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시장 가면
황보출
새벽시장 가면 장꾼들이 꽉 찼다.
시골 아주머니들도 많고
뜨끈한 김치국밥 파는 분들도 많다.
나도 시장에 채소 팔러 온
사람이다.
검은 털신 신고
검은 비닐봉지도 같이 신었다.
새벽바람 불어 춥다.
나무 주워서 불 때고 발을 쬐는데
양말이 불에 타는 줄도 몰랐다.
국수도 있고
미역국도 있지만
1500원짜리 밥도 못 먹고
집에 돌아오면
허리가 휘청였다.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
목에 걸리지도 않고 잘 넘어갔다.
그 밥으로 한평생 살았다.
▲ 전통 문양이 그려진 바틱 치마를 입은 할머니가 이른 아침 중부자바 즈빠라(Jepara) 어시장에서 생선을 고른 뒤 봉지밥(Nasi bungkus)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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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너질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대낮에 멱살을 잡힌 채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가다가, 그게 끝났다 싶으면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 나의 아구통이 날아가는 경우가 있다.
슬픔이 한꺼번에 오듯이 절망도 한꺼번에 와서 내 몸 속에서 폭발한다.
그래도 밥 먹자.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그대에게도 삶은 ‘한평생’이다.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