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鏡 - 시가 있는 목요일
안녕하세요. 박정자입니다.
'파장 무렵 집 근처 노점에서 산 호박잎/ 스무 장에 오백 원’, 그 오백 원을 투자한 시인의 저녁밥상이 이토록 푸짐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최영철 시인의 시 <본전 생각>, 오백 원짜리 거미줄을 걸어 놓은 듯 자연의 섭리와 사람의 노고를 따라가면서 모든 가치가 화폐로 환산되는 현대에, 당신은 지금 얼마나 풍요로우십니까 하고 묻는 것만 같습니다.
본전 생각 / 최영철
파장 무렵 집 근처 노점에서 산 호박잎
스무 장에 오백 원이다
호박씨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씨를 키운 흙의 노고는 적게 잡아 오백 원
해와 비와 바람의 노고도 적게 잡아 각각 오백 원
호박잎을 거둔 농부의 노고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실어 나른 트럭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파느라 저녁도 굶고 있는
노점 할머니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씻고 다듬어 밥상에 올린 아내의
노고는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사들고 온 나의 노고도 오백 원
그것을 입 안에 다 넣으려고
호박 쌈을 먹는 내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