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채인숙]신들의 노래는 왜 바람 속에서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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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신들의 노래는 왜 바람 속에서 들리는가

채인숙의 인도네시아 문화예술기행 10
기사입력 2017.09.2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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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5.jpg▲ 보로부두르 정상 기단에 위치한 종 또는 파인애플 모양의 스투파 안에는 불상이 있다. [사진: 채인숙]
 

신들의 노래는 왜 바람 속에서 들리는가
-언덕 위의 승방, 보로부두르 ○1

오늘은 기어코 새벽의 보로부두르를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금까지 열 번도 넘게 보로부두르를 찾았지만 늘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을 견뎌야 하는 시간대였다. 그러니 욕망에 묶인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와 부처가 되기 전 싯다르타의 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첫 번째 회랑을 돌다가, 싯다르타가 야쇼다라 공주에게 반지를 뽑아주는 장면 즈음에 이르면 벌써 목이 말라오곤 했다.

나는 여명이 차오르는 보로부두르의 맨 처음 입장객이 되어보고 싶었다. 이제 막 그림자를 만들 준비를 하는 긴 나무 그늘을 천천히 걷다가 가파른 사원의 계단을 오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1층 주벽 부조의 드라마틱한 신화 속 부처를 최대한 느리게 만나는 것이다. 마지막 스투파Setupa가 올려다 보이는 6층 즈음에서 저 멀리 머라삐 화산이 보내온 바람을 맞으며 신이 아침을 여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보로부두르2.jpg▲ 보로부두르 사원을 아래서 올려다 본 모습 [사진: 채인숙]
 

천 년 전에서 온 사람들의 눈동자가 머라피 화산의 돌로 빛나는 세계 최대의 불교 사원, 보로부두르. 
머노래Menoreh 평야의 사슬이 남쪽으로 구부러져 머라피Merapi와 머르바부Merbabu 산에 이르다가 끄두Kedu 평야의 풍요와 만나는 땅. 쁘로고Progo 강과 엘로Elo 강이 끄두 평야를 떠나 인도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 고대인들은 끄두 평야의 두 강이 만나는 이 땅을 성스러운 곳이라 여겼고 수많은 사원을 세웠다. 보로부두르와 쁘람바난은 그 가장 대표적인 사원이고, 보로부두르를 정확히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거리에 믄둣 사원Candi Mendut과 파원 사원Candi Pawon이 놓여 있다. 

지금도 와이삭Waisak(부처님 오신 날)에는 이들 사원을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려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나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언제고 이 아름다운 순례의 행렬에 끼어서 완전한 어둠에 잠겨있는 밤의 보로부두르를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새벽의 보로부두르와 한낮의 보로부두르와 밤의 보로부두르는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내게 전해 줄 것이다. 더구나 믄둣 사원에서 보로부두르에 이르는 긴 행렬을 따라 순례자들의 불경 소리를 들으며 걷는 밤은 얼마나 아름답고 장엄할 것인가.

보로부두르7.jpg스투파 상부를 벗겨내서 불상을 자세히 볼 수 있게 했다. [사진: 채인숙]
 
보로부두르는 ‘언덕 위의 승방’이라는 뜻을 가졌다. 일설에는 ‘위대한- Boro, 부처Buddha- Budur’에서 기원한 이름이라고도 하고, Boro가 수도원을 뜻하는 Biara에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아무려나 보로부두르는 승방이라는 소박한 이름과는 달리, 압도적인 규모와 입체적인 만다라를 형상화한 예술적 형태로 사람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사실 내부에 기도나 수행을 위한 방을 갖춘 구조가 아니어서 사원이라기 보다 거대한 불탑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단일 불교 건축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한다. 

20여 년 전 처음 보로부두르에 갔을 때, 칭얼거리는 갓난아기를 지게 의자에 태우고 아득하게만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황홀경에 빠졌었다. 천 년 전의 사람들이 이 모든 이야기들을 돌에 새기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연결하고 쌓아서 이토록 장대한 서사시를 써 놓았다는 사실을 눈 앞에 두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탑을 먼저 쌓고 거기에 조각을 새긴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먼저 돌에 새기고 이것들을 옮겨와 부조 벽을 따라 서사를 잇고 탑을 쌓아 나갔다고 하니, 내가 느낀 놀라움과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보로부두르4.jpg▲ 보로부두르 벽면에는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부조로 새겼다.  [사진: 채인숙]
 

인도네시아는 종교와 신화의 나라이다. 발리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 신에게 바칠 제물을 만드는 것이 여자들의 가장 중요한 일과이고, 국민의 85퍼센트에 이르는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의 예배와 기도를 신에게 바친다. 종교 뿐 아니라 지역마다 독특하고 흥미로운 신화들도 많다. 내가 좋아하는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의 책에는 인도네시아의 신화가 자주 등장한다. 인간들에게 성의 구분이 없던 태초에 어떻게 여자와 남자가 나뉘어지게 되었는지도 인도네시아 신화에서 읽었다. 

신화가 많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땅과 하늘, 바다와 산과 숲이 인간에게 전하는 수많은 메시지와 메타포를 감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 이야기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무시무시하며 신비로울 것인가. 나는 그 모든 신화 속 이야기들에 매혹 당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보로부두르는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신화와 종교 속 이야기들로 나를 이끈 첫 번째 장소였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보로부두르1.jpg보로부두르 전경. 검은 돌, 파아란 색 하늘, 흰구름이 조화롭다. [사진: 채인숙]
 

◈◈◈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으며 한,인니문화연구원 부원장으로 일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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