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 ‘오늘도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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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오늘도 꽃이 피었습니다.’

깡통의 수다 10
기사입력 2017.02.2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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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에서 사는 김은숙 작가가 <깡통의 수다>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문득 자신의 삶이 깡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깡통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지 스스로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족자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사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사나따다르마대 인도네시아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족자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27일 족자문화원 회원들1.jpg
 
▲ 족자카르타 문화원 회원들 [사진: 김은숙]
 

     어느 사이 1월도 지나가고 정월 대보름도 지나갔다. 올해 보름은 회색빛 지친 달이 잠깐 얼굴을 보여주고 구름 속으로 달아나 버려 아쉬움이 컸다. 가끔 새해를 보내고 나서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잘살아가고 있는 건지, 오늘도 잘 살았는지? 의문을 던지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다지 명확한 답은 나오질 않는다. 그러면서 또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호텔 아만지오를 아시나요? 우리의 이번 달 모임이 시작된 곳이랍니다. 

     늘 그렇듯이 보통의 주부들의 아침은 바쁘다. 오늘도 우리 회원들은 남편들 출근시키고, 아이들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고 그렇게 아이들 학교에 모여 호텔 아만지오로 출발했다. 회원 중에 한 사람이 “이왕 소풍인데 아만지오도 들렸다 가요?”  그 의견에 동의를 해서 가게 되었다. 그곳은 예전에 우리 아이들과 같은 반이었던 학생의 학부형이 매니저로 있을 때 딱 한번 가서 식사를 하고 오지게도 비싸다는 기억에 잊혔던 곳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은근히 알고 싶어 하는 호텔 중에 하나라고 한다. 말에 의하면 세계 10대 호텔 중 하나에 든다고도 하고 연예인들이 와서 고상하게 쉬다가 가는 곳이라고도 한다. 아니 돈 좀 있는 사람들의 로망의 호텔이라고나 할까?

     우리 문화원* 모임은 정기적으로 한 달에 두 번 모여 서로 배우고, 나누고, 삶을 윤택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2011년에 모이기 시작했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기념으로 모두는 못가고 갈 수 있는 회원 몇 명이 호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호주 여행에 동참을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 컸는지 한 회원이 단체로 ‘힐링’을 하자는 의견을 냈고 오늘 고문님 댁으로 가서 고기를 구워 먹고 오자는 결론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고문님 댁은 마글랑에 있다. 마글랑 길로 가다가 보로부두르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호텔 아만지오는 보로부두루 사원에서 왼쪽 길을 타고 5분정도 올라가면 만나게 된다. 얼핏 보면 깊은 숲속에 자리 잡은 요새 같은 신비한 호텔이다.

     검문이 까다롭다는 것은 보안이 잘 된다는 것이겠지만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고 차 한 잔 하며 깔깔대고 웃기가 조심스러운 호텔이라 마음이 불편했다. 거기다 호텔을 마음대로 둘러 볼 수도 없는 곳이어서 허락을 얻어 안내자와 함께 아주 조금 둘러보고 하루 밤에 1,400달러짜리 방을 구경하고 고문님 댁으로 갔다. 방이 왜 그리 비싸냐고? 아만지오 호텔은 기본이 하룻밤에 700달러부터 시작이다. 그 곳에서 다들 커피를 마셨고 나는 가격표도 보지도 않고 제일 싼 거를 고른다고 고른 게 야자수(kelapa muda)였다. 그런데 그게 한 잔에 13만루피아였다. 혼자 비싼 거 마셨다고 회원들의 예쁜 눈총을 받으며 커피보다 더 비싼 코코넛 한잔을 마시고 고문님 댁에 가서 황실 그릇세트로 잘 차려진 음식을 진하게 먹고 ‘끄떱’(Ketep/머라삐 화산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갔다. 하지만 오늘은 올라가서 구름 때문에 머라삐 화산의 치맛자락만큼의 전경만 바라보고 돌아왔다.

16일 족자 풍경.jpg▲ 족자카르타 풍경 [사진: 김은숙]
 
     앞에서 장황하게 나의 하루를 묘사한 것은 바로 내 고통스러웠던 젊은 날의 징크스를 극복하고 내가 와 있는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꼬물꼬물 아이들이 일어나 도시락을 챙겨 집을 출발하고, 남편은 회사로 간다. 나는 대강의 일을 마치고 볼일을 본다. 때로는 지인의 초대를 받아서 라마야나(빠람바난 사원에서 하는 공연)를 구경을 하고, 때로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그리고 가장 보편적으로 내가 하는 일은 좋은 영화를 혼자 보러 가는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달에는 멀리  있는 친구가 ‘라라 랜드’가 좋다고 알려주어서 밤 8시 혼자 가서 영화를 보았다. 아이들과 남편의 밥을 차려준 뒤였다. 매일 즐겁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영화를 볼 수 있고, 때로는 나의 일을 하면서 달려가고 있는 이런 삶이 징크스를 극복한 뒤에 내게 주어진 너무 소중한 선물이다. 한마디로 꽃이 함빡 핀 것 같다.

     지금은 2월, 음력 1월 1일이 지나갔다. 음력 1월 1일이 되기 몇 일전부터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나는 1월 1일을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에게 음력설은 악몽의 순간들이 엄습해 오는 날이기 때문에 해마다 음력설이 될 즈음에는 몸도 마음도 긴장을 해 몸살을 앓고 지나간다. 대강의 이야기는 이렇다. 

     늘 밤 근무와 휴일 근무를 도맡아 하던 내가 그해에도 음력 1월 1일, 설날에 병원 일을 자처했다. 그리고 그날 언제나 발동한 오지랖 때문에 환자를 데려 올 수 없다는 혼미해 보이는 아저씨를 따라가 연탄가스 맡은 아주머니를 119 구급차에 태워 구급차 대원 아저씨와 1시간을 심폐소생술을 하며 산소탱크가 있는 큰 병원을 찾아 다녀야 했었다. 그녀는 죽었고 그녀의 죽음이 억울했는지 그해에 나는 정말 많은 죽음을 보아야 했다. 밤 근무를 자처 했다고 해도 다른 간호사가 밤 근무를 할 때는 조용히 지나가는데 나만 밤 근무를 하면 죽음이 병원으로 걸어 들어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환자의 아들에서부터 70대의 할아버지의 죽음까지 겪은 나는 삶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아니 삶에 대한 의지를 잃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때는 내 삶이 고단했었고 거기에다 자주 죽음에 대해 접하다 보니 사람의 삶이 파리 목숨보다 더 보잘 것 없이 쉬이 간다고 생각됐다. 그래서 삶에 대해 아등바등 하게 되고 살기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즈음에 인도네시아 행이 결정나고 나는 인도네시아로 와서 살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잡고 있었던 것은 그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징크스를 직시하며 나아가고 있고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힘겨웠던 젊은 시절의 삶도 옛 추억이 되었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아팠다. 그리고 지금은 매 순간순간 삶이 너무 아깝고 매 순간순간 너무 소중하다. 아! 이대로 머물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하다.

     사람들의 삶이 2017년 1월을 기점으로 또 시작되었다. 정치도, 종교도, 인종도, 모두가 문제가 되어 온 세상이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고통의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잡고 하루를 사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르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렇게 하루를 살다보면 징크스도, 힘든 고난의 삶도 어느 날 삶의 뒤 안에서 쳐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오늘처럼 아름다운 삶의 꽃이 필 수도 있다. ‘삶’ 우리가 잡고 있는 고통의 시간에 비례해 행복을 그 갑절만큼 느끼는 날이 올수도 있겠지만. 믿기는 해야 하는데 믿는 것 자체가 힘든 게 요즘의 현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행복한 순간에 힐링하며 마시게 된 한 잔에 13만 루피아나 하는 야자수는 내게 과했다.”  보로부드루 사원에서도 코코넛을 통째로 모양세도 좋게 내주며 1만 루피아면  뒤집어쓰고도 남는데, 나는 아직 고상하고는 거리가 먼가보다.  

     우리 사람의 목숨줄은 한번 끊어지면 붙일 수 없는데 정말 잘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 점에서 오늘도 내 삶엔 꽃이 피었습니다.

16일 김은숙.jpg▲ 김은숙 작가가 야자수(kelapa mudah) 잔을 들고 웃고 있다. [사진: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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