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鏡 - 시가 있는 목요일
안녕하세요. 박정자입니다.
가도 가도 온통 숯검정이었습니다. 강원도 고성에 큰 산불이 난 직후 그곳을 지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가보니 잿더미 속에서 푸른 잎이 자라고 있더군요.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비 내리지 않는, 심한 건기를 앓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산불에 타고 있습니다. 비를 기다립니다. 비만 내려주면, 나무들은 자신의 상처에서 더 단단한 생명의 뿌리를 뻗어 다시, 새롭게, 희망의 거처를 마련할 텐데... 애타게 비를 기다립니다.
희망의 거처 / 이정록
옥수숫대는
땅바닥에서 서너 마디까지
뿌리를 내딛는다
땅에 닿지 못할 헛발일지라도
길게 발가락을 들이민다
허방으로 내딛는 저 곁뿌리처럼
마디마디 맨발의 근성을 키우는 것이다
목울대까지 울컥울컥
부젓가락 같은 뿌리를 내미는 것이다
옥수수밭 두둑의
저 버드나무는, 또한
제 흠집에서 뿌리를 내려 제 흠집에 박는다
상처의 지붕에서 상처의 주춧돌로
스스로 기둥을 세운다
생이란,
자신의 상처에서 자신의 버팀목을
꺼내는 것이라고
버드나무와 옥수수
푸른 이파리들 눈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