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성철칼럼]"인니 2055년 세계4위 경제대국 될까?”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신성철칼럼]"인니 2055년 세계4위 경제대국 될까?”

기사입력 2017.08.11 18: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자카르타.jpg▲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자카르타 거리 (데일리인도네시아 자료사진)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저녁 8시 빌딩숲 사이 한 쇼핑몰 내 헬스클럽 안은 한낮과 같다. 20여 대의 러닝머신과 고정자전거엔 빈자리가 거의 없다. 젊은이들이 거친 숨소리를 내쉬고 구슬땀을 흘리며 몸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영어학원에서는 청소년들이 영어공부 삼매경에 빠져있다. 나들이 나온 30대 부부는 어린 자녀들과 영어로 대화한다. 최근 자카르타의 모습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980년대 말 수카르노하타국제공항에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는 여객기에서 내려다 본 자카르타의 야경은 어두침침했다. 단층주택의 창밖으로 새어 나온 희미한 백열등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꼬마전구 같이 깜빡거렸다. 자카르타 시내 한복판인 호텔인도네시아(HI) 주변조차도 해가 지면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는 어두운 거리로 변했다. 이 호텔 뒤편에 있는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안쫄 공원의 바닷가로 맥주 한잔 마시러 가는 데 15분이면 충분할 만큼 저녁시간에는 차량통행이 줄어 한산했다. 대부분의 자카르타 식당들은 낮과 저녁 시간에 각각 2~3시간 정도 영업을 했다. 마치 침체된 사회주의국가와 같이 보였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시동을 걸 당시인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직후 우리나라의 봉제, 신발과 전자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대거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면서 현지 경제도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수출 강세에 힘입어 연평균 6~7%의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수출증가율이 1995년 26.6%에서 1996년 6.4%로 크게 둔화되었는데, 이는 세계 경제 둔화 등 경기적인 요인 이외에도 중국과 베트남 등 저가 노동집약적 제품을 수출하는 경쟁국들의 부상에 따른 국제경쟁력의 상실과 같은 구조적인 요인 때문이다.

‘신질서’(New Order) 체제라는 이름으로 32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 통치한 수하르토 대통령이 1997년 금융ㆍ외환(IMF 경제위기) 위기의 쓰나미를 맞은 후, 이듬해인 1998년 5월 21일 민주화 바람에 밀려 하야했다. IMF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신질서 체제가 무너지고 개혁시대(Reformasi)를 맞은 인도네시아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총체적인 대혼돈에 빠졌다. 수하르토가 실각한 이후 집권한 BJ 하비비, 압두라만 와힛(일명 구스두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정권 등 과도기간인 6년여 동안 3명의 대통령이 집권하는 등 혼돈에 빠졌다. 이후 인도네시아 국민은 2004년 대통령 직접선거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을 선택했다. 인도네시아는 유도요노 집권기에 중국의 경제성장에 편승해 원자재 수출이 급증하고, 5~6%대 경제성장을 구가하면서 G20국가(주요 20개국)로 발돋움했다. 

1997년 IMF 구제금융체제와 1998년 민주화 운동으로 촉발된 수하르토 정권의 붕괴는 1945년 독립을 선언한 신생국인 인도네시아공화국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이후 개혁시대를 맞아 어울리지 않을 법한 ‘민주주의와 이슬람의 양립’이라는 정체성 확립에 몸살을 앓았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온건ㆍ중도ㆍ강경 이슬람 등 다양한 모습이 드러났다. 수하르토 정권기에 이슬람에 대한 견제와 회유로 겉으로 들어나지 않았던 원리주의 이슬람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슬람의 정치세력화가 진행됐고 다양한 성향의 이슬람들은 각기 색깔을 갖는 정당을 창당하면서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이 당시 가장 두드러진 사회변화 가운데 하나는 복장이다. 수하르토 정권기엔 흔치 않았던 여성들의 질밥(히잡) 착용이 새로운 트랜드로 나타났다. 심지어 눈만 내놓고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은 여성도 가끔 눈에 띈다.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중산층이 두터워졌고 서구화의 물결도 거세게 밀려왔다. 자라(Zara)와 H&M 등 글로벌 패션브랜드들이 현지 시장에 확산되고, 세계 각지의 음식이 소개되면서 자카르타 거리는 여는 국제도시와 구별이 힘들 정도로 변모했다.

그동안 잠재력만을 얘기해오던 인도네시아가 이제는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국적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인도네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오는 2030년 독일과 영국 GDP 규모를 넘어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더 나아가 2055년이 되면 인도네시아가 세계 4위 경제대국에 오를 것이라고 ‘유엔미래보고서’가 예측했다. 2055년엔 중국에 이어 인도, 미국 다음으로 인도네시아가 경제대국이 된다는 전망이다.

다소 장밋빛 같은 전망에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유명한 컨설팅회사인 마크플러스(MarkPlus)의 헤르마완 까르따자야 창업자 겸 회장의 미래 인도네시아 경영이론인 ‘인도네시아 와우’(Indonesia Wow)를 소개하겠다.

독립한 지 72년된 인도네시아는 성장기의 청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 세계 4위의 인구,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인 위치 등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잠룡(潛龍)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잠룡이 아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생각을 공유하는 '젊은층', 시장을 공유하는 '여성들' 그리고 감정을 공유하며 미래 민주사회의 시민이 될 '네티즌'의 빠른 확대와 성장은 미래 인도네시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종교적 주류인 이슬람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종교와 많은 종족과 인종이 한 데 어우러진 진정한 다문화국가인 인도네시아는 다양성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강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래의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할랄(Halal) 경제의 중심이 되고, 인도네시아의 화교 경제력은 경제대국인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국가와 교류하면서 인도네시아를 세계 4대 경제대국으로 견인하는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낙관한다. (끝)

<저작권자ⓒ데일리인도네시아 & dailyindonesi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