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선 경매 (이찌 따르미지)
아름다운 인도네시아 군도의 풍경, 웃음과 분노, 축제와 노동이 교차하는 인도네시아 사람의 일상, 때로는 기품을 더하고 때로는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전통 복장 끄바야를 입은 여인들, 인도네시아 신화 속 주인공들, 이슬람 기독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인도네시아를 묘사한 그림들.
인도네시아 대통령궁 소장 미술품을 소개하는 전시회 ‘모국의 노래(Senandung Ibu Pertiwi)’가 이달 1일 개막해 오는 30일까지 한 달 간 자카르타 감비르역 인근에 위치한 국립미술관(Galeri Nasional Indonesia 또는 National Gallery)에서 열린다.
아시낀 하산 등 4명의 큐레이터들은 올해 2회째를 맞은 대통령궁 소장 작품전의 주제를 ‘모국의 노래’로 정하고 여기에 맞춰 48점을 선정했다.
앞서 지난해 8월에 열렸던 대통령궁 소장 작품전은 ‘독립투쟁의 상처’이라는 주제에 맞춰 독립영웅의 초상화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한 일상 등을 그린 작품 28점이 전시됐고 35,500명이 관람해 문화예술행사로서는 높은 관객동원력을 보였다.
수까르노 대통령은 스스로가 그림을 좋아해서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재능 있는 화가들을 육성했고 해외 예술가들과도 교류했다. 또 문화를 국가가 보호하고 지원해 육성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새로운 형태의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해외 요소의 차용도 필요하다는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다.
전시실 입구에 걸린 압둘라 수리오수브로또(Abdullah Suriosubroto)의 <머라삐 화산 주변 풍경>은 1930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인도네시아 풍경화의 교본이 된 작품이다. 전시장의 문화해설사는 압둘라 이후 인도네시아 화가들은 풍경화를 그릴 때 산과 나무, 논 등 3요소를 꼭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 머라삐 화산 주변 풍경 (압둘라 수리오수브리또)
인도네시아 현대화의 시조인 라덴 살레(Raden saleh)의 <물 먹는 호랑이>는 세부적인 묘사가 압도적이고, 그의 영향을 받은 후대 화가 수조노(S. soejone Ds.)의 <논의 가장자리 길>은 줄지어선 티크나무 가로수길이 인상적이다.
유럽인과 중국계 화가들이 그린 작품 속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발리나 자카르타 풍경이 그들의 고유한 색이나 선으로 재구성되면서 마치 유럽이나 중국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유럽의 성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발리의 사원인 <언덕 위의 사원>의 캐럴 로딕 다이크(Carel lodewik Dake), 과감하게 색을 생략해 소의 움직임을 강조한 <자바 논의 써레질>의 로무알도 로케틀리(Romualdo Locateli), 강렬한 색 대비와 단순화시킨 선이 인상적인 <어부 가족>의 레나토 크리스띠아노(Renato Cristiano), 색의 조화가 부드러운 <발리 논에서 일하기>의 루돌프 버넷(Rudolf Bonnet), 식민시대의 어두운 분위기가 드러나는 <닭장사>의 리에 물더(Ries Mulder), 발리무희들을 밝은 노란색으로 표현한 <라장댄스>의 테오 메이에르(Theo Meier) 등은 유럽인 화가들로 인도네시아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인도네시아인 화가를 가르쳤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리만퐁(Lee Man Fong)은 <사떼장수>를 중국화풍으로 그렸다.
▲ 사떼 장수 (리만퐁)
민중화의 대가인 잇지 따르미지(Itji Tarmizi)의 ,생선 경매>는 어두운 피부와 상의를 입지 않는 근육질의 어부와 귀금속으로 치장한 상인을 대비시켜 사회적 불평등을 묘사했다. 문화해설사는 “이 그림은 1963년 작품인데, 지금도 빈부격차와 경제계층 간 갈등은 해소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다 부구스 마데 위자(Ida bagus Made Widja)의 <수까르노를 환영하는 발리인들>에는 수까르노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과 발리인들의 환영행사 그리고 논일을 하는 모습 등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끄바야 Kebaya 시리즈는 다양한 계층과 종족의 여자들이 끄바야를 입은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모아놓았다.
끄바야는 자바 전통복장에서 인도네시아 대표의상으로 진화한 여성 옷이다. 뜨루부스 수다르소노(Trubus Sudarsono)의 <족자 여인>, 헨드라 구나완의 <과일 파는 여인>, 꼬스난의 <농부 가족>, 둘라(Dullah)의 <아쩨 소녀>, 헨끄 응안뚱(Henk Nhantung)의 <또라자 소녀> 등 다양한 종족의 여성들을 묘사한 작품 속에서 화가 개개인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네 번째 전시실에는 바수끼 압둘라(Basuki Abdullah)가 신화 속 주인공을 그린 작품 2점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자바섬 남부 해안을 지배하는 여신인 로로 끼둘(Nyai Roro Kidul)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림을 그리던 중 로로 끼둘의 모델로 썼던 소녀 3명이 연달아 병을 얻었고 그 중 1명이 숨지자, 바수끼 압둘라는 더 이상 모델을 쓰지 않고 상상으로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 자바와 순다 지역의 바다여신 냐이 로로 끼둘. (바수끼 압둘라)
마지막 전시실은 바수끼 압둘라의 <신이 화가 나면>, 알리민 따민(Alimin Tamin)의 <세 명의 사제>, 수다르소(Sudarso)의 <성모 마리아> 등과 함께 발리의 힌두 제례의식을 묘사한 이 구스띠 끄뚯 꼬봇(I Gusti Ketut Kobot)의 <신을 위한 공양>과 이다 바구스 마데 뽈릉(Ida Bagus Made Poleng)의 <논의 여신을 위한 공양> 등이 걸려 있다.
1953년에 그려진 <논의 여신을 위한 공양에는 발리 여인이 가슴을 드러내고 있지만 1962년에 그린 <신을 위한 공양>에는 가슴을 가렸다. 문화해설사는 발리여성들은 전통적으로 가슴을 드러내는 의상을 입다가 1970년대에 와서 완전히 가슴을 가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궁은 수까르노 초대대통령 시절부터 최근까지 직접 구입하거나 선물을 받은 작품 약 3천 점을 소장하고 있다.
1950년에 수카르노와 대통령궁 소속 화가 둘라 씨는 자카르타 대통령궁인 이스따나 느가라(Istana Negara)과 이스따나 머르데까(Istana Merdeka), 서부자바 보고르 대통령궁과 찌빠나스 대통령궁, 족자카르타의 족자 대통령궁 등 각 장소에 테마를 정하고 여기에 맞춰 그림을 선별해 전시했다.
이후 1957년에는 발리 땀빡시링 대통령궁(Tampaksiring Palace) 그리고 1962년에는 서부자바 뻘라부안 라뚜 리조트(Pelabuhan Ratu resort) 등에도 미술품을 전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