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벙아완 솔로 [우수상/2014 인도네시아 이야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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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아완 솔로 [우수상/2014 인도네시아 이야기 공모전]

기사입력 2015.01.2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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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아완 솔로
(Bengawan Solo)

김소영 (JIKS 11학년)        

나는 내가 인도네시아 사람인줄 알고 하루종일 울었던 적이 있다. 너는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으니 인도네시아인이라며 나에게 짓궂게 장난치던 오빠의 말은 이미 5년도 훌쩍 지난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내가 태어난 곳, 그리고 곧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인도네시아는 나의 기억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중한 고향이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랬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함, 여유, 그리고 인도네시아만의 냄새를 언젠가는 알 수나 있었을까? 타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남겨주기 보다는 앞으로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되어 느낄 인도네시아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깊게 만든다.

 Bengawan Solo~ 초등학교 5학년. 중부 자바에 위치한 솔로로 공연을 갔던 적이 있었다. 솔로시 '국제행위예술협회(SIPA)'의 초청으로 '븡아완 솔로 페스티벌'의 한국 대표로 자카르타 어린이 합창단이 서게 된 것이다. 8개의 나라와 인도네시아 지방 15곳이 참가했는데 우리만 어린이 합창단이었다. 솔로 축제는 1년마다 무역, 문화, 관광 분야에 대해 국가 규모로 열리는 축제였고, 솔로 시민이 하나가 되는 축제였다. 지금까지 마음속에 잔잔히 남아있는 솔로의 기억은 인도네시아에 대해 더욱 애틋한 마음을 갖게 한다. 

첫날 행사는 'Parade'였다. 날씨는 덥고, 설상가상 소가 끄는 수레가 겁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올라타고 행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쑥스럽고 창피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때부터는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에게 악수도 해주며, 쾌거를 거둔 올림픽 선수들처럼 비장하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무려 2시간 동안 서있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축제에 참가하게 된 것이 영광스러웠다. 내가 태어나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 서있었던 것도 처음이었고, 환호성을 받아본 것도 처음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쌌던 그 수많던 인파 속에서 나는 인도네시아만의 정겨움을 느꼈다. 뜨거운 땡볕 아래서 행사가 지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짜증내는 기색 하나 없이 행사가 진행된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우리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던 그 활기찬 모습이 큰 감동으로 남았다. 

그 다음날은 본무대가 있었던 날이다. 오후에 솔로에서 유명한 성벽 안에 있는 야외 공연장으로 가서 리허설을 하니, 친구들 모두 초라할 줄 알았던 생각과는 달리 공연장의 광활함에 넋이 나간 듯 했다. 저녁 8시, 우리의 공연은 시작되었고,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노래를 불렀다. 초가삼간, 개나리꽃, 도라지 꽃, 신 아리랑, 사물놀이, 각설이타령, 해금 연주 그리고 'Bengawan solo'. 솔로사람들에게 우리의 아리랑과 같은 븡아완 솔로.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박수가 자동으로 터져 나오고, 그것에 자신감을 얻어 우리는 그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더욱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솔로 주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섰던 무대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만 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 단순히 퍼포먼스로써가 아닌 진정으로 그들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내 기억 속에 깊게 남아있다.

Bengawan solo는 우리말로 '솔로 강가에서'다. 1943년 그상(Gesang)이 만들어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크게 유행했던 노래로,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지금도 리메이크 되고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언제나 인도네시아인들의 가슴을 적시는 노래로, 곧 인도네시아를 떠나게 될 나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노래이기도 하다. 힘든 순간들을 노래에 의지해 위로 받는 모습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나 한국사람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단어 투성이였던 노래를 멋모르고 부르던 초등학생도 븡아완 솔로가 특히 솔로인들에게 더욱 애절하게 다가간다는 것쯤은 그들의 표정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솔로는 왕이 존재했다. 공연이 끝난 후, 솔로 왕궁 탐방을 현지 가이드 아저씨의 엄숙한 경고로 시작했다. 이슬람의 성지인 솔로에서, 특히나 왕궁은 떠들어서도 안되고, 모자를 써서도 안 되는 곳이었다. 솔로 왕궁은 무려 300년 전통으로 중세시대에 지어져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것이었다. 크라톤 왕국이 네덜란드 식민지에 강하게 반대한 데 반해, 솔로 왕궁은 네덜란드 식민정부의 후원으로 왕국의 존속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왕의 그림자를 밟을 세라 무릎으로 알현하고 24시간 정시에 맞춰서 종까지 쳐주는 1천여 명의 하인들이 21세기에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솔로 왕은 시민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 직접 피아노 연주까지 하는 것이 일상이라는 말에 행진을 하면서 보았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밝고 활기차고, 여유로움이 넘치는 일반 시민들이 어쩌면 왕의 성품을 닮지는 않았을까 하며 겹쳐 보였던 것이다. 
단지 솔로에 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빠져든 것은 인도네시아의 다양성이었다. 한 나라 안에서 어떻게 여러가지의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표어는 'BHINNEKA TUNGGAL IKA'이다. 즉, 다양성 속의 통일이다. 이는 내가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느끼는 다양성 그리고 하나됨을 잘 말해주고 있다. 가는 곳마다 제각기 개성 있는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래서 더욱 솔로여행이 나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되었다. 그런 아름다운 추억을 이제 뒤로하고 태어나 지금까지 내 인생의 4분의1이라는 시간을 보낸 인도네시아를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에게 기쁨, 슬픔, 그리움 ,행복을 모두 준 나의 고향 인도네시아 .이곳이 나에게 더 특별한 이유는 마음속 깊은 곳에 인도네시아를 사랑하고 있어서이다. 

수상소감--------------------------------------------------------
바쁜 나날 속에 마음에 여유가 없어 글을 쓴다는 게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꼭 한번, 태어나 지금껏 자란 이곳 나의 고향 인도네시아에서의 추억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막막했던 사막에 오아시스와 같던 나의 솔로여행이 떠올랐습니다. 초등 2학년부터 6학년 까지 자카르타 어린이 합창단을 하면서 공연도 많이 하였습니다. 노래실력은 물론 무대에서의 자신감까지 얻게 해준 합창단이야말로 나에게는 인도네시아를 더 많이 알게 해주었고, 사랑하게 만들어 준거 같습니다. 많은 추억 중에 솔로에서의 공연은 아직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감시간까지 끙끙거리며 써서, 제대로 내 마음에도 들지 않는 글을 읽어주시고 뽑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곳에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나의 고향 인도네시아 JUMPA L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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