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사랑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 코모도 섬으로 가는 배에서 바라본 달 [사진: 김태호]
-----------------------------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눈을 감아도 그녀의 얼굴만 보여서
눈꺼풀 안쪽에 누가 언제 그녀의 사진을 갖다 붙여놨나 싶었을 때가 있었다.
한 아름 느티나무며 더운 여름날 오후의 비릿한 담벼락까지 담긴 사진을 보며
참 오랫동안 가슴을 짓이기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하늘에 달은 한 달에 한 번 윙크라도 하지.
나는 열 두 달이 넘도록 말 한 마디 못했다.
그래도
저 달은 내 마음 알까?
달이 지나는 길 앞에 쪼르려 앉아 묻고 또 물었다.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