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채인숙] 낯선 시간 속의 나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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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낯선 시간 속의 나를 만나기

기사입력 2015.05.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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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이 만나는 일상 속의 예술
- Tugu Kunstkring Paleis,  Menteng



글, 사진 : 채인숙

▲ 버따위 전통 춤과 함께 서빙되는 세트 메뉴

자카르타에는 멘뗑 (Menteng) 이라는 지역이 있다.  1885년 이후로 자카르타에는  24만 명에 달하는 유럽인들이 모여 살았고, 그들만의 집단 거주지를 만들기 위해 형성된 곳이다.  당시의 지배자들은 당연히 네덜란드 인들이었고, 그들은  마치 네덜란드의 어느 한적한 도시 외곽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도록 만든 유럽식 주택들을 이 지역에 짓기 시작했다.  오로지 자신들의 향수와 지배자로서의 권위를 누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겠지만,  아무튼 네덜란드의 건축가였던 P.A.J  Moojen 이라는 사람이 당시의 멘뗑 지역을 완전히 네덜란드 풍으로 디자인하고 길가의 가로수와 넓은 인도,  한적한 공원을 함께 설계했다. 

그곳에는 아직도 1900년대 초 아르데코 풍의 우아한 유럽식 외관을 가진 오래되고 아름다운  주택들이 이 거리의 역사만큼 나이를 먹은 키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멘뗑에는 네덜란드 시절의 향수와 이야기를 담은 수많은 박물관과 갤러리와 게스트 하우스와 레스토랑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나는 나날이 고층으로 치솟는 자카르타의 새로운 빌딩 숲과 세련된 외관을 자랑하는 쇼핑몰들과 세계의 유명한 브랜드 상품들이 밤거리를 밝히기 시작한 수디르만 거리를 지날 때마다 제발 지척의 거리인 멘뗑까지는 이들의 손길이 뻗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화려하고 깨끗하고 잘 손질된 소비의 공간에서만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고, 쉽고 간편하게  해석되는 문화 예술만이  가치있는 것이라 믿는 저급한 자본의 손길이 그곳까지는 닿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낡고 오래된 시간들을  보존하고 만나는 일은  지나간 역사 속의  인간과 문화와 예술을 대면하는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가장 고귀하고 품격있고 인간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비록 그곳이 뼈아픈 식민의 역사를 품고 있고  지배와 굴종의 눈물을 감춘 곳이라 할지라도,  그 거리에서  '나는 왜 지금 여기 있는가?' 라는  질문을 새삼 던지게 되는 것이다. 

각축하고, 오늘 나는  그 멘뗑의 거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갤러리 겸 레스토랑을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상상할 수 없이 아름다운 수집품들과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그림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을 감추고 있는 독특한 레스토랑과 갤러리들이 멘뗑에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가끔 네덜란드 시절 속 인도네시아 인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을 때, 이 갤러리 겸 레스토랑만큼 모든 것을 일시에 만족시키는 공간은 드물다.  

그곳은   '뚜구 갤러리 레스토랑'이라 불리우는 곳이다.   Tugu는 기둥, 기념물이란 뜻을 가진 낱말이니,  상호에서부터 이 레스토랑이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 한국에서 나를 찾아오기만 하면 그곳으로 손님들을 끌고 가다보니,  갤러리 매니저는 뚜구에 대한 나의 특별한 애정을  눈치 챈 모양이다. 어느 날  나에게 레스토랑의 역사를 소상히 적은  4장의 인쇄물을 건네 주었다. 인도네시아어로 된 이야기들을 사전을 뒤져가며 열심히 읽고 난 후,  뚜구에 대한 나의 시선은  더 아련하고 다정해졌다.

위에서 멘뗑에 대해 소개를 할 때  1900년대 초 멘뗑 거리를 설계한  P.A.J  Moojen을 언급했다. 이 뚜구 레스토랑 역시 그의 손길로 설계되었다.  1914년 4월 17일에 문을 열었다니 벌써 100년의 역사를 가진 공간이다. 놀랍지 않은가...?  백 년의 유산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늘날 그 이야기를 그대로 품은 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몇 백 년을 훌쩍 넘은 역사를 가진 수많은 건물들을 온전히 보존해내고,  성급하게 무언가를 새로 짓거나 고치거나 뜯어내기 보다는 그대로 품어 안고 이어나가려는 인도네시아의 성숙한 문화 의식에 번번히 감탄하고 놀란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조금 뒤떨어지거나 발빠르게 트랜드를 읽어내지 않으면 마치 그들이 낙오자나 되는 것처럼 취급해 버리는 한국을  생각하며 조금 우울해 지기도 한다.

이 커다란 건물은 원래 P.A.J  Moojen이  예술인들을 위해 설계한 곳이었다.  예술인들의 전시 공간이자 음악인들의 공연, 그리고 화가들을 양성하는 예술학교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950년부터는 이민국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아직도 뚜구의  2층 지붕 아래에는 당시 이 건물이 이민국이었음을 알려주는 Imigrasi 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커다란 성을 연상시키는 2층 건물의  입구에는  다섯 개의 아름다운 창문이 살짝 커튼을 드리우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를 기다릴 화려한 소파와 꽃 장식이 왼편으로 널찍하게 들어서 있다.  그리고 1층 레스토랑을 들어서자 마자 맞은 편 벽면을 가득 패운 한 편의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인도네시아의 화가 라덴 살레의 '디포네고르 왕자의 체포'라는 그림을 모사한 웅장한 규모의 그림이다.  라덴 살레는 네덜란드 식민 시절 당시  유럽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1851년 고국으로 돌아와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현재 찌끼니(Cikini) 병원으로 사용되는 건물이 그당시 그가 살았던 자택이기도 하다. 그는 자유와 독립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인도네시아의 국민화가였다.  그리고 그는  1830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체포된 디포네고르 왕자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렸다. 'The Fall of Java' 라는 이름의 거대한  그림 (9X4m) 속에는 화가 자신이 마치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의 모습을 새겨 놓기도 하였다. 뚜구 레스토랑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라덴살레의 모사화는 이 건물이 지닌 역사 속 의미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보여 경건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레스토랑 오른편에는 작은 예술 소품 샵이 있어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소품들을 구경하고 구입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의외로 고급스럽고 의미가 깊은 소품들이 많아서 음식이 나오는 것도 모르고 구경할 때가 많다.

드디어 음식이 나올 시간이다. 나는 처음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땐  Rijsttafel Betawi  메뉴를 주문한다.  디저트를 포함해서 13가지 정도의 버따위 (Betawi)음식들을 조금씩 써빙해 주는 일종의 뷔페 패키지다.  버따위는 순수 토종 자카르타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토종 서울 사람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이 음식들은 전통 버따위 음식들을 조금씩 맛보는 것이다. 

독특한 것은 종업원들이 버따위 전통옷을 입고  커다란 음식 바구니를 어깨에 멘 채 전통 음악과 함께 등장한다. 그리고 부채를 든  여자 무용수와 상대 남자 무용수가 음식을 주문한 테이블까지  춤을 추며 음식을 든 종업원들을 이끈다.  춤과 음악이 끝나면 그들은  음식 바구니에 담긴 여러 개의 그릇 뚜껑을 열고 하나씩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며 음식을 써빙해 준다. 마치  1900년대 초의 아름다운 뇨나와 뚜안이 되어 과거 속에 앉아있는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패키지는 5명 이상의  손님들이 가야만 주문이 가능하다.  가격도 만만치 않게 비싼 편이다. 물론 소수의 인원이 가더라도 다양한 음식 메뉴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가격이 결코 싸진 않지만,  한번쯤 특별하고 호사스러운 나들이를 누리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니, 그런 기념할만한 날에 가면 아주 만족스러울 것이다. 

레스토랑 왼편에는 'The World of Suzie Wong" 이라는 라운지도 있다.  1960년대의 영화에서 제목을 따온 이 라운지에서는 옛 홍콩의 어느 거리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는 듯한 향수를 느낄 수가 있다.   

2층은 아주 큰 갤러리다. 언제나 다른 주제의 전시가 일년내내 열리고 있다. 운이 좋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그림들을 만나고 구입도 가능하다.  그림을 보다가  2층 바깥으로 나가면 'Balkon Van Menteng' 이라 이름이 붙여진 아름다운 발코니가 있다.  그곳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멘뗑의 밤거리를 내다보는 일도 낭만적이다.   완전히 낯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조차도 낯선 나를 만나는 일은 얼마나 설레고 특별한 일인지.

**주소: Jl, Teuku Umar I. Menteng


▲ 레스토랑 벽면의 사진
▲ 버따위 전통 춤으로 음식 써빙

▲ 갤러리 입구에서 버따위 전통 복장의 종업원과 채인숙 작가(왼쪽)
▲ 레스토랑 내부에 있는 소품 가게
                    
▲ 옛 이민국 건물임을 알리는 외부

▲ 레스토랑 내부에 있는 소품 가게
▲ 뚜구 갤러리 레스토랑 입구의 웨이팅룸.  
▲ 레스토랑 내 프라이빗룸. 

▲ 레스토랑 내부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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