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이성수] 오래된 기도/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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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오래된 기도/ 이문재

시 읽어주는 남자(34)
기사입력 2017.07.2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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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28일 시.jpg▲ 동부자와 마두라 섬(Madura)의 한 모스크에서 하얀 뺏지를 쓴 무슬림 소년이 기도하고 있다. [사진: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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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대단한 일인가. 그 동안 보지 않았던 것을 보고, 그 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빨리빨리 달려가는 세상에서 혼자만이라도 천천히 가는 걸음을 떼는 것이 기도이다.

혼자 살겠다고 바둥대다가, 그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깨닫고 그대와 나란히 저물녘 해를 바라보는 것도 기도이고,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상처뿐일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해 지는 곳에 발라주는 것도 기도이다.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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