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고] "표절" 나이키와 나이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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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표절" 나이키와 나이스 사이

기사입력 2016.02.1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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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나이키’와 ‘나이스’ 사이- 표절의 윤리를 생각한다.
글: 신 영 지(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지난해 신경숙 작가로 인해 촉발된 일련의 논란들로 표절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었다. 표절, 패러디, 패스티쉬 등의 창작기법과 미학에 관련된 개념에 대한 것부터 표절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대책까지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하지만 표절문제는 문학계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작년 한 해에 갑작스레 생겨난 논란도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작년의 표절 사태를 보자면 그다지 놀라울 것도 실망스러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몇 해 전부터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층위의 표절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가 외국 드라마나 소설을 내용을 베꼈다거나 예능 프로그램이 외국 방송의 포맷을 그대로 도용해 항의를 받기도 했다. 대중가요는 특히 표절 시비에 자주 휘말렸다. 학계도 표절 시비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대학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표절해 문제가 되기도 하고 내각의 각료 후보가 표절 의혹을 받기도 했다. 

▲ (서울=연합뉴스) 베스트셀러 그림책 작가 최숙희 씨가 자신의 초기작에서 표절이 있었으며 다른 한 작품은 의식하지 못한 사이 다른 작가 그림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시인했다. 최씨는 24일 연합뉴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이 1998년에 펴낸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가 일본 작가 세가와 야스오의 1967년작 '이나이 이나이 바아'에서 "개념을 가져온 것이 맞다"고 밝혔다.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에 수록된 그림(왼쪽)과 '이나이 이나이 바아'에 수록된 그림(오른쪽). 2015.9.25 << 인터넷 캡처 >>

솔직히 말하면 표절의 심각성이 제기되는데도 너무 많은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의 저작물 혹은 결과물을 무단으로 도용하는 사태가 일반화되어 있어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동시에 표절 행위가 지닌 심각성을 인지하거나 책임을 지려는 의식이 부족하다는 점 또한 문제적이다. 인도네시아에서 2년간의 파견교수직을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학생들이 보고서 표지에 표절이나 도용을 하지 않겠노라는 서약서를 첨부한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서약서를 붙일 정도로 표절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간혹 표절한 사람이 있어 지적하면 들킨 것이 문제이지 베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거나 표절이라고 보는 근거를 제시하라는 학생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대학만의 문제도 아니고 한국만의 문제도 아닌 듯하다. 얼마 전, 국내 패션 기업이 작은 기업의 상품을 그대로 표절해 판매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도쿄 올림픽의 엠블럼이 벨기에 극장의 로고를 표절했음이 밝혀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표절은 다른 사람의 글-혹은 그림-을 그대로 옮기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아이디어나 콘텐츠, 구성을 베끼는 것도 표절에 포함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이용해 작업을 했다고 모두 표절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문학을 예로 들면, 한문학에서는 이전의 작품의 좋은 구절을 가져와 작품을 쓰는 전통이 있었고 현대문학에서도 고전이나 이전 작품에 기대어 작품을 창작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훈의 <완화삼>에 대한 답시로 박목월이 <나그네>를 창작한 일이나 김춘수의 <꽃>과 오규원의 <꽃에 대한 패러디>, 장정일의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과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고전소설인 <심청전>은 채만식의 <심봉사>, 최인훈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오태석의 <심청은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황석영의 <심청>과 같이 장르가 바뀌고 내용이 재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을 ‘표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전의 작품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전의 작품과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 재창작된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부각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베낀다는 것만으로 표절이 되지는 않는다. 표절을 ‘일종의 사기행위’로 규정한 포스너나 ‘윤리적으로 법률적으로 단죄되어야 할 범죄 행위’로 본 정하영 교수는 표절의 가장 큰 문제를 ‘숨긴다’로 보았다. 결국 표절은 다른 작품을 몰래 자신의 것에 넣으면서 그것을 숨겨 속이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에 나 역시 논문을 표절당한 경험이 있다. 2011년에 등재지에 실었던 소논문을 어느 대학원생이 석사논문에 그대로 표절한 것이다. 석사 논문이 총 48쪽인데 그 중 20쪽이 글자 하나 바뀌지 않고 실렸다. 결국 학생의 석사 지도교수에게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을 요구해야 했다. 다행히 해당 대학에서 문제를 인정하고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빠른 해결의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표절의 피해자가 모르거나 표절을 한 당사자가 해결할 의사가 없으면 그대로 묻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 몇 달간 논문 표절과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표절의 기준을 제시하고 표절을 판단하고 중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표절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영향을 완벽히 배제된 창작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386세대인 나는 수없이 많은 무단 도용물과 무단복제, 표절에 파묻혀 성장했다. 응팔 보라와 같은 또래인 나는 ‘나이키’와 ‘나이스’, ‘아디다스’와 ‘아다다스’, ‘프로스펙스’와 ‘프로스팍스’의 공존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이스를 나이키라고 우기지는 않았다. 나이스가 나이키를 본뜬 ‘짝퉁’이라는 것도 인정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이스가 베낀 것이 아니라고 우긴다. 아무리 우겨도 나이스는 짝퉁이다. 짝퉁을 버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야 새 신을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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