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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삿빰에 관한 보고서

기사입력 2011.10.0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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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빰에 관한 보고서

양승윤 교수(한국외대 동남아학)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의아하게 느끼는 한 가지가 삿빰(satpam)으로 칭하며 어디에서나 관찰되는 제복을 착용한 경비원이 많다는 것이다.

관공서나 대학교는 물론이고, 대형 쇼핑 몰이나 각급 은행과 호텔과 회사를 막론하고 한두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르는 삿빰이 출입문을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한 평 남짓한 안내소가 있게 마련이고 출입을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들의 안내를 받게 마련이다.

약자(略字)를 많이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삿빰은 사뚜안(Satuan)과 뻥아만안(Pengamanan)의 합성어로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한다. 특히 뻥아만안은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뜻이다. 삿빰의 원류는 네덜란드 식민 통치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이 한 곳에 제법 많이 모여 살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깜라(kamra)라 하여 자경단(自警團) 비슷한 기능을 가진 조직이 생겨났다. 깜라는 안전한 상태를 뜻하는 끄아만안(keamanan)과 민중을 뜻하는 라햣(rakyat)이 합성된 단어였다.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이룬 후, 깜라는 정규군이나 경찰군1)과는 별개로 공장이나 회사 또는 시장이나 학교, 나아가서 주택단지의 안전한 상태를 지키는 기능을 계속해서 유지하게 되었다. 독립 초기에 이렇다 할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에 가담하였다.

삿빰 이전에 삿빰과 비슷한 기능을 가진 다양한 명칭의 조직들은 모두 론다(ronda)라 칭하는 ‘야경꾼’ 제도로부터 출발하였음이 분명하다. 인도네시아 전통사회에는 일찍부터 론다가 존재했다. 아직 전기가 보급되지 않았을 때 론다는 밤 9시경부터 새벽 4시 반경까지, 그리고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에는 자정부터 새벽 3시 반 경까지 론다가 마을을 순회하였다.

마을의 청장년을 중심으로 대개 4-5인이 한 조가 되어 론다 역할을 하였는데, 끈똥안(kentongan)이라 하여 굵은 대나무에 홈을 파서 막대기로 두드리면 공명(共鳴)이 먼 데까지 퍼지는 일종의 타악기를 소지하였다. 필요한 경우에는 이들은 끈똥안을 두드려서 다양한 신호를 주고받았다. 기피인의 내방을 알리기도 하고, 도둑의 침입이나 퇴로를 차단하기도 하였으며, 비상시 주민들을 한데 모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하였다. 같은 지역의 거주민들은 한 달에 한 두 번씩 돌아오는 순번에 따라 예외 없이 론다가 되는데, 피치 못하게 빠져야 할 경우에는 약소한 금품을 지불하는 것으로 의무가 면해 지기도 하였다.

서부쟈바의 주도(州都)인 반둥(Bandung)에 국립교육대학(UPI: Universitas Pendidikan Indonesia)이 있다. 이 대학의 웹사이트에는 1954년부터 캠퍼스에 야경단(夜警團)이라는 이름으로 야간 안전요원(Jaga Malam)들이 있었고, 1979년 안전(keamanan)과 질서(ketertiban)라는 의미를 가진 깜팁(kamtib)으로 개명한 후, 1982년에 주(州) 경찰청의 확인절차를 거쳐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캠퍼스 내에 삿빰을 두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삿빰의 기능은 우리나라의 예비군이나 민방위대에 해당되는 한십(Hansip: Pertahanan Sipil)과 비슷한 면도 있다. 한십은 원래 전쟁 시에 전투 보조병력으로 준비되었으나, 전쟁과 같은 수단은 구시대의 산물로 치부되는 평화 시대가 도래하였기 때문에 민중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기능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삿빰은 긴급사태 시, 경찰군의 보조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에서 데모 같은 소요 사태가 일어났을 때, 삿빰은 차량의 주차질서를 돌보기도 하고 교통신호등 주변에서 교통정리를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경찰 보조역할을 일찍부터 요청되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경찰군은 1980년 12월 30일자로 삿빰의 기능과 역할을 공식화하였다.

삿빰의 선발은 일반 회사나 관공서의 구성원을 모집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키가 165㎝ 이상이라든지 안경을 쓰지 않아야 된다든지 하는 조건이 따른다. 고졸(高卒) 이상이라는 학력제한이 있기도 하고 경찰관서나 기타 유관기관에서 삿빰과 관련된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확인서가 유효하게 작용하기도 하며, 더러는 무술(武術) 유단자를 우대한다는 부가 조건이 등장하기도 한다. 경찰관서에서 관장하는 삿빰의 교육은 초급 ․ 중급 ․ 고급으로 분류하여 훈련의 정도를 강화하고 있는데, 교육시간은 매 단계 마다 4주간에 걸쳐 총 232시간을 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을 교육하는 장소는 대개 지방의 경찰관서이며, 교육 내용은 경찰군의 교육과 비슷하여 예절교육에서부터 도열(堵列) 등 제식훈련 ․ 화재 및 테러예방 ․ 체포 및 수색요령 ․ 보호감시 및 순찰요령 ․ 호신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삿빰의 훈련은 이수증을 수여하는 교육훈련 이외에도, 매년 또는 필요시에 실시하는 재교육 등 세 종류가 있다.

이들의 업무와 관련하여 은행을 위시하여 대형 쇼핑 몰 등 범법자들의 목표가 되는 고액의 현금거래업소에는 삿빰들에게 개인화기 소지를 허가하고 있다. 1999년 2월 26일자 국립경찰군의 결정에 따라 한 업소에서 1/3 미만의 삿빰에게 무기소지를 허가하되, 총 화기 수가 15정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경제사회의 발전에 따라 안전요원을 공급하는 사업이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1999년 이래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안전관련 인력의 국내 공급이나 해외 송출업무를 민간 기업에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2003년 말까지 총 220개의 인력공급 관련 기업이 인도네시아안전요원협회(AMSI)에 등록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유력 일간지의 하나인 수아라 쁨바하루안(Suara Pembaharuan)은 2005년 7월 12일자 “뜨는 안전관련 비즈니스”라는 제하의 특집 기사에서 AMSI에 등록한 기업을 여섯 종류로 분류하였다. 이들은 안전관리관련 컨설턴트, 안전관련 시건장치 전문기업, 안전요원 교육훈련기업, 현금 및 귀중품 운송기업, 개인경호기업, 재난구조기업 등인데, 안전요원 교육훈련기업체가 가장 많다고 보도하고 있다.

안전관련 비즈니스의 호황과 더불어 삿빰을 많이 고용해야 하는 대기업이나 대학과 같이 안전관리 대상지역이 광범위한 기관에서는 이들에 대한 관리를 해당 기업에 위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삿빰의 급료는 초과시간 수당 등 근무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해당 지역의 최저임금(UMP: Upah Minimum Propinsi)에 기준을 둔다. 삿빰이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해당 직장으로부터 급료를 받으면 그래도 좀 나은 편이지만, 안전요원 공급회사를 거치는 경우에는 급료는 더 낮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들은 근무를 쉬는 날이나 또는 근무 시간이 끝난 후에 또 다른 일거리를 찾게 된다. 집 근처에 작은 구멍가게(와룽)를 연다든지 혹은 오젝(ojek)이라 하여 자신의 오토바이로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게 된다. 쟈카르타의 대표적인 한국계 기업인 코린도(Korindo)에 근무하는 삿빰 한 사람은 근무시간 이외에 회사 내에서 세차(洗車) 일을 한다.

삿빰은 안전교육훈련이나 안보협력을 위해서 경찰관서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한다. 삿빰이 자신의 근무 영역에서 범법자를 발견하거나 붙잡았을 경우에는 즉시 경찰관서로 연락하고 신병을 인도하여야 한다. 회사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서는 삿빰을 지휘하는 위치로 경찰관을 초치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당연하게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어쩌다가 현역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변에 영향력이 남아 있는 퇴직 경찰관들이 이런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군사문화의 잔재인 셈이다. 그러므로 삿빰의 복장은 오랫동안 예비 범법자들에게 위압감을 줄 목적으로 군복(軍服)과 엇비슷하게 만들었다. 검정색 운동모자에 흰색 상의와 짙은 청색 바지가 이들의 유니폼인데, 상의에 삿빰임을 나타내는 표식과 명찰이 부착되어 있다. 곤봉 소지가 대부분이지만, 허가를 득한 업소의 경우에는 권총을 소지한 삿빰도 더러 있다. 삿빰의 유니폼은 비슷하지만, 전투복 차림을 선호하는 업소도 있다. 발리에서 꽤 이름이 나 있는 무띠아라 발리(Mutiara Bali)라는 보석가게는 성공한 한국 기업인이 운영하는 업소인데, 이곳의 삿빰들은 한국 특전사의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 안전요원 공급회사가 늘어나면서, 삿빰의 서비스 분야도 다양해 졌다. 의심이가는 방문객을 노려보던 자세로부터 밝은 얼굴로 다가서는 서비스를 지향하는 업소들이 늘고 있다. 은행 같은 업소가 이에 해당된다.

삿빰도 정년(停年)이 있다. 관공서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삿빰은 60세가 정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소속 단체나 업소의 내규에 따라 결정되는데 대개 50세 중반을 전후로 퇴직이 결정된다. 삿빰에 대한 초기 사회적 인식은 점차 퇴색하여 오늘날에는 하나의 일반적인 직업의 구성원으로 변모하였다. 

지난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수하르토 정권이 향유(享有)한 군사문화의 영향으로 삿빰들까지 유니폼을 입은 직업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이 나라는 육해공군과 경찰군 같은 현역 군인 이외에도 국가 공무원이나 지방 공무원도 제복을 착용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삿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삿빰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위상은 전적으로 고용 성격과 급료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 공무원 신분이거나 국영 기업체나 은행 또는 국립대학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삿빰들은 급료도 안정된 편이어서 이들은 자신들의 업무나 위상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력 송출회사에서 공급되어 일반 회사에 근무하는 삿빰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마지못해서 근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 직업인으로 변모한 삿빰들은 업무환경 주변에서 다양한 허드렛일을 하고 약간의 사례비를 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일은 복덕방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아직까지 복덕방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이런 역할은 주로 지역신문이 한다. 웬 만한 지역신문은 아예 한 두면이 집 ․ 자동차 ․ 오토바이 ․ 가구 등을 팔고 사는 한 칸짜리 광고로 채워져 있다.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중계하는 역할을 삿빰들이 거들고 있다.

그러므로 웬만한 주택단지를 관할하는 삿빰들은 단지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월정액으로 걷어 주는 봉급 이외에도, 복덕방 역할을 하거나 생수 아쿠아(Aqua)나 가스(gas) 등을 단지 내에 배달해 주고 약소한 수고비를 챙긴다. 이들은 특히 단지 내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을 좋아한다. 주로 한 밤 중에 담배나 술을 사다 달라며 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데, 당연하게 낮 시간과는 다른 수고비가 지불된다. 가게는 밤 9시를 전후해서 문을 닫는다. 그러므로 밤을 새워가며 술을 마셔 가며 화투나 트럼프 놀이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기호품이 떨어지면 달리 방도가 없다. 이런 때면, 삿빰의 역할이 부각된다. 밤늦은 시간에 동네 가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끝>

[데일리인도네시아 기자 dailyind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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