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채인숙]신들의 노래는 왜 바람 속에서 들리는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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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신들의 노래는 왜 바람 속에서 들리는가(2/2)

채인숙의 인도네시아 문화예술기행 11
기사입력 2017.10.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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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불상들.jpg▲ 보로부두르 사원 측면 불상 [사진: 채인숙]
 

-언덕 위의 승방, 보로부두르 (2/2)

아침 6시, 보로부두르 사원의 문이 열리는 시각. 날은 이미 훤히 밝았다. 사원 안에 있는 마누하라 호텔에 묵는다면 수시로 사원을 볼 수도 있다는데, 가까이에 거처를 두고 일부러 호텔에 묵기도 망설여져 최대한 일찍 사원 문 앞에 도착했다. 머라피 산에서 불어오는 아침 바람이 상쾌했다. 바람을 맞으며 보로부두르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잠시 바람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초봄, 한국의 사찰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젖었다. 


1입구.jpg▲ 보로부두르 사원 입구 [사진: 채인숙]
 

우리 나라의 절은 대부분 산 속에 있어서 머리를 들고 절을 품고 있는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온갖 때가 벗겨져 나간다. 내가 가본 절이라곤 도심의 조계사, 통도사의 극락암이나 팔만대장경을 품고 있는 해인사, 시퍼렇게 출렁이는 남해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던 보리암과 정말 눈물처럼 뚝뚝 동백꽃이 떨어지던 선운사, 겨울 산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갔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경상도의 작은 암자 정도지만, 그 모든 절들의 아름다움은 기억 속에 사무치도록 남아 있다. 
몇 번이고 사원을 찾았지만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보로부두르의 바람. 나는 그제서야 인간이 만들었다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거대한 불탑을 구경하러 온 여행자가 아니라, 부처님께 온갖 생의 거짓들을 털어놓고 싶은 순정한 제자의 마음이 생겼다. 적도의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쬐는 보로부두르의 불상 앞에서 108배를 올리던 친구의 마음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3 보로부두르 측면.jpg▲ 보로부두르 사원 기단 [사진: 채인숙]
 

5년 전쯤 중학교 때 친구가 인도네시아에 놀러 왔던 적이 있다. 우리는 거칠고 우악스러운 표정의 사내들이 아무 데나 침을 뱉고 다니는 소도시 항구에서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다. 모든 일상이 지루하고 무료한 소도시에서 사춘기를 보내야 하는 처지를 통탄이라도 하듯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한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나 우연히 SNS에서 다시 만났고, 친구는 당장 나를 만나러 인도네시아로 날아왔다. 인도네시아가 처음이었던 친구가 가장 가고 싶어한 곳은 보로부두르 사원이었다. 


4 불상.jpg▲ 보로부두르 사원 불상 [사진: 채인숙]
 

우리가 보로부두르를 찾았던 오후, 계단을 오르기조차 힘겨웠던 나는 연신 물을 들이키며 가져 온 양산으로 해를 가리느라 바빴다. 몇 번째 찾아온 보로부두르가 그날따라 조금도 새롭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가 사원에서 한 분의 특별한 부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여행가의 수필에서 보았는데, 이 불공성취불 앞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했단다. 보로부두르에는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며 명상에 잠겨 계신 부처님이 무려 504분이나 계시는데 어떻게 그 특별한 부처님을 찾아낸단 말인가. 

그런데 2,672개의 석판 부조 패널이 이어진 회랑과 504개의 불상이 있는 사원을 부지런히 돌던 친구가 대뜸 배낭에서 얇은 담요 한 장을 꺼내더니 구석 자리에 펴기 시작했다. 아마도 욕계(Kamadhatu)와 색계(Rupadhatu)를 지나 상층의 무색계(Arupadhatu)에 닿기 전, 완전한 해탈에 이른 부처님을 모신 스투파setupa가 위로 올려다 보이는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친구는 담요 위에 무릎을 꿇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108배를 시작했다. 나는 조금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눈으로 친구를 지켜 보다가 마침내 회랑의 좁은 그늘에 주저앉아 기도하는 친구의 등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무엇이 그토록 간절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간이 한없이 느리고 길게 흘러갔을 뿐이었다.


5 부조 군중들.jpg▲ 보로부두르 사원 부조 중 군중들 [사진: 채인숙]
 

보로부두르 사원을 지은 9세기 무렵의 사일렌드라Syailendra 왕조는 ‘산의 왕’이라는 뜻을 가진 불교 국가였다. 이 거대한 불탑은 그 후 천 년의 세월을 흙 속에 묻혀있었고, 1814년 잠시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던 영국의 래플즈(Thomas Stanford Raffles)경에 의해 발견되었다. 욕계를 나타내는 사원 아래층 회랑의 부조에는 농사를 짓고, 병을 고치고, 시장에서 흥정을 하고,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나는 인간사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자바 사람들을 닮아있다. 활기차고 풍요로웠던 사일렌드라 왕조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아직도 저 꼭대기의 스투파 속 부처님보다 회랑의 부조들이 보는 일이 더 흥미롭다. 어쩌면 부조의 어딘가에 전생의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사람들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 본 적도 있다. 나는 처음 찾아 온 보로부두르에서 부처님을 만나 108배를 올리던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멀고도 먼 욕망덩어리 아줌마지만, 부조 패널의 조각에 등장하는 옛 자바 사람들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위로할 뿐이었다.


6 스투파.jpg▲ 보로부두루 사원 정상의 스투파 [사진: 채인숙]
 

그러므로 오늘 아침, 나에게 처음으로 기도하는 자의 마음을 안겨 준 보로부두르의 바람은 참으로 신선하고 신성한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여행자가 아니라 순례자가 되어 부처님 앞에 선 느낌이었다. 스투파와 스투파 사이 작은 공간에 다리를 걸치고 해가 뜨거워질 때까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살에 와 닿는 바람을 가만히 느꼈다. 저 멀리 야자나무 숲 너머의 산을 부처님 옆에 나란히 앉아 바라보았다. 유일하고도 충만한 순간이었다. 나는 비로소 보로부두르를 조금 알게 된 것 같았다. 거기 앉아서 신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었다. 바람결에 타고 들려오는 그 노래를 들으며 비로소 보로부두르의 아침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으며 한,인니문화연구원 부원장으로 일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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