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목
이산하
바로 저기가 정상인데
그만 주저앉고 싶을 때
거기 고사목 지대가 있다
무성했던 가지와 잎 떠나보내고
몸마저 빠져나가 버린
오직 혼으로만 서 있는
한라산의 고사목들
천둥 같은 그리움인 듯
폭설 같은 슬픔인 듯
죽어서도 썩지 앉는다
▲ 망그로브 숲 수면에 낙엽이 떠 있다. 중부 자바 까리문자와 섬(Pulau Karimunjawa) [사진:김태호]
시 읽기 -----------------------------
당신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 그리움을 얼마나 품고 있나요?
당신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 슬픔을 얼마나 품고 있나요?
산이 섬만 한 그리움과 슬픔을 안고 있대요.
죽어서도 서서 죽는 고사목이
당신이 주저앉고 싶을 때 거기 있대요.
가지도 떠나고 잎도 떠나고 몸도 떠난 고사목이
누군가 그립고 막 슬퍼서
혼으로 혼자 서 있답니다.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