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 인연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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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인연의 고뇌

깡통의 수다 4
기사입력 2016.10.2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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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에 사는 김은숙 작가가 <깡통의 수다>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문득 자신의 삶이 깡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깡통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지 스스로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족자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4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족자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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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동안 가슴에 돌을 올려놓고 지내다 마침내 ‘엔터 키’를 누르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내려놓았다. 아주 오랫동안 한 단체에 가입해서 최근까지 나름 최선을 다해 보려고 했지만 탈퇴로 매듭을 지었다. 사람은 사회적일 수밖에 없어 아니 사회적이어야 해서 여러 단체라는 울타리 안에 살아간다. 나 또한 사회적인 사람이라 여러 단체에 적을 두고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때로는 인연의 한 모퉁이에서 고뇌를 하기도 한다.

     나는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려는 끈끈한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한번 맺은 물건에도 욕심이 있어 잘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 나이기에 웬만하면 한번 맺은 인연을 내가 끊는 것은 드물다. 그런 내가 이 단체에서 그만 두기로 한 것은 참으로 오랜 시간 심사숙고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단체는 나에게 정말 많은 행복한 시간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어쩌면 주부로서, 엄마로서 꿈을 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마치 중환자실에 꼭 필요한 산소마스크 같은 하나의 기계장치였다.

     그러나 이제 나라는 사람이 가정에 더 충실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사실 요즘 들어 할 일이 너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또 그동안 바빠서 소홀했던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인연에 대한 고뇌를 했고 마침내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모든 인연이 하나의 욕심에서 시작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욕심이라 해도 좋다. 나는 사람이 좋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하고, 인연을 맺고, 살고지고 싶다. 그런 이유에서 이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간 한사람을 일주일 동안 미친 듯이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10년쯤 전이었다. 5년이 넘게 가족처럼 지냈던 한 사람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잃었다. 나는 내가 잘못이라면 무릎을 꿇고 빌어서라도 5년간의 인연의 끈을 이어놓고 싶어 가슴 아프게 찾아 다녔다. 하지만 결국 한번 돌아선 사람은 나를, 나의 가족을 외면하고 돌아봐 주지 않았다. 아쉬운 것은 그 즈음에 내가 하지 않은 소리들이 참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때 패기 넘치는 나를 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 생각에는 나라는 사람은 별로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나를 시기한 사람은 아마도 내가 너무 사람을 좋아하니 일침을 가했을 것이다. 이런 추측도 위험하지만 심증은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남과 남의 사이를 오가며 예쁜 인연들을 끊어내는 사람들이다. 그 순간에 나는 정말 나라는 사람이 참 가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 이제는 훨씬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가장 아팠던 병원생활도 떠오른다. 한 병원에서 실습을 마치고 바로 채용되었다. 어리바리하고 무식하게 일을 좋아하는 나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었다. 병원생활은 그야말로 내게는 신천지와 같았다. 같은 직원들과 처음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를 먹는 경험을 했었고 밤무대의 신비한 닭장도 경험했다. 모든 직원들과 함께 간 남이섬 여행은 내가 일하면서 직원들과 단체 여행간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나름 동화나라의 공주가 된 것처럼 마냥 행복했었다. 내겐 순수함이 있었고 그렇게 꿈 많던 시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병원에서의 생활은 달콤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병원에 데모가 있던 어느 여름날 나의 꿈같은 생활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데모가 시작되는 날 우리 신입직원만 빠지게 되었고 3일 동안 나와 같은 입사동기였던 친구와 병원에서 급조달한 몇 명의 직원이 죽어라 더위에 땀을 흘리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언니들이 왔다고 해서 반가움에 달려갔더니 스파이 취급을 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던 언니조차도 나를 냉대했다. 병원에서 죽어라 일한 것이 스파이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라면 나를 배려해서 데모에서 빼지를 말았어야 했다. 병원이 정상을 회복했을 때 나는 과감히 사표를 냈다. 

     다시 그들을 볼 자신이,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오랫동안 혼자 꺽꺽 울었던 생각이 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남을 이간질 하고 상처를 준 가해자 자신도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사자가 무방비 상태의 사슴의 목을 노리고 물어뜯듯 정신과 육체가 강하지 못하면 나의 목을 세상에 노출시키며 평생 조심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이라고 해도 남을 상처주고 아프게 하는 것보다 상처를 입고 당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는 것은 살아오면서 경험한 나의 진리이다. 앞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나는 말할 수 있다. 한 사회에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사랑을 갈구하며 남에게 상처 주느니 시간을 내어 인연에 대한 고뇌를 한 번 더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다지 슬프지도 않지만 우울한 오늘 나는 인연에 대한 고뇌를 여름장마 비 같은 비 내리는 차장 밖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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