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길녀]비밀의 정원에서 찾은 꽃들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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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비밀의 정원에서 찾은 꽃들의 자서전

기사입력 2015.05.29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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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 시인이 만난 인도네시아]


비밀의 정원에서 찾은 꽃들의 자서전

-가룻(Garut)

 

 

여행자의 눈으로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행자의 자세로 살아가는 삶은

소풍의 나날처럼 설렘을 준다.

당신이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여행자처럼 살아간다면...

당신이 그리는 생의 지도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흘러가리라.

어느 날,

떠난 여행지에서

그곳이 당신의 소맷자락을 이끈다면...

그 간절함을 핑계 삼아 머물면 되리라.

나는,

지금도

여행 중이다.

 

-낙원의 문지기를 만난 식물원 호텔

 

서늘하고

조용하고

풍부한 먹거리들...

멈춘 듯 여유롭게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 먼 시절, 찰리채플린이 두 번이나 다녀갔다는 곳.

인니의 스위스로 불리는 곳.

수도 자카르타와 멀지 않은 도시.

살고 싶은 인니의 도시 중 한 곳.

인적 드문 숲 속

통나무로 지어진 방갈로풍의 호텔.

인니에서도 처음 보는 귀한 꽃들이

이국의 사람들을 반겨주었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안식처가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린 듯...

희귀한 꽃들은 저마다의 방에 길고 긴 문장을 새기며

숲 속의 적요를 쌓고 있었다.

꽃들의 방마다 들어가 듣고 싶은 이야기들은 접어둔 채...

긴 아쉬움을 통나무집 대문위에 걸어두고

떠나오면서 지녔던 그 느낌은

이별의 노래처럼 가슴 저편이 아렸다.

 

-영원한 사랑의 꽃, 에델바이스를 찾아서

 

해발 2,660미터 빠빤다얀 에델바이스 평원.

열대나라에 존재한다는 에델바이스를

찾아 가는 길은

이국의 남자와 여자에게

호기심 가득한 설렘과 기대감을 주었다.

돌길을 지나 활화산을 만나고

인니의 곳곳에서 온...

큰 배낭을 짊어진 젊은이들과 함께

뜨거운 햇볕과 벼랑길을 지나서.

저 높은 평원에 가득 피어 있다는

사랑의 꽃을 향한 걸음걸음...

그곳에 가면

지극했지만, 빛바래가는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잘생긴 인니 남자의 속삭임에 이끌려

마침내 찾은 거대한 에델바이스 꽃밭.

우리가 알고 있는 에델바이스와는

꽃 색깔만 비슷했다.

둥근 나무에 뽀얀 솜털 같은 하양꽃이

작은 구름처럼 동글동글 피어 있었다.

때로는, 이렇게 무작정의 간절함만으로도

여행자의 걸음은 무겁지만 가볍게 살아난다.

우리가 다시, 찾고 싶었던 푸른 사랑은

그날의 기억 속 다락방에서

작은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낮은 바람의 이름으로

오늘도 나풀나풀 흔들리고 있으리라...

 

-삼백년 된 섬마을 짠디 짱구앙

잔잔한 호수 가운데 섬으로 존재하는 작은 마을.

힌두교 사원이 있는 섬에 정착하여 이슬람교를 전파시킨

족자카르타 출신의 장군.

그는 싸움에서 패한 후에도 고향인 족자로 돌아가지 않고

이 섬마을에 정착하여 결혼 후 61남을 두었다.

그 후, 딸들에게 6채의 집을 지어

결혼시켜 살게 하여

장녀를 촌장으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여자들만이 마을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철저한 모계 중심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삼백년 된 섬마을엔

장군을 기리는 박물관도 있다.

외동아들은 미혼인 채 사망하여

그를 위한 이슬람 사원을 섬마을에 만들어 두었다.

아들의 상징으로 존재하는 사원 앞 마당에는

잘 꾸며진 꽃밭과

늙은 우물 안에서 이끼처럼 자라는 전설이

이국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삼백년 된 여자들의 섬...

힌두교사원과 이슬람사원이 공존하는 마을.

타 종교에 대한 관대함은

인니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과 닮아 있다.

작은 섬마을엔 삼백년 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긴 배를 타고 섬을 떠나오면서

언뜻, 초록 숲을 흔드는

장군과 아들의 환영을 보았던가...

 

분홍 햇살이 서서히

늦은 오월의 새벽을 열고 있다.

연파랑과 어우러진 깃털구름들.

밤을 꼬박 세운 사람만이 만나는 고요를

몇 마리 새의 노래가 열어주는 아침.

아주 조금,

제 몸을 흔드는 키 큰 나무의

인사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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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키다리 그림자 안

또 다른

나를

만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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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
 김길녀 시인은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1990년 <시와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푸른 징조>, <키 작은 나무의 변명>등이 있다. 제13회 한국해양문학상(시)을 수상했다. 문학잡지를 만들며 에디터와 문화기획자로, 라디오방송 등등의 일로 한 시절을 보냈다. 긴 휴가를 받아 여행자로 인니의 자카르타에서 살기도 했다. 고요와 음악과 커피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기꺼이 즐기며 지낸다. 우두커니 있는 걸 좋아한다. 느낌이 좋으면 살짝, 미치는 성향이 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에 깊이 빠져서, 그때의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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