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고] 탈북 청년들의 장밋빛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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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탈북 청년들의 장밋빛 미래

기사입력 2016.10.0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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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jpg▲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9월 12일 오후 광주 광산구 우산동 송광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추석 명절 합동차례 및 나눔잔치'에서 새터민(북한이탈주민)들과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차례를 지내고 있다. 송광종합사회복지관과 광산경찰서 등은 고향에 갈 수 없는 새터민들이 따뜻한 추석을 보낼 수 있도록 2012년부터 5년째 이 행사를 마련해왔다. 2016.9.12
 
글: 김 열 수(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199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해왔던 탈북행렬이 2011년 김정은 등장 이후 잠시 주춤한 적이 있다. 탈북을 막기 위한 철책 설치와 무자비한 총격살해 등 김정은의 반인권적 만행이 잠시 탈북을 막았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잔혹한 인권탄압에도 불구, 올 11월경이면 한국내 탈북민 수가 3만명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탈북 동기나 유형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中ㆍ北 국경지대 주민을 중심으로 먹고살기 위한 ‘생계형 탈북’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에는 엘리트간부를 중심으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이민형 탈북’이 급증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2000년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탈북 계층도 극빈층이 아닌 중산층 이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장ㆍ단기 체류중에 곧바로 현지 한국대사관을 통해 탈북하는 고위층 간부나 자녀가 많아졌다. 

 올해만 해도 러시아와 불가리아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했고 북한의 수학 영재도 국제대회 참가차 방문한 홍콩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태영호 주영공사가 가족과 함께 탈북한 사건도 충격적이었다. 한편 간부는 아니어도 주중 북한식당 종업원, 해외파견 북한노동자의 집단 탈북도 주목된다. 탈북 동기는 먹고살기 위한 것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미래와 자식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한 끝에 탈북을 결행했다고 한다.

 탈북 이후 갑자기 주어진 무한 자유와 북한에서 세뇌받은 것과는 전혀 딴 판인 바깥세상은 탈북민을 놀라게 한다. 그만큼 새롭게 적응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래와 더 넓은 세상에서 보다 큰 꿈을 펼치기 위해 탈북행렬에 동참하는 북한청년들이 많다. 

 탈북민 이서영씨는 1989년 대학교수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북한체제가 기만과 모순투성이임을 깨닫고 2012년 마침내 가족과 함께 탈북했다. 그리고 2014년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또 북한내 만연해있는 ‘뇌물상납’ 부조리에 불만을 갖고 탈북한 아버지를 따라 두만강을 건넌 임철씨도 드라마틱한 반전인생의 대표 주자이다. 2001년 한국에 입국한 그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 로스쿨에 진학, 예비 법조인의 길을 가고 있다. 이밖에도 탈북민 외과 전문의 1호인 고윤송씨, 김일성 종합대 출신의 KBS 기자 박진희씨 등 성공한 탈북 청년은 부지기수다.

 뿐만 아니라 탈북 청소년들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영어 장벽에다 유학비 등 금전적 어려움도 있지만 장학금을 받아가며 세계 유수 명문대에서 韓民族의 우수성을 드높이고 있다.

 올 봄 미국의 명문 사립대중 하나인 컬럼비아 대학에 편입한 두 명의 탈북 청년들이 눈길을 끈다. 양강도 출신의 박연미씨! 그녀는 2007년 탈북해 동국大 경찰행정학과 재학중 세계 청소년들의 꿈의 대학인 컬럼비아 대학 편입에 성공했다. 지금은 영어 인터넷방송 진행자로 활동하며 UN 국제인권회의 등에서 북한 인권참상을 증언하기도 한다. 역시 양강도 출신인 이성민씨도 한국외대 영어 통번역학과 재학중 컬럼비아大로 도미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탈북민 최초로 캐나다 의회에서 인턴을 해 각국 외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북한 꽃제비(북한에서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돌아 다니는 어린이를 지칭하는 은어)가 영국 유학생으로 변신한 사례도 있다. 청진 출신 김성렬씨! 그는 1990년대 김정일의 失政으로 수백만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꽃제비가 됐다. 그러나 19살이던 2004년 한국으로 탈출한 그는 1년여만에 초ㆍ중ㆍ고교 전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지금은 영국 글래스고大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북한에서 해외유학은 출신성분에 의해 결정돼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내 북한인들은 특별전형으로 입학을 할 수 있어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데다 북한내 학력까지 인정받는다. 특히 국립대 학비는 전액을, 사립대도 절반을 지원받으며 글로벌 교육환경이 제공돼 마음만 먹으면 ‘장밋빛 미래’에 도전할 수 있다. 이를 잘 아는 북한 간부들은 모든 갈등을 떨치고 북한을 탈출해 지금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만을 생각하며 한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제2의 고향 한국에서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도전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부디 ‘먼저 온 통일일꾼’ 대열에 합류하는 용기를 내는데 이 말이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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