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 사람들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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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사람들의 길

깡통의 수다 11
기사입력 2017.04.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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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에서 사는 김은숙 작가가 <깡통의 수다>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문득 자신의 삶이 깡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깡통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지 스스로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족자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사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인도네시아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족자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 있다. 친구이고, 이웃이고 가족이라고 해도 설사 부모라고 해도 나 아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때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벌써 3월의 끝 주에 와있다. 3월 3일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JIKS)가 초등 신입생 입학식을 했다는 뉴스를 데일리인도네시아에서 읽었다. 학부형들이나 선생님들, 아이들까지 참 설레고 가슴 벅찬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3월’ 은 한국의 모든 학교들이 활기차게 개학을 하는 달이며 봄이 오는 달이다. 그러기에 학교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그리운 곳인데 요즘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하고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은 학교라는 곳을 생각해 보면 얼룩지고 상처투성이의 장소가 되어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그 이유는 모든 학교들이 활기찬 개학을 알리는 동시에 인터넷에 올라오는 뉴스는 학교 폭력에 관한 뉴스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고,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고, 학생들이 학생들을 폭행하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아마도 새 학기를 시작하니 만큼 주위를 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태들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너무 가슴 아프게 와 닿는 것 같다.

     2016년 8월 우리 아이들은 개학을 했다. 아이들이 국제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8월에 개학을 한다. 개학하는 날 나는 가슴으로 울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왜냐하면 2016년 6월 말 방학을 맞을 때 나는 학교에서 커다란 소리로 교장에게 항의를 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교와 인연을 맺은 지 12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 12년의 세월 학교 발전을 위해 소리 없이 일했다. 학교가 둘로 나누어질 때도 참았고, 교사들이 원어민 교사들과 현지인 교사들 그리고 다른 직원들까지 3파전 4파전이 일어나도 참았다. 모든 학교행사에 먼저 기부를 했고 학부형 대표들로 구성해서 하는 행사의 깜짝쇼도 빠지지 않았다. 모두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몸이 힘들어도 참석했다. 심지어 한국에 일이 있어 갔다 온 다음날부터 춤 연습을 해서 4일 만에 무대에 오르기 위해 그야말로 혼자 열심히 연습을 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4년째 학부형 회장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들과 직결되지 않는 일이면 이를 악물고 참는다. 내가 힘든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단 한 가지 자식들과 직결되면 세상의 어떤 일보다 힘들고 아프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그럴 것이다. 그 예로 3년 전 큰 아들이 한 선생에게 엄청난 미움을 받았을 때 나는 정말 가슴을 치며 참았다. 자식을 가진 아픔이라고 생각해서 하루하루 살어음판을 걷듯이 조심하며 보냈다. 이유는 한가지이었다. 아이가 축구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5번을 축구를 했었다. UNY(인도네시아 족자 국립 대학교) 대학교에 부설된 축구부에서 2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개인레슨 2번 그리고 저녁에는 ‘풋살’이라는 실내에서 하는 축구까지 하며 학교 공부를 뒤로 했다. 그런데 담임교사가 숙제를 안 해왔다고 축구를 가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그날 중요한 축구 시험이 있어서 가야 한다고 했고 급기야 가고 말았다. 아이들 아빠에게 메일이 오고 학교로 와라 어쩌라 해서 갔었다.

     학교에 찾아가서 두 여교사들과 상담을 했다. 우리 아이가 말도 없이 수업시간에 나갔다고 했다. 그것은 선생님에게 도전을 한 것이라고 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를 이해해 달라고 했다. 아이가 꿈이 없는 상태에서 꿈을 가지게 되었고 그 꿈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다만 아이가 하나의 신장만을 가지고 있어 축구하기가 벅차 숙제를 못한 것 같은데 선생님이 이해해 주시면 다음에 숙제를 하게 하겠다고 사정을 했다. 그랬더니 나보고 당장 나가라고 손짓을 하며 문을 가르쳤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미래는 공부를 안 하니 이미 대학교에 들어가기는 늦었고 앞으로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져 인생을 실패할 거라고 하며 두 여교사가 악담을 늘어놓았다. 나오고 싶었다. 울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큰아이가 축구를 위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지 2년 만에 터진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선생을 어떻게 달래고 나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차안에서 지인에게 전화하며 한없이 울었던 생각이 난다. 내가 잘못들었을 거라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아무리 영어를 못하는 학부형이라도 'Get out!'은 알아먹는다. 그 다음날부터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교사하고 아직도 관계가 안 좋으냐”고. 아이는 “아니, 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이다. 아이에게는 그 문제로 큰 일 없이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 선생은 큰 아이뿐만 아니라 작은 아이에게까지 유독 잘했다. 학교에 있는 동안 나에게 심하게 한 게 걸려서였는지 이후 학교를 힘없이 그만두게 될 때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큰 까탈을 부리지 않았다. 다만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학교가 썩었으니 하루라도 빨리 좋은 학교로 옮기라고 직언을 한 게 가슴 아픈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모든 아픔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한 행동과 아이들에게 한 행동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화를 낸 것은 어른대 어른이었고 아이에게는 그 이후에 커다란 상처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교사에 대한 일을 떠벌리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아이가 이제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6월은 달랐다. 나의 꿈이고 소망인 딸이 밤에 울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들은 적 없이 알아서 공부를 하는 아이었다. 그런데 6월 학기말 행사에 다른 퍼포먼스가 많아 자기반 퍼포먼스를 못한다고 했을 때 선생님은 우리 아이에게 '쓸모없는 아이'라고 해서 나의 가슴을 파고들며 “엄마 정말 나 쓸모없는 아이야?” 하고 물어보며 울었을 때 나는 그 다음날 학교로 달려가 교장에게 어디서 그렇게 이상한 교사를 데려와서 교사라는 지위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냐고 항의했다. 그리고 당장 학교를 옮기겠다고 했다. 친구에게 전화해 자카르타 학교를 알아보았고 ‘살라띠가’ 라는 우리 집에서 2시간 가면 있는 학교에 가서 접수도 했다. 말이 그렇지 외국에서 학교를 옮기는 게 쉽지가 않다. 자카르타라면 몰라도 족자라는 시골 학교에서 학교를 옮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그런 선생이 있는 학교에 나는 다시 시작된 지난해 6월 학기에 아이들을 보내며 속으로 울고 또 울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1등은 중요하다. 특히 공부 1등은 참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이 아이들의 공부만 중요시하고 다른 꿈을 꾸는 아이들의 생각은 짓밟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학교 행사에서 자기가 맡은 퍼포먼스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쓸모없는 아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모든 아이들은 쓸모없는 아이들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에겐 그 사람들에게 정해진 사랑하는 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도한 주장이나 과도한 권유는 어쩌면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과도한 주장으로 인한 정치, 종교와 교육이 과연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나는 개인적으로 묻고 싶고 알고 싶다. 아니 나는 감히 말하는데 내 자식에게까지 부모라는 이유로 꿈과 공부를 내 마음대로 강요한다면 언젠가는 독이 될 수 있다고 내 스스로 결론을 내려 본다.

     참고로 취재한 족자의 스타할아버지를 소개한다. 그분은 다음달 4월이면 64살이 되시는 수쁘리얀또(Supriyanto)혹은 쁘리(Pri) 라고 하는데 9년 전에 건강을 위해 시작한 롤라 스케이트를 타고 2016년 8월 독립기념일에 맞추어 족자에서 자카르타까지 조꼬위 대통령을 만나러 가서 화제가 된 분이다. 위험했지만 그분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회상하셨다. 사는 동안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우리에게 가슴 설레게 빠질 일이 다가올지 모른다. 다만 그것이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다. 부모는, 교사는,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꿈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지켜 봐 줄 수는 없는지 묻고 싶다. 세상이 참 답답하다. 세상이 서로 다른 개인을 인정하지 않아 아프다.

롤러스케이트 타는 할아버지.jpg▲ 족자카르타 유명인사인 롤러스케이트 타는 할아버지와 김은숙 작가 [사진: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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