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자바인과 에똑에똑안(éthok-éthokan) / 노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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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바인과 에똑에똑안(éthok-éthokan) / 노경래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8.01.0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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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경래


또뼁2.jpg
 
▲ 자바인 가면(Topeng Java) [사진 출처: Pinterest]
 

 

서로 함께 하되 당신들 사이에 하늘의 바람이 통하도록 하라
서로 사랑하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마라
그보다 당신 영혼들의 기슭 사이에 흐르는 바다물이 되게 하라
칼릴 지브란의 <사랑의 시> 중에서


자바섬의 어디를 가나 정말이지 사람들이 많다. 길 양쪽으로 어깨를 맞대고 끝없이 늘어서 있는 집들을 보면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다.

자바섬에는 현재 인도네시아 인구의 약58%가 거주하고 있다. 불과 200여년 전인 1815년에는 460만명이었으나, 1900년에는 2,87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현재 약 1억5천만명이 되었다. 인구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자바인들이 인도네시아의 주류세력으로서 정치ㆍ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자바와 자바인을 들여다보면 인도네시아가 보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럼, 자바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어떻게 생겨났다고 생각했을까? 14세기 마자빠힛 힌두왕국의 설화인 딴뚜 빵글라란(Tantu Panggelaran)에 자바섬과 자바족의 기원에 대한 전설이 실려 있다.

시바신의 아바타인 바라따 그루(Barata Guru)가 브라마신과 비슈누신에게 자바섬에 사람을 채워 넣으라고 명하였다. 당시 자바섬은 바다에 떠있는 흔들리는 낙엽과 같았다. 브라마신과 비슈누신은 각각 큰 뱀과 거북이로 변하여 ‘세상의 중심’인 스메루(Semeru, 須彌山)의 일부를 떼어 내어 자바로 가져왔다. 떼어온 스메루를 동부 자바에 내려놓고 인도와 밧줄로 묶어 연결하니 자바섬이 더 이상 흔들거리지 않게 되었다.

신들은 당시 자바섬에 자와웃(Jawawut)이라는 곡물인 기장(벼과에 속하는 일년생 초본식물)이 많은 것을 보고, 이 섬을 자바(Jawa)라고 불렀다. 신들은 자와웃을 입으로 불어 자바인의 시조인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이들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다. 신들은 이들에게 문자인 하나짜라까(Hanacaraka)를 주고 건물 짓는 법을 가리키는 등 자바인을 문명화시켰다.

자바인이 문명화되는 와중에 스메루 화산이 폭발하여 자바인이 죽거나 그들의 삶이 비탄에 빠지게 되었다. 자바인들이 신들에게 자신들을 지켜줄 것을 기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바인의 종교(Agama Jawi)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메루산1.jpg▲ 스메루산은 동부자바에 위치한 활화산이다. 
 

물론 여러 인류학자들은 오늘날의 자바인들은 B.C 3000년에 중국 남부를 출발하여 필리핀을 거쳐 B.C 1500에서 B.C 1000년 사이에 자바로 이동한 오스트로네시안(Austronesian, 南島語族)이라고 한다.

세계의 많은 인류학자들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 특히 중부 및 동부 자바 지역에 대한 연구를 많이 진행해 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다양성과 중층성으로 대표되는 자바 문화의 특징을 들 수 있겠다. 자바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의 종교가 순차적으로 유입되었다. 자바에는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산뜨리(Santri) 계층과 원시 전통문화와 다양한 종교가 혼합된 세속적인 무슬림인 아방안(Abangan) 계층이 있다. 또한, 자바에는 귀족 계층이며 전통 엘리트 관료인 쁘리야이(Priyayi)와 하부 계층인 옹 찔릭(Wong Cilik)이 존재해왔다.

두 번째로,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의 지배로 서양인들이 일찍부터 인도네시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여러 저명한 학자들이 자바에 대한 다양한 선행 연구를 진행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로, 자바의 연중 온화한 기후로 인해 연구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자바인들은 즐거움, 분노, 슬픔 등의 감정표출을 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로 생각한다.

장례식에서 소리 내어 운다거나 흐느끼는 자바인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고인의 가족과 친인척은 통제되지 않은 슬픔을 보여서는 안되며, 운명에 완전히 순응하는 태도가 가장 적절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자바인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감정표출을 억제하는 문화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면서도 웃음을 보이고,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이는 자바인의 태도를 에똑에똑안(éthok-éthokan)이라고 한다. 에똑에똑안은  ‘감정의 은폐’쯤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자바인들이 “예(iya)”라고 답할 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라는 하나의 표현을 통해 수십 여 개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자바인들은 ‘자기감정의 은폐’라는 예술에 있어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자바인은 “나는 내가 진짜로 생각하는 것을 결코 말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내 말을 통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바인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은폐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보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부정적으로도 평가되지 않는다. 원한, 증오, 집착과 같은 감정은 내면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으며, 단지 그것이 여과되지 않은 채 외부로 표현될 때 부정적인 평가가 가해진다. 사실상, 모든 자바의 사회관계에서 중요한 측면은 행동의 진실성이 아니라 관계에 있어 모든 불협화음의 성공적인 은폐인 것이다.

타인이나 집단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려 하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상태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용이나 승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바인들은 의사를 전달하거나 특정한 것을 요구할 경우에 갈등회피를 위해서 우회적 표현과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비즈니스 협상 시 당사자 간의 대면보다는 제 3자인 중개인을 통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대화나 협상을 시작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비로소 용건을 꺼내는 자바인의 대화 방식은 감정을 추스를 여유를 제공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도이다.

어느 일방이 이익이 되고 상대방이 손실이 되는 계약 등 승패가 명확히 드러나는 의사결정의 경우에는 감정 통제를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 자바인들은 보통 타협의 과정을 통해서 표면적인 수준에서 합의하고 상대방 또는 패자에게는 체면을 유지할 최소한의 명분을 준다.

자바인들의 행동양식에 대해서는 문화인류학자인 김형준 교수의 논문 「인도네시아 자바인의 수평적 사회관계: 루꾼(Rukun) 개념을 중심으로」를 보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바인들에게 뿌리 깊이 내재되어 있는 갈등회피 및 감정은폐 등의 문화가 향후에 인도네시아의 사회의 변화와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방대한 영토, 다양한 종교와 수 많은 종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요인 중의 하나는 전반적으로 갈등을 회피하고 통합과 절충을 중시하는 자바문화가 있어 가능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또한 자바인들은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문제에 간섭하기를 꺼려한다. 타인의 일에 간섭할 경우 감정이 상하거나 감정적 충돌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바인들의 정신문화와 행동양식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자바인들 간의 모든 관계에서는 갈등을 회피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바인들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칼릴 지브란의 시처럼 서로 사랑(관심)하되 하늘의 바람이 통하고 바다물이 흐르도록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 인문창작클럽(INJAK) 소개 
인문창작클럽 (인작: 회장 박정자)의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임입니다. 

*** 인작회원들의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동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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