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길녀]마법의 손길로 영혼을 빚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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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마법의 손길로 영혼을 빚는 남자

기사입력 2015.03.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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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 시인이 만난 인도네시아]


마법의 손길로 영혼을 빚는 남자

- 도자기 공예가 위도얀또(F.M Windayanto)

 

사춘기를 지독하게 앓아 본 사람.

생의 시작이 아니라 끝을 먼저 보았던 그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이별 후의 여자는

명랑을 묻고, 원하지 않았던 슬픔을 끌어안은 채

삶을 살아 내었다.

스무 살 전의 여자는 많이 아팠다.

안락함 보다는 불편함이

햇살보다 서늘함이 마음을 감싸던 그 때.

얼굴이 하얀 소년의 과수원 집에서

들었던 끝없는 사랑.

잠깐의 위로와 영원한 기억.

그 끝을 지나온

생의 한 가운데서

낯선 길에 서 있는 그 여자를 다시 만난다.

 

 

-흙으로 환생을 굽다

 

한 남자가 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

자신의 작품과 결혼한 듯 보이는 남자.

세상의 일에는 무심한 듯 보이는 남자.

그는 홀로이면서 다수인 남자다.

 

지나간 시간을 불러 오고

지나간 바람을 불러 오고

그 시간과 바람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불러 와서

못 다한 사랑을 이야기 하고

그리움을 펼쳐내는 남자의 작업.

그 남자는 신화를 다시, 신화로 만들 내는 신의 손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꿈꾸는 세상은 자연에서 자연으로

돌아 갈 흙의 일생이다.

남자의 손길로 만들어진 신화 속의 여자와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품에서 살고 있는 남자와 여자들.

또 다른 세상으로 환생하여 새로운 생을 이어가는

작품 속 주인공들.

그 남자가 빚어내는 흙이란 생의 일대기는 신비를 넘어 환하다.

 

그를 만나면...

전생의 어느 한 시절.

머나먼 세상 저 편에서

남자의 여자가 되어 시간이 멈춘 숲 속의 궁전에서

달콤함만이 가득한 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스침을 상상하는

꿈을 꾸어도 좋으리라.

 

여자와 남자가 공존하는 그 남자.

남자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동화책 속의 공간이 그림처럼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룻동안 그를 만나면서 느꼈던 그에 대한

끌림의 한 문장이다.

 

그가 살고 있는 그곳.

열대나라임에도 서늘함으로 충만한 곳.

누군가,

직접 다녀온 알람브라궁전 같다고 했다.

그도 그곳을 꿈꾸며 자신만의 궁전을 만들었을까...

 

그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그곳에서

예술의 본질은 스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으로 만들어 내는 작품들 속에다

작가의 고유한 환상을 버무려 내는 작업.

세계 속 신화의 인물에 제 나라의 남자 여자와 상징들을

재해석하여 탄생시키는 마법의 손.

 

그의 작업은 홀로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이루어진다.

실제 모델을 통하여 크기를 가늠하고

한 부분씩 만들어 재조합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탄생 시키는 일.

사람의 실물 크기와 닮은 그의 도자기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놀라움은 감동으로 이어지고

지금까지도 온몸에 스미어

그 기억 속으로의 여행을 인도한다.

 

그 마법의 손길로 환생하는 세상 풍경 앞에 서면...

인간의 상상과 열정은 신의 영역조차도

넘을 수 있다는 놀라움과 함께 찬사를 보내게 된다.

 

 

작가의 숲 속 궁전 같은 집.

그곳에서의 하룻밤을 기꺼이 환영한다고 했건만,

동행했던 일행들과의 엇갈리는 시간으로

언젠가는... 이라는

긴 아쉬움을 접어 두고 돌아왔다.

 

색색의 우산을 쓴 아이들이 총총 걸음으로

파란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 앞을 지나간다.

놀이터 울타리에 나란히 서서

만개를 머뭇거리던 산수유 노랑 꽃망울이

봄비 속에서

온몸으로 환하게 피어났다.

 

우기의 적도도

이곳의 삼월도

보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웃음 짓게 만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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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사의 일기

 

 

내가 만든 우울은 여린뼈를 가지고 있다

 

뚱뚱하게 살찐 우울을 키우고 싶었다

 

적도의 뜨거움을 먹고 자란 우울은

그늘이 없어 좋다

 

천둥과 번개와 장대비

강대나무는 우울을 키우기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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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

 김길녀 시인은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1990년 <시와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푸른 징조>, <키 작은 나무의 변명>등이 있다. 제13회 한국해양문학상(시)을 수상했다. 문학잡지를 만들며 에디터와 문화기획자로, 라디오방송 등등의 일로 한 시절을 보냈다. 긴 휴가를 받아 여행자로 인니의 자카르타에서 살기도 했다. 고요와 음악과 커피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기꺼이 즐기며 지낸다. 우두커니 있는 걸 좋아한다. 느낌이 좋으면 살짝, 미치는 성향이 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에 깊이 빠져서, 그때의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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