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 ‘고단함’ 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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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고단함’ 이라는 이름

깡통의 수다 19
기사입력 2017.12.22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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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자에서 사는 김은숙 작가가 <깡통의 수다>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문득 자신의 삶이 깡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깡통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지 스스로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족자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사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인도네시아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족자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된다. 얼마만인지 이조차도 눈물 나게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해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지난달 마지막 주는 왜 그렇게 비가 오는지 족자의 비 피해가 수위를 넘겼다. 결국 수해자를 돕자는 족자 관공서 행보가 시작되었고 족자 한인회도 참여한 것으로 안다. 그뿐인가 발리 화산이 터졌고, 수많은 아픈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런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조금 버겁게 많은 일을 하다 보니 꼼짝없이 아프고 말았다.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다 날정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행사들에 마음을 담그고 있다 보니 연말연시를 얼마 앞둔  시기라 갑자기 너무 분주했고 나에게도 빨간불이 켜지면서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무슨 무쇠팔 무쇠다리 마징가 Z(제트)도 아니고 용빼는 재주가 없으니 아파서 쉬는 게 맞았다. 하루를 집 콕 하면서 머리도 못 들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더 마음 아픈 것은 나는 아픈데 가족들이 밥을 못 먹는 것이다. 안보면 몰라도 보는 이상 밥을 할 수밖에 도리가 없어 일어나 밥을 했다. 에구구, 벗어날 수 없는 여자의 천직이여.

이럴 때 도우미는 뭐에다 쓰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 아니 항간에 어떤 사람들은 기사에, 도우미에 모두 맡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속 모르는 소리도 한다. 여기 사는 주부들이 들으면 가장 마음 아픈 말 중에 하나가 아마 “네가 하는 일이 뭐 있냐? 도우미가 다하지!” 이런 말들일 것이다. 내가 왜 이 나라 도우미에게 나의 일을 맡기겠는가? 나는 도우미가 남편에게 물 한잔 떠다 주는 것도 싫은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들도 내 영역 안에 두고 살았다. 빨래도 세탁기 고장 낼까봐 손수 돌렸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내 것이었다. 많은 일을 이런저런 이유로 나 혼자 많이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일도 서슴없이 했다. 남들이 소위 말하는 봉사를 즐겁게 힘에 부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집이 엉망일 때도 있었고 마음이 엉망일 때도 많았다. 그래도 해왔고 앞으로도 해가야 할 이유는 너무 많다. 어째든 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나를 믿고 이해해준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조금만 덜 바쁘면 안 돼?” 하며 엄마 손길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내심 미안했지만 이제와 이해해주는 아이들도 있고 주구장창 달려가는 나를 걱정하고 예뻐해주는 지인들도 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삶속에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내어줄 지인이 커다란 보물 1호로 자리 잡고 있다. 내게 무엇이 부족한가?

깡통의 수다 사진.jpg▲ 인도네시아 여인이 아이를 업고 족자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 김은숙]
 
학교에서 마지막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등에 아이를 업고 앞에는 커다란 바구니에 장사할 것과 우산 그리고 다른 것까지 한껏 안고 가는 인도네시아 아주머니를  보았다. 이 세상에 어느 한 사람 고단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저분에게 삶의 고단함은 책임이고 의무이고 사랑일 것이다. 나에게 고단함이란 기도이고 사랑이고 약속이다. 해서 내가 게으르면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의 낮잠을 억울해 하는 잘난 심보도 가졌다. 수업시간에 조는 것은 되고 한낮에 편히 발 뻗고 낮잠 자는 것은 안 되는 삶이 나의 삶의 규칙이다.

그렇게 나는 내식으로 나의 온몸으로 기도하며 산다. 내가 조금 더 힘들게 살면 남편과 아이들이 덜 힘들게 살 것 같아 기계 속에 팝콘 튀듯이 하루를 타다닥 바쁘게 산다. 나는 내가 사람을 더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우리 남편과 아이들이 어디 가서 더 사랑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미운 사람도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내가 싫은 사람 옴팡지게 욕하기도 한다. 그리고 잊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보통사람이니까. 나는 내가 더 깊이 고뇌하고, 절망하고, 성찰하려고 노력한다. 남편과 아이들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심상이다.

부모에게 있어 고단함이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 고단함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아기를 업고 양손에 한 것 짐을 든 여자에게 고단함이란 가족을 위한 최선이고 나에게 있어 고단함이란 나의 온몸을 던져 기도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힘들 때가 있다. 그래서 아프면 아프다 하고 운다. 그리곤 내가 나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고단함이란 이 세상이 내게 준 최대의 기회이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기회를 잘 활용하고 싶다. 내가 아프기 전에 남편이 아팠었다. 그 후에 내가 아파서 알았다. 아프면서도 회사 나가던 남편이 얼마나 아팠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우리는 서로가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다들 고단하시죠? 하루가 1년이 고단하시리라 알고 있습니다. 고단하신 분들에게 힘내시라고 힘을 실어 보냅니다. 힘내시고 연말연시 즐겁게 마무리하세요. 올해의 고단함으로 사랑을 실천하신 모든 분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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