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순다인의 노래 / 노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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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순다인의 노래 / 노경래

인문창작클럽 연재4
기사입력 2017.10.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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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인의 노래

                      노경래 

처음에는 낯설지만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는 시간이 흐르면 자신도 모르게 낯선 것에 익숙하게 된다. 자카르타에 살고 있는 우리 디아스포라들도 우리가 옛 순다(Sunda)의 하늘 밑에서 순다인과 부대끼고 사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여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일상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무디어짐과의 결별을 위해 순다와 순다인을 다시 바라본다.

Sunda_Kingdom_svg.png▲ 순다왕국(669–1579) *사진 출처: Wikipedia
 
순다인(족)은 자바섬의 서쪽 부분에 살고 있는 토박이를 말한다. 현재 순다인은 약 4천만명으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자바인(족) 다음으로 많다. Sunda라는 이름은 ‘선(善)’ 또는 ‘좋은 기질을 가진’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접두사 ‘su-’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su-는 ‘금(gold)’을 나타낸다. ‘좋은 빛깔’을 뜻하는 suvarna에서의 su-도 같은 의미이다. 산스크리트어의 sundra(남성)와 sundari(여성)는 ‘아름다움’ 또는 ‘탁월함’을 뜻하므로 결국 Sunda는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생태지리학적 측면에서 순다라는 훨씬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순다랜드(Sundaland)는 왈라스 라인(Wallace Line)의 서쪽에 위치한 말레이반도와 말레이 군도를 아우르는 동남아시아를 의미한다. 한편, 순다열도(Sunda Islands)는 대순다열도(Greater Sunda Islands)와 소순다열도(Lesser Sunda Islands)에 속하는 섬들을 의미한다. 대순다열도는 크게 봐서는 서쪽으로는 말라카 해협 건너편 수마트라, 순다해협을 건너 자바, 자바해를 건너 칼리만탄을 아우르는 지역이며, 소순다열도는 발리, 누사떵가라 및 말루꾸 남쪽 섬들의 일부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순다인은 약 BC 1000-1500년 중국 남부에서 필리핀을 거쳐 자바에 이주한 오스트로네시안(Austronesian, 南島語族)의 후예라고 보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물론, 순다인은 빙하가 녹아 현재는 바다가 된 말라카와 순다해협을 거처 오늘날 순다지역으로 이주한 오스트로네시안의 후예들이라는 가설도 있다.

순다지역에서 가장 초기의 정치조직체는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번성한 따루마나가라(Tarumanagara) 힌두왕국으로 알려져 있다. 

669년에 따루마나가라 왕국은 순다(Sunda)왕국으로 개명되었는데, 순다왕국은 현재의 반뜬, 자카르타, 서부자바 및 동부자바의 서쪽 부분을 지배하였으며, 실리왕이(Siliwangi) 재임 시절(1482-1521년)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15-16세기경에 이슬람교가 인도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 순다인에게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서부자바의 해안 지역인 반뜬과 찌레본에서 이슬람 술탄왕국이 들어선 이후 1579년 순다힌두왕국은 몰락하고 순다지역의 이슬람화는 가속화되었다.

16세기에 네덜란드와 영국이 서부자바에 무역선을 정박시키기 시작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네덜란드의 본격적인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 네덜란드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된 1950년에 서부자바주가 행정구역으로 획정되었으며, 2000년 지방자치제 실시 때 반뜬주가 서부자바주에서 분리되었다.

현재 자바섬에 살고 있는 주요 종족은 순다족, 자바족, 마두라족이다.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사떼 장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마두라족을 제외하고는 순다인과 자바인은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른 기질을 보이고 있다. 자바인과 순다인이 하나의 종족인데도 서로 분리된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순다왕국에 속한 갈루(Galuh)왕국이 현재 서부자바주에 있는 찌아미스(Ciamis)에 자리잡았다. 갈루의 왕은 한 신하가 왕이 되어 싶어하자 그 신하를 변신시켜 왕이 되게 하고, 자신은 산속으로 숨어 버렸다. 

신하가 왕으로 행세하고 있는 동안 원래 왕의 첫번째, 두번째 왕비는 각각 사내아이를 낳았다. 두번째 왕비에게 태어날 아이(찌웅 와나라, Ciung Wanara)가 막돼먹은 놈이라는 꿈을 꾼 왕은 첫번째 왕비와 짜고 신하를 시켜 와나라의 어머니, 즉 두번째 왕비를 죽이라 명하였는데, 신하는 산속에 오두막을 짓고 와나라 어머니가 살도록 하고, 아이는 바구니에 싸서 강물에 띄워 보냈다. 그런데 한 어부가 그물을 건져… (중략) 아이가 성장하였다.
성장한 와나라는 갈루로 가서 왕이 닭싸움에서 이기면 왕국의 절반을 주기로 한 내기에서 이겨 갈루왕국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자 다른 왕비의 아들(하리앙 방아, Hariang Banga)이 반란을 일으키자 산속으로 명상하러 갔던 왕과 와나라의 어머니가 동시에 나타나 말하였다. 

“싸움을 멈춰라. 형제들끼리 싸우는 것은 금기(‘Pamali’)이다. 너희 둘 다 나의 아들이다. 그러니 큰 아들 하리앙 방아는 브레베스(Brebes)강 동쪽을, 작은 아들 와나라는 갈루를 통치하거라. 브레베스강을 경계로 삼고, 형제 간에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강 이름도 ‘빠말리(Pamali, 금기)의 강’으로 바꾸어라.”

하리앙 방아는 동쪽으로 가서 자바왕국을 세웠고, 찌웅 와나라는 갈루왕국을 잘 다스렸다는 전설이다.

같은 날에 태어난 쌍둥이도 기질이 다르지 않던가. 더구나 순다인과 자바인은 배다른 형제 아닌가. 

순다지역은 전통적으로 용수를 자연에만 의존하는 천수답(天水畓) 위주인 반면, 자바지역은 상대적으로 세심한 관리와 노동력이 요구되는 수리답(水利畓)이 많다.

순다지역은 자바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악지형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순다인은 자바인에 비해 단순한 삶을 살게 된다. 결과적으로 순다인은 낙천적이고, 독립적이며, 사회적 위계질서에 덜 민감하며 더 평등적인 사고를 갖게 된다. 이후 이슬람 영향으로 그러한 특성이 더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순다인은 이러한 기질로 인해 집단이나 회사에 속해 일하기 보다는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더 선호한다. 정부기관 등 경직된 조직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들은 와룽이나 생필품을 파는 행상 또는 이발소 등과 같이 소규모의 사업을 주로 운영한다. 

순다인은 또한 자연을 경외하고 외부인과의 접촉을 싫어하는 기질이 있다. 순다인은 그들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자르거나 숲 속의 생물들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 경외와 외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기질의 극단적인 예는 바두이(Baduy)인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순다인과 자바인의 기질은 예술분야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자바의 예술은 숨막히는 절제미가 있는 반면에, 순다인의 예술은 자바인의 예술보다는 자유분방함이 묻어 나온다. 자바의 전통 가믈란과 순다의 가믈란인 드궁(Degung)을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고, 자바 왕실에서 공연되는 종교 의식화된 춤인 브다야(Bedaya)와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기도 하는 서부자바의 자이뽕안(Jaipongan)은 양 극단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자바의 와양 꿀릿(Wayang Kulit)은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나 『마하바라타』나 이들의 자바버전을 주된 소재로 하지만, 순다의 와양 골렉(Wayang Golek)은 이보다는 이슬람 관련 이야기를 더 많이 사용한다.

Wayang Golek.jpg▲ 와양골렉이라 불리는 인형들 [사진: 한인니문화연구원 제공]
 

순다인의 전통도 시간의 흐름과 외부의 영향에 따라 많이 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9세기에 네덜란드가 커피, 차 등의 경작을 위해 순다지역의 깊숙한 내륙까지 개발함에 따라 순다인들도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순다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학교와 병원을 건설하면서 순다인을 개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순다 개신교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수적으로 소수이며 그것도 대부분 중국계 개신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이슬람교는 순다인, 특히 도회지역에 거주하는 순다인의 사회에 점진적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순다인의 전통 관습과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자 하는 소수의 순다 공동체의 움직임이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일생의 대부분을 서부자바에서 보낸 네덜란드 심리학자이며 작가인 MAW Brouwer(1923-1991)는 “신이 미소 짓자 빠순단(Pasundan, 서부자바)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바쁜 일상에서 늘 잊고 살지만, 우리 디아스포라들는 이 순간에도 아름다운 순다와 순다인들 함께 노래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언제나 같은 목소리로 들렸던 순다인의 노래가 새롭게 들린다. 그들과 자바인과의 애증, 그들의 전통과 종교, 역사를 통해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호흡이 새롭게 느껴진다.


*** 인문창작클럽(INJAK) 소개 

인문창작클럽 (인작: 회장 박정자)의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임이다. 인작회원들의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동시 연재한다. 



세렌축제8.jpg▲ 2015년 세렌축제 모습. 순다지역의 일부인 서부자바주 찌레본 지역에서 벼 수확기에 맞춰 열리는 전통마을축제 [사진: 한인니문화연구원 제공]
 
세렌축제1.jpg▲ 2015년 세렌축제 모습. 순다지역의 일부인 서부자바주 찌레본 지역에서 벼 수확기에 맞춰 열리는 전통마을축제 [사진: 한인니문화연구원 제공]
 
 
세렌축제7.jpg▲ 2015년 세렌축제 모습. 순다지역의 일부인 서부자바주 찌레본 지역에서 벼 수확기에 맞춰 열리는 전통마을축제 [사진: 한인니문화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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