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의 그대 이야기] 내 생의 도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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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의 그대 이야기] 내 생의 도둑질

기사입력 2014.11.1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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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의 그대 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김은숙 씨는 족자카르타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사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 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족자카르타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여덟 번째 그대 이야기

내생의 도둑질


   가족이 굶는데 예술을 추구하면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배고픈데도 예술을 추구하면 누가 말리겠는가마는 다만 내가 여유가 있어 예술을 추구하거나 취미생활을 한다 해도 그 또한 배부르니까 '돈지랄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선과 악의 차이가 그렇게 종이 한 장 차이와 같고 선행과 죄의 차이 또한 그렇게 가릴 수 없어 평생을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나름 괴롭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인이 된다. 사회인이 되고 싶지 않아도 나이가 사회인으로 만들고 세월이 혹은 세상이 나를 사회인으로 만드는데 버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나도 부족한 사회인의 자리에 떡하니 명함을 달고 앉아 버렸다. 그런데 상고를 나와도 지진하게 나온 덕에 만만한 일자리 못 얻어 결국 할머니 극성에 공순이라도 해볼까 돌아다니다 무시무시한 기계소리에 질려 허덕이던 내가 법률사무소에서 어찌어찌 일하게 되었다. 그 또한 어수룩한 내게는 적성이 안 맞아 때려치우고 법률 사무소에서 받은 한 달 치 월급을 모두 투자해 간호조무사 공부를 시작해 마침내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실습 5개월을 하는 동안 선배들이 시키는 궂은일을 마다할 리 없는 솔선수범의 선한 어린 양이던 나는 세상에 대한 부끄러움의 경계를 알고 있었다. 아니 감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간호사실에 들어오는 음료수를 매점에서 헐값으로 바꾸어 티슈도 사고 김밥도 사고 그러는 역할을 나는 도맡아 했다. 내가 생각할 때 그런 일은 위의 사람이 아래 삶에게 바라는 가장 작은 대우라 생각할 수도 있고 솔직하게 말해 도둑질도, 사기도, 폭행도, 아닌데 부끄러울 게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나의 생각에 진정한 부끄러움이란 사람이 자기 본분을 저버린 채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자식들이 부모를 위협하는 일 또는 도둑질과 남에게 피해주는 그런 것이 나쁜 행위라 간주하던 나에게 그에도 안 미치는 허드렛일 따위는 내가 언제나 당당하다고 믿는 여당당 1호인 셈이었는데 그런 나에게도 일 같지 않은 일로 내 가슴에 주홍글씨를 세기는 일에 휘말리게 되었다. 누구를 탓할까 배고파 껄떡이던 나를 탓해야지…….


  
드디어 간호조무사 수습 과정 5개월을 거쳐 정식 직원으로 인정받아 월급까지 책정받았다. 그 기쁨을 뭐로 다 표현 할 수 있을까? '나는 해냈다 '이었다. 그때 유행하던 속어 노래가 있었다.
아싸라비아 쿵따라비아 닭다리 잡고 뜯어 뜯어.“이리 좋을 수가 없는 삶이어라나는 그렇게 행복했다.

  
그때 우리 병원에 노 간호조무사가 들어 왔다. 이번 글의 나의 그대인 노 간호조무사는 얼마나 예뻤는지 내가 첫눈에 '헉' 하고 반할 정도로 예뻤다. 아니 이제껏 세상에 살면서 그렇게 예쁜 친구는 지금 것도 못 만났다. 그런 그대와 나는 나이도 같았고 순한 것도 비슷했고 우리는 그래서 도둑질도 같이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보다 일을 먼저 배워 경력이 있던 탓에 그대는 일이 수월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대가 날 불렀다
“우리 밥 먹자” “다들 내려갔잖아그때 간호사 창구엔 우리 둘 뿐이었고 다들 밥 먹으러갔었다. “그게 아니라 환자 두 분이 퇴원하셨는데 너는 저 방 나는 이 방으로 번갈아 들어가 밥을 먹는 거야” “좋아” 내 대답은 두말없이좋아였다우리는 서로 망을 봐주며 퇴원한 환자의 밥을 먹었다. 정말 너무 꿀맛이었다. 그리고 다른 간호사들이 오고 우리는 둘이 내려가서 또 밥을 먹었다. 그때 처음으로 병원 밥 먹고 배불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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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란 어린 나이는 허기지고 배고픈 나이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진다. 그리고 간호사들이나 간호조무사들은 정말 잘 먹는 먹도사급 먹성을 자랑한다. 아마 일이 힘들어서 일거다. 그래서 간호사 창구에 음료수가 쌓이면 가서 돈으로 바꾸어 적당히 필요한 티슈를 사고 나머지는 김밥을 사다 파티를 했을 것이다. 요즘은 젊은 20대들이 몸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 먹는다고 하는데 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두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때가 되면 어떤 요소에 의해 음식을 못 먹게 되는 일이 허다하게 찾아온다. 나의 경험이 그랬다. 어째든 우리 병원이었던 그 병원은 간호사들이나 간호조무사들에게 음식을 다소 야박하게 주었고 의사들과의 대우도 많이 달랐다. 모두가 우리의 병원식당 아줌마의 하늘같은 권한이었다.


  
그날내 생의 도둑질이후 얼굴이 자주 화끈거렸다. 내 자존심에 세긴

첫째 구걸하지 말 것

둘째 남의 것을 탐하질 말 것

셋째 떳떳하게 하루를 살 것

등 나의 양심에 위배가 되어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지만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친구 그대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대와 내가 그날 한 일은 삶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우리가 그 순간에 함께 있었다는 것에 무한히 감사한다.


  
사람은 살면서 참 많은 선택의 순간순간들에 놓이게 되는 것을 어른이 되어 알았다. 우리는 그때마다 우리 스스로 선택을 하게 되어 있다. 아차, 조금만 실수해도 어쩌면 죄와 가깝게 되고 조금만 잘 처신하면 우리는 안전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진정 뉘라서 명명백백하게 알 수 있고 정의할 수 있을까? 선행과 죄 또한 누가 확실하게 천명할 수 있을까? 다만 우리는 우리의 경험에서 생각하며 고쳐나가야 한다고 본다. 요는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양심이라는 것을 가져야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선한 양심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경험을 통하면 책을 늘 벗하며 간접 경험을 접하고 그것에 대한 분별력을 늘려가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책에는 픽션이던 논픽션이든 많은 경험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나는 요즘 가끔 그날 일을 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밥을 훔쳐 먹은 그 행위는 죄일까 죄가 아닐까? 결론은 둘 다이다. 죄인 것은 남의 것을 탐한 것이고 죄가 아닌 것은 환자가 안 먹으면 어차피 쓰레기가 될 것을 먹어 치웠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 죄의 비중이 더 크게 와 닿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이 그랬다는 게 용납이 안 되기 때문이다. “친구 그대는 어떻게 생각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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