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우수상/학생부] 까까 줌 이야기. 친구이자 소중한 우리 식구 / 조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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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학생부] 까까 줌 이야기. 친구이자 소중한 우리 식구 / 조승희

기사입력 2011.10.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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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까까 줌 이야기

친구이자 소중한 우리 식구



GANDI 10학년 조 승 희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방에 가서 가방을 쌉니다.

가방을 쌀 동안 그녀는 밥상을 차립니다.

매일 아침 나는 책가방을 들고 등교합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집에 남아있습니다.

깔끔하게 빨래를 하고 집을 정리 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여기서 소개한 ‘그녀’는 다름 아닌 우리 집 옛 도우미 아줌마 입니다.

아줌마라고 부르기엔 너무 어린 나이에 우리 집에 들어와 같이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에서는 식모 문화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더운 나라고 집 청소를 하긴 쉽지 않기에 여기 사는 대부분 한인 주민들이나 인니 주민들 모두 도우미 아줌마를 두고 계십니다.

우리 집 도우미 아줌마였던 ‘까까 줌’은 제가 태어나고 3년 뒤 우리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던 터라 부모님은 까까 줌을 고용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렇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까까 줌을 보고 그 날부터 우리 집에는 식구가 한 명이 더 늘었습니다. 다른 도우미들과 달리 너무 어려서 까까 줌도 무지 힘들어 했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야 된다는 부담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처음 낯선 사람들과 생활을 해야 된다는 건 저라도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까까 줌 은 그런 상황에서도 울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욱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제가 막 글자를 배우기 시작할 때 한국어에 까까 줌이 관심을 보이자 어머니께선 까까줌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덕분에 저와 같이 공부를 하게 되었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공부 역시 열심히 했으며 어느새 한국어 글쓰기, 읽기와 대화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까까 줌과 같이 생활 한 것도 어느덧 7년이 지났습니다. 언니처럼 절 보살펴주고 아껴줬던 까까 줌이 스무 살이 되던 날 르바란 때문에 휴가를 가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버스도 꽉 차서 자리가 없었기에 실망한 까까 줌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죽어 있는 까까 줌을 보자 아버지는 데려다 주시겠다면서 언니, 엄마, 동생과 우리 여섯이서 까까 줌 집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처음 가본 길이라 길도 찾지 못하고 많이 당황했지만, 오랜 시간 끝에 구불구불한 시골길 사이에 있는 까까 줌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까까 줌의 가족은 우리가 찾아온 게 뜻밖이었지만 아무런 내색 없이 반겨주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끄뚜빳’ 도 먹어보고 인니 과자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2주 뒤 르바란 휴가가 끝나고 까까 줌이 돌아오자 우리들은 들뜬 마음으로 반겨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또다시 르바란이 되자, 이번 해 역시 까까 줌도 르바란 휴가를 갔다 왔습니다. 작년처럼 까까 줌을 기다리며 2주를 보냈지만 까까 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봤지만 까까 줌은 전화도 받는 둥 마는 둥 죄송하다고 다음 주에 돌아간다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다음주가 되고 까까 줌은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아무 짐 없이 와서 당황했지만 사정이 있으리라 믿고 아무 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다음날 까까 줌이 다시 온 이유와 일주일 늦게 온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어느덧 까까 줌 나이도 스물하나, 이곳 나이로는 시집 갈 나이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열 한 살 이었습니다. 아직 너무나 어려 보이는데 왜 결혼을 해야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까까 줌이 우리 집 일을 그만둔 건 결혼이 진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충격을 먹을까 봐 어머니는 까까 줌이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집 일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까까 줌은 알고 보니 오래 전부터 병에 시달린 것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귀신이 들린 것’이라고 했지만 간질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8년 동안 일을 했지만 한번도 간질을 일으킨 것을 본적 이 없던 터라 이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우리 집에서 일한 동안에 간질을 2번 일으켰으나 그때마다 제가 없어서 어머니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르바란 휴가 때 간질을 크게 일으키자 까까 줌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까까 줌은 우리 집에서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팔 년 동안 일해왔던 까까 줌. 너무나도 정이 들어 우리 가족 식구처럼 아꼈습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방에 가서 가방을 쌌습니다..

가방을 쌀 동안 그녀는 밥상을 차렸습니다.

매일 아침 나는 책가방을 들고 등교 합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집에 남아있습니다.

깔끔하게 빨래를 하고 집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녀’는 까까 줌이 더 이상 아닙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선 까까 줌 은 단 한번도 우리 집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수상 소감>   
                                                                       
이 메일로 받은 제 수상 소식은 너무나도 뜻밖이었습니다.  아직 글짓기도 서툴고 논술과외도 받아 본적이 없지만,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터라 이 공모전에 참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글이겠지만 학생부 우수상을 주신 심사원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신 한*인니 문화 연구원에도 또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밖에도 고맙다고 표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중에 너무나도 고마운 우리 집 도우미 아줌마!

인도네시아에 살아온 지도 어느덧 십오 년, 인도네시아도 저에겐 더 이상 외국 같지 않은 나라입니다. 까까 줌과 그 뒤에 우리 집에 들어온 까까 얌을 통해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젠 누군가가 나에게 인도네시아에 대하여 물으면 누구보다 당당하게 나의 고향이자 제2의 조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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