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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아바이 마을

기사입력 2011.09.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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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 마을


[김문환 칼럼니스트] 동해안 북단에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 등이 모두 갖춰져 있고,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태백산맥의 여기저기를 터널로 뚫어 지금은 서울에서 당일 중으로도 다녀올 수 있는 천혜의 관광지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을 단풍철이면 매년 어김없이 찾게 되면서 알프스 풍의 관광촌으로 개발되기 이전인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이 지역은 소형 어선들이 철따라 명태, 오징어, 꽁치 등을 갑판까지 가득 채운 채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귀항하는 풍족스러움이 넘쳐나는 어촌에 불과했으며, 간첩선을 추격하는 군함의 함포소리에 새벽잠이 깨기도 하고, 시내 한 복판인 청초호 쪽에 자리잡고 있는 북파공작부대(HID)의 공포스러움이 주민들을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예사롭지 않은 도시였다.

  산행길을 잘못 들었다가는 위장한 채 훈련 중인 북파공작원들과 조우하여 어깨에 메고 있는 칡뿌리들을 다 내 동댕이치고 줄행랑을 치기도 하고, 하교길 초등학생들이 뒷산 미군 통신감청부대(지금의 한화 리조트 자리)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미군트럭의 꽁무니를 쫓으며 ‘초코렛’을 외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남북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접점지역인 이곳에 향수와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집단체가 있으니, 소위 함경도 실향민들의 삶터인 ‘아바이 마을’이다.

  1.4 후퇴 당시 주로 함경남도 지역에서 월남한 이들이 원산, 함흥, 흥남, 북청 등 그들의 고향과 가장 가까운 남녘에 임시거주처를 잡아 곧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약하며 집단 부락을 만든 곳이 바로 속초시 중앙동 부둣가에서 50미터 폭도 안 되는 수로를 갯배를 타고 건너는 청호동이라는 지역이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거친 해풍을 막아주는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져 형성되어 있는 이 동네에 들어서면 길 옆 철조망에 널어 건조시키는 오징어 냄새가 우선 코를 찌르며 ‘하이 눈(High Noon)’이라는 영화에서나 느낌직한 적막감에 주눅이 들며 옹기종기 모여 앉은 길가의 아낙네들이 뱉어내는 함경도 사투리는 외지사람들을 확실하게 이방인으로 만들고 만다. 

  매달 치르는 선주와의 결산일만 되면 평양출신의 여장부가 운영하는 ‘평양면옥’에서 주사를 부리다 ‘평안도 박치기’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의 주사 뒤엔 항상 고향타령이 빠지지 않으며 결국 북녘하늘을 향한 울부짖음은 포효의 수준까지 도달하게 된다.

  북녘에 두고 온 가족을 한시라도 잊어본 적이 없는 어업 종사자들은 수구지심(首丘之心)의 본능에 의해 겨울 명태철만 되면 손바닥만 한 군용 나침반에 의존하여 명태 주어장인 신포항 방향으로 키를 잡다 동이 트면서 갑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금강산의 위용을 보고서야 엔진이 시뻘겋게 과열되고 연통이 휘어질 정도로 전 속력으로 탈출하여 보지만 결국 북한 경비정에 나포되어 ‘납북어선’ 신세가 되어 일간지의 뉴스거리가 됨은 물론 정부 당국자에게는 골치 아픈 일거리를 선사하고야 만다.

  지난 8월 22일 서남아 지역 10개국 자문위원들과 주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한인회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평통 서남아협의회 출범회의가 자카르타에서 열렸다. 이 기구가 헌법조문에 명시되어 있고 대통령이 그 의장임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고, 고급호텔을 빌려 외관상 품격 있는 행사를 치르는 일도 중요한 절차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파티가 끝난 지금 시각부터는 자문위원들을 포함한 관련자들은 평화통일의 선봉대로서 팔을 걷어 부치고 국민들의 통일의지를 어떻게 결집시키느냐 하는 실천방안에 대해 더 고심하고 머리를 짜야 할 것이며, 민주적인 평화통일의 조기달성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봉사정신과 진정성은 기본덕목일 것이다.

  아울러 ‘아바이 마을’ 제1세대의 육신은 이제 거의 쇠퇴하였지만, 살아생전 수없이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우리 후세대의 귓전에 맴돌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통일마당의 제2, 3세대인 우리 자신들은 철책선에서 복무하는 내 자식들을 더욱 자랑스럽게 여길 줄 알며, 언제 시간이라고 난다면 아이들 손을 잡고 휴전선 몇 곳에 설치되어 있는 통일전망대라도 한번 들러 분단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통일문제에 대해 되새겨 보는 통 큰 행보를 감행해도 좋을 듯 하다.
<상기 글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2011년 9월호 '한인뉴스'에 게재된 내용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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