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최계월 코데코 그룹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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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월 코데코 그룹 회장 별세

기사입력 2015.11.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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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보루네오 원시림 개발에 이어 마두라 유전 발견

한국 국외투자 1호 기업으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던 남방개발(현지 법인명 코데코)의 창업주 최계월 회장이 27일 오후 3시 별세했다. 향년 96세. 

1919년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에서 성장했으며 와세다대 법학부에서 수학했다. 대학 시절 학병으로 일본 육군 항공정보·전파탐지기관리 장교로 근무했다.

1947년 일본 동양무역사 사장을 거쳐 흥아상사 전무로 일했다. 1963년에는 코데코를 세우고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외국에 진출, 인도네시아 산림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정부 전체 외화보유액 4천300만 달러의 10%를 넘는 300만 달러를 빌려 외국으로 나갈 수 있었다. 최 회장은 김종필 전 총리의 도움을 받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이후 그는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원시림 개발로 큰돈을 벌어들이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칼리만탄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보르네오 섬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한다. 

광활한 원시림 개발을 한 데는 당시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지원 때문이다.

최 회장은 독충과 맹수가 우글대는 열대우림이었던 칼리만탄을 개발해 현대식 도시로 변모시키며 사세를 확장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외국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들어 1981년 인도네시아 자바 동부의 마두라 유전지역에서 광맥을 발견하기도 했다.

▲ 1996년 인도네시아 대사로부터 표창받는 최 회장(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후 마두라에 정부 석유사업기금을 포함한 1억7천만 달러를 투자해 1985년부터 원유를 생산했다. 그러나 초기 1만 5천 배럴에 달했던 생산량이 1년 만에 700배럴 정도로 급감한 탓에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은 온갖 비난 여론 속에 정치자금 수수설까지 확산한 탓에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합판, 고무, 시멘트, 화력발전소에 이어 석유와 가스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재기를 모색했다. 1994년에는 서마두라 가스전을 준공해 하루에 4천만 입방피트 천연가스(LNG)를 생산하는 등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1995년에는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으로부터 인도네시아 독립 50주년 기념 경제발전 특별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1997년에는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의 수렁에 빠져 사세가 기울어 직원 임금을 체납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재기를 시도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에 체류해온 것으로 전해진 최 회장의 빈소는 일본 도쿄도(東京都) 주오(中央)구의 절 쓰키지 혼간지(築地 本願寺)에 차려졌다. 발인은 29일 오전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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