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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와리아도 신이 만들었다

기사입력 2012.01.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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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리아도 신이 만들었다

[양승윤, 한국외국어대 교수: 동남아학] 홍 아무갠가 하는 우리나라의 탈랜트가 자신이 동성연애자라고 밝힘으로서 TV 출연을 거부당했다는 기사가 어느 유명 외국 주간지에 상세하게 보도된 적이 있다. 우리에게 TV를 통해서 알려지는 사람들은 싫든 좋든 준(準)공인의 대접을 받기 때문에 이들 자신이나 이들의 행동이 일반대중의 정서에 맞지 않으면 공영방송에는 출연할 수 없다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유난스러운 정서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바쁘게 살면서 잊어버렸나 했던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나 부부유별(夫婦有別) 같은 유교문화의 전통이 아직 우리 주변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문제는 나라나 가정에서 또 어디에서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누가 경제권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서 나라 모양도 달라지고 당연하게 한 가정의 살림살이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같은 농경사회라도 우리네 같이 겨울이 길고 추우며 척박한 땅에 살아 온 사람들에게는 돌멩이 밭을 갈고 높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 내리는 일들은 따져 볼 것도 없이 당연하게 억센 어깨 힘이 있는 남성들의 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동남아처럼 일년 내내 햇살이 내려 쬐고 비가 흠뻑 내리며 게다가 토양이 기름지고 온순하며 한없이 너른 지역에서는 여인네들이 호미와 낫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농사일과 땔감 구하는 일을 한꺼번에 해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쪽은 남성위주의 문화가 정착되었고, 다른 한 쪽에는 여성우위의 사회가 형성되었다.     
  
  이슬람 국가라고는 하지만 중동과는 사회구조 자체가 많이 다른 인도네시아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 연애관계가 대체로 자유스럽다. 결혼을 하여 아이가 생기고부터 부부는 우리들 처럼 외향적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부부관계가 우리의 경우보다 훨씬 전향적이어서 이혼율도 높고 혼외정사도 흔한 편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이 나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이들의 능동적인 역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나라 최대 일간지인 꼼빠스(Kompas)는 카톨릭계 조간(朝刊)으로 60만부를 발행하는데, 이곳에서도 제 1면이 정치면인 것이 분명하지만 언제나 여성․연예․스포츠 등의 문화기사가 포함된다. 국내외의 유명 여배우가 멋진 포즈를 취한 사진도 자주 이곳에 등장한다.

    인도네시아 최고 명문대학인 가쟈마다대학교(Universitas Gadjah Mada)의 여성연구소장인 아스뚜띠(Mary Astuti) 교수는 “이슬람사회에서 여성의 기능과 역할이 남성과 동등하다고 하는 것은 인도네시아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여성 엘리트들의 숫자가 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면, 혼란스런 이 나라의 사회적․정치적 순화에 순기능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가쟈마다대학 5만 5천명의 재학생 중 40퍼센트가 여학생이고 치과대학의 경우는 여학생이 70퍼센트를 상회한다면서, 아스뚜띠 교수는 2,800명 교수요원 중 25퍼센트가 여성이고 평생을 교수직에 있으면서도 10퍼센트 미만 밖에 이룰 수 없는 정교수(Guru Besar)도 여자 교수가 14퍼센트나 된다고 설명한다.

  인도네시아에는 와리아(waria)라 칭하는 중성(中性)들이 많다. 아직 이에 대한 정확한 연구도 자료도 없지만, 질문을 받는 사람들 마다 “와리아들이 많다”로 답한다. 가쟈마다대 여성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머지않아 와리아의 통계수치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면서, “1-2퍼센트 대는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인도네시아 2억 2,000만 인구 중 220만에서 440만이라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와리아는 성적(性的)으로 남성이면서 여성적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데, 선천적으로 양성인 경우가 더러 있지만 대개는 후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들 보다 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정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우위의 가문에서, 그리고 모계사회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수마트라의 미낭까바우(Minangkabau)처럼 여성우위의 환경이 조성된 사회로부터 와리아가 산출되는 것으로 믿어진다.

    와리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인도네시아는 외형상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이며, 이슬람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기능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숫자의 와리아가 사회의 일원으로 적극적인 활동하고 있고, 그 중에는 자신이 와리아임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엘리트들도 늘고 있다.

  머지않아 정확한 와리아의 통계수치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들이 사회를 향하여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라바야 같은 대도시에는 와리아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의 ‘메이크 엎’ 강좌는 신문에도 소개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조심스럽게 와리아에 대한 인식을 정리하자면, ‘조금 이상하기(aneh)는 하지만, 신(神)의 창조물(ciptaan Tuhan)임이 분명한데 어쩌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이 나라에서는 와리아들이 TV를 포함해서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것을 제재하고 있지 않다.

    누가 와리아인지 아닌지를 한 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갓난아이를 유심히 살펴보면, 남아인지 여아인지를 구별할 수 있듯이 여장(女裝)한 남성인 와리아를 인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 꾸준하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나이프(Naif)라는 남성 록그룹이 있다. 이들의 음반 판촉을 맡은 와리아는 TV광고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신하는 와리아를 연출하고 있다.

   와리아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다해서 떠들썩했던 도르체(Dorce)라는 가수는 이슬람 종교운동가로 겸업을 선언하고 와히드(A. Wahid) 전 대통령 진영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끌리르’로 통하는 클리어(Clear)라는 상표의 샴푸는 동남아의 어느 곳에서나 인기가 있는데, 윤기있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가진 와리아가 TV선전에 나온다. 그(녀)는 전(全)동남아 와리아 미인대회에서 일등상을 받은 태국 와리아로 이곳 와리아들의 우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처럼 성공한 와리아들의 극히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 아직 일자리 자체가 태부족인 데다가 남성과 여성의 직업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비집고 들어가기는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하기’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와리아들은 자연히 여성과 남성의 양성적(兩性的)인 감각과 느낌과 눈(眼)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가수나 화가나 무용가 또는 패션 디자이너 같이 예능 분야에서 성공하거나, 광고나 이벤트회사의 기획이나 연출담당 등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섬세하고 율동적인 여성스러움과 적극적이고 에너제틱(energetic)하며 충동적인 남성다움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직업인 셈이다. 최근 대도시에 많이 늘어나고 있는 남녀공용의 고급 미장원도 와리아들이 선호하는 직장의 하나이다.

    취업 기회가 적고 직업선택의 자유 마저 누리지 못하는 와리아들은 자연히 향락산업 쪽으로 몰리게 된다. 홍등가나 술집이나 마사지 팔러(parlour) 같은 업소에서는 이들을 내치지 않고 환영한다. 야간업소의 낮은 조명 아래에서 이들은 여성 이상으로 거의 완벽한 여성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 이들은 술도 약간 마실 수 있고, 노래도 미성(美聲)을 내서 잘 부를 수 있으며, 손님을 리드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야간업소에서 일하는 적극적인 매너의 여종업원은 대개가 와리아라고 보면 된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마사지 팔러의 경우도 비슷하다. 한국인들은 이곳에서 마사지 보다 삐짓(pijit)이라고 하는 인도네시아 전통안마를 좋아한다. 마사지와는 달리 어깨 힘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삐짓을 객실에서 즐기기 위해서 호텔 측에 서비스를 청할 때도 자주 와리아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삐짓을 즐기는 손님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와리아들이 모두 여성답게 아담하고 예쁘게 생긴 것은 아니다. 수염도 시커멓게 솟고 어깨도 쫙 벌어진 것이 영락없이 건장한 사내처럼 생긴 와리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와리아들도 목소리와 행동거지가 여성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일부 와리아들은 젓가슴이나 엉덩이가 발달하여 외모까지도 여성 쪽에 가까우나 대개의 경우는 이러한 여성적 포인트가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빈약한 편이고, 나머지 와리아는 누가 보아도 남성과 다름없는 외형을 가졌다.

  외모가 완전한 남성인 와리아들이 가장 가혹한 현실과 만난다. 이들은 결혼도 어렵고 직장생활도 불가능하고 사회생활까지도 쉽지 않다. 멀끔하게 생긴 젊은이가 말없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다면 그 중에서 상당수는 신의 가혹한 형벌을 받고 있는 와리아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사회의 냉대도 극복하지 못하여 미치게 되는데, 이들은 결국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와리아들은 그래서 자신의 남성을 가리기 위해서 짙은 화장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관찰하면 와리아임을 알게 된다. 맛사지 팔러에서 만나는 발이 유난하게 큰 여종업원이나 목걸이를 요란스럽게 하여 돌출된 목 젓을 가리려고 애쓰는 여자는 대개 와리아이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은어를 많이 쓴다. ‘이미’ 혹은 ‘벌써’라는 의미의 수다(sudah)는 발음이 비슷한 수뜨라(sutra: 비단)로 쓰고, ‘먹다’라는 의미인 마깐(makan)은 한 때 유행했던 춤인 마까레나(makarena)라는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쓰고 있다. 와리아들은 또한 사회적인 냉대 때문에 한 군데 정착해서 살지도 못한다. 자주 대도시를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이주해서 군거(群居)하는데, 와리아들끼리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비교적 정교한 연락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와리아들이 사회적응에 고심하고 있는 동안 이들을 지칭하는 명칭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와리아들이 스스로 보호색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와리아는 와니따(wanita: 여인)와 쁘리아(pria: 남자)의 합성어이다. 와리아 이전에는 와담(wadam)이라 칭했고 그 이전에는 반찌(banci)로 통했다. 와담은 와니따와 아담(Adam)의 합성어이고, 반찌는 암수가 한 몸에 있는 플러그(plug)를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해석과 적용과 해법 상의 차이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남녀구별에 대한 유교문화의 골간(骨幹)은 엄격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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