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이성수]그리운 명륜여인숙-오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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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그리운 명륜여인숙-오민석

시 읽어주는 남자(20)
기사입력 2017.04.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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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명륜여인숙
                   
                            오민석

잠 안 오는 밤 누워 명륜여인숙을 생각한다 만취의 20대에 당신과 함께 몸을 누이던 곳 플라타너스 이파리 뚝뚝 떨어지는 거리를 겁도 없이 지나 명륜여인숙에 들 때 나는 삭풍의 길을 가고 있음을 몰랐네 사랑도 한때는 욕이었음을 그래서 침을 뱉으며 쉬발,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말했었지 문학이 지고 철학도 잠든 한밤중 명륜여인숙 30촉 흐린 별빛 아래에서 우린 무엇이 되어도 좋았네 루카치와 헤겔과 김종삼이 나란히 잠든 명륜여인숙 혈관 속으로 알코올이 밤새 유랑할 때 뒤척이는 파도 위로 느닷없이 한파가 몰려오곤 했지 새벽 가로등 눈발에 묻혀갈 때 여인숙을 나오면 한 세상을 접은 듯 유숙의 종소리 멀리서 흩어지고 집 아닌 집을 찾아 우리는 다시 떠났지 푸른 정거장에 지금도 함께 서 있는 당신, 그리고 우리 젊은 날의, 그리운 명륜여인숙  

6일 롬복 여인.jpg▲ 롬복 섬의 부속섬인 길리 뜨리왕안 섬에서 연두색 질밥을 쓰고 바틱 치마를 입은 아주머니가 나무울타리 사이로 걸어간다. 파아란 하늘이 길 끝에 보인다. [사진: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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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더더욱 아니겠지만 여인숙에서도 꽃은 핀다.

사랑은 남루하다. 청춘의 사랑은 거지의 소매 끝 실밥 같다. 너덜거리는 세상은 언제나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움은, 아련함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스라한 격정의 추억은 남루하다 할지라도 눈물겨운 것이다.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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