면서 신선한 아이디어, 다양한 관점, 자격을 갖춘 지도자의 발굴은 어렵게 됐고 거래정치가 확산되었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민주주의 과정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민주공화정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과거의 권위주의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전 독재자 마르코스의 이름을 지닌 현 필리핀 대통령과 수하르토 시대의 전직 육군 장성이었던 프라보워가 유력한 대선 후보라는 여론조사가 이를 방증한다. 마젤로는 프라보워와 기브란의 파트너십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는 수년 간의 합의의 결과이다.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 기브란은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가 부통령이 된 것과 비슷하다. 정치적 연합의 사례는 본질적으로 우연이 아니다. 정치지도자들은 상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협력한다. 최근 태국 선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진당(MFP)의 피타 림짜른랏은 지난해 5월 태국 총선에서 승리했고 여전히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군부와 군주제가 지원하는 의회는 그가 총리가 되는 것을 막았다. 마젤로 연구원은 인도네시아에서 정치 왕조가 부상하는 것을 인도네시아 정당 정치가 과두제(寡頭制, oligarchy)하에서 부패와 친족주의가 만연하는 필리핀 정치처럼 되는 "필리핀화"의 징후로 보고 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강인수의 문학산책 #21 세노파티 치킨집/강인수
강인수의 문학산책 #21 세노파티 치킨집/강인수
세노파티* 치킨집 강인수 세노파티 골목길에 미스터 위자야씨의 단골집이 있다 마-눌 양념 치킨! 매-운 양념치킨! 바-사삭 치킨! 마포에서 잠시 살았다던 미스터 위자야씨 오늘도 눈에 익은 한국어가 반가운건지 매운 기억이 반가운건지 빈땅* 맥주 한 병에 추억을 잘게 썰어 삭힌 하얀 무 깍두기와 치킨 입에서 오물오물 마-눌 맛으로 변해갈 즈음 창문 밖 줄지어 가는 오토바이는 먼 데로 사라지는 햇빛을 달고 태엽처럼 긴 시간을 잇닿아서 노고산동 이십 오번지에 오른다 달빛 모이는 외진 뒷길을 바람이 따라가면 위자야씨의 매운 마음이 마눌처럼 어눌하게 읽힐 때 바사삭 튀겨진 내 마음도 아주 쬐끄만 쥐똥고추 입에 물고 맴맴거린다 *세노파티: 자카르타 남부의 지역이름 *빈땅맥주: 별 맥주(인도네시아 브랜드 맥주) [사진: 강인수] *시 읽기 한류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문화,음식,음악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에 깊숙이 파고든 한류는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중에 음식도 양국의 가교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지요. 세노파티의 한 치킨가게에서 젊은 날의 한국생활을 그리워하는 중년의 노신사를 만나보니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추억의 장소 그리고 그 때의 그 음식이 가슴 저리도록 그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한국에 오래 머무는 동안 사떼와 소또 아얌이 그리울 때가 있듯이 말입니다.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인수의 문학산책#20 왼편/한백양
강인수의 문학산책#20 왼편/한백양
왼편 한백양 집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다 오랫동안 빌라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이 한 번씩 크게 싸우곤 한다 너는 왜 그래. 나는 그래. 오가는 말의 흔들림이 현관에 쌓일 때마다 나는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 그 가족들을 왼손처럼 서투른 것으로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집의 왼편에 있는 모든 빌라가 늙은 새처럼 지지배배 떠들면서도 일제히 내 왼쪽 빌라의 편이 되는 어떤 날과 어떤 밤이 많다는 것 내 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직 잠들어 있을 내 편을 생각한다 같은 무게의 불면증을 짊어진 그가 내 가족이고 가끔 소고기를 사준다면 나는 그가 보여준 노력의 편이 되겠지 그러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고 오른편에는 오래된 미래가 있으므로 나는 한 번씩 그렇지, 하면서 끄덕인다 부서진 화분에 테이프를 발라두었다고 다시 한 번 싸우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하고 뭉그러진 바람이 밀려든다 밥을 종종 주었던 길고양이가 가끔 빌라에서 밥을 얻어먹는 건 다행이다 고양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제 편이 되어줄 사람들은 싸운 후에도 편이 되어주는 걸 멈추지 않는다 오래된 빌라 [사진: 강인수] *시읽기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여러분은 왼편 이라는 시를 읽어 보고 어떤 느낌이 드셨을까요? 생각해 보면 정치적일 수도 있을 거 같고요. 삶에서도 내편 니편을 가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생에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되어 산다면 재미없겠지요? *한백양 시인. 202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자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연숙] 한인뉴스를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아카이브로
[유료][조연숙] 한인뉴스를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아카이브로
한인뉴스 300호 특집판 [자료사진] 한인미디어, 한인들의 소통과 정체성 형성 기능은 여전히 유효해 글: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1990년대에 온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식당과 상점에 가고 어떤 활동을 하며 살았을까? 자카르타국제한국학교(JIKS) 건설 후원금은 누가 냈을까? 한국 ‘평화의 댐, 건설 후원금은 누가 냈을까? 인도네시아 대학교에 처음 한국어과가 생길 때 후원금은 누가 냈을까? 1998년 5월사태 때 한국대사관과 한인회는 어떻게 대응했나? 인도네시아에서 발행되는 한인 미디어는 한인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한인회와 대사관의 활동, 인도네시아 시사 뉴스, 인도네시아 생활 정보, 한국과 인도네시아 문화 소개, 한인들의 문학작품 등 다양한 뉴스를 보도한다. 한인 광고지는 한국 식당과 한국 마트 등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업소를 광고하는 매체지만, 그 광고들을 통해 한인사회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한다. 한인상공회의소, 대한체육회, 주요 산업협회, 한국학교 등도 각자 회보나 신문을 만들지만, 회원이나 구성원이 아니면 접근하기가 힘들다. 대중성과 접근성 그리고 공신력에서는 한인뉴스를 포함한 한인 미디어를 따라오기 힘들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와 <동남아한인연구 총서 인도네시아편>은 한인뉴스의 기록을 가장 많이 인용했고, 이어 데일리인도네시아와 한인포스트의 뉴스도 인용했다. 누구나 미디어를 만들 수 있지만 모두가 미디어가 될 수는 없다. 지속적으로 운영하기도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한인뉴스는 1996년 7월 창간 이래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발행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벼룩시장과 한울, 일요신문과 한타임즈는 이미 폐간했고, 종이로만 발행하는 여명(구 소망)과 교민세계도 이전(과거) 호를 확인하기 어렵다. 아쉽지만 온라인화 이전의 정보들이 사라졌다. 재인도네시아 한인상공회의소(Kocham)와 대한체육회 인도네시아 지회는 웹사이트를 운영하지만 회원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고, 일부 산업협회(신발·봉제·건설협회)가 회보를 발행하지만 역시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아서 기록으로 남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기록이 1회성으로 휘발되지 않고 모여서 저장되고 도서관의 책처럼 구글의 정보처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한인뉴스를 아카이브(archive) 겸 플랫폼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카이브는 역사적 가치나 장기 보존의 가치를 지닌 기록이나 문서들의 컬렉션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기록이나 문서들을 보관하는 장소, 시설, 기관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 회의(2013년 3월 8일))에서는 ‘아카이브’를 ‘기록 보관’, ‘자료 보관소’, ‘자료 저장소’, ‘자료 전산화’로 표현한다. 한인뉴스가 한인 기록소 또는 플랫폼이 되려면 한인뉴스 스스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게 웹사이트를 개선해야 한다. 종이잡지는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더라도 개별 뉴스는 실시간으로 보도해야 하고, 개인이 소식을 올리는 등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도록 게시판 기능을 활성화 해야 하며,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밴드, 페이스북페이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부기관과 한인단체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해서 뉴스를 공유해야 한다. 원고료를 지불하므로써 원고의 질도 높여야 한다. 정부 기관과 한인들도 한인뉴스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한인뉴스는 기업들의 광고수입과 후원금으로 어렵게 운영하며, 컨텐츠는 무료 원고로 채운다. 재외동포단체와 연구자들은 해외 한인 미디어의 영세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한국대사관의 지원을 촉구한다. 또한 공신력이 있는 한인 미디어를 활용해서 정부 정책과 대사관 소식을 알릴 것을 권한다.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한동섭 교수는 재외한인언론이 정보 제공과 한인사회 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외동포언론의 고유한 기능으로 고국과 거주국의 소식 보도, 동포사회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 자연재해나 소요사태 등 위기 상황시 신속한 정보 전달(위기관리), 차세대 정체성 강화를 위한 한국어 교육, 재외동포를 위한 의제 설정, 동포사회 발전을 위한 여론 형성, 거주국 주류 사회에 한국 알리기, 재외동포 네트워크 형성 등을 꼽았다. 1945년에 포로감시원으로 왔던 조선인들은 소통과 교육의 수단으로 <조선인민보>를 발행했다. 현대 한국인들은 1972년 거류민회를 설립하고 1975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거류민회보를 발간했다. 인도네시아에 한국기업과 한국인이 급증하면서 1995년 교민세계와 여명, 1996년 한인뉴스가 창간했다. 이어 1997년 K-TV, 1998년 벼륙시장과 한울, 1999년 데일리인도네시아, 2002년 일요신문, 2003년 한타임즈, 2005년 한나프레스(한인포스트), 2006년 인도웹, 2007년 OKTN, 2012년 자카르타경제신문이 설립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은 미디어와 웹사이트, 뉴스 생산자와 공급자의 경계를 허물었다. 한인포스트 밴드와 인도웹 및 카카오톡 단체방에서는 개인이 직접 소식을 전달하면서 쌍방향 소통을 한다. 2013년부터는 한인 유튜버들이 등장했고, 2021년 온라인 미디어 인니투데이가 창간했다. 한인미디어는 자연재해, 정치·사회적 소요사태 등 안전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1997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인도네시아는 5월 사태와 수하르토 대통령 퇴진, 민주화 시위와 압둘라흐만 와힛 대통령 탄핵, 도심 테러 등 사회 혼란과 치안 불안이 심각했고, 이에 한국대사관과 한인회는 한인뉴스를 통해 인도네시아 상황과 대응 방안을 알렸고, 1999년 창간한 데일리인도네시아는 하루 두 차례 뉴스레터를 통해 시위와 자연재해 소식 등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해 한국인들이 대응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한인미디어들은 웹사이트, 네이버 밴드,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인도네시아 상황과 자연재해 소식을 보도하게 됐다. 인도네시아에 새로 정착하는 한국인은 물론 인도네시아에 오래 체류 중인 한국인들도 언어장벽, 제도에 대한 정보 부재,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현지 생활이 어려울 수 있다. 한인 미디어는 이들에게 인도네시아 법, 제도, 정책, 문화 등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이런 뉴스들이 쌓여서 역사의 기록이 되고 있다. 누구나 뉴스를 만들고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모두가 공신력과 지속성을 갖지는 못한다. 인도네시아 한인공동체의 아카이브로서 한인뉴스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두 고민하고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
강인수의 문학산책#17 순다의 노래/김주명
강인수의 문학산책#17 순다의 노래/김주명
순다의 노래 김주명 오래된 자카르타 순다항 포구 왕국의 흥망을 넘나들던 목선들이 먼 항해로 지친 듯  옆구리 맞대고 웅크린 채 잠들어 있다 뱃길 내내 품고 왔던 원죄原罪같은 짐 햇살 검게 그을린 사내들 어깨를 빌려 내려놓는다 빈 배로는 먼 바닷길 긴 파도를 넘을 수 없다는 걸 배가 되기 전 무성한 나무였던 시절 잎과 열매를, 뿌리마저 버리며 온전히 몸으로 익혔을 터 시린 이빨의 틈새처럼 벌어진 뱃전에서 자맥질을 마치고 막 올라오는 아이들 부끄럼 하나 없는 나신裸身에 묻어나오는 바람 까끄라기 몇   목줄 묶인 목선 끝에 걸려 내내 뒤척인   그날 오후 순다 끌라빠 항구 [사진: 김주명] 주)순다(Sunda)항: 정식 이름은 순다 끌라빠 항구, 자카르타의 항구. 16세기 술라웨시 고아왕조 시대 만들어진‘삐니시’라는 범선이 자바해를 통해 섬 전역을 항해 하였다. *시읽기 시라는 장르가 참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 시의 형태로 던져진 언어로부터 독자는 각자 해석하는 길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순다의 항구로 부터 풍기는 파도의 기운 그리고 자바인과 함께 하는듯한 … 운명처럼 느껴지는 배멀미. 목선의 걸쳐진 바람은 읽을수록 독자를 순다항으로 이끌고 갑니다. 원죄같은 짐을 바다에 버리고 항구로는 가볍게 닷을 내리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보여집니다. *김주명 2010년 평사리문학상 대상 수상. 형상시학회 회원. 한국문협 인도네시아 지부 사무국장. 시집 <인도네시아>, <바타비아 선> 산문집 <롬복 이야기>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연숙] 한국인과 재인니 한국인, 한국계 인도네시아인
[조연숙] 한국인과 재인니 한국인, 한국계 인도네시아인
한국인과 재인도네시아 한국인, 한국계 인도네시아인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인도네시아 거주 한인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민족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한국인, 한인, 재인도네시아 한국인, 한국계 인도네시아인? 다른 표현으로 재외동포와 교민? 해외에서 치르는 선거는 재외선거이고 이때 유권자의 명칭은 국외부재자이다. 이렇게 부르는 말에는 국적 차이처럼 개인이 처한 환경만이 아니라 개인을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시각도 반영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계 혈통을 가진 사람은 한인이라고 부르고, 이 중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재인도네시아 한국인 그리고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진 사람은 한국계 인도네시아인이라고 부른다. 한편으로 한국에서는 해외에 사는 한국인을 교민 또는 재외동포라고 부르지만, 해외에서는 스스로를 현지인과 구별해서 한국인이라고 부른다. 재외동포기본법 제2조에는 “재외동포”를 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나) 출생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사람(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사람을 포함한다)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 중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재외동포기본법은 2023년 5월 9일에 제정되어 2023년 11월 10일에 시행된 법률로, 재외동포정책의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만들어 가는 것 함재봉 전 연세대학교 교수(현 한국학술연구원 원장)는 저서 『한국사람 만들기』 제1권에서 "'한국사람'이란 역사 60여 년에 불과한 미완성의 인간"이라며 "한국이라는 국가 역시 고전이 하나도 없는 나라다. 한글이 널리 사용된 것도 70년이 안 됐다. 새 나라에 새 말인 사실을 우리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처럼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민족이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적대적인 개념이 아닌, 상호 이해하는 방식이다. 다른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극복하는 방향이다. 진정한 '한국사람 만들기'는 이제 시작이다." 함재봉 교수가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고민하고 성장해 한국의 정치·역사를 연구하며 깨달은 사실이다. 함 교수는 “우리는 이미 단일민족의 신화를 넘어 다민족 사회”라고 정의하고, ‘한국사람’이란 공동체의 정체성을 한두 가지의 변치 않는 본질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결국 민족의 정체성은 각 시대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함 교수에 따르면 '한국사람'이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곳은 1962년 9월 22일 조선일보이다. 이전엔 ‘조선사람’이란 단어가 존재했지, 한국사람은 없었다. 대한제국 시절에도 대한제국인이었다. '한국사람'이란 말이 생긴 지 약 60년이 됐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사람만큼 세계에서 서로 다른 민족이 없다"고 덧붙였다. 언어, 풍습, 이념, 종교, 인종 등 어느 하나도 공통점이 없다며 한국사람의 본질이 아닌 '왜 이렇게 다양한지'를 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은 고민했다. 국권 회복이 되면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러시아, 상하이, 하와이, 도쿄 등 세계 곳곳에 퍼져 있던 이유이다. 사람들은 기독교, 공산주의 등 국가의 다양성을 경험했다. 그게 우리의 20세기 초반 역사이다”라며 “하지만 해방 이후, 이들은 결국 '어떤 한국인이 될 것인가'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다. 현재 남북으로 갈라서고 내부 분열이 일어나는 이유이다"라고 말한다. 함 교수는 한국사람을 다섯 종류로 정리했다.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주의파 등이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는 한 사람당 하나가 아닌, 한 사람 안에 다섯 가지가 섞여 있는데, 문제는 이들이 정리되지 않고 서로 다르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함 교수는 "지금 한국은 인프라, 경제력 모든 걸 갖추고 있지만 문화적·사상적 측면에서의 한국사람은 없다.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다양함이 특색이 될 수 있다. 다양성을 이용해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 독창적 문명이다. 아직 완전해지지 않았고, 우리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한국사람 만들기.'이다"라고 말했다. 함 교수는 한국사람을 부르는 공통된 호칭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북한사람, 중국동포, 조선족, 고려인, 재일교포, 민단, 조총련, 재미교포 등. 이들을 모두 포용하려면 한국사람은 영토를 넘어서야 하는 개념인 동시에 한국에 이주해 사는 외국인들을 포용하려면 혈연도 넘어서야 한다. 같은 영토도 아니고 같은 혈통도 아니라면 한국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일까? 한국어? 해외로 이주한 사람들이 2세대만 지나도 한국어가 쉽지 않고 3세대부터는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흔하다. 국내에 이주한 외국인들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는 중국은 진나라 때부터 ‘한족’ 만들기 시작했고, 한국은 ‘통일신라’가 신라인 만들기를 시작한 후 고려인, 조선인, 한국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사람 만들기’가 한국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면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소속감을 느끼고 연대할 수 있는 수단이어야지 차별과 배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된 공동체』 정치학자 겸 역사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저서 『상상된 공동체』에서 ‘민족은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공동체일 뿐”이라고 썼다. “많은 국가가 민족의 이름으로 삶을 영위하면서도 민족, 민족성, 민족주의 같은 말은 정의조차 힘들다”라고 말한다. 앤더슨은 민족이 근대에 와서 생긴 개념으로, “역사적 숙명으로, 그리고 언어를 통해 상상된 공동체인 민족은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닫혀 있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왕권이 약화하고 종교공동체가 붕괴하던 시기에 인쇄술이 발달하자 서로 교류한 적이 없던 이들이 신문과 책 같은 인쇄물을 통해 서로 같은 언어권임을 확인하면서 이 언어집단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족은 때로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고취하며, 잘 문명화된 민족주의는 삶을 안정되게 만든다”라며 하지만 동시에 “강한 수평적 형제애나 사랑의 감정은 공동체 내부로만 향할 뿐, 외부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형태로 나타나기 쉽다”라고 경계심을 높였다. 앤더슨은 민족주의는 경계의 안과 바깥을 구별하는 과정에서 국수주의나 인종주의로 빠지기 쉽다고 경고했다. 맺는말 재인도네시아 한국인은 국경을 넘은 한국인이고, 한국계 인도네시아인은 국적을 넘은 한국인이다. 국제결혼 부부의 자녀는 민족을 넘어선 한국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한국인 2세부터는 한국어를 넘어선 한국인이다. 이들은 한국을 바라보는 동시에 인도네시아도 바라본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함재봉 교수는 ‘한국사람 또는 한국인’이 공통점이 없는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앤더슨은 ‘민족’이 상상된 공동체라고 말한다. 결국 한국인 또는 한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는 모두를 아우르는 다양성과 포용력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새로운 정체성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부르는 명칭도 우리 스스로의 특징도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고민이 타인을 배제하고 구별하는 행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끝] 한국인만들기 [이미지: 데일리인도네시아]
강인수의 문학산책#16 멸치/강인수
강인수의 문학산책#16 멸치/강인수
멸치 강인수 아랫목 따뜻한 겨울의 집 신문지 위에 허리가 꼿꼿한 멸치를 펼쳐 말린다 날 저무는 창가에 찾아온 볕 구부려 앉은 내 등을 감싸고 있다 비린내는 사방에 흩어지는데 손은 빠르게 은빛 뱃가죽을 뒤집어 수색하는 중이다 마지막 내장은 자존심이다 바닥에 떨구어지는 검은 별 이제 빈 몸이다 방안에서 날고 있는 비늘도 포자처럼 멀리 퍼지며 천천히 가라 앉는 중 허공을 바라보던 그의 눈은 빛 속으로 사라지는 반쩍이던 기억을 간직하느라 아직은 촉촉하다 분쇄기 안에서 고운 가루로 남은 그에게 내 소란한 마음이 묻는다 나는 거칠게 남겨질 것인가 혹은 곱게 남겨질 것인가 [사진: 강인수] *시읽기 말린 멸치를 분쇄해서 인도네시아에 가져가려 합니다. 그의 몸뚱아리를 정리하면서 나를 봅니다. 바싹 말라가는 것은 멸치뿐일까요? 우리도 언젠가는 바싹 말라져 분쇄될 미래가 오니까요. 죽음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날이었습니다.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성철] “2024년 인도네시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신성철] “2024년 인도네시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2024년 인도네시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 3년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한 이후 보낸 2023년에 대중교통을 비롯한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21세기의 대사건인 코로나 사태가 언제 있었는지 쉽게 망각할 정도로 모든 일상이 정상화됐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즈음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그에 뒤따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침탈 등으로 2023년은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전쟁의 해'였고, 이에 따른 ‘경기 침체’의 해였다. 설상가상으로 엘니뇨 기후현상으로 인류의 삶은 더욱 팍팍한 한 해였다. 한편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수교 50주년을 맞아 서로 축하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축제의 2023년이었다. 이제 어제를 돌아보면서 오늘을 살피고 내일을 전망해 볼 때이다. 2024년 인도네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한인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도네시아 시내 중심에 있는 슬라맛 다땅 동상 [데일리인도네시아] 먼저 2024년은 인도네시아 정치에 큰 전환점을 맞는 해이다. 2024년 2월 14일에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DPR), 지역대표회의(DPD) 의원 및 지방의회 의원선거가 열린다. 2월 대선에서 과반 득표와 절반 이상의 주에서 20% 이상 득표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후보를 놓고 2024년 6월 26일에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특히 대선 이후에는 불확실성이 해소돼 국내외 투자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또한 2024년 11월 27일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주지사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전국 규모의 지방선거가 열린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회는 지방선서를 예정된 11월 27일보다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대선만큼 중요한 인도네시아 국정 어젠다는 동부칼리만탄에 건설할 신수도 누산타라(Nusantara)의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는 일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자신이 꿈꾸고 있는 인도네시아 대국 만들기 사업 가운데 하나인 행정수도 이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장남 기브란을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쁘라보워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기브란을 대선에 출마시켰다. 조코위는 2014년 독립기념일인 8월 17일 이전까지 행정부 일부를 옮기는 데 모든 역량을 기울여 내년 독립기념일 행사는 누산타라에서 거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수십년이 걸릴 신수도 메가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포석이다. 신수도 누산타라 1단계 사업의 목표는 2024년까지 대통령궁, 정부청사, 국회 등 정부 핵심기관을 이전하는 것이다. 2단계는 행정수도를 지원하기 위해 주거와 교육, 의료, 상업시설 등 각각의 기능을 할 6개 위성도시를 2030년까지 개발하는 것이다. 이어 3단계 사업은 수도 확장으로 2040년까지 진행된다. 1단계 사업은 주로 인도네시아 국영 건설사들이 인프라 건설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2단계 사업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대우건설 등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1단계 사업은 조코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상당한 부분이 완공될 것으로 보이나, 조코위 대통령이 지지하는 쁘라보워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당선될 경우 2024년부터 시작될 신수도 2단계 사업의 계획과 규모는 변경될 수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글로벌 경제 전망에 따르면 2023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0% 정도로 예상하고 있으며, 2024년은 올해보다 0.1% 포인트 하락한 2.9%로 예측하고 있다. 즉 글로벌 경제가 2024년에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률과 관련, IMF는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약 5%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IMF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도네시아의 경제 회복세가 비교적 강하다고 평가했다. IMF는 이어 인도네시아의 2024년 경제 성장률은 긴축 재정 및 통화 정책과 원자재 가격의 정상화로 인해 다소 둔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이 202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실시한 '인도네시아인의 한국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거주, 근무해보고 싶은 인도네시아인 중 30%가 가장 선호하는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또 2023년 9월 인도네시아 대형 여행사 드위다야 투어가 실시한 2023 항공권 판매 동향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4년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외관광지로 일본, 한국, 호주를 꼽았다. 이에 따라, 가루다항공은 9월 2째주부터 인천-자카르타 노선을 기존 주3회에서 주4회로 증편하여 운항했고, 2023년 12월에는 발리-인천 노선도 주4회로 증편한다. 이에 따라 양국 간의 직항 편은 주31회가 되면서 인적교류가 더욱 활기를 띌 전망이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과 미국, 중국 등 20개국 관광객들에게 추가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2024년에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관광창의경제부는 인도네시아 통계청 자료를 인용, 2023년 상반기 동안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한국 관광객수가 14만5천 명으로 올해 목표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낙관하면서 2023년 인도네시아 방문 한국 관광객수가 연간 목표치 19만5천 명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주요 어젠다는 두 가지이다. 먼저 4월 10일 실시하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은 재외국민의 사전 신고, 신청을 당부했다. 국외부재자 신고는 2023년 11월 12일부터 2024년 2월 10일까지이며, 재외선거 투표는 2024년 3월 27일에서 4월 1일까지 진행된다. 하지만 공관별로 투표 기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투표 전에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재외 공관 홈페이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 연말에는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 동안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할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선출하는 한인회장 선거가 실시된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한인회는 긴급사태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역량을 보여주었고, 2023년에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 한인사회 활동의 정상화와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 간 우호 증진을 위한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했다. 새해에도 한인회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함께 헤쳐나갈 든든한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한다. (끝)
강인수의 문학산책#15 은어/권달웅
강인수의 문학산책#15 은어/권달웅
은어 권달웅 나 여기 떠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면 청량산 육육봉 끌어안고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낙동강 상류 물 되리 어머니 쪽진 비녀만 한 은어가 되리 하얀 외씨버선만 한 은어가 되리 나 여기 떠나 자라난 곳으로 돌아간다면 달밤에 올 고운 안동포 짜는 어머니 바디소리 만나리 저 아득한 바다로 항해하는 수만 척의 배처럼 힘차게 물살 가르며 거슬러 올라가 가슴을 비추던 반짝이는 물 만나리 꿈처럼 이슬 머금고 핀 들꽃 만나리 나 여기 떠나 다시 살 곳으로 돌아간다면 원앙이 새끼 쳐 나가는 저 먼 비나리 지나 명경처럼 맑은 명호천 지나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 내 혈관이 가을 물처럼 맑아지도록 강바닥 속 은모래 환히 비치는 청정한 마음으로 살리 은어처럼 수박향기 나는 사람으로 살리 『한국시인』 2022-3월(2)호 <2021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시집>수상 시집 『휘어진 낮달과 낫과 푸른 산등성이』 中 *시읽기 권달웅 시인은 1944년 경북 봉화 출생이다. 유년 시절 낙동강 기슭 산골에서 성장했다. 안동과 인접한 곳에서 성장한 듯하다. 나는 은어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은모래처럼 맑고 하얀 생선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은어에서 엿보이는 시인의 투명한 마음과 유년의 기억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수박 향으로 다가온다. 비릿한 은어와 수박 향의 비릿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닷 소리 그리운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앓고 있다면 인도네시아에서도 수박 향을 맡아보면 어떨까......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인수의 문학산책#13 두리안은 가르쳐 준다/서미숙
강인수의 문학산책#13 두리안은 가르쳐 준다/서미숙
두리안 서미숙 부드러운 속살을 지키고 방어하듯 거칠고 두터운 외투를 입고 지옥의 향기를 뿜어대는 두리안 겉으로는 강하게 안으로는 부드럽게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을 사는 지혜라고 두리안은 가르쳐 준다 사람들은 왜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픔이 슬프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강인한 껍질과는 달리 비바람에 견딘 아픈 상처 고름이 되어 노랗게 변해버린 두리안의 속살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삶이라도 견디다 보면 투박한 내성이 생겨 강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가르쳐 준다 *시읽기 두리안 드셔보셨나요? 천국의 맛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지옥의 맛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시를 보면 두터운 외투를 입은 것이 자아를 강하게 보이려는 우리의 겉모습과 같아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내면에는 상처와 슬픔이 있다는 것을 두리안을 통해 배워봅니다. 혹시 힘겹게 걷고 있는 분이 있다면 견뎌봅시다!! *서미숙 1992년 아시아문학 해외공모전 산문 부문 대상으로 등단했고, 2008년 <서정문학> 수필, <문예사조> 시 부문 등단했다. 서정문학상,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인니지부 회장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고문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산문집으로 『추억으로의 여행』, 『적도에서의 산책』, 시집 『적도의 노래』, 『자카르타에게』 등이 있다. *강인수 강인수 시인은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인수의 문학산책 #12번째 외로움과 행복 사이/김준규
강인수의 문학산책 #12번째 외로움과 행복 사이/김준규
외로움과 행복 사이 누군가를 기다리다 시든 꽃잎, 그늘이 드리워진 젊은이의 푸석한 안색에서 외로움의 그림자를 본다.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던 날 정년의 사직서를 쓰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허리 굽은 뒷모습을 보았는가? 평생을 측은지심으로 자식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고 보상으로 얻어낸 마흔 살 꺼풀, 주름 사이에 피는 행복한 웃음은 대체 무엇일까? 청록의 계절에 매끄러운 윤기를 뽐내던 나뭇잎은 잠시 왔다 화려한 추억을 뒤로 하고 붉은 미소를 흘리며 쇠락의 순간을 맞이한다. 무영의 캄캄한 우주 속, 어느 순간 빛과 생명이 숨쉬는 이 땅의 부름을 받고 축복 속에 태어날 때도 혼자였듯이 파란만장한 여정을 끝내고 죽어서 돌아가야 하는 것도 저 우주 속 까마득한 암흑,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에 초대받은 일도, 보이지 않는 행복을 찾아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지난 일도, 외로움을 떨치기 위한 끊임없는 수고였다. 지금, 이 순간 무리 속에 동행하며 푸른 허공에 가슴을 내밀고 숨 쉴 수 있으니 고맙고 외롭다고 투정할 수 있으니 더욱이 행복한 이유이다. -김준규 님의 수필집 “저 바람 속에 운명의 노래가” 중에서- *수필 읽기 이번 주는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준규 님의 수필집 “저 바람 속에 운명의 노래가”에서 한 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외로움과 행복 사이라는 수필의 한 부분을 발췌해 소개하자면 '혼자 왔다 혼자 돌아가는 인생의 여정이 수고와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아름다운 지구에 초대받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각자의 소소한 행복을 얼마나 느끼면서 살고 있는지, 따뜻한 이웃과 얼마나 동행하고 소통하며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은 푸른 허공과 바람 속에 흔들리는 나뭇잎에게 말을 걸어보자! “나 숨 쉴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고. *강인수 강인수 시인은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준규 칠순의 나이에 등단한 시인이자 수필가 김준규 시인은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발명 사업가이기도 하다. 첫 번째 시집 <보딩패스>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시집 <낙엽의 귀향>과 수필집 <저 바람 속의 운명의 노래가>를 발표하였다.
김준규 시인, 한국문협 제1회 출판문학상 수상
김준규 시인, 한국문협 제1회 출판문학상 수상
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 회장인 김준규 시인(한국 문협 인니지부회장)이 제1회 출판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 강인수] 한국문인협회 2023년 한국문학상 시상식 5일 열려 재외동포작가들, 변방에서 고국 문단으로 역량 확대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이사장 김호운)가 주최하는 2023년 문학상 (제3차) 시상식을 12월 5일 목동 대한민국 예술인센터에서 개최하였다. 이 시상식은 윤동주문학상, 조연현문학상, 박종화문학상, 한국문협출판문학상,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등 창작횔동에 전념하는 문학인들의 업적을 포상하는 자리로 인도네시아지부 회장인 김준규 시인(한국 문협 인니지부회장)이 제1회 출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김민정 부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시상식에서, 김호운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문학을 사랑하는 문인들의 숭고한 뜻을 존중하며 가족의 배려를 바탕으로 문학 활동을 하는 문우의 가족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무엇보다 올해 첫 수상자인 김준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낙엽의 귀향』은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문인으로서는 첫 수상자로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시상식에 참석한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들은 출판문학상 첫 수상자인 김준규 시인이자 수필가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존경하는 마음을 보냈다. 지금까지 해외동포들의 문학활동은 변방의 문학으로 간주, 기성 한국문단에 비해 조금은 결이 다르게 다루어졌음이 사실이다. 이번 김준규 회장의 출판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재외동포작가의 활동 역량을 고국의 문단까지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임을 자부한다. [문협=데일리인도네시아] 시상식 참석 및 정리: 강인수(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신성철] “2024 대선, 틱톡이 판세 흔든다”
[신성철] “2024 대선, 틱톡이 판세 흔든다”
[2024 대선] “틱톡이 선거 판세 흔든다”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2024년 2월 14일 동시에 치러질 인도네시아 대선과 총선에서 MZ세대 주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틱톡(TikTok)의 돌풍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정치계가 틱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전통적인 미디어인 TV·신문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기존의 SNS는 물론 틱톡 활용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특히 틱톡은 스마트폰에 익숙한 Z세대를 연결하는 강력한 정치 도구라고 평가되고 있는 만큼 기성 정치인들에게 틱톡의 부상은 기회이자 위협이 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틱톡 이용자를 보유한 국가이다. 현지 틱톡 가입자는 1억2,500만명에 이르며, 최근 틱톡에 입점한 중소기업들은 200만개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틱톡이 전자상거래 분야까지 위협하자, 자국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SNS를 통한 상품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틱톡의 주요 사용자인 MZ세대는 인도네시아 유권자의 52%에 달하며, Z세대는 유권자의 25% 이상으로 선거의 판세를 흔들 수 있는 주요 표밭이 됐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등 미국 기반으로 한 SNS가 내년 선거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틱톡의 부상으로 더 이상 선거운동에 압도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로운 유권자 세대인 Z세대에게는 기존의 SNS가 힘을 쓰기는 힘들어 보인다. 인도네시아 선거운동의 수단이 재편되고 있다. 자료사진 이전에도 인도네시아에서 다양한 종류의 ‘온라인 선거운동’이 활용됐다.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된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1999년 총선에서 이메일을 활용됐다. 하지만 당시 선거운동은 '광장 정치'로 정치인들은 물론 지지자들까지 유니폼을 입고 거리에서 대대적인 유세를 펼쳤다. 선거운동은 춤과 노래를 부르면서 마치 축제와 같이 펼쳐졌다. 2000년대 후반에도 ‘광장 정치’가 계속됐으나, 트위터가 등장하면서 SNS를 통한 선거운동이 시작됐고 주도권이 네티즌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트위터를 사용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지난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의 대선에서 당시 무명이었던 지역 정치인 조코위를 정치적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한마디로 조코위 대통령은 트위터 선거의 수혜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정당들이 틱톡에서 공격적으로 팔로워 찾기에 나섰다. 아직까지 팔로워는 수치로 볼 때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기존 SNS와는 비교된다. 그러나 틱톡이 선거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본다. 유권자들은 SNS에서 정당이나 정치인의 공식 계정에 참여하는 데 소극적이다. 따라서 각 선거캠프는 풀뿌리운동처럼 보이기 위한 선거운동이나 여론 조작인 아스트로터핑(astroturfing)을 활용하거나, 댓글 부대를 이용한 크라우드터핑(crowdturfing)을 사용해 확장 효과를 노릴 것이다. 또한 대선주자 선거캠프들은 직접 틱톡 계정을 운영하기보다는 인플루언서 계정과 접촉하는 방식을 이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비공식 선거운동은 허위 정보를 퍼뜨려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 수 있다. 지난 11월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틱톡의 영향력이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후보자들이 틱톡 숏폼을 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틱톡의 영향력이 급증했다. 2022년 6월 블룸버그는 필리핀 대선에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가 당선되는데 틱톡의 공이 컸으며, 이는 마치 도널드 트럼프가 2017년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 페이스북이 영향을 미쳤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분석을 냈다. 기존 SNS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미디어 플랫폼이 정치적 여론조작과 가짜뉴스 생산으로 공정한 선거를 훼손시켰다. 특히 틱톡의 경우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조작해 경쟁자를 중상모략할 수 있고, 무작위로 영상이 재생된 짧은 영상은 시청자가 사고할 틈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입된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2024년 대선을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지난 11월 27일부터 시작됐다. 대선 후보인 기호 1번 아니스 바스웨단 - 무하이민 이스깐다르, 기호 2번 쁘라보워 수비안또 – 기브란 라까브밍 라까, 기호 3번 간자르 쁘라노워 – 마푸드 MD는 치열한 각축을 벌일 것이다. 대권 주자들은 이미 SNS 공식 계정과 지지자들의 계정을 통해 본격적인 대선 홍보전에 돌입했다. 특히 틱톡이 이번 선거에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선거 관리 당국은 SNS 플랫폼 사용에 대한 명확한 정책 마련과 집행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로 인한 혼란에 대처가 시급하다. 지난 11월 인도네시아 선거관리위원회(KPU)도 틱톡과 공정한 선거운동을 골자로 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하니 선거 관리 당국의 활약도 기대된다. (끝)
강인수의 문학산책 #10번째 자카르타/강인수
강인수의 문학산책 #10번째 자카르타/강인수
자카르타 -스나얀에서- 강인수 플로렌스 커피향이 낡은 지붕과 반듯한 빌딩 숲 사이에서 방황 하는 것을 보았네 차창을 두드리며 꽃을 파는 소녀의 입술에도 향은 머무는 것인지 유리창 너머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네 오후 햇살을 한 몸에 받으며 스나얀을 지키는 청년 동상도 한때는 달콤한 그녀에 반해 날고 싶어했을까 나른한 졸음이 몰려오는 도시에서도 허리를 굽히고 서성이는 고양이에게서도 이 거리에 뒹구는 잎사귀에서도 커피향이 나는 것은 붉은 열매가 검게 되기까지 사랑한 오래된 우리들의 몇 날 몇 해가 쓴 잔을 마셨기 때문이 아닐까 *시 읽기 스나얀을 수없이 지나다녔던 우리들! 문득 풍경을 바라봅니다. 오래된 것과 찬란한 건물 사이에서 생각은 방황을 합니다. 뒷골목에 소소하게 생기는 커피향도 이 거리를 채웁니다. 젊은 동상도 이제 꽤 나이가 먹었습니다. 한 때는 젊음의 용기를 뿜었겠지요. 삶은 방황기를 지나 머뭇거리고 깨우치고 사랑합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빈부의 삶이 그저 다를 뿐 붉은 것이 검게 되기까지 커피처럼 오래도록 사랑한 생의 몇 날 몇 해가 지금을 살아가게 합니다. *강인수 강인수 시인은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인수의 문학산책 #7번째 가을밤/ 김준규
강인수의 문학산책 #7번째 가을밤/ 김준규
가을밤 김준규 여름이 떠나는 뒤뜰에서 낙엽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구름에 부대낀 어스름 달빛이 저녁 창가에 서성이고 소슬한 바람이 강둑을 건너간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일상의 바다 엉클어진 고뇌의 깊이를 가을의 골짜기에 가늠할까 햇볕 따갑던 여름의 끝에서 아우성치던 산 매미 메아리는 산등선에 잠기고 산자락 은은하게 피는 단풍 세월을 반추하는 중년의 미소인 듯 밤이 깊어가는 뒤뜰에서 당신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노란 은행잎이 밤길을 밝힌다. 서울 2023.11.2 [사진: 데일리인도네시아] *시 읽기 지난 11월 4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에서는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준규 선생의 출판기념회가 있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의 한 자락을 '가을밤'이라는 시로 감상 해 보시면 어떨까요? 돌아보면 가을은 중년의 미소를 닮았습니다. 엉클어진 고뇌를 가을의 골짜기에 여러분 젊은 날의 웃음소리와 함께 묻어보면 어떨까요? *김준규 칠순의 나이에 등단한 시인이자 수필가 김준규 시인은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발명 사업가이기도 하다. 첫 번째 시집 <보딩패스>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시집 <낙엽의 귀향>과 수필집 <저 바람 속의 운명의 노래가>를 발표하였다. *강인수 강인수 시인은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인수의 문학 산책 5# 화장실에 지구가 있다
강인수의 문학 산책 5# 화장실에 지구가 있다
화장실에 지구가 있다 우리 집 화장실 도너츠형 문고리를 잡으면 잠자던 하루가 눈을 뜬다 일체형 원피스 양변기 에 앉아서 택배를 시키고 발광하는 우주선 인공조명이 마음속 소란을 쫒아낸다 태초로 돌아간 알몸이 비누 향과 몸을 섞어 경계를 풀어버리는 순간 숨은 그림 찾기 시작! 히말라야 핑크 소금 치약 올리브 담은 비누 열대 과일 망고 샴푸 숯 칫솔과 천 번 구운 소금 천천히 흐르는 모래시계 줄지어 가는 개미와 꽃 한 송이 화장실에 한 개의 지구를 갖고 있다는 건 밀실에 애인을 숨겨 둔 기쁨이다 먼 공중에서 날아오는 깃털 같은 먼지도 이 세계에서는 비행하는 싸락눈이다 혹시 그 소문 들어봤나? 화장실이 오늘 커다란 지구로 아름답게 앉아있다는 *시읽기 아침은 화장실에서 시작됩니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지구상의 모든 물질이 다 들어 있던 겁니다. 갈릴레오가 목욕을 하다가 물속에서 물체가 공기보다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욕실을 뛰쳐나온 것처럼 아름다운 지구 한 덩어리가 화장실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답니다. *강인수 강인수 시인은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인수의 문학 산책 3#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인수의 문학 산책 3# 은행나무 아래에서
은행나무 아래에서 원자력 병원 암병동에 원씨 아저씨 누워있다 아침마다 구청 출근길에 십여 년 함께 했던 낡은 자전거도 떨어지는 은행잎을 덮고 누워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은행 한 바구니 내밀던 말쑥한 손을 이제는 잡아 볼 수 없다며 김씨 아주머니 그 집 1516호 문고리를 만진다 홀아비 원씨 아저씨 명문대 보낸 아들을 자랑삼아 아껴 먹던 계란 노른자가 비릿한 은행열매와 어우러져 난민처럼 퍼져있다 바람에 알갱이가 창문을 두드리며 이리 나와 보라고 유혹하여도 원씨 아저씨, 그저 숯이 되려는 마른 장작처럼 울분의 덩어리들을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아궁이로 들어갈 사람은 눈물로 시간을 버티는데 오늘처럼 머리 위로 은행잎이 떨어지는 날은 하- 한숨조차 아프다 *시 읽기 은행이 익어가는 가을이면 생각나는 아저씨 한 분 계신다. 어찌나 부지런히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애들 엄마 없이도 아들 둘 잘 키워내시던지 은행잎 떨어지는 계절이면 은행을 이웃에게 나눠주던 원씨 아저씨 그 분이 생각난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긴 게 아들 둘이라 다행이라고 하던.... 몇 년 전 둘째가 청첩장을 들고 와서 결혼한다며 이사준비를 하는데 마음이 찡해서 혼났다고 우리 어머니 눈물을 보이던 날! *강인수 강인수 시인은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성철] 2024년 대선,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
[신성철] 2024년 대선,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
2024년 대선 후보. 왼쪽부터 아니스 바스웨단, 간자르 쁘라노워, 쁘라보워 수비안또 [2024년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 한인뉴스 논설위원 3파전 '불꽃'... 결선투표 가능성 높아 대선 후보인 간자르·쁘라보워·아니스의 당선가능성을 예측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세 후보의 편차가 좁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대선이 3파전으로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면서 결선투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대비해 조코위 정부는 결선투표에 필요한 자금 준비를 위한 국회(DPR) 승인을 지난 9월에 마쳤다. 최근 여론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여론조사기관 LIS(Lembaga Indo Riset)는 지난 8월과 9월의 2024년 대선 당선가능성 조사를 비교했다. 국방장관인 쁘라보워 수비안또 후보는 38.3%에서 34.8%로 하락했다. 반면, 전 자카르타 주지사인 아니스 바스웨단 후보는 22%에서 25.2%로 상당한 상승률을 보였다. 중부자바 주지사인 간자르 후보는 34.4%에서 34.4%로 변동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슬람 성향의 정당 PKB(국민각성당) 무하이민 이스깐다르 당대표가 아니스의 러닝메이트가 되면서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회원수 기준 최대 이슬람단체인 나들라뚤 울라마(NU)가 세력을 떨치고 있는 동부자바, 서부자바 및 중부자바에서 지지율이 상승한 결과이다. 지금까지 쁘라보워와 간자르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는 가운데 아니스 후보가 약진하는 모양새이다. 아니스 후보, 러닝메이트 무하이민 확정… 정당연합에 지각 변동 민족주의 성향의 나스뎀당(Nasdem)은 일찌감치 아니스를 대선 후보로 선정했다. 나스뎀당은 지난해부터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이 설립한 민주당과 이슬람 성향의 정당 번영정의당(PKS)과 연합세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초 러닝메이트로 쁘라보워 연합에 있던 PKB 무하이민 이스깐다르를 전격적으로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면서 정치지형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니스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되기를 기대했던 아구스 유도요노 민주당 대표는 나스뎀 연합에서 탈퇴하고 쁘라보워 후보 진영에 합류했다. 승패를 결정할 러닝메이트 선정 대선 후보 세 명이 경합을 벌일 것으로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월 10~16일 대선 후보 등록(변동될 수 있음)을 앞두고 정당들은 러닝메이트 선택을 놓고 치열한 밀고 당기기를 벌이고 있다. 대선 러닝메이트 후보는 일찌감치 아니스 대선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된 무하이민 PKB 당대표, 이외에도 에릭 토히르 국영기업부 장관, 산디아가 우노 창조경제부 장관, 메가와티 투쟁민주당 총재의 딸 뿌안 마하라니 국회의장, 리드완 까밀 서부자바 주지사, 코피파 인다르 빠라완사 동부자바 주지사, 안디까 뻐르까사 전 통합군사령관, 아구스 하리무르띠 유도요노 민주당 대표 등 다수가 있다. 러닝메이트는 박빙의 상황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이 높다. 대선 후보 등록일에 임박해 러닝메이트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군소정당에겐 높은 진입장벽 다양한 인종·종족·종교 등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다당제 정치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다당제는 장기 독재를 한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된 이후 1999년부터 구축돼 개혁과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발전해 왔다. 인도네시아 선거법은 각 정당에서 경선을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를 지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선 후보를 세울 수 있는 정당은 이전 총선에서 득표율 25% 이상이거나 국회 의석의 20%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 간 연합을 통해 투표수 또는 국회 의석수를 끌어모아 자격 요건을 충족한 후 후보를 낼 수 있게 했다. 군소정당들은 이 같은 높고 까다로운 대선 후보 기준에 발목이 잡혔다. 원내 군소정당들은 대선 후보를 세우기 위해서는 연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선거에서는 경쟁하면서도 대선에서는 손을 잡아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년 2월 14일에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역대표회의(DPD)와 지방의회 의원 선거까지 동시에 치러진다. 다당제에서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문제점은 제2기 조코위 정부가 국회(DPR) 의석수의 80%를 장악할 만큼 연립정부를 구축하면서 국정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2022년 하반기부터 연정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최근 대선을 앞둔 연합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정당 간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당들이 보수와 진보 등 이념과 정책, 원칙도 없는 불분명한 동맹을 만들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별다른 의구심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정당들이 가진 하나의 공동 목표는 선거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배분하는 것이다. 이념이나 정책은 그들의 관심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최근 정당 간 합종연횡이 혼란스럽게 진행되면서 이 같은 정치적 동맹이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카르타포스트 엔디 바유니 주필은 지난 9월 15일 칼럼에서 대선을 앞두고 진행되고 있는 부조리한 정치동맹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정당의 이념과 정책의 공통점이 별로 없는 정당들이 연합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어떤 정부를 수립할 지 어떤 이념의 정부가 수립될 지 의문이 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정당 간 연합은 단지 정권 창출을 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제2기 조코위 정부는 원내 9개 정당 중 7개 정당으로 연정을 확대하면서 사실상 야당을 무력화시켰다. 새로운 정치왕조를 꿈꾸는 조코위 현재 권력을 가진 인도네시아의 정치 가문을 살펴보면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장녀 메가와티 투쟁민주당 총재의 정치 가문, 장기 독재를 한 수하르토의 사위인 쁘라보워 정치가문, 수실로 밤방 유도도요 전 대통령 정치가문이 있다. 이외에도 주목을 끄는 정치 가문은 최근 부상한 조코위 대통령 정치가문을 꼽을 수 있다. 조코위 정치가문은 조코위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을 등에 업고 정계에 진출한 장남 기브란 라까브밍 라까 수라까르따(솔로) 시장, 조코위 대통령의 사위인 보비 나수띠온 메단 시장 그리고 조코위 대통령의 막내 아들인 까에상 빵아렙 PSI(인도네시아연대당) 당대표 등 모두 젊고 인기가 상승하는 정치인이다. 기브란(35세)은 대선 러닝메이트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까에상(28세)은 군소정당 PSI 당대표이지만 조코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대선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흑색선전, 권력 남용과 행정 공백… 대선과 총선이 동시 실시, 내년 2월 14일로 예정된 대선과 총선은 동시에 치러질 예정이다. 오는 11월 28일부터 2024년 2월 10일까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지난 2019년 대선과 같이 9.30정변과 관련한 공산주의 색깔 논쟁과 1998년 인권유린, 비이슬람 종교 문제 등을 이슈로 흑색선전이 난무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과 총선에 참여할 장관과 국회의원 등 공직자들이 선거운동에 참여하면서 행정과 의정활동에 공백이 예상된다. 킹메이커 조코위,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2019년 재선된 조코위 대통령은 9년째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면서 지속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쌓아와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국정 지지율이 70%를 웃도는 놀라운 기록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결과로 조코위는 킹메이커라 불리며 2024년 대선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부상했다. 2014년 대선부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은 조코위가 소속돼 있는 투쟁민주당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총재이다. 최근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와 러닝메이트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메가와티와 조코위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일고 있다. 메가와티 총재가 간자르 중부자바 주지사를 자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했지만, 조코위 대통령은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쁘라보워 후보를 지지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은 신수도 건설 등 자신의 정책을 이어갈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모호한 입장을 보이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는 정당 규합을 통한 정치세력 확대 움직임과 유권자의 표심이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유권자는 인물 중심으로 대통령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0월 대선 후보 등록 직전에 조코위가 간자르의 손을 들어줄지 쁘라보워 손을 들어줄지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코위가 손을 들어주는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끝)
강인수의 문학 산책 2# 꿈에
강인수의 문학 산책 2# 꿈에
꿈에 아기를 낳았어요 붉은 등을 보이며 젖을 찾던 아기는 힘겹게 울더니 지 애비 젖꼭지를 찾아서 힘껏 빨아 당기더군요 꽃잎 같은 입술이 오므라들고 꼭지를 놓아 버리자 납작한 젖가슴에서 콸, 콸, 콸 수도꼭지 부서지도록 쏟아지는 젖줄이 강물처럼 흘러 양철문을 열고 무한한 곳으로 여자가 놀라서 돌개바람이 이는 사방을 살펴보니 하늘로 땅으로 젖이 솟구쳐 낮에는 해를 적시고 밤에는 달을 적시더니 모든 것에 스며들어 땅강아지도 마시고 담쟁이도 마시고 지나가던 새벽별도 마시는 참 요상한 젖이 가물어 가는 시절에 애비는 몸뚱이에서 한 알의 핏방울을 짰을 뿐인데 이유 없이 흘러간 젖 줄기는 세상을 어찌 감당하고 있는 중일까요 바위에 부딪히고 쪽잠을 자면서도 밤의 끝에서 배고픈 아기를 안고 있을지도 사력을 다해 젖몸살을 견디고 있을지도 내가 꾸어준 이 모습이 여전히 어딘가 흘러가고 있다면 놀라지 마세요 꿈이라도 반가운 거 아닌가요 *시 노트 중국 작가 위화의 장편소설 허삼관매혈기를 보면 중국현대사의 굴곡진 인생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꿈에 나온 아버지가 아기를 안고 젖먹이는 장면이 눈을 뜨고도 오래 남아서 허삼관을 생각한 적이 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시대에 가장의 무게가 요즘에야 덜하지만 어찌 부성애가 모성애보다 못하다고 감히 말하겠는가. 피를 팔아 자식을 키우는 뜨거운 부성애를 가진 세상의 아버지들을 위로하며.... *강인수 강인수 시인은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인수의 문학 산책 1# 미역귀
강인수의 문학 산책 1# 미역귀
미역귀 미역에도 귀가 있다. 갯바위 바람결에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갈 이야기 들어 줄 귀가 있다 주름지고 딱딱한 모양새라도 쓸쓸해서 숨죽여 울던 눈물을 바다에 섞어 빠르고 느리게 파도로 가르고 없애버리는 당신편이 되어줄 귀가 있다 시읽기 미역을 다듬다 귀를 발견했어요! 주름지고 딱딱한 것이 모진 풍파 맞으며 바람의 소리를 다 들어준 탓인가 바다의 하소연도 다 들어준 탓인가 애틋하게 느껴진 그 귀를 쓰다듬으며 나도 당신 편이 되어줄 저런 귀가 되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이 드는 어떤 날이었어요! 시인의 말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고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참 기쁜 것 같습니다. 그것은 詩라는 언어의 욕망으로 표현되어 지기도 합니다. 앞으로 쓸 문학 산책이라는 코너를 맡아 욕망의 시도를 함으로 더 성장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시를 사랑하는 이들과 유대감을 갖고 서로 더 큰 행복을 나눈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강인수 강인수 시인은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성철] ‘한-인니 수교 50년사’ 인니어판 책 출판에 즈음해
[신성철] ‘한-인니 수교 50년사’ 인니어판 책 출판에 즈음해
‘한-인니 수교 50년사’ 인니어판 책 출판에 즈음해 글 :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 한인뉴스 논설위원 "이 책이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을 설명해 줄 수 있기를..."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은 낯선 존재이다. 한국인은 중국인, 아랍인, 인도인, 일본인, 네덜란드인 등 인도네시아인 접했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바쁘게 움직이고 큰 소리로 말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힘차게 걷는 사람들. 흥이 많아서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술도 잘 마신다. 정이 많아서 마음을 잘 주면서도 마음이 급하다 보니 화도 잘 낸다.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지만 이슬람신자는 드물다. 한편 한국인에게도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인은 낯선 존재이다. 1년 내내 푸른 잎이 무성한 여름만 있는 날씨와 1만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영토, 한국보다 느린 움직임, 이슬람 문화 등은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환경이다. “한국인이세요?, 왜·어떻게 인도네시아에 왔어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한국 투자가 늘고,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과 한국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 유학을 가거나 취업하고 싶어 하는 인도네시아인도 많다. 이 책이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을 설명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지난 2020년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를 편찬하면서, 인도네시아 한인 1호로 장윤원 선생을 선정했다. 장 선생은 3·1운동 당시 고국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할 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다가 발각돼 중국을 거쳐 1920년 인도네시아로 망명했다. 이후 장 선생은 일제가 인도네시아를 점령했을 때, 옥살이를 하는 고초를 겪었다. 해방 직후 석방된 장 선생은 징용 피해자들을 돕고 귀국선을 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이 설립된 후 인도네시아에 온 한국인들은 경제적으로 기회를 얻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사람들은 정치, 사회, 경제, 외교 등 우리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많은 요인으로 인해 인도네시아로 오고 한국으로 간다. 한-인니 수교 50년사 책 표지 [Merajut Persahabatan Memupuk Kepercayaan](의역: 우정을 엮어 신뢰를 쌓은)이라는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년사’는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과 한국기업과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외교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한국기업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사업을 어떻게 펼쳤는지,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은 1장 외교, 2장 경제·비즈니스, 3장 한국인으로 나뉘고, 각각에 대해 시기별로 다시 구분했다. 한국인 부분은 한인회, 한국학교, 한인 단체 등으로 나누어 서술했다. 이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되지만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어도 된다. 1장에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외교 관계 발전 단계에 따라 태동기, 초창기, 발전기, 제1차 성숙기, 제2차 성숙기 등 다섯 단계로 나누었으며, 각 시기별 챕터 서두에 시대적 특징을 요약하여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2장도 시기별로 지난 50년간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시기와 산업을 살펴봄으로써 양국의 경제개발이 상호보완적으로 맞물려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과 성장, 안정적인 정착의 반세기는 불굴의 의지와 열정을 가진 한국인의 도전 정신을 통해서 일구어낸 값진 시간이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한국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에 발판을 마련해 준 우방국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 관련돼 ‘최초’ ‘1호’ 수식어가 붙은 역사가 많다. 1968년 ‘한국 해외 투자 1호’ 한국남방개발(KODECO)의 원목 개발 사업, 1973년 ‘한국 해외 생산 플랜트 수출 1호’인 대상(당시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건설, 1981년 ‘한국 최초 해외 유전 개발 사업’ 서마두라 유전 공동 개발, 1992년 우리나라 대외 무상원조 기관인 코이카의 해외사무소 1호 설치 국가. 한국이 만든 고등 훈련기 T-50과 잠수함을 가장 먼저 사준 국가이다. 3장도 시기별로 한인회와 한인 단체, 정부 기관, 한국학교 등을 통해 한인사회가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했고, 한인들의 생활을 살피고 현지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며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모습도 담았다. 다만 이 책은 한인회 주관으로 진행된 만큼 한인회와 한국대사관의 기록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좀 더 다양한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여러분이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먼저 이 책을 기획한 박재한 한인회장, 필자와 데일리인도네시아 조연숙 편집장이 양국 관계 50년사를 기간별로 체계적으로 알기 쉽고 알찬 내용으로 엮었다. 한글 원고를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한 민선희 작가와 인도네시아인 편집자, 꼼꼼하게 감수를 해주신 김문환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 대표 집필자와 수라이 아궁 누그로호 가자마다대학교 한국문화학과 교수 그리고 행정 절차와 편집에 애쓰신 최인실 한인회 사무국장과 홍석영 한인뉴스 편집장 등 외에도 많은 분들이 자료를 제공하는 등 수고하셨다. 이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수교 반세기를 맞았다. 양국이 외교와 국방, 경제와 비즈니스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한국인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인도네시아에 관심과 애정이 크고, 인도네시아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다.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 사회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인도네시아인과 어울려 살면서 한국인이지만 인도네시아의 구성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현지에 사는 한국인을 인도네시아의 구성원으로 인지해 주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협력하고 우정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데일리인도네시아]
[조연숙 서평] "인니 군위안부 마르디엠, 절망을 견디고 평화· 인권운동가로 우뚝 서다"
[조연숙 서평] "인니 군위안부 마르디엠, 절망을 견디고 평화· 인권운동가로 우뚝 서다"
책 제목: 그들은 나를 모모예라고 불렀다 저자: 에카 힌드라티 · 기무라 고이치 번역자: 김영수 감수·출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글: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오른쪽부터 에카 힌드라티, 테레시아 비니 S., 마르디엠, 에시티 다마야히 [사진: 에카 헨드라티] 책 『그들은 나를 모모예라고 불렀다』는 일본이 전쟁이라는 광기로 인간애와 인권을 망각한 채 여성들에게 자행한 집단 납치, 집단 강간, 집단 유기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된 삶을 살아낸 인도네시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마르디엠(Mardiyem) 여사의 생존기록인 동시에, 그가 절망을 딛고 자신과 동료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고 해외의 피해자들과 연대하면서 스스로의 존엄을 회복하고 평화·인권운동가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또한 에카 힌드라와티와 기무라 고이치, 그리고 <족자카르타법률구조단>이 일본군'위안부' 사건을 조사해 알리고,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일본 정부의 배상을 촉구하는 전쟁피해 보상과 인권회복 노력의 지난한 기록이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 군 '위안부' (인니어 jugun ianfu)문제 활동가 에카 힌드라티와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점령 문제를 연구해 온 기무라 고이치가 집필하고, 인도네시아 전문가 김영수의 번역으로 한국어판이 발간됐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펴낸 이 책은 에카 헨드라티의 프롤로그, 마르디엠의 증언, 기무라 고이치의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견해, 그리고 공동저자와 번역가의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마르디엠은 13세가 되던 1942년에 유랑극단 가수를 만들어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서 고향인 중부 자와 족자카르타를 떠나 칼리만탄 반자르마신에 있는 뜰라왕 위안소에서 3년 정도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했다. 15세 때 임신하게되어 5개월 된 태아를 마취 없이 강제 낙태하는 쓰라린 경험을 겪었다. 위안소 감독의 무자비한 구타를 견디면서도 동료 군위안부 사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1946년 17세에 남부 칼리만탄에서 게릴라로 활동하던 아맛 망운(39)과 결혼하고 1947년에 아들을 낳는다. 1953년에 족자카르타로 돌아와서 동네 잔치집에 음식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1993년 중부자와 <족자카르타법률구조단>이 군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받을 당시 제일 먼저 달려가는 등 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서서 활동하였다. 국내외에서 진행하는 군위안부 문제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인도네시아 군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줄기차게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요구했다. 2007년 『그녀의 한 맺힌 삶이 담긴 책 그들은 나를 모모예라고 불렀다』의 출간을 본 후 그해 12월 20일, 향년 78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태평양전쟁 기간에 일본군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 안에서 성노예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였다. 전쟁 기간 중 많은 여성이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어 강제로 끌려나갔다. 일본군'위안부'는 일본 군인들뿐만 아니라 현지에 파견된 일본 민간인의 욕구 해소와 성병 만연을 방지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남북한, 중국, 타이완, 필리핀,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등에서 강제로 동원된 여성 약 20만 명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추산된다. 2007년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제121호는 일본군이 직접 운영한 “위안부”제도를 20세기 최대 인신매매 사례 중 하나“라고 선언하였다. 위안부는 성노예의 완화된 표현이다. 자카르타 거리에 인도네시아 국기인 적백기를 응용한 장식이 화려하다. 8월 17일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벌써 시작됐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일본은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가혹한 수탈과 폭정을 행했다. 독립기념일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혹자는 일본 식민지 3년이 네덜란드 식민지 약 300년보다 더 혹독했다고 말한다. 전쟁 수행을 위한 자원과 물자 수탈을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인 중 16~40세의 남성을 '노무자'(인니어 romusa)라는 명칭으로, 16~25세의 여성은 군'위안부'라는 명칭으로 강제로 차출하거나 모집했다. 여성 중 일부는 10~13세 정도의 미성년자였다. 그들은 굶주림과 구타와 가혹한 노동 그리고 성폭행을 견뎌야 했고, 심지어 버마와 싱가포르 등 해외로 끌려간 사람들 중 다수는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숨졌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군'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1942년부터 1945년 사이, 일본은 중간 업자를 내세워 여성들을 모집했다. 업자들은 주로 민간인들이었으며, 일본 군대는 지방에 있는 젊은 여성들을 취업 또는 학업을 명목으로 모집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납치와 사기 그리고 위협과 고문 등으로 여성들을 강제로 모집했다. 일본군은 쉽게 속일 수 있는 농촌 지역 출신의 학력 수준이 낮은 여성을 선발했다. 식민지배 기간 일본군이 강제로 동원한 인도네시아 군위안부 피해자와 희생자의 수는 다양한 추산만 있을 뿐 정확히 밝힐 수 있는 사료는 없다. 저자인 기무라 고이치는 군'위안부 수를 약 1만~1만5천명으로 추산했다. 인도네시아 병보 출신들의 전국 조직인 <전병보연락중앙협의회가>는 1995년에 135개 지부를 통해 군위안부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인도네시아 군 위안부 피해여성은 약 22,000명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한편 <족자카르타법률구조단>에 등록한 군위안부 피해 여성은 1,156명이다. 일본 정부는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문건이 발견되었음에도 아시아·태평양 전쟁 중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개별적인 보상에 대해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199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쟁보상 국제포럼>에서 마르디엠은 증언대에 올라 인도네시아 군'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렸다. 이 포럼에서 당시 일본 수상인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희생자 모두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이는 무라야마 수상의 개인적인 사과였을 뿐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장을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게 필요한 의료비와 생계비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1997년 일본 민간단체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이 인도네시아 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에 준 기금도 피해자들에게는 1엔도 직접 전달된 적이 없으며,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고 배분되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초로 군'위안부'였음을 밝힌 한국인 피해자 김학순 여사와 네덜란드인 피해자 루프 오헤른 여사와 마찬가지로 마르디엠 여사도 시작은 개인의 피해를 보상받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이었지만, 남북한, 중국, 타이완, 필리핀,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연대해 활동하면서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또한 군'위안부' 피해자들은 국제회의에서 팔레스타인과 아프가니스탄, 수단 등 1990년대 전쟁 지역에서 온 여성 피해자들과의 만남은 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인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반전·평화·인권운동가로 성장하는 기회가 됐다. 저자 에카는 마르디엠이 증언하고 난 후에는 매번 어지럼증과 불면증에 시달렸으나 그녀가 강조하는 인권 문제가 확장될수록 의지는 점점 더 강해져갔다고 썼다. 에카는 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마르디엠의 장기간 투쟁 결과는 나름의 성과를 하나씩 맺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에카는 마르디엠이 스스로를 인간 고유의 인권을 자각한 주체로 인식하고 있고, 이제 그가 강제로 경험한 쓰라린 역사의 한 부분이 기록되는 것을 보기 시작했으므로, 그는 이제 희생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는 이 책의 발간이 군'위안부' 문제 해결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넒히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저자인 에카 힌드라티는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공동대응을 제안했다. 기무라 고이치는 군'위한부'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일본의 잘못임을 인정해야 피해자들이 사회로부터 멸시당하는 분위기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욕야카르타법률구조단> 변호사 부디 하르또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두 가지 사항은 일본 정부가 성노예제인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과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한 사실을 일본 역사에 기록하여 젊은 세대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인 마르디엠의 이야기와 함께 태평양전쟁시기 일본군'위안부' 실태와 현재까지 상황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갖는 의문들, '그들은 매춘부였나? 그들은 보상을 받았나? 70여년의 시간을 살아낸 피해자들은 치유됐나? 그들이 평생을 곤궁하고 숨어 살아야했던 이유' 등에 대한 답을 확인할 수 있다. 마르디엠과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일본의 거짓된 주장과 위선 그리고 역사 왜곡과 조작을 드러낸다. 일본은 2023년 현재도 군'위안부' 존재를 부인하고 있고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 차원의 손해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등 세계 도처에서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젊은이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이 여성과 젊은이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준 피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피해자들의 존엄 회복과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싸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데일리인도네시아]
[신성철] “인도네시아,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기회와 도전"
[신성철] “인도네시아,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기회와 도전"
“인도네시아,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기회와 도전"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오는 8월 18일에 개통될 예정인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BRI, the Belt and Road Initiative) 사업에 참여한 일부 국가들이 ‘중국의 채무 함정’(Chinese debt trap)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앞서 2022년 스리랑카가 경제 위기로 파산을 선언하자,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 참여가 스리랑카를 채무함정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같은 해 아프리카를 ‘부채 함정’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받아온 중국이 아프리카 17개국이 지고 있는 부채 일부를 탕감해주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대외 팽창 정책인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중국이 이를 의식한 조처로 보여진다. 중국은 2013년부터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140개국을 대상으로 일대일로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해왔다. 일대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합친 말이다. 일대일로 사업은 저개발 국가에 중국 자본을 투자해 풍부한 자원을 개발하고 서로 경제 발전을 꾀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를 제공한 뒤, '부채 함정'에 빠진 저개발국을 사실상의 경제적 속국으로 만들려는 것이 진짜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고속철운영사 PT KCIC 홈페이지 캡처 [자료사진] '부채 함정'에 빠진 국가로는 스리랑카가 대표적이다. 스리랑카는 2010년 중국에서 대규모 차관을 들여와 '함반토타항'을 건설했다. 하지만 항구의 운영 실적은 차관을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적자가 쌓이자 결국 2017년 항구의 지분 일부를 중국 국영기업에 팔아치웠고, 항만 운영권까지 중국에 넘겨야 했다. 파키스탄과 라오스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중국이 현지 국가의 정치∙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지원해 참여국을 채무함정에 빠지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도네시아 싱크탱크인 CELIOS(경제법률연구센터, Center of Economic and Law Studies)는 중국이 인도네시아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대일로 사업 가운데 하나인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사업의 예로 들면서 경종을 울렸다. CELIOS 인도네시아-중국연구팀의 줄끼파르 라흐마드 팀장은 인도네시아에 일대일로 사업이 이미 체결이 됐으나 아직 시행하지 않은 사업이 많다면서 중국이 공여한 차관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ELIOS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진행 중인 일대일로와 관련된 인프라 사업이 71건으로 203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대인도네시아 중국 투자가 지난 수년 동안 증가하고 있다. 대인도네시아 중국 투자는 2020년 48억 달러였다. 비록 2021년에는 30억 달러로 감소했지만, 2022년에는 82억 달러로 급증했다. 줄끼파르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부채 함정) 신호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재 인도네시아는 ‘부채 함정’을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인도네시아·중국 합자회사(KCIC)에 따르면 고속철 사업이 계획보다 늦어지면서 총사업비도 당초 예상했던 60억 달러보다 16억 달러가량이 늘어난 76억 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당초 예상했던 사업 초과액 20억 달러보다는 증가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토지 수용 보상금이 커졌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공사 지연,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문제로 사업비가 급증했다. 중국전력건설(PowerChina)의 협력사인 까얀 하이드로 에너지(KHE, Kayan Hydro Energy)가 북부칼리만탄주의 까얀 강에 댐 5개를 건설하여 총 9기가와트(GW)의 발전용량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까얀 케스케이드(Kayan Cascade)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2년 10월 6일 일본 기업 스미토모 상사(Sumitomo Corp.)가 총사업비 178억 달러(한화 약 25조 5,316억 원) 규모의 까얀 케스케이드 사업에서 합류하기로 하면서 해당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루훗 빤자이딴 해양·투자 조정장관은 최근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시승 행사에 참석한 뒤, 2차 고속철도 사업을 위한 연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직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중국 기술과 자본이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속철 1차 사업이 중국산 기술과 자본으로 이뤄졌는데 이에 대한 후속 사업인 만큼 사업의 연결성을 위해 중국과 손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줄피까르 팀장은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일대일로 프로젝트 완성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운명공동체를 구축하고자 한다”며 “인도네시아가 중국의 투자 유치가 필요하지만 중국도 인도네시아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와 협력하지 않고 중국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인도네시아 정부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 관련해서 '채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끝-
[신성철] 한-인니 수교 50주년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
[신성철] 한-인니 수교 50주년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
[한-인니 수교 50주년]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긴다. 곤란한 일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 일수도 있다. 국가 간 외교관계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비슷하다고 말한다.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가혹한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이하게 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인도네시아는 일본이 2차대전에서 항복한지 이틀 후인 1945년 8월17일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지배했던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선언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인도네시아는 300여년 간 식민통치를 했던 네덜란드에 맞서 독립전쟁을 시작해, 4년 간 수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주권을 넘겨 받았다. 1949년 12월 27일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독립을 인정한 직후인 12월 30일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국가승인을 추진하며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양국은 1973년 수교한 이후 올해가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동안 양국은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50년 우정을 넘어 진정한 미래동반자의 관계로 성숙하고 있다. 먼저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 인도네시아가 손을 내밀었다. 2013년 한국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가 발행한 '6·25전쟁 시 국제사회의 대한(對韓) 물자지원 활동'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가 6·25전쟁 기간 한국의 막대한 피해 손실 상황에서 민생안정과 전후 복구를 위해 재정을 지원했다. 인도네시아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중재자를 자처했다. 2002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그해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 메가와티 대통령의 방북은 오래된 북한과의 인연 때문이다. 1965년 김일성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수카르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 김정일을 함께 만난 바 있었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방북 후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한했으며, 3월 30일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관계와 한반도 및 동아시아 등 지역정세,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방안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방한 의사 전달이 있었다. 2018년 8월 19일 붕카르노 주경기장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이낙연 총리와 리룡남 북한 내각부총리가 나란히 앉아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북정상회담은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조코위 대통령은 아시안게임 개회식 직전 이낙연 총리와 리룡남 북한 내각부총리와 삼자 환담을 하는 등 남북한 화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 남북공동응원단은 자카르타에서 짧은 순간이나마 강렬하고 짜릿한 한민족의 통일을 경험했다. 한국 질병관리본부에 납품할 방호복 긴급 생산 [엄정호씨 제공=연합뉴스] 인도네시아의 선의에 대한민국도 화답했다. 1977년 11월 30일에는 최각규 농수산부 장관과 사르워 에디 위보워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양국 정부를 대표하여 쌀 대여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같은 해 10월 인도네시아 정부가 쌀을 지원하여 줄 것을 한국 정부에 긴급히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심각한 자연재해로 식량이 부족하여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한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식량부족 해소를 위해 쌀 7만 톤을 대여하기로 신속히 결정했고, 같은 해 12월에 첫 선적이 이루어졌다. 쌀을 수입하던 한국이 외국으로 쌀을 대여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새마을운동으로 한국의 영농기술이 획기적으로 혁신되었고, 연이은 풍작으로 주곡인 쌀이 자급선을 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아체주 서부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해 인도네시아인 20만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대참사가 발생한 직후, 한국 정부와 비정부단체(NGO)는 발빠르게 인도적 지원을 펼쳤고 한국 해군 보급선이 현장에 필요한 중장비를 한국에서 피해지역까지 직접 실어 날랐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해 피해 지역에 병원과 학교를 지어주고, 쓰나미 예방을 위한 조기경보장치 설비와 맹그로브 숲 조성 등 복구와 피해 예방 활동을 지원했다. 앞서 1992년 9월 1일 코이카의 제1호 해외사무소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개설된 것은 한-인니 양국 우호 관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나라가 인도네시아에 방역물품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방호복으로 모범적인 협력을 이뤄내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이 ‘진정한 친구’임을 다시 확인했다. 당시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초기부터 인도네시아를 긴급 인도적 지원 우선 파트너로 선정하고, 50만달러 상당의 긴급 지원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여러 가지 구체적인 협력을 이뤄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 '방호복'을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의료용품은 수출금지 품목으로 지정됐다. 당시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은 인도네시아의 의료 장비가 수출금지품목으로 지정돼 '어떻게 예외를 만들까' 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가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 방호복 부족 현장을 같이 돕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됐다. 인도네시아는 최일선 의료진들이 비닐 우비를 입고 환자를 이송·진료하는 등 방호복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인 봉제업체들이 생산한 방호복을 국내로 들여오는 한편, 일부는 인도네시아 의료진에게 공급하는 협력 모델을 만들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공동 개발한 KF-21. [자료사진] 1997년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동시에 발생한 외환위기로 인도네시아 현지 한국 기업들도 위기를 맞는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는 정치, 경제와 사회적인 격변기를 맞으며 혼란 상황에 빠지고 현지 한인사회도 불안정한 상황에 직면한다. 특히 1998년 5월에 일어난 사태로 한인 5천여명이 비상 탈출하고 외국기업들이 철수하는 상황이었지만 대부분의 한인 기업인들은 철수하지 않고 현지 직원들과 함께 직장을 지켜냈다. 이때부터 많은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어려울 때 떠나지 않고 함께한 한국인을 ‘진정한 친구’로 여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진정한 친구’로 협력한 미담은 수없이 많다. 마지막으로 결정정인 사건을 꼽자면, 1960년대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 기업에 산림개발을 허가해준 덕분에 한국 합판산업과 산업화가 꽃을 피우게 됐고, 다시 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합판 공장을 세우면서 인도네시아도 합판산업을 키울 수 있었다. 이제 두 나라는 전투기 KF-21을 공동 개발할 만큼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 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협력했고, 특히 어려울 때 양국의 협력은 더 빛났다.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끝]
[조연숙] 재외 한인 언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조연숙] 재외 한인 언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재외 한인 언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식당 입구에는 여러 가지 한국어 신문과 광고지가 놓여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간되기 시작한 현지 한인사회 내 신문과 광고지가 2010년대 초반까지 절정을 이루었다. 이후 인터넷 보급으로 한국 뉴스를 인터넷에서 직접 보게 되고,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확산으로 정보와 뉴스를 습득하는 통로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한식당 입구에 놓이던 한국어 신문과 광고지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도네시아 한인 미디어들은 한인사회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을 보도하고 기록하는 일을 담당해 왔다. 한인회와 대사관 그리고 여러 한인 단체 활동을 알리고 한인들 시각에서 편집한 인도네시아 주요 뉴스와 사설도 다룬다. 배포 범위도 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넘어 인도네시아 대학과 한국 주요 정부 부처 그리고 해외 한인회 등 다양하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서 전통적인 뉴스미디어로는 한인뉴스, 데일리인도네시아, 한인포스트, 자카르타경제신문, 인니투데이 등이 있고, 웹사이트로는 인도웹이 있다. 한인회와 한국대사관 그리고 민간기업과 개인들이 카카오톡, 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계정을 만들어서 직접 뉴스와 정보를 공유한다. 장한솔, 하리지선, 한유라, 이정훈, 황우중 등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한국인 인플루언서들이 있지만 이들은 한인보다는 인도네시아인이 주요 구독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 매체는 한인회가 발간하는 <한인뉴스>이다. <한인뉴스>는 1996년 7월 타블로이드판으로 시작해 6개월 후부터 책자 형태로 변경한 후 현재까지 한 회도 거르지 않고 매월 발행한다. 앞서 1975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거류민회 회보>가 발행됐고, 1994년 하반기에는 타블로이드판 형태의 <한인회보>가 발행됐다가 중단됐다. 현재 한인뉴스는 종이 책자 외에도 웹사이트를 운영한다. <데일리인도네시아>는 1999년 4월<스피드넷>이라는 이름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했고, 2009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해 지금까지 발행하고 있으며, 주간 뉴스레터 발행, 웹사이트, 밴드, 페이스북 페이지 등을 운영한다. <한인포스트>는 2005년 10월에 <한나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간했고,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한인포스트는 종이신문, 웹사이트, 밴드를 운영한다. <자카르타경제신문>은 2012년 5월에 창간호를 시작으로 종이신문을 발행했으나, 2020년 4월에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하고 온라인 신문으로 전환해 자체 웹사이트와 밴드를 운영한다. 가장 최근에 시작한 <인니투데이>는 2021년 1월 창간했으며 공식 웹사이트 및 밴드를 통해 뉴스를 전달한다. 경제인단체에서 발행하는 협회지도 있다. 재인도네시아한국신발협의회는 <코파의 힘>, 재인도네시아한국봉제협의회는 <코가>, 재인도네시아한국건설협의회는 <창조>를 각각 타블로이드판 월간지로 발행한다. 한편, OKTN(KBS World)인도네시아와 K-TV가 고국의 소식을 영상 매체로 전달했으나, 미디어 환경의 대변혁으로 문을 닫았다. 미디어 환경 급변과 언론의 정체성 위기 미디어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언론과 언론인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콘텐츠 제작과 송출 기술의 발달은 단순히 언론사와 언론인의 급증과 경쟁 심화를 넘어서 언론과 언론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또한 뉴스 취재, 제작, 전송의 기술적 진보는 사건이 발생하는 현장에서 기자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소형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할 수 있어서 사람이 가는 곳에 카메라도 간다. 드론을 활용한 무인 촬영으로 사람이 직접 못 가는 곳까지 카메라가 간다. 유튜버 혹은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1인 미디어 제작자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상당수의 유튜버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수준의 정보를 동영상으로 생산해 내고 사실상 뉴스 콘텐츠를 제작하여 송출한다. 베트남전 때는 기자가 취재한 뉴스가 언론사를 거쳐서 시청자에게 도달하는 방식이었다. 걸프전 때는 미군이 브리핑한 내용을 취재기자단이 정리해서 시청자에게 위성으로 중계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우크라이나전에서는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 드론과 보디캠(몸에 착용하는 카메라)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유튜브로 송출한 것을 시청자가 보고 있다. 기자의 필요성에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전문 직업인이 된 유튜버 중 일부는 기존 미디어의 뉴스보다 사회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유튜버가 제작한 동영상, 유튜버가 주장하는 의견을 수용하여 세상을 인식한다. 언론사의 뉴스를 보고 세상을 인식하는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것. 대중매체가 의식적으로 현재 이슈에 대해 대중의 생각과 의견을 설정하는 의제(Agenda) 설정 기능, 프레이밍(Framing) 효과, 프라이밍(Priming) 효과를 유튜브가 대체하고 있다. 재외 한인공동체에서 한국어 미디어의 역할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한동섭 교수는 재외한인 언론이 정보 제공과 한인사회 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25일 세계한인언론인협회(회장 김명곤)가 서울에서 개최한 '재외언론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 발제자로 나서 ‘재외 한인 언론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재외동포에 대한 재외동포 언론의 기능에 대해, 한 교수는 정보 제공, 구심점 기능, 위기관리 기능, 교육 및 사회화, 재외동포들을 위한 의제 설정과 여론 형성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해외 한인 미디어들이 과거에는 고국 소식을 전달하는 기능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으나, 인터넷의 발전으로 재외 교포들이 직접 고국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된 만큼 이제는 현지에서 필요한 뉴스를 취사선택해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주한 국가에 새로 정착하는 동포들은 물론 현지에 오래 체류 중인 동포들도 언어장벽, 제도에 대한 정보 부재,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현지 생활이 어려울 수 있는데, 재외동포 언론이 현지의 법, 제도, 정책, 문화 등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인공동체 내에 한인회, 종교단체, 문화단체 등이 있지만, 재외동포언론은 이들 단체보다 접근성이 좋다며, 재외공관은 물론 한인회도 공신력 있는 재외언론을 주요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인 미디어는 자연재해, 정치 사회적 소요사태 등 안전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재외언론은 이민 후속 세대에 문화를 전수하고 한국어를 교육하는 기능과 함께 재외동포를 위한 의제 설정과 여론 형성 기능을 한다. 고국인 한국에 대해, 재외한인 언론은 이민자와 유학생 등 해외 체류 한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서 한국 중심의 구심력을 강화하고, 재외 한인사회를 조직화하고 한국과 조직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촉진할 수 있다. 재외한인 언론은 한국 문화 소개와 한국어 교육 기능 그리고 한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을 제고하게 하는 등 해외 홍보 기능도 있다. 거주국인 인도네시아에 대해, 재외한인 언론은 거주국 다문화·소수사회(한국 동포사회) 성장과 안정화 기능을 한다. 재외한인 언론을 위한 제언 한동섭 교수는 재외한인 언론사와 언론인에게 향후 지속성과 발전을 위해 ▲재외한인 언론 네트워크 활성화. * pool 형성. 취재 공조 및 기사공유 ▲현지 언론 및 한국 언론, 언론 유관기관과의 업무교류 활성화 ▲사업다각화 추진 ▲현지 공관 및 기업과 협력관계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그는 재외한인 언론이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려면 충분한 인력과 기술력, 한국 정부의 지원과 업무협조가 필요하다며, 한국 정부에 재외한인 언론에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재외 한국공관과 지원 및 공동 사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현지 한국기업에는 재외한인 언론에 대한 재정지원과 광고 협조 등을 촉구했다. 한국이 이민 사회로 전환하고 있어서 현지화한 한인들도 역이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며, 고국에 대한 정보를 발굴해 주는 역할을 제안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신성철] 한-인니, 미래 경제협력의 기회와 도전
[신성철] 한-인니, 미래 경제협력의 기회와 도전
한국-인도네시아, 미래 경제협력의 기회와 도전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 한인뉴스 논설위원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년을 맞는 올해 1월부터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 발효되면서 양국 경제협력이 50년을 넘어 100년을 향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앞서 인도네시아는 지난 2020년 11월 고용창출법(일명 옴니버스법)을 제정해 경직된 노동시장의 개혁을 통해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등 외국인투자자에게 문호를 활짝 열었다. 한국-인도네시아(한-인니) CEPA는 양국 시장을 개방한다는 의미에서 '자유무역협정'인 FTA와 비슷한 협정이다. 하지만 CEPA는 상품과 서비스 교역, 투자 등 무역 확대에 무게를 둔 FTA에 비해 정부 간 경제 협력은 물론 인적·문화적 교류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경제협정이다. CEPA는 주로 선진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하는 개발도상국이 선호하는 방식인만큼 양국이 상생할 수 있는 협정이다.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엠블럼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글로벌 경제가 둔화하며 침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도 인도네시아가 제조업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다는 전망이 나온다. 2억 8천만 명의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가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천연자원, 거대한 내수 시장을 앞세워 제조업에서 중국의 일부분을 맡게 될 대체지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해외 투자가 금융보다는 제조업 분야 투자 비중이 높고 투자 여건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네시아 투자부에 따르면 2022년 인도네시아 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약 430억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이며,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이 기간 제조업 분야 투자가 크게 증가했으며, 특히 자동차 배터리의 주요 원자재인 니켈을 활용한 다운스트림(downstream, 하방산업) 산업의 투자가 크게 증가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는 원자재 수출 대신에 다운스트림 산업을 개발하는 데 집중한다는 전략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다운스트림 산업은 천연자원을 가공·판매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산업 부문을 뜻한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한국의 투자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18년 6억8천만 달러에 그쳤던 한국의 인도네시아 투자는 2021년 18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28일 자카르타에서 코트라(KOTRA) 주관으로 열린 '한-인니 미래 신산업 비즈니스 플라자'에 따르면 한국의 인도네시아 투자가 특별한 것은 전기차나 배터리, 화이트바이오(White Bio) 등 신산업이나 제철소, 석유화학 단지 등 대규모 장치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인도네시아와 한국 간 미래 신산업 협력 방안을 살펴보는 세미나와 함께 전기차, 에너지, 의료기기, 디지털 콘텐츠 분야 등에서 국내 혁신 기술기업 48개 사의 쇼케이스도 함께 진행됐다. 또 한국전력공사와 협업해 인도네시아 에너지부와 인도네시아 전력 공사를 대상으로 국내 탄소 중립 분야 혁신 기술 기업들의 기업설명(IR)회도 열렸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경제협력에서 윈윈(win-win)하려면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 실현을 위한 로드맵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을 진행하면서, 한국 등 제조업 선진국을 통한 기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은 지난 2018년 4월 조코위 정부가 처음 공개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인 독일, 일본,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들도 글로벌 생산기지로 자리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메이킹 인도네시아 4.0’ 정책에 기반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현재 세계 16위 경제 규모를 2030년까지 10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핵심 전략 방안으로 첫째, 제조업 수출 경쟁력 강화를 꼽았다. 순수출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를 2030년까지 1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특히 순수출 중 제조업의 기여도를 2016년 30%에서 2030년에는 65%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게 목표다. 둘째, 로보틱스(Robotics), 3D 프린팅,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인더스트리 4.0 기술을 접목해 단위비용당 노동생산성을 2030년까지 2016년의 2배로 높인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인더스트리 4.0 육성과 달리 로보틱스·바이오 등 미래산업보다는 전통 제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대국으로 경제활동 가능한 젊은 인력이 풍부한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며, 자원이 풍부한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인프라 부족 등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전방과 후방산업 연계 가치사슬이 취약하고 정부 재원 및 혁신 주도 역량 부족, 숙련 노동력 부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이러한 선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선결 과제로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와 부품의 국내 대체를 위한 산업생태계를 육성 △5대 육성산업(식음료, 섬유, 자동차, 전자, 화학) 발전을 위한 산업단지를 운영하고 산업단지 간 연결성 강화 △고용의 7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을 강화 △ 빨라빠링(Palapa Ring)을 통해 대규모 통신망 인프라 구축 △Go-jek, Tokopedia, Traveloka 등 자국 유니콘 스타트업들의 성공을 발판삼아 제조업에도 ‘IT 혁신’ △한국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선도 제조업체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의 5대 육성산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늘어나는 등 인도네시아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에너지솔루션, 롯데케미칼 등 대규모 투자를 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지난 3월 15일부터 닷새 동안 원팀 코리아를 이끌고 인도네시아 출장을 마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업수주를 통한 1회성 수익창출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자체의 인적 역량 구축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인도네시아의 장기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손잡고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길이다”라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에 방문한 원팀코리아는 민관 '원팀' 고위급 외교와 한-인니 뉴시티(New City) 협력포럼 개최, 외국 정부인사 최초 신수도 개발현장 방문 등 적극적인 인프라 협력 활동을 진행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원팀코리아는 인도네시아 공공사업주택부 장관, 신수도청 장관, 교통부 장관, 자카르타 주지사, 아세안 사무총장, 투자부 고위 관계자 등과 만나 건설,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IT, 문화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바수끼 하디물요노(Basuki Hadimuljono) 공공사업주택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는 주택, 도로, 수자원 등 주요 기반 인프라에 대한 우리 기업의 우수한 기술력 및 노하우를 기반으로 △아세안 대상 기술직업 교육기관 설립 △공적개발원조(ODA) 지원 △스마트 빌딩 건설을 위한 전문가 파견 등 인프라 협력을 논의했다. 밤방 수산또노(Bambang Susantono) 신수도청 장관과는 약 40조원 규모의 신수도 건설 사업에 참여 의지가 있는 스마트 시티·스마트 건설·모빌리티 등 우리 기업들을 한 곳 한 곳 직접 소개하며 관심을 당부했다. 부디 까르야 수마디(Budi Karya Sumadi) 교통부 장관과는 △자카르타 MRT(중전철) △자카르타 LRT(경전철) 등 인도네시아 도시철도 사업에 우리 기업의 참여를 당부했고, 양국 간 인적·물적 교류 활성화를 위해 양국 지방 공항을 포함한 노선 다변화 및 운항 횟수 증대를 논의했다. 한-인니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발효돼 무역 확대는 물론 중소기업 육성과 기술이전, 인력 양성, 디지털 전환 등에서 미래 협력이 확대될 전망이다. 노동력과 천연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와 기술력을 갖춘 한국이 파트너가 돼 장점만 결합하면 양국 모두 윈윈(win-win) 할 수 있다. 평균 연령 29세이며 세계 제 4위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는 생산시장이자, 중산층이 확대되고 있는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 제조업의 기술력이 인정받고, 한류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우리나라의 국격이 또 한번 상승했다. CEPA를 통해 양국 관계가 현재의 황금기를 넘어 공동번영을 향한 미래 동반자로의 관계로 새롭게 도약해 나갈 것이며, 한국-인도네시아 50년의 우정을 넘어 100년지기 미래 동반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끝-
[신성철]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최고 절친’”
[신성철]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최고 절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최고 절친’”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 한인뉴스 논설위원 "중국과 일본도 (인도네시아의) 신수도 이전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으나 한국과 더 많은 협력을 해왔고, 한국과 협력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라고, 인도네시아 공공사업·주택부 바수끼 하디물요노 장관이 지난 3월 16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국-인도네시아 뉴시티 협력포럼'(Korea-Indonesia New City Cooperation Forum)을 마치고 한국 출장 기자단과 만나서 자국의 신수도 ‘누산따라’(Nusantara) 이전 사업을 한국과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이같이 말했다. 중국·일본과 다른 한국의 강점에 대해 바수끼 장관은 “저 개인적으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더 유사성이 많고, 문화적으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 하는 방법과 문제 해결법에 유사점이 있어 한국과 협력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친구가 100명이 넘어, 그곳을 제2의 사무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장관은 이어 40조원대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수도 이전 프로젝트에 기획부터 토지 수용, 재원 조달, 사업 이행 전 과정을 먼저 겪은 한국의 경험에서 배울 게 많다고 전했다. 이날 포럼의 개막식에 참석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바수끼 장관을 지한파라고 소개하면서, "거쳐간 한국 국토부 장관이 6명이 넘는 최장수 장관이라고 화답했다. 반뜬주 찔레곤에 있는 크라카타우포스코에서 2013년 12월 23일 열린 일관제철소 준공식에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고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자료사진] 절친은 ‘절친한 친구’를 줄여 이르는 말로 더할 나위 없이 진정한 친구를 일컫는다. 진정한 친구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친구, 베풀고 싶은 친구, 질투 없이 응원할 수 있는 친구,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 그리고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절친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절친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과거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은 지상, 지하 그리고 수산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를 가장 탐내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으로부터 글로벌 공급망(GVC)이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중국과 일본도 인도네시아와 가깝게 지내려고 정성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인도네시아를 무력으로 점령했고, 중국은 역사적으로 인도네시아에 영향력을 미친 만큼 인도네시아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라는 말이 있다. 2013년 한국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가 발행한 '6·25전쟁 시 국제사회의 대한(對韓) 물자지원 활동'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가 6·25전쟁 기간 한국의 막대한 피해 손실 상황에서 민생안정과 전후 복구를 위해 재정을 지원했다. 한편 한국은 2004년 12월, 20여만 명의 사망·실종자를 야기한 인도네시아 최악의 자연재해 아쩨 쓰나미로 피해를 입을 때,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비정부기구(NGO)가 지원했다. 최근 코로나19가 발발했을 때,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인도네시아에 의료장비와 의약품을 신속하게 지원했다. 이외에도 서로 나눈 따뜻한 우정이 담긴 미담은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다. 한국인은 인도네시아의 어느 부분을 좋아할까? 한국사람은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자원과 큰 시장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관광지, 풍미 있는 음식, 문화의 다양성과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포용력을 좋아한다. 특히,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미소는 한국인의 마음을 끈다. 반면에 인도네시아 사람은 한국의 단기간 고도성장과 기술력을 부러워하면서, 한국인의 근면함과 에너지와 흥이 넘치는 한국문화에 빠져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뚜렷한 한국 사계절도 좋아한다. 올해 2023년은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1966년 총영사관을 개설했고, 1973년 9월 대사급 외교관계로 승격하면서 본격적인 수교관계가 수립되어 1981년 6월 전두환 대통령이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를 공식 방문했고, 이듬해 1982년 10월 수하르토 대통령이 방한했다. 이후 한국의 모든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고, 인도네시아는 하비비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또 고위급 교환방문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오랜 역사는 갖고 있지 않지만 어언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재인도네시아 한인회는 현지 한인들의 뿌리 찾기 노력의 일환으로 장윤원 선생을 최초의 인도네시아 한인으로 발굴했다. 일제 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인도네시아로 망명한 장윤원 선생이 1920년 9월 20일 자카르타에 첫 발을 내딛은 날을 기점으로 삼아 지난 2020년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를 출간했다. 장윤원 선생 이후에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인도네시아로 이주했으나 자발적인 이주는 아니다. 1960대 후반에 이르러 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 진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주해, 이제 현지 한인사회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외국인공동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에는 최초와 1호가 많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에 발판을 마련해준 우방국이다. 1968년 코데코(Kodeco, 한국남방개발)의 원목 개발은 ‘제1호 한국 해외투자사업’이고, 1973년 대상(당시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건설은 ‘한국 최초 해외생산플랜트 수출’이다. 1981년 서마두라유전 공동개발은 ‘한국 최초 해외유전개발 사업’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제1호 해외사무소를 인도네시아에 개소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만든 고등훈련기 T-50과 잠수함을 가장 먼저 사준 나라이기도 하다. 아직도 인도네시아 국민과 한인이 애용하고 있는 자카르타~보고르를 잇는 자고라위 톨 로드(Jagorawi Toll Road)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고속도로로 현대건설이 완공해 찬사를 받고 있다. 최근 한-인니 관계를 살펴보면, 2006년 ‘전략적 동반자관계’에서 2017년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했다. 전자정부 및 행정 분야를 비롯해 건설 및 전투기 공동개발 등 방산 분야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발효돼 지속가능한 양국 발전의 황금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양국은 해안협력, 안보협력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노력은 물론 지자체와 민간 차원의 교류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는 수교 이후 50년 동안 정치, 경제, 문화, 인적교류 및 방산협력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관계로 발전했다. 이제 절친인 양국 관계는 5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관이 협력을 통해 100년을 향한 미래로 힘찬 여정의 새로운 출발을 할 때다. --끝--
[조연숙]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회를 보며 “인도네시아 한인 기록소”를 떠올리다
[조연숙]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회를 보며 “인도네시아 한인 기록소”를 떠올리다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회를 보며 “인도네시아 한인 기록소”를 떠올리다 글: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1부 익히고 가르치며 시대를 열다”라는 주제로 개인들이 공부하던 책과 명찰, 상장, 졸업앨범 등과 함께 교련복과 훈련 때 쓰던 총도 있다. [사진: 데일리인도네시아]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는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잘 드러낸다.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기증한 여러 서류와 사진 그리고 물품 등을 통해 1960~1980년대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지폐와 영화포스터 수집품 중에는 내가 기억하는 것도 있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한국전쟁 후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 활동들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됐고, 후대와 국가의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되었음을 전시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들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 [사진:데일리인도네시아] 개인 기증품 전시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먼저 전시회를 살펴보자. 서울 세종대로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상설기증관 입구에 들어서면, “1부 익히고 가르치며 시대를 열다”라는 주제로 개인들이 공부하던 책과 명찰, 상장, 각종 인증서 등과 함께 교련복과 훈련 때 쓰던 총도 있다. 문맹퇴치 교육을 받던 어른이 쓰던 영어노트는 너무 예뻐서 오히려 마음이 아렸다. “2부 여러분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켜 드립니다” 코너는 1960~1970년대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철도와 택시와 관련된 사진, 제복, 승차권 등이 전시됐다. “3부 야무진 손 끝으로 옷을 지어드립니다” 코너는 같은 시기 양장점, 봉제공장, 의류판매점 등 의류업에서 활동한 종사자들이 기증한 재봉틀과 의상 관련 서적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4부 이방의 불모지에서 내일을 꿈꾸다” 코너에는 1960~1970년대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중동 사막으로 건너간 건설노동자들의 개인일기, 항공권, 비자, 여권, 양말 등 개인 물품과 사진들이 있다. “5부 할머니 손은 약손, 이젠 옛말”은 서독으로 파견된 간호사의 활동과 미국 평화봉사단이 한국에서 벌인 결핵예방 운동 등과 관련된 포스터와 의료기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6부 “꾸준함의 힘, 당신의 취미도 역사가 됩니다” 코너에는 우표, 담배, 엽서, 영화 포스터 등 개인이 취미로 모으던 것들이 일정 시대와 분야를 설명하는 자료를 축적하는 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 [사진:데일리인도네시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기증관에 대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과거는 물론 동시대의 유의미한 자료를 수집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근현대사의 면면과 시대적 흐름을 살릴 수 있는 사료로써 개개인의 추억이 깃든 자료들을 10년 이상 기증받아 모으고, 이들을 테마에 따라 재구성해 상설기증관에 전시하고 있다. 상설기증관에 대해, 박물관 측은 “동시대를 살아낸 이들에게는 공감의 창이 되고,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간접 체험의 장이 된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개인이 기증한 물품과 자료들은 박물관 곳곳에 숨결과 이야기를 불어넣고, 비어 있는 역사의 조각을 맞추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나만의 기억’이 ‘모두의 추억’으로 공유되는 공간”과 “내 일이 내일이 되다” 등의 전시 제목에서 상설기증관의 역할을 추측할 수 있다. 앞서 남희숙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은 상설기증관이 “기증 자료를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이자, 기증자의 삶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기증 문화 확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한 바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 [사진:데일리인도네시아] 공공역사, 일반인에게 확장되는 역사 기술과 교육 수준이 상승하고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요즘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에 국가와 대학교를 포함한 연구기관에서 주로 행하던 활동이 일반인에게 확장되고 있다. 공공역사는 역사학계와 전문 역사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나 그 경계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는 다양한 역사 실천을 의미한다. 공공역사 현상의 대표적 사례로 한국사 국정교과서 논쟁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물(영화·드라마 등)의 흥행 그리고 역사박물관에 대한 관심 등을 꼽는다.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와 관련된 역사 논쟁에서 일반인들이 보여주는 지식과 활약은 전문가들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 [사진:데일리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한인 기록소/기증관/역사의집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는 장윤원 선생이 인도네시아에 첫 발을 디딘 1920년부터 시작하면 100년 이상이 되고, 양국이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 1973년부터 해도 50년이나 된다. 통상 역사는 국가(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와 주요단체(재인도네시아 한인회)를 중심으로 기록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모든 한인의 이야기가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쌓아온 개개인의 이야기를 이제는 모아서 보존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인 기록소, 기증관, 역사의집, 박물관… 어떤 이름으로든지. 올해 초 열린 한-인니 수교 50주년 민간실행위원회에서 한인기록소를 설립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선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떠나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도네시아를 떠나는 사람들은 개인이 보관하던 기록과 자료를 새로 이주하는 곳으로 가져가기가 어렵다. 2020년에 재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를 편찬할 때도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사진과 자료들이 공식적인 기록에 빠진 부분을 채워주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런 자료들이 훼손되거나 소실되기 전에 이를 기증받거나 구입해서 모아야 한다. 개인의 자료들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기온과 습도가 높은 인도네시아에서 부식되거나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는 방법 등을 배우기 위해 한국의 국가기록원이나 역사박물관과 협력할 수도 있다. 앞으로 꾸준히 자료가 모아지고 예산이 마련되고 운영할 인력이 확보되면 전시장을 갖춘 박물관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소장품 기증에 대한 기증자의 입장을 밝힌 전시해설에 따르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기증자인 전성열 씨는 “기증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고, 길홍묘 씨는 “추억이 담겨 있는 재봉틀을 기증이 가능한지 박물관에 한 번 의뢰해보자! 그렇게 기증이 시작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재연 씨는 “제가 수집한 소장품을 관람객들과 함께 공유하며 미래세대에게 우리 삶의 흔적을 전해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인들의 삶의 흔적을 기록해 전해주는 일이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는 시점에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끝)
[신성철] 인도네시아 한류 2013 vs 2023… 과열 조짐
[신성철] 인도네시아 한류 2013 vs 2023… 과열 조짐
인도네시아 한류 2013 vs 2023… 과열 조짐 한-인니 수교 50주년 즈음 지속가능한 문화교류를 생각하며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한인뉴스 논설위원 인도네시아에서 한류의 열기가 뜨겁다. 지난 2012년 자카르타주지사 선거에서 당시 조코 위도도(조코위) 주지사 후보와 러닝메이트인 바수끼 짜하야 뿌르나마(아혹)가 선거 마케팅의 일환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하면서 한류가 인도네시아 정치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9년 인도네시아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8년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조코위 대통령은 공연을 마친 슈퍼주니어와 깜짝 만남을 한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보함으로써 정치 마케팅을 펼쳤다. 간자르 중부자바주지사 트위터 당시 라이벌 진영의 부통령 후보인 산디아가 우노 역시 젊은 유권자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키워드로 한류(Korean Wave)를 활용했다. 지난해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인 간자르 쁘라노워 중부자바주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 대학생이 ‘PAK GANJAR 사랑해’라는 팻말을 든 사진을 게시하면서 ‘나도 사랑해’라고 한글로 답글을 달아, 한류가 케이팝(K-pop)과 드라마를 넘어 다양한 장르로 확산됐을 확인할 수 있다. 현지에서 한류의 활용에 대해, 정치전문가들은 인구의 50%가 넘는 MZ세대를 겨냥한 전략으로 해석한다. 최근 에릭 토히르 국영기업부 장관이 인도네시아축구협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인도네시아 대표팀 신태용 감독의 K-축구도 정치에 활용될지 관심이 쏠린다. 한류는 1990년대 태동기를 거쳐 2000년대 초반에 한국 문화 산업의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통해 시작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 케이팝의 영향력 증가, 2010년 초반 케이팝과 신한류의 붐과 국산 온라인 게임 대유행의 시대를 거쳐, 2010년대 중반에 신한류의 붐과 세계적인 흥행이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에는 한류의 본격적인 세계화가 진행되고 정착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류의 열기는 5년 정도 늦은 2010년 전후에 시작돼 최근 코로나 한파 속에서 위험수위(?)를 넘나들 만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국제문화진흥원(KOFICE)이 발표한 '2020년 해외 한류 지수'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와 인도를 대표적인 '한류 고성장 국가'로 분류됐다. 한류 스타 송중기와 인도네시아 대선 후보 아구스 유도요노. [트위터 캡처] 인도네시아에서 한류의 열풍이 불기 시작할 즈음인 201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40주년’을 맞아 문화, 경제∙통상, 국방협력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당시에는 한류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과 한인회는 다양한 장르와 양적으로 많은 행사를 시행했다. 주요 행사를 살펴보면, 그해 3월에 개막 리셉션 및 전통문화공연을 시작으로 정무, 문화, 경제, 국방협력 등 다양한 분야의 행사가 12월까지 이어졌다. 특히, 그해 3월 9일 열린 ‘뮤직뱅크 인 자카르타’ 공연에 관중 2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케이팝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인 슈퍼주니어, 샤이니, 비스트, 2PM 등이 참여해 케이팝 가수들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외에도 △K-Pop 콘테스트 △영화 페스티벌 △한국에 관한 퀴즈 대회 △태권도 시범 △한국어 글쓰기∙말하기 대회 △한식 페스티벌 등이 있다. 경제통상 행사로는 △투자포럼 △한국상품전 △한∙인니 투자세미나 외에도 △한복∙바틱 패션쇼 △현대무용 공연 △한∙인니 미술교류전 △교향악단 공연 △폐막 리셉션 및 국립발레단 공연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 복합문화행사가 열렸다. 강한 한류 열풍… K-쓰나미 가자마다대학교(UGM) 한국어과 수라이 아궁 누그로호 교수는 지난 1월 26일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 외교부에서 열린 '모닝톡' 세미나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류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며 K-웨이브 대신 K-쓰나미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어 "오늘날 한류 열풍은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할 규모로 성장했다"라며 "K-웨이브를 넘어 K-쓰나미 수준으로 커졌다"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쓰나미라는 표현은 한류의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동시에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유튜브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노래 등이 더욱 확산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류 열기는 말그대로 뜨겁다. 그 중 하나가 떡볶이이다. 떡볶이를 정식 메뉴로 채택한 한식당도 눈에 띈다. 떡볶이와 어묵, 김밥을 파는 분식점은 물론 길거리음식으로 자리잡아 한인은 물론 인도네시아인까지 떡볶이 시장에 뛰어든 모양새다. 한인마트는 물론 현지 슈퍼마켓에서도 인스턴트 떡볶이 제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한식당과 한인이 운영하는 마트에 현지인 손님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포차라는 이름을 붙인 현지인이 운영하는 분식점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쇼핑 쇼피에서 판매되고 있는 할랄소주 '사주'(제품명) 무알콜 할랄소주 등장 인도네시아인 가정에서 엄마와 자녀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함께 보고 출연자와 내용에 대해 대화함으로써 한류가 세대 간 소통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상호와 제품명, 제품 설명에 한글을 넣어 상품의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데 한글을 활용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한류 사랑은 유별나다. K드라마에서 본 음식들을 시도하는 열성을 보이자, 무슬림을 겨냥한 무(無)알콜 '할랄(Halal) 소주'까지 탄생시켰다. 소주처럼 녹색 병에 ‘할랄 소주’라고 한글로 쓴 상품 라벨을 디자인하고 내용물로 녹차와 과일 맛 등 다양한 맛의 할랄 소주를 판매하고 있다. 이제 한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가 된 듯하며, 현지에서 한류의 경제 유발 효과가 상승하고 있다.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40주년’이었던 2013년과 50주년이 되는 올해 인도네시아에서 한류의 양상은 크게 변화했다. 따라서 수교 50주년이 되는 올해 행사 내용도 양적인 면보다는 질적인 면이 강조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월 30일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서는 수교 50주년을 맞아 40여건의 주요 행사를 추진할 ‘민관실행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날 출범식 겸 제1차 회의에는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대사, 박재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 이강현 한인상공회의소(코참) 회장 등 3명의 공동위원장 및 학술·정무, 경제, 문화·관광·예술, 홍보 분과위원 등 민관 40여명이 참석해 행사 준비의 밑그림을 그렸다. 주요 행사는 △3월, 홍보대사 위촉식 및 영상 촬영 △4월, 한-인니 1.5 트랙 관계 발전 포럼 △5월, 매경인도네시아 포럼 △6월, 코리아헤럴드 경제 문화 포럼 △9월, 수교기념일(9월18일) 리셉션 등이 계획되어 있다. 또 2023년 상반기에 △한-인니 미담사례 발굴 △문화행사 △코리아 트래블 위크 △아리랑TV K-Pop 콘투어/ 한-인니 국제세미나 등. 하반기에는 △K-Pop 콘서트 △영화제 △한인 50년사 인니어본 출간 △한-인니 우정의 레이스 △태권도 시범단 △K-Food 홍보대전 △폐막 행사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이날 민간위원들은 행사 준비와 관련해 △다큐멘터리 제작 △한-인니 교향악단 협연 △수교훈장 수여 △한인기록소 설립 △로고, 배너, 차량스티커 등 홍보물 제작 배포 △마라톤·걷기대회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필자는 콜라보 공연을 제안하고 싶다. 지난해 9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람한 안은미 컴퍼니의 신작 '디어 누산타라: 잘란잘란'(Dear Nusantara: Jalan Jalan)은 양국이 현대무용을 매개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또 인도네시아 근대미술의 거장 라덴 살레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한국 화가와의 디지털 미술교류전을 개최한다면 다양한 한류의 장르를 선보이고, 양적 문화교류를 넘어서 질적인 문화교류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류 대중문화에 깊이가 더해지고 인도네시아인이 함께 즐길 수 있을 만큼 확산하면서 그 영향력도 커졌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쌍방향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자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양국 모두에게 자국의 문화는 소중한 자산일 뿐만 아니라 자국민의 정체성 고양, 외교 및 경제 유발 효과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한국이 한류문화를 통해 인도네시아와 다양한 온·오프라인 교류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펼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인도네시아 문화와 제품을 소비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를 희망한다. (끝)
[신성철] 미리보는 2024년 인니 대선·총선 관전 포인트
[신성철] 미리보는 2024년 인니 대선·총선 관전 포인트
미리보는 2024년 인니 대선·총선 관전 포인트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한인뉴스 논설위원 2023년 새해가 밝아오면서 인도네시아 대선 후보들이 잰걸음을 시작했다. 대선 후보들이 텔레비전과 신문 등 언론은 물론 소셜미디어(SNS)에 노출을 늘리고, 여론조사기관이 대선후보의 당선가능성 등 조사결과를 쏟아내고 있다. 2024년 2월 14일 대선과 총선이 같은 날 개최되고, 같은 해 11월 27일에는 주지사와 군수·시장을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계획되어 있다. 하지만 대선·총선을 같은 날 치르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난 2019년 인도네시아 선거에서 예산 절약을 주요 명분으로 내세워 역사상 대선과 총선이 한 번에 실시되면서 ‘최대 규모’ '가장 복잡한 선거'라로 기록됐고, 선거 종사자 270여 명이 '과로'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만7천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 곳곳에 80만여 개의 투표소가 설치됐고 선거 종사자 700만여 명이 동원됐다. 투표 가능 유권자 1억 9,300만 명 중 80%가량이 투표에 참여했다. 먼저 인도네시아의 선거제도의 특징을 살펴보면,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실시되면서 선거결과가 연동될 가능성이 높다. 즉 높은 지지율을 보인 대선 후보를 낸 정당이 총선에서 높은 득표율을 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총선에서 의석 점유율 20% 이상 또는 총선 득표율 25% 이상 정당이나 정당연합'만 대선 후보를 낼 수 있다. 또 의회에서 다수의 정당들이 난립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선거 이후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전국적 득표율 최소 4%를 획득하여야 한다. 이 같은 선거법에 따라 대선 후보등록을 앞두고 정당 간 합종연횡과 대통령 후보와 러닝메이트의 짝짓기에 따라 당락 결정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대선 결과를 미리 예측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왼쪽부터) 간자르 쁘라노워, 아니스 바스웨단, 쁘라보워 수비안또 후보. 2019년 대선에서 승리한 조코 위도도(조코위) 후보는 자당인 투쟁민주당(PDIP)과 골까르(Golkar), 나스뎀(NasDem), 하누라(Hanura), PPP가 연합하여 55.0%의 득표율을 보였다. 쁘라보워 수비안또 후보는 자당인 그린드라(Gerindra)과 민주당(Demikrat). PKS, PAN이 연합해 44.50%를 득표했다. 2019년 총선에서는 9개 정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정당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총재가 이끄는 투쟁민주당, 이어 쁘라보워 수비안또 총재의 그린드라당, 골까르, 나스뎀, 민주당 등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들이 1~5위를 차지한 반면, 이슬람 성향의 정당은 6~9위의 부진한 성적을 보였는데, 이 중 PKB가 가장 많은 원내 의석수를 차지했고 이어 PKS, PAN, PPP 순이다. 2023년 1월 현재 차기 대선에서 연합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정당그룹으로는 △나스뎀당, 민주당, PKS 등이 한 그룹이고 △ 그린드라당, PKB △ 골까르당, PAN, PPP 등이 잠정적으로 손을 잡았다. 집권여당인 투쟁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19.5%를 획득했지만, 20% 이상 의석수를 차지해 연합하지 않고 자력으로 대선 후보를 낼 수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의 장단점 유력 대선 후보를 살펴보면, 최근 지지율 1위를 보이며 꾸준하게 상승세를 타고 있는 후보는 간자르 쁘라노워 현 중부자바 주지사이다. 1968년생인 간자르는 중부자바주 까랑안야르 지역 출신으로 가자마다대학교(UGM) 법학과를 졸업했다. 인도네시아민족학생운동(GMNI)에 참여하고, 1996년 투쟁민주당 전신인 PDI에 가입, 2004년 2009년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2013년 중부자바 주지사에 선거에 당선됐다. 그는 차기 대선의 킹메이커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조코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치 노선도 유사해 대체로 온건한 무슬림들이 선호한다. 조코위와 비슷하게 대중적인 인기가 높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젊은 세대로부터 높은 호감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당인 투쟁민주당 내 지지기반이 약하고 대선 후보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메가와티의 친딸 뿌안 마하라니와 경쟁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다. 쁘라보워 현 국방장관 겸 그린드라당 총재는 지난 2014년과 2019년 대선에서 조코위와 경쟁해 고배를 마신 경력이 있다. 그는 최근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와 2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1951년 태어난 쁘라보워는 1974년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생활 대부분을 특전사령부(KOPASSUS)에서 보냈다. 1998년 민주화 운동 시위가 한참일 때, 특전사령부 사령관으로서 인권침해 사건에 연루돼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딸과 결혼했지만 이혼한 경력이 있는 명문가 출신이다. 그는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9년 대선에서 보수 무슬림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2019년 대선 직후 쁘라보워의 지지세력이 선거결과에 불복하면서 폭력시위가 이어져 한때 인도네시아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기도 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순위 2~3위를 기록하고 있는 아니스 바스웨단 전 자카르타 주지사는 1969년에 서부자바주 꾸닝안 지역 출신이다. 조부가 압두라흐만 바스웨단으로 독립운동가였고,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시절 공보부 차관을 맡았다. 아니스는 노던 일리노이대학교 정치학박사이다. 정치에 뛰어들기에 앞서 자카르타에 있는 빠라마디나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1기 조코위 정부에서는 교육문화부 장관직을 수행했고, 자카르타 주지사에 당선됐다. 그는 이슬람식 교육을 강조하고 보수 이슬람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대통령 후보보다는 러닝메이트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만한 2024년 대선·총선 관전 포인트 한류가 2012년부터 인도네시아 선거운동에서 활용되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 당시 투쟁민주당 소속 조코위 후보가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해 선거운동을 펼쳤다. 조코위는 중부자바주 솔로(수라까르타) 시장에서 자카르타 주지사가 되면서 일약 인도네시아 정치계에 스타가 되었고 대권까지 거머쥐게 된다. 이후 많은 후보들의 선거운동에는 K-Pop이 활용됐고, 송중기 등 한류스타를 패러디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번 인도네시아 선거에서 한류가 어떻게 활용될지 흥미롭다. 최근 아니스 전 자카르타 주지사가 신수도 이전 무용론을 들고 나왔다. 아니스 후보는 신수도 이전 사업은 국민적 참여가 부족하다며 수도 이전 무용론을 펼쳐 2024년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친기업 정책을 펼치고 있는 조코위 정부의 노선을 이어받을 간자르 후보와 보수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쁘라보워와 아니스 후보의 정책대결도 관전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신진 대선 후보들의 움직임도 볼만하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조직위원장으로 정치에 입문한 에릭 또히르 현 국영기업부 장관은 인도네시아축구협회(PSSI) 회장직에 야심을 품으며 정치적을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이외에도 리드완 까밀 현 서부자바주 주지사가 골까르당이 주축이 된 정당연합인 인도네시아연합(KIB)에 합류했다. 또 임기 후반기임에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조코위 대통령의 두 아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각각 주지사와 시장에 출마한다는 언론 보도도 나온다. 투쟁민주당의 대선 후보 결정권을 쥐고 있는 메가와티 총재와 킹메이커라는 수식어가 붙은 조코위 대통령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 2024년 대선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함께 민주화에 성공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 인도네시아 정치가 2024년 대선과 총선을 통해 더욱 젊어지고 한 단계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끝)
[신성철] 한-인니 수교 50주년을 맞는 2023년과 우리의 과제
[신성철] 한-인니 수교 50주년을 맞는 2023년과 우리의 과제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1973년은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대사급 외교관계를 공식적으로 수립한 해이며, 올해 2023년은 양국이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해이다. 지난 50년 간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우리 기업의 괄목할 만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 향상에 한류라는 문화 콘텐츠가 더해져 인도네시아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며, 양국 관계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황금기를 맞고 있다. 대외경제 여건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한‧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이하게 된 올해는 인도네시아의 주요 투자국인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도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이 격화함에 따라 글로벌 밸류체인(GVC, Global Value Chain, 가치사슬)이 재편되면서 탈중국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세안의 중요성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1964년 자카르타에 코트라(KOTRA) 사무소를 개소했고, 1966년 주인도네시아 총영사관을 개설한데 이어, 1973년 수교 이후 33년만에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2006년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되었고, 2017년 11월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발전했다. 양국은 양자적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아세안+N 회의체, APEC, ASEM, G20, UN 등 지역 및 국제기구 안에서 상호협력적인 외교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다. 앞으로 양국은 관계발전을 위해서 민주주의, 기후위기, 해양안보, 식량안보 및 보건안보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 발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인도네시아 관계가 다른 아세안 회원국과의 양자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차별점은 1973년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기 이전부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인적교류가 시작되어 2020년에는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의 해를 맞이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인도네시아 관계가 경제적으로 정치·외교적으로 상당히 발전된 데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왕래했던 아주 오랜 이주이민의 역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CEPA를 통해 양국 경제‧비즈니스 협력 공고해져 무엇보다 한-인도네시아 관계의 핵심적인 동력은 경제‧비즈니스 분야이다. 양국 수교 이전인 1968년에 대한민국 최초로 한국남방개발(KODECO, 코데코)을 통해 해외직접투자(FDI)가 이루어져, 인도네시아와 50년여년 동안 상호보완적인 경제협력을 강화해왔다. 그리고 양국 경제사의 기념비적인 이정표는 2020년 12월에는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합의, 이어 우리나라 국회는 2021년 6월에, 인도네시아 의회는 2022년 8월 30일에 CEPA 비준을 각각 완료함으로써 한-인도네시아 경제협력의 100년을 향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인도네시아 CEPA는 양국 간 경제·통상 협력의 새로운 기폭제로서 작용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CEPA를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CEPA에 대한 이해 부족과 관심 미흡으로 제대로 활용이 안 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정부 및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무역협회(KITA) 등 주요 기관들이 현장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잘 알리는 일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동시에 인도네시아 정부와 관련된 기관들과의 협조 하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CEPA의 내용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협력하는 노력도 동시에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구하는 자국산 원자재, 특히 핵심 광물의 해외수출 금지 및 다운스트림(downstream) 산업 육성은 더욱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미 2022년 2월 한국 산업부장관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핵심 광물 협력 MOU’를 인도네시아측과 서명하고 지난해 7월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에서도 광물 분야 공급망 협력이 주요 의제로 다뤄진 바 있고, 2022년 G20 발리정상회의를 계기로 광물자원 공급과 관련하여 MOU가 체결된 바 있다. 이를 본격적으로 실행하기 위하여 정부와 공기업 및 민간 기업의 3각 편대를 만들어 중장기적 차원에서 탐사, 개발, 가공 등 일련의 생태계에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니켈, 망간, 보크사이트, 코발트 등 광물의 안정적인 공급처로서 인도네시아의 협력을 확보하는 데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스마트 팩토리와 신수도 이전 등 인프라 협력 기대 인도네시아는 2030년에 세계 10대 산업국 진입을 목표로 4차 산업혁명 실현을 위한 로드맵 ‘Making Indonesia 4.0’을 마련했으며 한국 등 선진국을 통한 기술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식음료, 섬유·봉제, 자동차, 화학, 전자 등 5대 주력 제조업을 육성해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한다는 계획인 만큼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양국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은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과 관련해 2019년부터 G2G협력을 통해 신수도 스마트시티 계획 및 개발 종합계획 등 분야별 계획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지난 2019년 11월 ‘수도이전 및 개발에 대한 기술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행정수도 이전을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인도네시아 최초의 경전철(LRT)인 자카르타 LRT 1단계 건설사업에 참여한 바 있으며 발리 경전철(LRT) 사업, 자카르타 경전철(LRT) 2·3단계 사업 및 도시철도(MRT) 사업 등에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 건설기업들의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의 243억 달러(9위)에 달하는 중점 협력국가이다. 또한 2019년에는 한국 건설기업의 수주금액이 1위(37억 4,000만 달러)를 기록한 국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은 인도네시아의 행정수도 이전 및 철도 분야에서 협력을 위해 한국의 건설 경험을 공유하며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가야 한다. ‘한·아세안 연대구상’, 다자안보외교와 방산협력 지난해 11월 14일 발리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세계 4위 인구 대국이자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를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KASI)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계획을 펼쳐 보였다. 상호보완적인 '한·인도네시아 협력 모델’을 다듬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다른 아세안 국가와의 경제협력 다변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지역 가운데 한국의 최대 방산 수출국으로, 한국과 전투기와 잠수함 등 첨단 무기 체계를 공동 개발하고 생산하는 협력국가이다. 북핵의 도발 속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군사 및 방산협력은 한국의 안보를 지키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방산분야에서의 협력을 지속하면서 더 많은 군사 및 방산분야에서의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 한-인도네시아 간 균형 있는 문화교류 필요 세계화와 정보혁명으로 인해 유례없는 권력의 분산이 이루어진 이 시대에 권력의 흐름은 더없이 복잡해진 만큼 국제관계에 있어서 하드파워(Hard Power)와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결합된 스마트파워(Smart Power)의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한-인도네시아 관계에 있어서 ‘소프트파워’적인 공공외교가 크게 작동하고 있다. 한국 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FICE)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한류지수 1위가 인도네시아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더욱 확산됐다. 2019년부터 한류는 인도네시아에 있어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한류는 매우 장기적으로 발전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한국어, 한국교육, 한국문화 자체가 상당히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안정적으로 그리고 다차원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입장에서도 충분히 그 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숙고하여 장기발전전략을 수립할 필요성이 있다. 인도네시아에 한국어, 한국문화, 한국문학이 활성화된 것에 비하면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한 소개는 매우 저조하기 때문에, 그 관계의 불균형과 비대칭적인 것이 특징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지속가능한 교류와 협력을 위해서 문화교류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 인도네시아 내에 한국문화원,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한국관광공사, 세종학당 등 많은 기관이 나와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이러한 노력들이 적극적으로 집행될 필요가 있다. 최근 부산외대에 인도네시아협력원(Pusat Kebudayaan Indonesia)이 만들어졌지만, 서울 또는 다른 도시에도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재인도네시아 한인회는 한-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 우호증진을 위해 다채로운 문화행사와 마라톤, 골프, 축구 등 친선경기를 통한 ‘한-인도네시아 우정의 레이스’를 펼친다. 또 인도네시아 한인을 주제로 인도네시아어판 서적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의 정부‧기관 인사와 기업인은 물론 민간차원의 문화와 스포츠 행사는 스킨십을 통한 유대감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양국 국민이 손을 맞잡고 미래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2023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데일리인도네시아]
[무속과 괴담 사이 (53)] 라물루 이야기 (Kisah La Moelu)
[무속과 괴담 사이 (53)] 라물루 이야기 (Kisah La Moelu)
인도네시아 무속문화와 전설 그리고 동화 등 옛 이야기를 소개해온 배동선 작가의 '무속과 괴담 사이'는 53회를 끝으로 시즌1을 마감합니다. 현지인들의 마음 속 또는 무의식의 저편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지난 2년 간 매주 연재해주신 배동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옛날옛적 술라웨시 동남부 한 마을에 라물루(La Moelu)라는 이름의 남자아이가 살았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그는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일은커녕 지팡이 없이는 잘 걷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라물루가 생계를 꾸려야 했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에서 멀지 않은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일뿐이었습니다. 어느날 라물루는 그날 따라 물고기가 좀 더 많이 잡히기를 기대하며 낚시밥 지렁이를 잔뜩 가지고 호숫가로 나왔습니다. 먹고 남을 만큼 잡으면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가 호수에 도착했을 때 물고기떼가 날뛰며 수면을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큰 기대감에 낚시를 던졌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입질이 없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라물루는 크게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몰려다니는 물고기떼가 뻔히 보여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낚시줄이 팽팽해졌습니다. 조심스럽게 낚시줄을 당겨 보니 예쁜 물고기가 한 마리 잡혀 있었습니다. 비록 작은 물고기였지만 너무 예뻐 라물루는 낚시바늘을 빼고 작은 통에 넣어 홀린 듯 한참을 바라보다가 집에 가져가 아버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물고기지? 너무 예쁘게 생겼구나.” 그 물고기를 본 아버지도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이 물고기를 어떻게 하면 좋겠니? 차라리 네 동생 삼아 키워 보렴. 어차피 너무 작아서 요리해도 둘이 먹기 충분치 않잖아?” 라물루는 아버지 말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 작은 물통을 들여다본 라물루는 깜짝 놀랐습니다. 밤 사이 물고기가 그 통을 꽉 채울 만한 크기로 자라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도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라물루가 조금 더 큰 절구통에 물을 채워 물고기를 옮겨 놓자 다음날 물고기는 또 다시 절구통 만한 크기로 자라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물고기를 더 큰 항아리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물고기는 항아리를 가득 채울 만한 크기로 자라버렸습니다. 라물루는 이제 물고기를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빠, 이제 물고기를 어디로 옮겨 키워야 해요?”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집 옆에 물을 길어 놓는 큰 통에 물고기를 옮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물고기는 이제 그 큰 통마저 꽉 찰 정도로 자라나 있었습니다. 물고기를 넣어 키울 만한 더 큰 통은 이제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라물루에게 물고기를 바다에 풀어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집에서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걸 알겠는데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왜 바다에 풀어주라는 걸까요? 어쨌든 라물루는 아버지 말대로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풀어주며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물고기야. 이제부터 네 이름은 지난데 뜨레몸봉아(Jinnande Teremombonga)야. 내가 네 이름을 부르면 바닷가로 찾아와 줘. 먹을 것을 주려는 거니까.” 영리한 물고기는 알았다는 듯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넓은 바다에 풀어주자 자유를 만끽하게 된 물고기는 무척 기뻐 보였고 라물루의 마음도 흐뭇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라물루는 물고기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바닷가로 나가 물고기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지난데 뜨레몸봉아야!!” 얼마 지나지 않아 몰라보게 더 자라난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정말로 나타나 먹이를 먹은 후 한동안 라물루 주변을 맴돌다가 바다로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이제 라물루의 매일 아침 일과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라물루가 여느 때처럼 지난데 뜨레몸봉아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데 뒤편 수풀 속에서 그 장면을 몰래 훔쳐보던 세 명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라물루의 사촌뻘 되는 친척들로 라물루가 커다란 물고기를 불러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곧이어 저 물고기를 잡아먹겠다고 야무진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들은 일단 라물루가 돌아가기를 기다려 나무에서 내려와 바닷가로 다가가더니 아까 라물루가 했던 것과 같이 물고기 이름을 불렀습니다. “지난데 뜨레몸봉아~!” 물고기가 순식간에 바닷가에 나타났지만 이름을 부른 사람이 라물루가 아닌 것을 보고 곧바로 깊은 바다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아마 사람들이 많아 물고기가 겁을 먹은 거라 생각하고 한 사람만 남기고 다른 두 명은 뒤쪽으로 물러나 몸을 숨겼습니다. 다시 물고기를 부르자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나타났는데 이번에도 라물루가 아닌 것을 보고 역시 방향을 돌렸습니다. 청년들은 약이 올랐습니다. 결국 그들 중 한 명이 물고기를 부르고 다른 두 명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작살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작전을 짰습니다. 그 작전은 보기좋게 성공해, 물가로 다가왔던 지난데 뜨레몸봉아는 청년들이 던진 작살에 꿰뚫려 죽고 말았습니다. 청년들은 즉석에서 물고기를 토막내 각각 나누어 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세 토막으로 나누었지만 워낙 물고기가 커서 세 사람이 각각의 가족들과 몇 끼를 함께 먹고도 남을 정도로 큰 덩어리였습니다. 그들은 뿌듯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라물루는 다음날도 먹이를 가지고 바닷가로 나와 지난데 뜨레몸봉아를 불렀지만 물고기가 나타날 리 없었습니다. 라물루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을 불러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바닷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물고기를 불렀지만 결국 만나지 못해 수심에 가득 차 집에 돌아간 라물루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하며 눈물을 떨궜습니다. “어쩌면 그 물고기가 친구들을 만나 먼 바다로 나간 건지도 모르겠구나.”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아버지로서는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날 밤 라물루는 무거운 마음으로 마을을 배회하다가 그 세 청년 중 한 명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훤히 들여다 보이는 집 안에서 가족들이 커다란 생선 요리를 식탁 한 가운데에 놓고 떠들썩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불현듯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떠올랐습니다. “설마 내 지난데 뜨레몸봉아를 잡아먹는 건 아니겠지?” 예의가 아닌 걸 알았지만 라물루는 다급하게 그 집 문을 두드리며 물고기를 어디서 잡았는지 물었습니다. 가족들의 시선이 물고기 토막을 가져온 아까의 청년에게 쏠리자 그는 허둥대다가 라물루의 집요한 질문에 결국 아침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오히려 라물루를 도발했습니다. “아침에 바다에서 잡아온 거야. 왜? 너도 알던 물고기잖아? 한 조각 맛보고 싶어? 어미도 없는 불쌍한 놈아!” 그는 언제나처럼 라물루를 업신여기며 조롱했습니다. 저 생선요리는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틀림없었습니다. 라물루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청년은 집에 가서 먹으라며 파파야 잎에 음식을 싸주었지만 그 안에 발라낸 가시와 뼈만 들어 있었습니다. 라물루는 그나마 어딘가에 묻어줘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슬픔에 가득 차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집 앞 뜰에 물고기의 뼈를 묻고 밤새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라물루가 일어나 보니 지난데 뜨레몸봉아의 무덤에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무덤 위에 식물이 자라나 있었는데 몸체는 금으로 되어 있었고 은으로 된 잎파리와 다이아몬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불러 그 광경을 보여주었습니다. 놀란 아버지가 자초지종을 묻자 라물루는 어제 벌어졌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신의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지난데 뜨레몸봉아의 무덤에서 솟아난 마법의 식물을 잘 가꾸었고 소문이 퍼지자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 식물을 보기 위해 라물루의 집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식물은 쑥쑥 자라났습니다. 마치 매일 몰라보게 자라던 물고기 지난데 뜨레몸봉아처럼 말입니다. 라물루는 식물의 열매와 잎사귀를 조금씩 따서 팔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라물루와 그의 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초심을 잃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늘 관대하게 대했고 예전 라물루의 물고기를 잡아먹었던 그 세 청년에게도 똑같은 공평함으로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라물루는 그 마을에서 오래도록 존경받으며 살았습니다. 라물루 아트 모음 -------------------------------- ‘술라웨시 떵가라’(Sulawesi Tenggara)라 불리는 술라웨시 동남부주(洲)에서는 똘라끼(Tolaki)족과 부기스(Bugis)족이 반반쯤 섞인 인구구조를 보이지만 남부 술라웨시의 마카사르(우중빤당)의 부기스 족들은 세력이 커지고 교통이 발전하면서 술라웨시 전역으로 퍼져 나간 측면이 크니 이 전설이 구전되던 당시엔 아직 부기스족 유입이 적어 똘라끼족이 대세를 이루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라물루 이야기가 어쩌면 똘라키족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반영하는 걸까요? 참고 견디는 착한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는 기조의 스토리이지만 라물루가 한 것이라곤 물고기를 잡아 키운 것뿐이고 실제로 특별한 것, 기적을 일으킨 것은 모두 지난데 뜨레몸봉아라는 이름의 물고기였습니다. 이 물고기가 용왕의 아들이었다거나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해 라물루와 혼인했다면 친숙한 다른 전설들과 유사했을 텐데 죽어서 주인에게 복을 가져온다는 전개가 특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라물루가 키우는 물고기였다 해도 공유지인 바닷가에 풀어주었고 딱히 누가 주인이라고 표시하는 목줄이나 인식칩도 달지 않았으니 그걸 본 청년들이 힘을 합쳐 큰 물고기를 잡은 것은 어쩌면 언제든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방생하여 야생으로 돌려보낸 순간,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어야 합니다. (끝) ♣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번역서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무속과 괴담 사이(52)] 투계왕 찐덜라라스(Cindelaras)
[무속과 괴담 사이(52)] 투계왕 찐덜라라스(Cindelaras)
젱갈라 왕국 옛날옛적 아이를랑가 대왕이 세운 까후리빤 왕국에서 갈라져 나온 젱갈라 왕국(Kerajaan Jenggala)을 라덴 뿌트라 국왕이 다스리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는 화려한 궁전에서 착한 왕비와 아름다운 후궁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궁의 눈부신 미모 속에 숨겨져 있던 악독한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후궁은 왕비를 질투하며 그 자리를 빼앗고 싶어 안달했습니다. 그녀는 어의(御醫)를 불러 음모를 꾸몄습니다. 어느날 후궁이 꾀병을 부려 병석에 눕자 국왕은 즉시 어의에게 후궁을 진맥하도록 했습니다. “전하, 누군가 후궁마마 음료에 독을 탄 것 같습니다.” 어의의 보고에 왕은 크게 놀랐습니다. “누가 감히 내가 총애하는 후궁에게 독을 먹였단 말이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독을 쓴 이는 왕비마마입니다. 왕비마마께서 전하의 총애를 뺏기지 않으려고 후궁마마를 죽이려 한 것으로 아옵니다. 이 나라의 권력을 왕비마마의 손 안에 쥐려고 말입니다.” 용한 의원이 진맥을 하면 그런 것까지 알게 되는 모양입니다. 물론 어의는 후궁이 시킨 대로 왕비가 일전에 독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며,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내 왕비를 모함했습니다. 후궁이 당한 독이 당시 왕비가 물어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라고 덧붙이면서요. 크게 노한 국왕은 왕비를 즉시 처형하라 명했습니다. 당시 왕비는 임신 중이었어요. 재상은 그간 국민들에게 사랑받던 왕비를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것은 민심을 해칠 것이니 일단 도성을 벗어난 곳에서 비공개로 처형해야 할 것이라 진언했습니다. 그렇게 왕의 재가를 얻는 재상은 일단의 군사들을 이끌고 왕비를 정글 속으로 끌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후궁의 모략이란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던 재상은 차마 무고한 왕비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성 밖, 국왕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왕비를 데려온 것입니다. “아무리 처형이라 해도 왕비 전하의 몸에 아무나 칼을 댈 수는 없다. 최후의 예를 갖춰 내가 직접 왕비 전하의 마지막을 모시겠다.” 그는 함께 온 군인들을 물리고 좀 더 숲 속 깊은 곳으로 왕비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엔 마침 나무덩쿨에 발이 끼어 꼼짝달싹 못하게 된 토끼 한 마리가 있었는데 재상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 토끼를 칼로 내리쳐 그 피를 칼에 묻혔습니다. “마마, 전하와 후궁마마께 왕비마마를 처형했다고 보고해야 합니다. 이 토끼 피를 마마의 슬렌당에 묻혀 가져가야 하니 통촉하여 주옵소서” 왕비는 슬렌당을 내주며 재상의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재상은 무고한 왕비를 숲 속에 홀로 두고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거듭 사과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드시 권토중래하실 날이 올 것습니다. 부디 보중하시옵소서.” 재상은 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국왕의 눈을 피해 왕비를 도울 수 있는 더 이상의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구한 왕비는 뱃속의 아기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했습니다. 혹시 들통날 경우 자기 목숨을 내주어야 할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 재상에게도 큰 빚을 졌습니다. 그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그렇게 숲 속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그게 자신의 목숨을 살리는 길이고, 재상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숲속엔 맹수와 독충들이 들끓었고 표범이나 호랑이가 왕비가 사는 곳 주변에 자주 출몰했지만 덤벼들거나 위협하지 않아 왕비는 정글과 그곳에 사는 동물들이 그녀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얼기설기 지은 오두막에서 남자 아기를 낳아 찐덜라라스(Cindelaras)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영리한 찐덜라라스는 어릴 때부터 새들과 동물들이 오두막에 찾아드는 숲속 동물들과 친구처럼 어울려 지냈습니다. 맹수들이 집 앞마당까지 들어오기도 했지만 웅크리고 앉아 한동안 찐덜라라스와 그 어머니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마치 맹수들이 번갈아가며 모자를 지켜주는 것 같은 상황이어서 언젠가부터 왕비 역시 더 이상 숲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왕궁에서 받았던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찐덜라라스도 어느 새 청년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찐덜라라스가 숲에서 놀고 있을 때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알 한 개를 찐덜라라스 옆에 떨구고 갔습니다. 찐덜라라스는 그 알을 주워 부화하도록 보살폈습니다. 3주 후 알에서는 귀여운 병아리가 나왔습니다. 독수리가 가져온 알에서 병아리가 나왔는데 이 민화를 읽는 사람들 중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것 같습니다. 찐덜라라스가 지극정성으로 키운 그 병아리는 독수리처럼 단단한 부리를 가진 건장한 장닭으로 성장했습니다. 다른 닭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힘이 셌습니다. 독수리가 물어온 알이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특이한 건 울음소리였습니다. 닭은 이런 소리를 냈습니다. “꼬끼요~ 내 주인 찐덜라라스의 집은 정글 속에 있는데 지붕은 야자 잎으로 덮였고 아버지는 젱갈라 왕국 라덴 뿌트라 국왕이라지” 닭이 머리가 무척 좋은지 홰를 칠 때마다 이 긴 대사를 다 외웠다는 겁니다. 난 애당초 저 수상쩍은 놈이 절대 닭이 아닐 거라 확신합니다. 앵무새 유전자를 가진 독수리 변종 아니었을까요? 찐덜라라스와 어머니는 닭이 홰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동안 옛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지만 닭이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은 후 결국 찐덜라라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들이 왜 숲 속에 살게 되었는지 모두 털어 놓아습니다. 그러자 찐덜라라스는 아버지를 한번은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찐덜라라스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는 간신히 어머니의 승락을 얻어낸 후 수탉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닭싸움 (Adu Ayam) 가던 길에 투계꾼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찐덜라라스가 근사한 수탉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고 닭싸움에 끼어 보라고 유혹했습니다. “이봐, 너! 네가 데리고 가는 닭과 내 수탉을 싸움 붙여 볼래?” “그러시든가.” 찐덜라라스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닭이 용맹스럽고 강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닭싸움에 참가한 찐덜라라스의 닭은 싸우는 족족 이겼고 시장바닥에서 그 누구도 그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도성으로 가는 길에 들른 모든 시장바닥 투계대회에서 승승장구하는 찐덜라라스의 수탉 이야기가 급기야 국왕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국왕도 닭싸움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광팬이었어요. 라덴 뿌트라 왕은 왕궁 안에 축사를 짓고 거기서 싸움닭 여러 마리 키우고 있었습니다. 매년 많은 예산을 들여 전국 싸움닭들을 불러들여 큰 투계대회를 열곤 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신하를 시켜 찐덜라라스를 궁전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전하를 뵈옵니다.” 찐덜라라스가 수탉과 함께 국왕에서 절을 올렸습니다. 그 우아한 동작과 절도있는 목소리에 국왕은 이 잘생기고 영리한 청년이 필시 일반 평민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찐덜라라스의 수탉과 국왕이 키우는 싸움닭 사이에 닭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왕은 시합을 앞두고 찐덜라라스에게 내기를 걸었습니다. 만약 찐덜라라스가 진다면 수탉의 목을 치고 만약 국왕이 진다면 왕실이 재산 반을 찐덜라라스에게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법감정을 들이밀어 보면, 이길 경우 왕의 갑질을 감수해야 하는 거고 지면 왕이 국가 이익에 반해 어마어마한 배임을 저지르는 셈인데 옛날이고 전설이니 이런 내기가 가능해집니다. 시합이 시작되자 두 마리의 수탉이 치열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분만에 승기를 잡은 찐덜라라스의 수탉이 국왕의 싸움닭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올리며 찐덜라라스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국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크게 실망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찐덜라라스와 그의 싸움닭에 더욱 흥미가 생겼습니다. “좋아 패배를 인정하지. 이제 왕실 재산의 반은 찐덜라라스, 너의 것이다. 하지만 자기 소개가 늦었군. 그대는 어느 가문 출신인가?” “폐하. 제가 폐하께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찐덜라라스의 말에 왕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손짓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왕에게 다가가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습니다. 왕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하필 그때 찐덜라라스의 닭이 홰를 치며 예의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습니다. “꼬끼요~ 내 주인 찐덜라라스의 집은 정글 속에 있는데 지붕은 야자 잎으로 덮였고 아버지는 젱갈라 왕국 라덴 뿌트라 국왕이라지” 수탉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그렇게 울었습니다. 라덴 뿌트라 국왕과 신료들은 그 닭 울음소리에 혼비백산하며 놀랐습니다. 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면류관을 쓰고 왕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왕비, 즉 예전의 그 후궁이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전하. 저는 왕비마마의 아들입니다.” 찐덜라라스가 그렇게 답하자 궁전은 아연 숙연한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그러자 왕비가 된 후궁이 급히 국왕의 앞으로 뛰어나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럴 리 없어요. 저 자가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이미 죽은 반역자가 어떻게 아들을 낳는단 말입니까? 백번 양보해 설령 그렇다 해도 전 왕비는 저를 독살하려 하여 대왕이 처형하라 명한 사람입니다. 저 찐덜라라스라는 이는 국왕을 현혹하려는 거짓말쟁이이거나 반역자의 핏줄입니다. 당장 저 자의 목을 베어야 합니다.” 하지만 찐덜라라스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가 처음 숲 속의 집을 나서던 순간, 언젠가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미리 각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도록 참소한 후궁과 직접 처형을 명한 아버지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었고 그들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일을 후회하고 용서를 빈다면 얼마든지 용서해줄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 후궁, 그러니까 지금의 왕비는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어 보였습니다. 찐덜라라스와 왕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라덴 뿌트라 국왕은 급기야 자초치종을 묻기 위해 재상을 불러 꿇어 앉혔습니다. 재상 역시 전 왕비를 살려준 이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왕에게 사실대로 고했습니다. 그러자 왕의 얼굴이 붉그락푸락 했습니다. “지금의 왕비마마께서 당시 왕비마마를 모함했을 때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폐하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난 폐하를 바로잡지도 못했고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지도 못했으니 이제 목이 잘려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왕자님이 장성해 왕궁에 찾아왔는데 현명한 폐하께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폐하! 저 놈들의 목을 치세요!” 왕비는 찐덜라라스와 재상을 가리키며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그들의 처형을 종용했습니다. 바로 그때, 조금까지만해도 홰를 치며 라덴 뿌뜨라 국왕이 찐덜라라스의 친부라고 울어대던 장닭이 대사를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그 수탉이 예전엔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대사였습니다. “꼭꼭꼭! 저 여자는 거짓말쟁이, 꼭꼭! 저 여자는 살인자! 사람들이 더욱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닭은 그 대사를 수없이 반복하며 왕비의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불현듯 벌어진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 누군가를 악인으로 지목한다면 그게 신의 뜻이라며 믿어버리고 마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 심리입니다. 하물며 귀 얇은 라덴 뿌트라 국왕은 수닭이 외치는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왕비를 돌아보며 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잘못 판단하여 아무 잘못도 없는 내 진정한 왕비에게 오래 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구나. 바로 너야말로 목이 잘려야 할 사람이었구나!” 왕비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국왕이 귀가 얇다는 사실을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역사상 처음으로 일국의 왕비가 수탉의 말빨을 이기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라덴 뿌트라는 찐덜라라스를 껴안고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고 이후 재상, 신하들과 함께 숲으로 가서 유폐된 왕비를 극진한 예를 다해 다시 왕궁으로 모셔왔습니다. 후궁이었던 왕비가 폐위되고 당시의 모함에 가담했던 어의와 함께 목이 잘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이제 라덴 뿌트라 국왕과 다시 복권된 왕비, 그리고 찐덜라라스는 모두 함께 궁전에서 행복하게 살았고 라덴 뿌트라 국왕이 서거한 후 찐덜라라스가 왕위를 물려받아 왕국을 공정하고 지혜롭게 다스렸습니다. 찐덜라라스 아트 모음 -------------------------- 친부인 국왕을 찾아가 어머니인 왕비의 누명을 벗기는 전개가 흥미롭지만 도성으로 가는 길에 쟁쟁한 투계도박꾼으로 거듭나는 찐덜라라스 왕자, 어의의 어설픈 모함에 홀라당 넘어가버리고 찐덜라라스와 장닭이 하는 말을 별다른 검증작업도 없이 단번에 믿어버리는 귀얇은 국왕이 등장하는 이 민화의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 민화의 주인공은 유일하게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저 재상이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독수리가 가져온 달걀에서 나온 놈이 정말 닭이 맞는지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국왕은 후궁을 처형한 것만으로 속죄를 마친 것일까? 숲속 오두막을 떠나 왕궁으로 돌아오던 왕비는 정말 기꺼운 마음이었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처음 이 민화의 제목 ‘Cinderlaras’를 보고 신데랄라스….? 아, 신데렐라! 이러면서 인도네시아 민화라 해도 제목이 ‘신데렐라’니 그 내용도 같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끝)
[신성철] “발리 G20 계기로 더 긴밀해진 한-인니 경제협력과 과제”
[신성철] “발리 G20 계기로 더 긴밀해진 한-인니 경제협력과 과제”
윤석열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발리 누사두아 컨벤션센터(BNDCC)에서 열린 한국-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아르자드 라지드 인도네시아 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부터 10건에 대한 양해각서 체결 결과 발표를 듣고 있다. “발리 G20 계기로 더 긴밀해진 한-인니 경제협력과 과제”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지난 11월에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와 이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한층 가까워졌다. 양국은 내년 202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를 앞두고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발효가 임박한 만큼 경제는 물론 정치·안보 및 사회·문화 다방면에서 양국 관계가 더욱 긴밀해질 전망이다. 지난 11월 14일 발리에서 열린 한·인니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세계 4위 인구 대국이자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를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KASI)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계획을 펼쳐 보였다. 상호보완적인 '한·인니' 협력 모델을 다듬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다른 아세안 국가와의 경제협력 다변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의 이날 환담에서 "한국이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 전략에 최적의 파트너"라고 직접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순방에 발맞춰 한·인니 정부와 민간은 디지털과 공급망, 기후변화, 개발·투자 분야 등에서 협력하기로 하고 △한-인니 경협 MOU 개정(디지털 파트너십) △녹색 전환 이니셔티브 △핵심 광물 협력 △인프라 개발 협력 등 총 10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국 산업부와 인니 경제조정부가 채택한 ‘한-인니 경제협력 MOU’ 개정안은 그동안 양국이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산업, 에너지, 무역협력 뿐 아니라 디지털 교역 원활화, 산업디지털 전환 등의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인니는 동남아 최대 규모 전자상거래 시장이고, 한류 콘텐츠 최다 소비국이다. 또 디지털 협력의 일환으로 한국 LG CNS와 인니 신수도청은 ‘신수도 이전 스마트시티 조성 MOU’를 체결해 협력 방안 모색을 위한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신수도 이전에 필요한 디지털 기술협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양국은 경제안보(공급망) 협력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한국 중소벤처기업부와 인니 중기부는 경제안보 협력을 위해 공급망, 스타트업 교류 등의 내용을 포함한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협력 MOU’를 체결하고 향후 아세안 지역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주요내용은 공급망, 스타트업/벤처캐피털 교류, 중소기업 정책교류 등이다. 한국 광해광업공단과 인니니켈협회는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 MOU’ 체결을 통해 광물 공동 탐사, 광산 프로젝트 정보교류 등 양국 간 첨단산업 발전을 위한 핵심광물·공급망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한국 환경부와 인니 공공사업주택부는 ‘녹색전환 이니셔티브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이를 기반으로 양국은 아태지역, G20 주요 경제국 및 국제기구 등이 이니셔티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기후행동 가속화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한국 국토부와 인니 교통부, 자카르타주 3개 기관은 ‘자카르타 도시철도(MRT, Mass Rapid Transit) 4단계 개발 협력 MOU’를 체결해 사업의 가속화와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향후 이를 기반으로 인니 도시철도 민·관협력사업(Private-Public Partnership) 참여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한국 현대차는 인니 정부가 추진중인 동부칼리만탄 신수도 이전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인니 신수도청 및 교통부와 ‘신수도 이전 모빌리티 AAM(Advanced Air Mobility) 협력 MOU’를 체결했다. 한국 해양수산부와 인니 교통부는 ‘한-인니 해양 교통 협력 MOU’를 체결해 스마트 항만 등 해양 교통 인프라, 해양 교통안전 등 양국의 해양 교통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발리 G20 정상회담에 앞서 윤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 첫날인 지난 11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새로운 대(對)아세안 정책인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발표했다. 이날 함께 공개한 한국판 첫 인도·태평양 전략을 바탕으로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이다. 한·아세안 외교당국간 전략대화 활성화, 국방장관회의 정례화, 해양법 집행 협력 확대, 아세안과의 연합훈련 적극 참여 등이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또한 아세안에 최고 단계의 파트너십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을 제안하는 한편, '한·아세안 연대구상' 추진을 위해 각종 관련 기금의 증액 방침도 밝혔다. CEPA 활용 방안과 신수도 사업 참여 등 정부 차원 지원 필요 최근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CEPA 발효를 앞두고 있는 등 양국 경제협력 관계가 한 단계 더 점프하고 있다. 이에 따라 CEPA의 철저한 이행과 활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핵심은 CEPA를 얼마만큼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CEPA에 대한 이해 부족과 관심 미흡으로 제대로 활용이 안 될 우려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 및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무역협회(KITA) 등 주요 기관들이 현장 중심으로 홍보와 활용 지원 활동이 필요하다. 동시에 인도네시아 정부와 관련 기관들과의 협조하에 인도네시아측이 제대로 이행하도록 촉구하고 협력하는 것이 긴요하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자국산 원자재, 특히 핵심 광물의 해외수출 금지 및 다운스트림(downstream) 산업 육성은 더욱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우리로서도 이에 맞춰서 대응하는 것은 물론, 전략적인 차원에서 선제적인 협력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올해 2월 한국 산업부장관이 인니 방문시에 '핵심 광물 협력 MOU'를 인니측과 서명하고 지난 7월 한-인니 정상회담에서도 광물 분야 공급망 협력이 주요 의제로 다뤄진 바 있다. 이를 본격적으로 실행하고, 정부와 공기업 및 민간기업 등 삼각편대를 만들어 중장기적 차원에서 탐사, 개발, 가공 등의 일련의 생태계에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니켈은 물론, 망간, 보크사이트, 코발트 등 광물의 안정적인 공급처로서 인도네시아의 협력을 확보하는 데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2030년에 세계 10대 산업국 진입을 목표로 4차 산업혁명 실현을 위한 로드맵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을 마련했으며 한국 등 선진국 등과 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식음료, 섬유·봉제, 자동차, 화학, 전자 등 5대 주력 제조업을 육성해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한다는 계획인 만큼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양국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은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과 관련해 2019년부터 G2G협력을 통해 신수도 스마트시티 계획 및 개발 종합계획 등 분야별 계획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경험을 공유하며 양국간 활발한 교류·협력을 확대해 인도네시아의 신도시 건설에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 기업의 뛰어난 스마트 시티 건설 기술 등을 인도네시아 신수도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끝으로 기존의 양국 정부간 협의체들은 아직 2차 산업(제조업 중심)위주로 협의가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이미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최대의 전자상거래 시장이자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정부간 협의와 지원체계도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내에선 중소벤처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유관부서가 나눠져 있는 복합적인 분야인 만큼 총체적인 대응을 위해서 종합적인 대응과 협의가 가능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끝-
[무속과 괴담 사이(51)] 시빠힛리다 – 독한 혀(를 가진 녀석)
[무속과 괴담 사이(51)] 시빠힛리다 – 독한 혀(를 가진 녀석)
스룬띵 삭티 도술의 도인 시빠힛라다 동상 시빠힛리다(Si Pahit Lidah), 즉 ‘독한 혓바닥(을 가진 놈)’ 이야기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 ‘시빠힛리다’라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동일인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룬띵(Serunting)’이라는 단어가 한쪽에는 왕자의 이름으로, 다른 쪽에는 도술의 명칭으로 등장하면서 미묘한 접점이 엿보입니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옛날 남부 수마트라 수미당(Sumidang) 지역에 세워진 한 왕국에 스룬띵(Serunting) 왕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남이 가진 것을 쉽게 질투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부인을 사랑했지만 처남 아리아 떠빙(Aria Tebing)과는 대체로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영지가 숲 한 가운데서 경계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숲이 문제였습니다. 아리아 떠빙 쪽에선 버섯들이 자라나 금덩어리로 변해 재산이 날로 넘쳐나고 있었는데 스룬띵 왕자 쪽 버섯들은 벌레가 들끓어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벌레잡는 약을 치거나 버섯을 금덩어리로 만드는 비법을 처남에게 물어볼 법도 한데 스룬띵 왕자는 질투심에 활활 타올라 필시 아리야 떠빙이 뭔가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했고 결국 그를 찾아가 분노를 터트리며 싸움을 걸었습니다. “네가 뭔가 나 몰래 나쁜 짓을 한 게 틀림없어! 결투다! 내일 결투장으로 나와!” 스룬띵 왕자가 그렇게 큰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난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리야 떠빙의 호소를 스룬띵 왕자는 귓전으로 흘렸습니다. 스룬띵 왕자는 왕가에서 어린 시절부터 배운 높은 무술실력에 유명한 도인들로부터 도술까지 전수받아 도검불침의 일무끄발(ilmu kebal) 신공까지 갖추고 있었으므로 아리아 떠빙의 실력으로 매형 스룬띵 왕자와 진검승부를 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죽음으로 끝날 터였습니다. 그가 살 길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누이인 왕자비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상황을 설명하고 간곡히 도움을 청했습니다. 스룬띵 왕자의 약점을 물은 것입니다. “이건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누님이 대답해 주지 않으면 난 내일 결투에서 왕자의 손에 죽고 말 겁니다.” 그는 누이에게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누이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미안해. 난 내 남편을 배신할 수 없어. 그것만은 절대 가르쳐 줄 수 없어.” “날 믿어요 누님. 내가 매형의 약점을 알게 된다 해도 절대 그것을 이용해 그를 죽이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걸 모르면 난 내일 죽음을 피할 수 없어요.” 오랜 설득 끝에 결국 왕자비는 결국 스룬띵 왕자의 약점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영웅이나 괴물들은 불사에 가까울수록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씩 숨기고 있다는 것을 우린 수많은 전설과 민화를 통해 알고 있는데 스룬띵 왕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스룬띵 왕자가 가진 도력을 파괴하는 비법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는 잡초’에 있었습니다. 아리아 떠빙은 다음날 결투 전에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는 잡초’를 구해 즙을 내서 창에 발랐습니다. 이 대목에서 꼭 모니터 안에서 손이 쑥 뻗어나와 내 마음을 꺼내쥐고 즙을 짜냈다는 소리 같아 조금 섬뜩했습니다. 내 마음이 바람 한 점 없는 날 그렇게 잘 흔들리거든요. 아무튼 그리하여 벌어진 결투에서 아리아 떠빙은 여러 차례 궁지에 몰렸지만 간신히 스룬띵 왕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마침내 결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스룬띵은 아내 말고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자신의 비밀을 아리아 떠빙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아내가 누설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깊은 배신감에 휩싸인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왕국을 방랑하다가 시군땅 산(Guning Siguntang)에서 명상을 하며 폐관수련에 돌입했습니다. 처음엔 복수심으로 시작한 수련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룬띵은 마음 속에 얽매인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 명상이란 그런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법이죠. 그렇게 정진한 끝에 마침내 향 마하메루(Hyang Mahameru)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향 마하메루는 힌두신으로 2021년 분화해 적잖은 피해를 야기한 동부자바의 스메루(Semeru) 화산도 이 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봐, 스룬띵! 내가 신비한 능력을 네게 넣어주지. 어떤가?” “부탁합니다. 향 마하메루! 그 능력을 내게 주세요!” 스룬띵 왕자가 열정적으로 답변했습니다. 향 마하메루가 그 능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신이 직접 내려주는 능력이라면 자신을 족히 천하무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조건이 하나 있어. 우선 대나무 밑에서 명상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네 온 몸이 대나무 잎사귀에 완전히 뒤덮이는 순간 그 능력을 얻게 될 거야.” 마하메루는 그렇게 속삭였습니다. 스룬띵은 향 마하메루의 말대로 대나무 숲에 들어가 또 다시 2년 넘게 명상수련을 했고 마침내 그의 온 몸이 대나무 낙엽 속에 완전히 묻히자 향 마하메루가 약속한 능력이 발현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는 마력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명상수련을 마치고 수미당 고향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시험삼아 강변의 나무들에게 저주를 걸었습니다. “강변 나무들아, 모두 돌이 되어라!” 그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자 강변 나무들이 모조리 돌로 변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능력에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놀라움은 곧 자만과 욕심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이번엔 자신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바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아무도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룬띵 왕자는 오만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고 그는 기세를 몰아 일대를 돌아다니며 여러 마을들을 통째로 바위로 만들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시빠힛리다(Si Pahit Lidah) 즉 ‘독살스러운 혀(를 가진 사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시무시한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이제 왕실에 돌아가 원수 같은 처남 아리야 떠빙을 석상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꿈속에서 독랄한 말과 주문으로 부왕과 아내를 돌로 만들고 왕국을 멸망시키고 있는 악귀와 같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깨어난 후 그간 큰 잘못을 저질러 왔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는 부낏 서룻(Bukit Serut)의 한 민둥산에서 40일 밤낮으로 한숨을 내쉬며 신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자신이 저주를 내려 돌이 된 사람들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도록 기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멀리 지나온 여러 마을에서 돌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과연 다시 되살아났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천상에서 향 마하메루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스룬띵 왕자는 그간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절절히 깨달으며 이제부터는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가 그날 처음 한 일은 자신이 있던 그 민둥산에 울창한 수풀을 일구는 것이었습니다. 향 마하메루에게서 받은 도술로 처음 해본 생산적인 시도였습니다. 순식간에 푸르른 산림이 우거지자 생계를 이을 방편이 생긴 그 지역 사람들 중에는 스룬띵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왕실로 돌아가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 스룬띵은 여행을 계속하다가 까랑 아궁 마을에서 오두막에 사는 노부부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을 한 잔 달라고 청했습니다. 노부부는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를 잇고 그들의 노후를 돌봐 줄 후사 얻기를 오랫동안 기원해 왔는데 그것을 안 스룬띵은 할머니의 옷에 붙은 머리칼 한 올로 아기를 만들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말 한 마디면 기적을 이루는 스룬띵이 굳이 노부부의 머리칼을 기반으로 아기를 만든 것은 아마도 대를 잇기 위해선 반드시 유전자가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아무튼 노부부는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스룬띵에게 고마워했습니다. 스룬띵 역시 사람들을 돕는 것이 그토록 기쁜 일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후 계속 세상을 주유하며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사람이나 생명 있는 그 어떤 것도 돌로 만들지 않았고 그의 입에서는 인간세상을 돕는 말과 주문들만 나오게 되었지만 이미 그에게 붙은 시빠힛리다라는 별명은 평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오만했던 시절 저질렀던 모든 악행을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업보란 원래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법입니다. 이 버전의 시빠힛리다 아트 모음 이 버전의 시빠힛리다 아트 모음 두 번째 이야기 또 다른 버전의 시빠힛리다 이야기는 그 성격이나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옛날옛적 반딩 아궁(Banding Agung)이란 곳에 두 명의 걸출한 도인이 살았는데 한 사람은 시빠힛리다, 다른 한 사람은 시마따음빳(Si Mata Empat - 네 개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기량과 명성이 높았는데 호승심 높은 두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 결투를 벌여 누가 더 나은지 기어이 자웅을 겨루기로 했습니다. 시빠힛리다가 가진 힘은 스룬띵 삭티(Serunting Sakti)라는 도술로 그의 독랄한 혀에서 나오는 모든 저주가 실제로 구현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저주에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위로 변하기 일쑤였습니다. 한편 시마따음빳이 가진 능력은 뒤통수에도 두 개의 눈이 있어 앞뒤를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싸움에서도 쉽게 승리하곤 했습니다. 물론 두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들만의 비밀이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은 매번 도전자들을 쓰러뜨리는 그들의 활약을 보고 들으며 그들의 능력을 유추해 한 사람은 독한 혀(빠힛리다)로 조화를 부리고 다른 한 사람은 눈이 네 개(마따음빳)인 것처럼 더 많은 것을 본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라나우 호수변에서 열리게 된 그들의 도력 대결은 입소문을 타고 그 일대 여러 마을로 퍼져나갔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시빠힛리다를 쓰러뜨리기 위해 도력을 한껏 끌어올리던 교활한 시마따음빳은 자신이 반드시 이길 계책을 세웠습니다. 도력 대결의 날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싸움을 통해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황을 누가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한 사람이 야자나무 밑에서 땅을 바라본 채 엎드리고 다른 한 사람은 아렌 야자나무 위에 올라가 나무 꼭대기에 열린 야자열매를 잘라 떨어뜨려 그 열매에 맞아 뒤통수가 깨지는 쪽이 지는 것으로 했습니다. 진 쪽은 이긴 쪽이 더 높은 도력을 가졌음을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어요. 하지만 20미터도 넘는 높이에서 떨어지는 야자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으면 머리가 깨져 죽을 터였습니다. 사실 그것이 이 대결의 묘미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결을 보려고 마을 사람들은 물론 소문을 들은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구름처럼 몰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시마따음빳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만한 그는 시빠힛리다에게 선공을 양보했습니다. 시빠힛리다가 야자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세 번이나 야자열매를 떨어뜨렸으나 시마따음빳은 간단히 모든 공격을 피해냈습니다. 이젠 시마따음빳이 공격할 차례였습니다. 시빠힛리다은 자신이 이번에야말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예감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빠힛리다야, 죽을 준비가 되었느냐?” 시마따음빳이 거들먹거리며 위협했습니다. “말이 많구나. 빨리 야자나 따거라!” 시빠힛리다가 이렇게 응수하자 시마따음빳은 기다렸다는 듯이 야자열매를 떨어뜨렸습니다. 뒤통수로 떨어져 내리는 야자열매를 시빠힛리다는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야자나무 밑에 피가 흥건히 흘렀습니다. 사지를 꿈틀거리던 시빠힛리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시마따음빳은 오랜 숙적이 마침내 죽은 것을 보고 자신의 월등함이 드러난 것이라 여겨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러다가 시빠힛리다의 늘어진 시신을 보며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시빠힛리다라는 이름이 붙은 건 정말 그의 혀 맛이 쓰기 때문일까? (pahit은 ‘맛이 쓰다’는 의미)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호기심에 이끌려 죽은 상대방의 혀를 손가락 끝으로 찔러보고 자기 입에 넣어 맛을 보았습니다. 시마따음빳은 시빠힛리다의 혀 맛이 자신이 맛본 그 어떤 쓴 맛보다도 더 쓰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시빠힛리다가 죽은 이유가 나무에서 떨어진 야자에 머리가 깨져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충격에 자기 혀를 깨물어 혀 안의 악랄한 독이 입안에서 터져 그 독에 중독되어 죽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독을 조금 전 자기 입에 넣어 맛을 본 시마따음빳도 온 몸이 시퍼렇게 변하며 굳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방금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부질없는 자각이었습니다. 시마따음빳 역시 그 자리에 고꾸러져 곧바로 죽어버렸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두 도인의 시신을 거두어 그들이 결투를 벌인 라나우 호수 변에 묻어 장사 지냈습니다. 시빠힛리다와 시음빳마따의 결투를 다룬 만화와 영화 이 이야기는 인도네시아 민간에 편만한 삭티(sakti)의 개념을 다시 한번 조명합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쁜짝실랏(pencak silat) 무술로 묘사되기도 하고 때로는 중국 무협처럼 장풍과 경공을 쓰는 사람들이 붕붕 날아다니는 삭티는 사실 무술이라기보다 주술을 혼합한 도술에 가깝고 수련을 통한 육체와 정신능력의 발전이라기보다는 접신(接神)을 통한 초능력의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술이나 차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죠. 그리고 그조차도 뛰어 넘어 시빠힛리다처럼 저주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파멸시키고 시마따음빳처럼 원래 가진 두 개의 눈 말고 다른 눈 두 개를 더 뜨는 것은 삭티를 넘어서 매직(magic), 즉 순수한 주술이나 마법의 경지입니다. 결국 삭티라는 단어는 차력에서 도술, 마술까지를 포괄하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인 것이죠. 이토록 흥미로운 삭티가 그간 현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무 허접하게 그려진 것은 홍콩 무협영화 전성시대를 이끌던 걸출한 감독과 배우들이 인도네시아엔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19년 <군달라(Gundala)>로 시작한 인도네시아의 수퍼히어로 세계관인 ‘부미랑잇 유니버스’(Bumilangit Universe)가 삭티의 개념을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담을 것이라 예측해 봅니다. 인도네시아 수퍼히어로의 초능력은 기본적으로 ‘삭티’이니까요. 얼마 전인 2022년 11월 17일 개봉된 부미랑잇 유니버스의 두 번째 수퍼히어로 영화 <스리아시(Sri Asih)에서도 인도네시아의 삭티를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끝) 부미랑잇 유니버스 속 수퍼히어로들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번역서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신성철] 러다이트운동과 고젝효과 그리고 인니 사회 변화
[신성철] 러다이트운동과 고젝효과 그리고 인니 사회 변화
러다이트운동과 고젝효과 그리고 인니 사회 변화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18세기 후반기부터 19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사람이 손으로 만들던 면직물을 방직기계가 만들게 됐다. 이로 인해 수공업으로 만든 것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생산량이 폭발하면서 산업, 경제 및 사회가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급변한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자본주의와 자본가가 등장한다. 1811년 당시 영국에서는 직물공장을 대상으로 한 연쇄방화 테러사건이 일어났는데, 용의자로 '네드러드'(Ned Ludd)를 지목했다. 연쇄테러사건의 주동자 '네드러드'는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파괴하는 습성을 지닌 신비로운 인물이라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1811년~1817년에 일어난 기계 파괴 사태를 ‘네드러드’의 이름을 따서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이라고 부른다. 그로부터 200여년 후 미국에서 자율자동차가 나타나자 일부 시민들이 자율자동차를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첫 번째 기록은 2018년 1월 2일 한 남성 보행자는 길을 건너기 위해 교통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자율주행 중인 쉐보레 볼트 차량을 공격했다. 고젝 제공 국민앱을 넘어 슈퍼앱으로 성장한 고젝(Go-Jek).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고젝이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하지만 고젝에게도 러다이트운동과 같은 시련이 있었다. 고젝이 혜성처럼 등장해 택시승객이 급감하자, 위기를 체감한 택시기사들이 고젝이 자신들의 고객을 빼앗는다고 거리 곳곳에서 승차공유서비스인 오토바이택시 고라이드(Go-Ride)와 고카(Go-Car) 기사들을 공격했고, 고젝을 타고가는 승객을 위협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2016년 전국적으로 폭력사태가 확산되는 혼란사태에 빠졌다. 조코위 대통령은 발빠르게 진화에 나섰고 인도네시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디지털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갈등의 해결사로 나섰다. 이 사태 이후,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블루버드 택시는 고젝과 협력해 사업이 더 확대된 반면, 경쟁업체인 익스프레스택시(Taksi Express)는 경영난을 겪다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에 파산했다. 이밖에도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앙꼿(angkot)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춘 자리에 녹색 헬멧을 쓴 고젝과 경쟁업체 그랩(Grab)의 라이더들이 거리를 채웠다. 고젝이 등장하기 전까지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자카르타에서는 '오젝'(Ojek)이라는 오토바이택시가 널리 이용됐다. 하지만 요금 시비와 바가지 요금은 물론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 사회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고심하던 인도네시아 청년 나딤 마카림은 2010년 콜센터와 20대의 오젝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출신인 마카림은 인도네시아에 모바일 스타트업 붐이 불기 시작한 2015년부터 오젝을 호출하고 탈 수 있는 고젝 앱을 출시한다. 편리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오젝 시장을 단시간 내에 평정한다. 고젝은 사업을 다각화하며 진화한다. 음식배달서비스인 고푸드(Go-Food)와 장보기 서비스 고마트(Go-Mart), 택배 서비스 고센드(Go-Send), 용달차 서비스 고박스(Go-Box), 처방된 약을 배달하는 고메드(Go-Med) 등 20여 종류의 생활밀착형서비스로 확장하고 있다. 이어 전자지갑 ‘고페이’(Go-Pay)를 출시했다. 신용카드 보급률 4%와 은행계좌 보유율이 40% 미만인 금융 환경에서 현금거래로 인한 부작용을 깔끔하게 해결한 ‘고페이’를 도입해 스마트폰으로 결제가 가능하게 해 고젝 이용자들의 지불은 물론 일반 수퍼마켓, 백화점,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며 심지어 공과금도 낼 수 있게 됐다. 오토바이 공유 서비스에서 출발한 고젝은 인도네시아 최대의 핀테크 기업으로 진화하며 아세안 시장으로 뻗어 나갔다. 고젝의 사업 방향은 무현금사회와 디지털경제를 추구하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책과도 일치한다. 정부는 세수입 확보와 재정·조세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화폐 이용을 장려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한 직접 보조금을 현금으로 지급했으나 이제는 전자화폐로 지급하면서 많은 거래에 있어서 투명성이 제고됐다. 고젝은 자사의 이런 데이터를 활용해 소액대출사업을 펼치고 보험 등 디지털 금융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이 회사와 협력하는 라이더는 약 100만 명이고, 식당 등 협력업소는 12만 5천개이다. 또 고페이를 통해 월간 1억 건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고젝은 아세안 시장은 물론 인도네시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그랩(Grab)을 비롯한 슈퍼앱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2021년 이커머스 유니콘인 토코페이아(Tokopedia)와 대규모 기업인수합병(M&A)을 했다. 2009년 영업을 시작한 토코페디아는 최근 쇼피(Shopee)에 밀려 2위로 밀려났다. 그랩과 경쟁하는 고젝과 쇼피와 싸워야하는 토코페디아가 합병함으로써 고토그룹(GoTo)이 탄생했다. 고토는 금융과 커머스, 모빌리티와 생활밀착형 서비스가 모두 합쳐진 아세안의 공룡으로 몸집을 키웠다. 동남아시아 스타트업 혁신의 상징으로 꼽히는 그랩과 고젝 등 슈퍼앱들이 올해 들어 실적 악화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10년 넘게 황금기를 누렸던 이들 빅테크기업은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의 여파 등으로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은 아직 인터넷 이용자 비율이 30%에 미만인 만큼 디지털 경제는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또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소비력이 왕성한 젊은 층의 인구 비중이 매우 높은 아세안은 성장 잠재력이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다. 고젝 등 빅테크기업의 등장은 인도네시아의 산업 지형을 바꾸고 인도네시아를 빠르게 디지털 경제로 이행시켰다. 물론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긱노동자(Gig Worker)를 대량으로 양산했다. 긱노동자의 증가에 따른 임금 하락, 고용조건 악화, 중산층 몰락은 인도네시아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아울러 테크기업의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사업 축소도 잇따르고 있다. 그랩이 인도네시아의 공유주방 서비스인 그랩키친 사업을 접는 등 고젝과 그랩은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있다. 러다이트 운동의 역설은 기존 일자리가 없어졌지만, 기술과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것이다. 방직기계의 출현으로 수공업은 쇠퇴했으나 이후 인류는 비약적인 생산성 증가로 수많은 경공업과 중공업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온라인 차량 호출 서비스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일자리는 줄었지만 디지털 분야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정부와 기업은 새로운 일자리를 채울 수 있는 양질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고젝 창업자를 교육부장관에 임명하는 등 교육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창의적인 콘텐츠 생산을 위한 호기심과 창의성, 감수성 등이 그것이다. 인간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 살아남기 위해 대응하는 것도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