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이성수] 시공부시간 / 이성수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이성수] 시공부시간 / 이성수

시 읽어주는 남자(53)
기사입력 2017.12.27 09:1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시공부시간
                   이성수 

1
내 나이 오십 줄에 부러질 즈음
어머니 내 손을 영영 놓으셨습니다
내가 놓으면 단풍 낙엽처럼 흐느적거리며
떨어지는 손

몇 달 마음 둘 곳 없어
푸른시민연대 찾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ㄱ 자 꼬리를 붙들려고 달려가는 어머니
ㄴ 자 미끄럼틀 타는 어머니
ㄹ 자 허리 잡고 춤을 추는 어머니 

ㄷ 자 한 세상 첩첩산중 개울을 건너지도 못한 어머니
ㅁ 자 밭이랑을 수만 번 돌던 어머니
ㅂ 자 아침 햇살로 밭을 갈면서 
ㅅ 자 사람처럼 산 적 없던 어머니 
ㅇ 자 요강에 손 담그며 겨울 흐르는 냇물을 척척 감아 빨던 어머니

ㅈ 자 평상 같은 글자와
ㅊ 자 평상에 혹 난 글자가 어찌 다른지 모르겠다는 어머니
ㅌ 자 햇살 터지는 땅 
ㅍ 자 파란 햇살 아래 한 번도 떳떳하게 나서본 적 없던 어머니 

ㅎ 자 아들 입에 밥 넘어가는 소리에 웃음이 벙글어 터지던 어머니
글자 하나하나가 인생인 어머니

어머니 가시자 어머니가 거기 계셨습니다
그 분들 모시고 시 공부했습니다 


2

어머니 시는 누룽지
삶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누룽지
버리지도 못하고 감싸고 살려니
떠듬떠듬 
쓴맛만 나는 생을 
어머니는 쓰고 나는 읽었습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아궁이 밥솥 안의 삶을 
매일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에 두 눈 버젓이 뜨고 있으면서도
손가락으로 글자를 읽었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작대기 하나로 
하루 종일 산에서 놀다 온 내게
저 놈의 자식 오늘도 옷 버린 거 봐라!
웃으시던 어머니 

왜 나는 어머니에게 
삶을 돌아보라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어머니도 받아쓰기 한번 해보시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요 
어머니도 한글 배워 
어머니 삶을 받아쓰기 한번 해보시라고
받침이 틀려도 좋으니 
시 한 편 써보시라고 
어머니 밥솥에 있는 시 한 편 퍼드리지 못하고

27일 시.jpg▲ 아이를 안고 앉은 여인의 등 뒤로 햇살이 쏟아진다. 말루꾸 군도 암본 지역 [사진: 김태호]
 

시 읽기 -------------------------------------

모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사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모국을 떠나서 사시는 분들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대화의 형식 그 자체보다 말이 담고 있는 정서의 교환이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머릿속에서 수시로 그려지는 사고의 틀 역시 모국어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모국어가 우리들 삶을 얼마나 많이 간여하는지 문득문득 깨닫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한글을 몰라 쩔쩔매기도 합니다. 글을 몰라서 참으로 비참한 세월을 살았던 분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떻습니까?
잘 지내십니까? 혹시 모국어가 그리워 가끔 모국어를 함께 쓰는 사람들과 저녁도 드시는지요?
모국어를 나누기 위해 모인 자리라면 시 한 편씩 나누시면 어떨까요? 2017년 마지막 전언입니다.
그 동안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


<저작권자ⓒ데일리인도네시아 & dailyindonesi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