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 송혜교로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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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송혜교로 변신은 무죄

기사입력 2015.07.2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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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번째 그대 이야기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

     한국을 다녀와서 ‘르바란’ 이틀째 되는 날 오늘 우리 동네는 텅 비어 있다. 족자에서도 조금 멀리 적을 둔 가족들이 많아 모두 그네들 고향으로 가니 동네는 정적마저 감돈다. 그나마 사람 소리가 나는 곳은 두 집이고 동네가 내 세상인 냥 고양이는 길 한 가운데 누워서 덜 깬 잠을 부비고 있다. ‘르바란’은 인도네시아의 최대의 명절이다. 즉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다. 아니 설날보다 더 의미가 있는 그 ‘르바란’ 이어서 한국의 피가 흐르는 그대들에겐 외롭고 허전할 것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그대들에게 나는 언제까지나 힘 닿는데까지 후원할 것이다. 비록 내가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죽었다 깨어나도 송혜교가 될 수 없지만 이렇게 보통사람으로 늙어간다 해도 나로서 너희들을 후원하겠다.

     그대들 삼남매와 인연을 맺은 지가 몇 년째 인지는 잘 모르지만 한글학교에 봉사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맺어지게 된 우리는 처음 가르치던 때 그대들의 눈망울이 촉촉해서 그대들의 아픔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어린 나이에 한국인 아버지를 잃고 인도네시아인 엄마를 따라 인도네시아 아이들로 살아가는 그대들에게 현실은 가난이고, 힘겨움이고, 고통이었을 것이다. 한글학교 생활과 더불어 어느새 성장해 버린 그대들, 나는 그대들이 그저 잘 자라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한 날은 그대들의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막내가 아빠가 그리워서 많이 운다는 소리를 들었고, 또 어느 날은 이런 말을 들었다. 그대들이 선생님 즉 내가 송혜교와 닮았고 그래서 송혜교가 나오는 드라마는 선생님 즉 내가 나온다고 생각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뛰어 들어와 드라마를 볼 정도로 꼭 챙겨서 본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슬펐다. 내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그대들이 정이 그리웠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은 충격적인 말도 들었다. 그대들 중에 큰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친구들이 큰 아이의 핸드폰을 물에 넣고 급기야 교실 문을 잠근 채 집단 구타를 했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빠가 한국인인데 한국 가족이 찾아오지도 않고, 그대들의 집이 너무 가난하다는 게 그 이유였고 또 다른 이유는 은근이 그대의 큰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에게 예쁨을 받는 게 질투가 나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인도네시아도 왕따가 있다는 것을 이즘에 알았다. 그런 말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나는 화가 나서 내가 친척이 되기로 했고, 학교에 가서 그대들에게도 친척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라 했다. 한술 더 얹어서 나라는 친척은 발이 넓어 인도네시아 높은 경찰 친구도 잘 안다고 하라고 했더니 학급 친구들이 그날 이후로 급 돌변해서 잘해준다고 했다. 왕따를 시킨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한국의 몇 안 되는 무서운 십대들보다 착하고 온순한 것 같다.

     여하튼 그들의 친척으로 학교를 방문하는 날짜가 잡혔다. 송혜교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늘상의 아줌마로 학교를 찾을 수 없어 송혜교 아닌 송혜교로 변신을 시도했다. 밤 그림자가 빛을 받아 머리에 내리면 하얀 머리가 많이 나와 있어 하얀 머리를 감추려고 혼자서 헤나로 염색을 했다. 그래도 날이 날인만큼 끝마무리는 미용실 가서 염색한 머리를 내리는 손질을 했는데 그때 손톱을 보니 염색이 손톱 밑으로 들어앉아 시커멓게 변해 있었으니 이 또한 매니큐어로 덮어 가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왜 하필이면 매니큐어 색깔이 붉은색 밖에 없냐고요……. 점잖으면서 있어 보이는 옷에 지인이 선물한 진주 목걸이로 광을 내고, 빵도 사고 닭도 넉넉하게 사서 12시 땡 전에 그대들의 학교에 도착했다. 그대들이 학교 교문 앞에서 나를 반겼다. 나를 바라보는 그대들 표정에서 미안함이 역력하게 전해왔다. 다름이 아니라 시험이 끝나서 학생들이 일찍 하교한 것이다.

     에구구!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아침부터 공들이고 뾰족구두 싣고 나선 게 정말 황 되는 날인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래도 몇몇 그대들 친구들에게 질문을 받는 그대들의 얼굴이 다분히 행복해 보였다.

‘친구야 누구야?’
‘우리 친척이야!’ (수줍게 대답을 하는 그대들)
‘친구야 누구야?’
‘우리 친척이야!’ (역시 수줍게 대답을 하는 그대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지킴이 아저씨가 나의 꾸밈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는지 교무실로 안내해 거기서 교장 선생님과 몇몇 그대들의 선생님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아이들 주려고 넉넉하게 사온 빵은 선생님들에게 인심 쓰고 닭은 그대들에게 또 아는 지인에게 그리고도 남아 운전수에게 더러 인심을 쓰고 오늘의 송혜교 놀이를 일단락 지었다. 그대들과 헤어져 숨도 못 쉬고 긴장했던 마음을 풀었더니 배가 너무 고파 견딜 수가 없어 기사와 ‘빠당’(인도네시아 서부 수마트라 식의 보편적이고 저렴한 뷔페식당) 집으로 들어가 배부르게 점심을 먹었다. ‘빠당’ 집에는 진주 목걸이를 한 여자는 잘 안 어울린다. 그처럼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송혜교가 될 수 없다. 나이도 나이이고 미모와 재력에서도 송혜교 와는 많이 차이가 날것이다.

     그래도 나는 나의 위치에서 너희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후원해줄게 이런 펑퍼짐한 아줌마라도 그대들이 친척으로 받아들이기 괜찮겠니? 아빠도 없고 남들처럼 풍족하지 않아도 맑고 수줍게 살아가는 그대들 삼남매에게 힘닿는 데까지 사랑하마. 그리고 사는 동안 친척으로 노력할께. 그대들도 힘내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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