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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한식당 이야기

기사입력 2011.10.1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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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한식당 이야기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자카르타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7시간이나 떨어진 곳이지만 한식을 먹거나 한국식품을 구입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다. 뷔페식당 메뉴에 김치와 불고기가 포함된 고급 호텔도 여럿이다. 식당이나 행사장에서 불고기나 잡채를 맛있게 먹는 현지인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자카르타만 본다면 한식이 대중화 단계에 진입한 모양새다.

현지인, 한식 마니아가 되다

수도권 지역에 있는 한식당만 140여 개, 한국식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한국슈퍼가 10여 개이며, 대형마트와 고급슈퍼 그리고 일본슈퍼 등에서도 한국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자카르타 한식당에 가면 현지인들이 다양한 음식을 시켜서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10년 전만해도 현지인이 찾는 한식당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한인들과 직간접적으로 아는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은 맛있다고 소문이 난 한식당은 한국인과 관계없이 현지인이 스스로 찾아오고, 현지인과 한국인 고객 비율이 비슷하거나 역전된 한식당도 여럿 생겼다. 최근 개업한 ‘본가’라는 한식당은 현지인 광고매체나 한인 광고매체에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입소문만으로 한인과 현지인이 몰리고 있고, 이는 현지인 사이에 한식 마니아층이 형성됐다고 추정할 수 있게 한다.

한식, 인도네시아 경제의 고속 성장과 한류라는 날개를 달다

한식 고객층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인도네시아 경제가 고속 성장을 하고 국민소득이 상승하면서 인도네시아인의 외식 수요가 증가하고 다양해지고 있는 점과 외국인투자 증가에 따라 한인 수도 증가해 한식고객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점, 그리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류문화가 소개되면서 한식에 대한 인지도와 이미지가 개선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 한류의 확산과 더불어 한식이 더이상 낯선 음식이 아니게 되었다. 사진은 올 가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한국문화주간에서 인니 각계 인사와 함께 비빔밥을 비비고 있는 장면.
▲ 교민이 운영하는 한 한식점이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국음식전(2009년)에서 한국음식 홍보와 직접 시음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식당 이름에 코리아가 빠지다

한식당이 자카르타에 생길 무렵에는 한식당의 이름은 서울의 집, 신라, 코리아가든, 코리아타워, 한국관, 한양가든, 이스타나 코리아 등 주로 한국의 지명을 차용해 한국음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유럽처럼 한인 수가 적고 한식당도 많지 않은 지역에서 지금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최근 자카르타에서는 한식당 이름이 고주몽, 청해수산, 가효, 본가, 수라청, 압구정처럼 더 이상 코리아나 한국을 상징하는 지명을 사용하지 않게 됐다. 한식당이 140여개나 되다 보니 코리아, 한국, 서울 등의 단어를 조합해 사용하는데 한계가 온 것도 있지만, 한국의 유명 음식점이나 드라마 제목 등 고유명사를 차용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자카르타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정보가 늘었고, 한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한식당, 현지화.전문화의 길에 들어서다

더 나아가 코리아나, 한강, 삼원가든, 채선당, 비빔밥, 순두부 등 한인이 아닌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식당도 늘고 있고, 이들 식당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과는 다소 차별화된 한식을 먹을 수 있다. 소수이지만 집에서 한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현지인들도 있다. 한국 슈퍼에서 한국 라면이나 과자를 구입하고 한국 양념의 사용법을 묻는 현지인과 가끔 마주친다. 지난해부터 한국문화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식조리경연대회가 열리고 있고, 인도네시아어로 된 한식요리책도 지속적으로 발간되고 있다. 

과거 한식당의 식단이 생선회, 불고기, 갈비구이, 탕, 짜장면, 돈까스, 오므라이스까지 다양했으나, 최근에는 고주몽과 가효 같은 구이전문점, 청해수산과 김삿갓 같은 회전문식당, 대감집 같이 콩을 주재료로 사용하면서 웰빙을 강조한 식당, 가야성과 아마루 같은 한국식 중국음식 등 한식당의 음식이 전문화되고 있다. 또한 채선당과 본가 같은 한식 프랜차이즈도 진출을 시작했다. 식당이 식단을 전문화시키려면 소비집단이 5만 명 이상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한인 공동체 수의 증가와 함께 현지인 한식애호가의 수가 적정수준 이상이 됐음을 나타내는 현상으로 생각된다.

한식, 아직은 현지인에게 별식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지 현지인에게 한식은 별식이다. 고주몽의 김강 사장은 한인고객은 집에서 늘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에 식당에서는 숯불구이 같이 집에서 먹기 어려운 음식을 선호하지만 현지인들은 고기음식뿐만 아니라 비빔밥에서 잡채까지 골고루 주문한다며 한식 자체가 새롭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예전에 알던 한 미국인은 고기에 쌈을 싸서 먹으면서 ‘재미있다’고 평했고, 어떤 인도네시아인 음식평론가는 자카르타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한식을 ‘새로운 맛’이라고 표현하면서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썼다. 

한식산업의 밑거름이 된 한인들

자카르타 한식당의 특징 중 하나는 외국임에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내고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식무형문화제인 한복진 교수는 “자카르타 한식당의 음식은 한국보다 다소 달고 짜기는 했지만 대체로 맛이 좋다”고 개천절을 앞두고 열린 한국문화주간 행사를 위해 자카르타를 방문해 한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평가했다. 한국에서 자카르타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한식당의 음식이 맛있고 반찬도 많이 나온다고 말하고, 일부는 서울보다 낫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거주 한인은 공식적으로 4~5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들의 대부분이 자카르타와 주변지역에 몰려사는 한식당의 고정고객이다. 한인이 적은 유럽 등지에서 한식당의 고객이 소수의 현지인과 뜨내기 손님인 한국인 관광객이 주류를 이루는 것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초기에 한식당은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한인을 대상으로 안정적으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규모를 키울 수 있었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한국소비자의 기호를 맞추는 과정에서 한식의 맛이나 질도 향상되면서 한식산업이 인도네시아음식, 서양음식, 중식, 일식 등 다른 외식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밥과 김치, 된장과 고추장을 반드시 먹여야 하는 한인이 실제 한식당의 확산과 한식의 보급에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자카르타 중심가에 위치한 한식점 풍경



한식 대중화, 과제는 남아있다

하지만 자카르타에서 한식과 한식당이 본격적인 대중화로 접어들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난제들도 있다. 한식의 맛을 유지하는 일, 위생문제, 서비스의 질, 경영기법, 현지 행정당국의 인허가 문제 등이다. 한식의 맛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한복진 교수는 “음식의 맛은 먹는 사람의 기호에 맞춰야 하고, 재료와 환경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그런 점에서 한인들이 즐겨 찾는 인도네시아 음식점 ‘사떼 또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떼 또망은 외국인이 힘들어하는 향신료를 줄여서 외국인에게 맛있는 인도네시아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과도한 현지화는 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경우 한때 중식당이 유행했으나 어느 순간 퓨전음식이 대세를 이루면서 점차 고객이 끊기고 일식당이나 현지 음식을 파는 음식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식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리법의 표준화와 양념의 소스화가 필요하고, 유통과정에서 한국식품의 품질유지도 필수적이다. 조리법이 표준화되고 스파게티나 일본음식처럼 소스가 다양하게 개발된다면 현지인도 쉽게 우리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되고 비교적 균일한 맛을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유통기간이 지났거나 냉동.냉장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색과 맛이 변한 식재료는 아무리 조리를 잘해도 맛을 내기 어렵다. 

한편 우리가 한식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건강식이라는 점이지만 일부 식당의 음식은 매우 달고 짜고 매울 뿐 아니라 조미료를 과다하게 사용해서 먹은 후 소화가 잘 안 되고 물만 들이키게 된다. 중국음식의 경우 조미료를 너무 많이 써서 식사를 한 뒤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많아 차이니즈 푸드 신드롬(Chinese Food Syndrome)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코리안 푸드 신드롬이라는 말은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한식의 품질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과거에는 과시를 위해 음식을 많이 차렸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반찬의 가지 수를 줄이고 음식의 양도 적절하게 조정하는 대신 주가 되는 음식의 품질을 높인다면 음식쓰레기를 줄이고 고객의 만족도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릇과 음식장식을 보완해 음식 자체를 고급화시킨다면 부가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자카르타에서 한식당을 하는 한인의 일부는 음식을 배운 경험이나 식당 운영 경험이 없는 자영업자들로, 외국에 이주해서 새로운 직업을 찾는 과정에서 식당을 하게 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조리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 음식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고, 식당 운영 노하우가 없어 서비스와 관리가 서투를 수밖에 없다.

한식, 브랜드를 높여라

한국 정부나 경제단체에서 한식당 운영자를 대상으로 새 식단 개발과 조리법 보급, 맛과 위생 관리 방법 및 서비스와 경영 노하우에 대한 교육을 마련해 지속적인 성장을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다. 한식당의 육성은 한식 세계화와 한류 보급의 일환도 되지만 자영업자 육성을 통한 실업문제 해소의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음식은 먹거리라는 고유의 기능과 더불어 문화를 담고 있다. 식당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고, 사람이 모이면 정보와 문화의 교류가 일어난다. 포도주 특히 프랑스 포도주가 비싼 이유는 고급 프랑스 문화라는 이미지를 덧씌워서고, 중요한 사람을 일식당에서 접대하는 이유는 비싸고 고급스럽다는 선입관 때문이다. 따라서 한식은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수단이 되는 동시에 한국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면 한식도 더 힘을 받게 될 것이다. <끝>


[데일리인도네시아 기자 dailyind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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