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 '개미의 표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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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개미의 표창장'

깡통의 수다 8
기사입력 2017.01.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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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에서 사는 김은숙 작가가 <깡통의 수다>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문득 자신의 삶이 깡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깡통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지 스스로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족자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사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인도네시아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족자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대사상 김은숙.JPG▲ 김은숙 작가가 지난 4일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상을 수상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데일리인도네시아]
 
   밤 10시를 넘긴 시간 낙수 소리가 똑똑똑 마음을 두들긴다.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밤이슬이 내리는 것인가? 밤이슬이 내리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밤은 모든 것을 감추었다. 밤이 모든 것을 감추었다 해도 어둠 저편의 삶이 감추어진 것은 아니다. 어둠 저편에는 언제나 모든 것이 있어왔다. 별도 저기 몹시 깜깜한 하늘 어디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미같이 늘 고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곤히 잠들고 있을 것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을 생각해 본다. 사실 오늘 자카르타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표창장을 받으러 다녀왔다. 자카르타로 올라가면서 마음이 그저 담담했다. 그런데 돌아오면서는 기분이 환해졌다. 나는 살아오면서 나 스스로를 개미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열심히 일만하는 일개미로 살고 있고 그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미도 표창장이라는 말에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 감동을 받는다는 것을 오늘 깨달은 것이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표창장을 못 받으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도 이렇게 좋은날이 많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사람의 삶을 개미로 표현해서 화가 나는 분들이 있다면 죄송하지만 나는 자주 사람의 삶이 개미의 삶처럼 열심히 살다가 빛도 못보고 세상 밖으로 떠나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꽤 오래도록 해왔다. 개미의 삶을 일상에서 지켜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개미의 삶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세히 더 자세히 지켜보면 그들은 참 열심히 아주 열심히 일한다. 예를 들어 우리 집안에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으면 개미들은 커다란 파티를 벌인다. 

  그 과자 부스러기가 뭐라고 문밖에서부터 벽을 타고 어떻게든 우리 집으로 비집고 들어와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옮겨가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그 노력하는 삶이 애틋하지만 나는 보편적인 사람이라 모기약을 들고 좌악! 뿌려 그들의 삶을 흔적 없이 지워 버린다. 그래놓고는 ‘사람의 삶도 뭐가 다를까 이렇게 가면 그만일 텐데’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은 천재지변에, 인재에 위험이 너무 많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에 비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대사상 단체.JPG▲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상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7.01 04 [사진: 데일리인도네시아]
 
  여하튼 ‘개미가 표창장을 받으러 간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늘 그렇듯이 자카르타로 가는 길이 평탄치 않았다. 새벽에 잠깐 깊은 잠이 들었던 탓에 비행기 시간에 쫓기어 겨우 공항에 도착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발 10분전에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비행기에 오르고 얼마 안 있어 비행기 문을 닫았고 비행기가 출발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카르타에 도착해서 택시를 탔다. 쌩쌩 잘나가던 택시가 정체구간에서 막혀 언제나 그렇듯 30분간 애태운 후에 통과했다. 

  그런데 오늘은 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암바사도르 꼬레아’로 가자고 했고 길 이름도 가르쳐 주었는데 헐 ‘암바사도르 몰'에 다왔다고 내리라고 했다. 대사관 같이 안 생겼다. ‘꺼두따안 버사르 꼬레아’ 라고 말해야 한다고 당황한 나에게 친구가 전화로 조언을 해 주었다. 그래도 잘 모르시던 기사 아저씨 물어물어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셨다.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이렇게 힘들게 와야 하는 이유가 표창장 때문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때 식은 시작되었다. 전년도와 같은 순서에 따라 식이 시작되었다. 다르다면 오케스트라 반주가 애국가를 뒷받침해 주었다는 점이었다. 

   음악 때문인지 여유가 생겨 나보다 더 늦게 오신 점잖은 내 옆 아저씨를 보았다. 떨고 계신 듯 말씀 없이 묵묵히 앞을 보시는 그분은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일 것 같았다. 사람이 참 선해 보이고 젠틀해 보였다.
“늦으셨네요”
“차가 많이 막혔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조태영 대사님의 말씀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기억나는 대로라면 닭의 해에 여러분 가정에 큰 복을 바란다는 말씀과 나라 안팎이 어수선해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열심히 지켜가며 이웃과 잘 지내고 특히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다가가 잘 지내며 화합의 삶을 모색하자는 말씀이셨다.

수원청소년관현악단.JPG▲ 구세군수원청소년브라스밴드가 4일 신년회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데일리인도네시아]
 
   그리고 작년에 없던 그 오케스트라가 축하 연주를 해 주었다. 인도네시아 국가를 연주하기 시작하더니 추억의 영화음악, 그리고 ‘넬라환타지아’까지 나는 그만 감동해 눈물이 울컥했다. 내 옆의 아저씨도 발로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감동 그 차제였다. 돌아오는 길 공항에 앉아서 나는 나의 무담담했던 마음의 숙제를 풀었다. 나라는 개미에게 주어진 진정한 표창창의 의미는 이제껏 살아온 삶, 모든 순간의 과정이 아름다운 표창장이었던 것이다. 

  개미가 벽을 넘고, 물방울의 강을 지나고 위험한 줄을 타고 내려와 마침내 달콤한 과자에 도착한 그 경로가 의미가 있듯이 설사 개미처럼 일순간 죽음에 이른다 해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선한 지인을 만났고, 꽤 괜찮은 친구를 만나 삶을 이야기 했고, 대사님의 말씀 ‘화합하며 살아가자’는 감동의 말씀을 듣고, 거기다 ‘넬라환타지아’를 들으며 돌아가는 이 과정이 표창장의 끝없는 의미이고 행복인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더 개미처럼 살고 싶다. 개미처럼 살면서 주위를 돕고 화합하게 하며 나를 위해서, 또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도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내 삶, 일개미의 삶 보잘 것 없다 해도 살아오는 과정이 나 스스로 만족한 삶이었다면 진정 위대한 삶이라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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