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창자가 끊어져도 운다
장인수
중년의 사내와 처녀 비구니가 눈이 맞아 숨어든 정선군 임계면 산속 통나무집을 찾아가는 비포장도로에서 내장이 찢겨 죽은 새를 보았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슬픈 노래를 부르다가 하늘을 파랗게 멍들게 한 죄(罪),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시뻘건 노을보다 더 질척한 어스름의 색깔을 흡입한 죄(罪), 구름을 찢고 등고선 밖으로 날아가고자 한 죄(罪)가 죽은 새의 터진 내장에서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주)사내는 ‘봄날은 간다’를, 비구니는 ‘동백아가씨’를 잘 불렀다.
▲ 자카르타 북쪽 다도해 지역인 뿔라우 스리부(Pulau Seribu)의 한 돌섬에 앉은 새 [사진: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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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게다가 중년의 사내와 처녀인 더군다나 처녀인 비구니가
어쩌다 사랑이었을까?
한 사내는 사회의 규율을 어기고 한 처녀는 몸담고 있는 종교의 계명을 어기고 떠났으니
깊은 골 어느 바위인들 물기 젖은 발자국이라도 찍을 수 있었을까.
살다보면 사랑도 죄일 것이나
죄가 아닐 것 같은 죄 중에 사랑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얼마나 울었으면 죽음이 되었을까.
얼마나 울었으면 내장까지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것일까.
어쩌다 사랑이었을까?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