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鏡 - 시가 있는 목요일
안녕하세요. 박정자입니다.
숙제하듯, 책상 앞에 메모지를 붙여놓고 바쁘게 움직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러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면 세상을 얻은 것 같이 기뻤습니다.
돌이켜 보니, 일 년이라는 시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버림받은 듯 애타는 날과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날의 교차...... 그러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풍경이 되는 것이겠지요.
나이 탓인지 차츰 희미해지는 물음표 위로 새로운 풍경이 들어와, 가는 대로 가자고 마음을 이끕니다.
가는대로 간다 / 박정자
일을 접고 만남을 줄이고 한적한 들녘이 되어 먼 산을 바라본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물줄기는 결을 따라 흐르고 백양나무 숲은 반짝이고 구름은 산비탈 오르내리며 제 그림자를 지운다
그동안 너무 빨리 걸어 온 탓에 휘어버린 발가락을 허공에 펼친다 일렬로 늘어선 초침소리를 발가락 각도만큼 비틀어 비단잉어 등줄기에 걸쳐 놓는다 어떻게 병 속의 새가 허공을 날 수 있는지 그 오랜 물음의 유리벽이 깨진다
풍경에는 밖이라거나 안이라는 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서 멀거나 가깝다는 말로 해야 한다고 맨드라미들 모여앉아 큰 입으로 수선떨어도 신발 옆에 곤히 잠든 고양이까지 다 안다 풍경의 밖에서 풍경의 안으로 이어지는 발소리를 풍경에도 안팎이 있다는 것을
풍경의 앞과 뒤를 겹쳐서 보여주는 먼 산도 사실은 물과 나무와 구름을 밖에서 안으로 감아 들이는 것이다 느리게 가는대로 가기로 한다 병 속의 새 어떻게 유리벽을 깨뜨렸는지 묻지 않기로 한다 새로운 물음에 갇히지 않기로 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