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 '긴 생머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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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긴 생머리의 미학'

깡통의 수다 3
기사입력 2016.09.29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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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에서 사는 김은숙 작가가 <깡통의 수다>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문득 자신의 삶이 깡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깡통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지 스스로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족자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사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족자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어느 지인이 물었다. ‘더운 나라에서 왜 머리를 그렇게 길게 기르느냐고? 불편하지도 않느냐고?’ 또 잘 아는 어느 사람은 말했다. 나이가 들어 머리를 기르면 30대에는 추녀요, 40대에는 추노로 보인다고……. 그럼 나는 추노로 보이는 게 맞을 것이다. 결국은 안 좋아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29일 머리카락1.jpg▲ 김은숙 작가의 뒷모습 [사진: 김은숙 작가]
 
     많은 사람들이 긴 생머리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머리를 기른다는 생각은 도무지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짧은 머리는 더 상상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그 아픔을 나는 기억한다. 나의 머리는 곱슬머리다. 그런데 예쁜 곱슬머리가 아니라 펑크머리 사람들의 머리처럼 부시시 위로 솟는 머리이다. 짧게 깎으면 머리가 하늘로 치솟아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 영화에 나오는 사자머리가 되기 일쑤고 길게 기르면 ‘록’하는 가수처럼 방 떠서 펄펄 날아다니는 머리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머리를 길러 볼 수가 없었고 어쩌다 머리가 조금 길면 할머니 손에 이끌려 미용실에 가서 남자처럼 머리를 잘렸다. 그러고 나서는 한참을 혼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참 슬픈 현실을 살아오다가 보니 인순이 머리도 핀다는 매직 파마가 생겨서 내 머리도 차분해지기 시작한지 이제 몇 년 되어간다. 그 뒤로 부터는 항상 조금 긴 생머리의 단발머리가 나의 외모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어려서부터 가장 싫어하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용실에 가는 거였다. 물론 어릴 때 미용실에 가면 머리를 짧게 잘린다는 아픈 기억 때문이었지만 사실은 머리를 누군가가 만지면 머릿속이 다 아플 정도로 나의 머리 밑은 예민하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살면서 파마는 23살 때 딱 한번 해보았는데 그마저도 나에게 영 안 어울렸는지 아는 분이 말씀 하시기를 ‘집나갔던 여편네가 다시 찾아온 것 같다’라고 말씀하셔서 그 뒤로는 다시는 파마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1년에 한번은 반듯이 매직 파마를 해야 하는 것인데, 시댁에 가려면 그래도 단정해 보이고 싶어 1년에 한번 거금을 들여서 매직 파마를 하는데, 그것을 하고 나면 내가 몸살이 날 정도로 온몸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만큼 머릿속이 약해서 꼭 묶지도 못하고 엉성하게 묶어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내가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하나의 고행과도 같다. 그런데도 아직 머리를 기르고 있으니 내가 봐도 참 대단하다. 

     처음에는 미용실에 자주 안 가려고 머리를 길렀다. 한번 매직 파마를 하면 머리를 안 빗어도 티가 잘 안 나고 그리고 긴 머리가 무거워 어느 정도 차분하게 머리를 내려주니 돈 안 들고, 시간 안 들고 내게는 긴 머리가 절약 그 자체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나의 긴 머리가 너무 예쁘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어 기분이 좋기도 했다.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이유가 살짝 있긴 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머리를 기르니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조금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작은 행운이 조금이라도 더 머물기를 바라는 바람에서 ‘조금만 더 있다 머리를 자르자 그러면서 만약에 내가 머리를 잘랐는데 집에 작은 슬픔이라도 스치면 어쩌나’ 해서 차일피일 미루어 온 것이 3년이 되어간다. 그러던 중에 큰딸이 어느 날 나에게 말하기를 “엄마! 엄마 머리카락 기부하는 것은 어때” “그래! 엄마가 오빠 대학교만 들어가면 기꺼이 머리카락을 기부할거야” 라고 했다. 마침내 내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야 하는 당위성이 생겼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소아 암 환자들을 위한 머리카락 기부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많이 필요하다는 인터넷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http://www.soaam.or.kr/donation/hair.php 
[출처] 소아암 환자를 위한 ‘모발기부’|작성자 썸머리

     나도 안다. 머리를 기르던 자르던 우리 삶 속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들이 항상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를 위한 간절함으로 나의 불편함과 한번 부딪혀 보는 것도 인생의 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위해 기부하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정말 걱정하는 것은 머지않은 내일에 가족을 위해서나 누구를 위해서 귀찮은 것을 참거나 그조차도 못해주는 날이 올까봐 더 겁이 난다.

     그건 그렇고 이제 내 나이도 50에 가까운데 아무리 건강한 머리카락이라고 해도 기부를 안 받아 주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된다. 그때는 어쩌겠는가? 20대에 잘라놓은 30cm 되는 머리카락을 기부하며 지금의 머리카락은 잘라서 덤으로 기부하면 될 것 같다. 아! 내년 겨울이면 나의 머리카락은 짧은 쇼커트가 되어 있을 것이다. ㅋㅋㅋ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하루가 고맙다. 내가 불편해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단순 발랄한 생각을 하며 오늘도 혼자서 엷은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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