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의 우주
백인덕
여름밤 하루살이는
제 새끼의 날개 짓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때의 별빛 한없이 쏟아지는 지금의 창가.
줄기 끝마다 한창인 고추 흰 꽃들이
붉은 고추를 보지 못하듯,
냇가 맑은 조약돌마저 제 모래 위에
한나절 해바라기 할 수 없듯이,
나는 언제나 그대 뒤를 보지 못한다.
여기와 저기,
그때와 지금,
우주는 온통 사건들로 메워지지만
재빠른 그대 칼날은 내 옆구리를 비껴가고
내 언어의 그물은 바람의 뒤축만 포획할 뿐
여름밤 청개구리들은
제 새끼들의 연못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지금 절정의 별빛 그때의 보석이 아니듯이.
나는 그대의 그림자에 뒤엉키고
발목이 시려
또 하나의 사건으로 절름댔을 뿐,
그대는 항상 내 배면을 보지 못한다.
▲ 관광객이 일출을 즐기고 있다. 동부깔리만딴주 드라완(Drawan) 섬 [사진:김태호]
시 읽기--------------------------------
돌아가 수 없는 곳이 있다. 미리 가 볼 수 없는 곳이 있다.
시간이다.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 돌아올 수 없다.
이미 다가올 미래 역시 우리는 미리 가서 보지 못한다.
이 비극이 성찰을 낳는다.
하루살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고
꽃이 과일을 보지 못하고 만다.
그때는 절정의 별빛이 보석이었는데 지금은 보석이 아닌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첫사랑을 만난 사람이라면 보석 같던 그 소녀가 이제는 보석이 아닌 여자를 만나봤으리라.
수많은 사건과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저 그림자만 볼 뿐
타인의 뒷모습이 간직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사랑도 그러하다.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