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이성수] 상처가 스민다는 것/강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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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상처가 스민다는 것/강미정

시 읽어주는 남자(39)
기사입력 2017.09.0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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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스민다는 것

                               강미정

서두를 것 없이 사흘 동안 비 내렸다
빗길 그 사이에 점자처럼 도드라져 있는
파릇한 상처를 밀어 올리며 당신 꽃피었다
숲과 나무가 천천히 스미듯 땅과 비가 천천히 스미듯
젖는 일이란 제 속의 마디를 끊어내는 일이었다
제 속으로 새 마디를 하나 새겨 넣는 일이었다
당신이 내게 소리 없이 스미어왔던 것처럼
내게 스미어 내가 모르게 된 것처럼
천천히 스미기 직전의, 수만 떨림의 촉수를 뻗었던
누군가가 내 인생에도 있었음을 알겠다
가슴 속 상처가 스민 그 자리에서
길을 더디게 걷는 일처럼
소리도 없이 서로 스미려고
그 얼마나 많은 비 내리고 바람 불었는지
몇 날 비 젖고 있는 창 밖의 풍경처럼
적조하고 단조로운 음절도 때론 사무친다는 것
어느 사랑이 비의 경전에 귀기울이며
젖는 일에 저토록 몰두할 수 있단 말인가
창 밖의 풍경은 또 훌쩍 키가 자라고
마디진 길을 배회하던 기다림은 더 푸르러지려니
당신을 새겨 넣은 내 푸른 상처는
또 얼마나 오래도록 파닥이며 반짝이겠는가,
빗물 다 스민 자리에서 나무는 또
푸른 물기 스민 잎을 햇빛 속에 가득 새겨 놓는다


11일 안개 숲.jpg▲ 안개를 머금은 반둥 땅꾸반 쁘라후 숲[사진: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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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민다는 것은 마음에 다래끼 하나를 얹어놓는 것.
언제부터 네가 나의 살갗에 닿았는지 알 수 없어서
언제부터 네가 스며드는지 알지 못하지만
스며드는 순간 내가 젖는다. 흠뻑 젖는다.
스며드는 순간부터 중독이 시작된다.
마음이 땡땡하게 불어서 아침에 눈을 떠도 눈을 뜬 것 같지 않다.
네가 스며든 내가 낯설고 불편하다.
반짝이는 불편은 나를 파닥이게 한다.
원래 내가 아닌 나를 보기 때문이다.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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