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문환 칼럼] 진정한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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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 칼럼] 진정한 화해

기사입력 2015.06.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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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문환 / 갈럼니스트

니미츠제독의 미 해군과 맥아더장군이 지휘하는 미육군이 합동작전을 펴며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남태평양상의 제도를 개구리처럼 하나씩 건너뛰며 북진하던 1945년 2월, 미 제5함대 소속의 기동함대가 1만발의 함포를 쏘아댄 후, 제5수륙상륙군단은 유황냄새가 가득한 이오지마에 상륙을 시도한다. 제5상륙군단에는 미해병 제3,4,5사단을 주축으로 7만여명의 병력이 배속되어 있었다. 아직 괌에서 잔당 소탕중인 제3사단을 예비대로 남겨둔 채, 제5사단은 해발 169m밖에 안되는 동굴요새인 수리바치산(Mt.Suribachi)을, 그리고 제4사단은 북동쪽의 비행장을 향해 진군한다. 이때 이오지마 수비를 담당한 일본군사령관은 천황의 총애를 받아 낙점되었다는 구리바야시(栗林) 육군중장이었다. 5대째 사무라이 집안출신인 그는 육군대학 제26기를 차석으로 졸업한 기병장교였다. 2만2천명의 병력으로 섬 전체를 요새화하였던 구리바야시 장군은 최후의 일인까지 항전한다는 옥쇄작전을 전개하여 216명을 제외한 전원이 전사하였으며, 따라서 미군도 부상자를 포함하여 2만6천여명이나 되는 혹독한 댓가를 치르게 되어, 태평양전쟁사에서 미군이 일본군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유일한 전투로 기록되게 된다.      

지난 4월 중순 미국을 국빈방문한 아베총리는 미상하원합동연설회에서 이오지마 참전용사라는 스노우든(Snowden) 예비역 중장과 구리바야시 사령관의 후손이라는 신도(新藤) 전 총무상을 나란히 귀빈석에 앉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미국에 대한 침략을 사과하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적과의 화해’를 강조한 것이었다. 이오지마 참전용사 중 최고령 생존자로 남아있는 94세의 스노우든 장군은 버지니아대학을 졸업하고 전시에 임관된 해병대위로, 위에서 언급한 미해병 제4사단 예하 23연대 2대대 F 중대장이었다. 그 유명한 ‘성조기 게양’ 사진은 함께 상륙하였던 제5사단 28연대 소속 5명의 해병과 1명의 해군위생병이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AP통신 조 로젠탈 종군기자에 의해 두번째로 촬영된 성조기가 ‘승리의 상징’이 되어 미국뿐만 아니라 연합국 국민들의 사기진작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오지마 점령 후 미군은 이곳에 B-29 전폭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비행장을 건설하여 도쿄를 비롯한 일본의 전략적 도시들을 사정권 안에 넣었고, 끝내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도 티니안 섬에서 출격한 B-29기가 귀환할 수 있는 중간귀착지로 이오지마가 확보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2차대전 이후 폐허에서 서독의 번영을 견인한 아데나워 초대수상은 드골을 찾아가 사과하며 화해를 요청하였고, 동방정책을 추진하였던 빌리 브란트 수상은 1971년 노벨상을 수상한 직후 폴란드 바르샤바에 위치한 전쟁희생자 묘역을 찾아 나치에게 희생된 유태인 영령 앞에 완전히 무릎 꿇고 사죄하였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메르켈 수상은 전쟁희생자 기념행사에 어김없이 참석하여 머리를 숙이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4월28일 자카르타 근교 찌잔뚱 특전사(Kopassus) 연병장에선 제63주년 창설기념식 행사가 열렸다. 그런데 이번엔 아주 특별한 장면들이 등장하였다. 군부철권정치 시대 분쟁지역에 투입되어 무력을 앞세웠던 바로 그 특전사가 아쩨 지역, 파푸아, 동띠모르 지역의 저항단체였던 GAM, OPM, Fretilin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화합의 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도니 모나르도(Doni Monardo) 특전사령관이 주관한 이 자리에는 물도꼬 국군사령관, 가똣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국군의 수뇌부는 물론, 유숩 깔라 부통령까지 자리를 함께하며 화해의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아베 수상은 세계 이목이 집중된 미국상하원합동 연설에서 그들의 특기인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게만 약한’ 태도를 반복하였다. 아베의 미국방문 직전 일본계인 마이크 혼다를 비롯한 몇몇 미하원의원들이 ‘위안부 문제’ 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하라는 충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동풍이었다. 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노령화를 손꼽으며 달력만 들여다보고 있을지 모른다. 나카소네 전 수상은 태평양전쟁 당시 해군 주계장교(경리장교)로 근무하였던 발릭빠빤(Balikpapan)지역에서의 위안부 존재를 자신의 비망록에서 언급하였었다. 한국인 피해자들과 함께 2000년 12월 도쿄, 2001년 3월 덴하그(헤이그)에서 열린 국제사법재판소에 참가하여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고 위안부 인권회복을 부르짖다 수년 전 별세한 족자 출신의 마르디옘(Mardiyem)과 찌마히 출신의 에마(Emma) 할머니의 절규는 아직도 메아리로 돌아온다. 13살의 나이에 남부깔리만딴 반자르마신 인근 떨라왕(Telawang) 위안소로 끌려와 ‘모모예’라는 일본식 이름을 부여받고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했던 마르디엠 할머니는 자신이 겪었던 일본군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2007년 ‘Momoye’라는 소책자로 남기고 직후 하직하였다. 그 책에서 자신을 포함하여 동료들 대부분이 백주대로에 짐승처럼 트럭에 실려지거나, 악극단에 가입시켜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강제로 끌려왔다고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2014년 4월 25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 여성들은 전쟁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충격적인 방법으로 성폭행을 당했고,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라는 것은 인지해야 하며, 그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존경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그리고 지난 5월 19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리더십 콘퍼런스’에서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일본이 아시아에 고통을 준 점을 사과한다.”고 언급하였다. 

이렇게 모든 게 명명백백할진데, 더 이상 머뭇거릴 일이 없다. 아베부인과 케네디대사가 옆에서 박수를 치며, 스노우든 장군과 신도 장관이 서로 껴안고 악수만 하면 그들의 만행이 속죄되는 것은 아니다. 아베 정부는 지금이라도 역사를 재인식하고 정도를 걸어 나갈 것을 촉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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