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행문] 따뜻한 인연이 있는 곳/김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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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따뜻한 인연이 있는 곳/김기역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8.03.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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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인연이 있는 곳 – 또바 호수

/ 김기역

김기역 결혼식.jpg▲ 김기역 씨와 딸 [사진: 김기역]
 

  2016년 1월 8일 앞뒤 가릴 것 없이 딸아이와 함께 ‘메단(Medan)’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달전부터 꼭 참석해 달라는 친구 ‘리차드(Richard)’의 결혼식 초청장과 그의 통화가 마음을 움직였다. 리차드는 나와 띠동갑 동생뻘인데 성격이 남자다우면서도 행동이 반듯하여 좋은 친구로 생각하며 보아왔었다. 메단에 자주 출장 가던 시기에 한국 식품에 관심이 많다며 직접 찾아와 많은 것들을 묻고 논의하면서 서로 간에 신뢰감이 생겨났고 급기야 결혼식에까지 초청을 받은 셈이었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를 결혼식 참석만을 위해 다녀오기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딸아이의 방학인 시기라 함께 갈 수 있고, 또 그곳엔 또바 호수(Danau Toba)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주변분들로부터 또바 호수 이야기를 듣자 마자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된 셈인데 화산 활동으로 생긴 칼데라 호수이면서 그 크기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칼데라 호수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경상남도만한 크기이며 그 깊이가 450미터가 넘는다면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또바 호수 안에는 사모시르(Samosir) 섬이 있는데 섬 면적이 630평방킬로미터로 719.9평방킬로미터의 싱가폴만한 크기라고 하니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식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전통결혼식이 아닌 현대식 결혼이어서 커다란 연회장을 통째로 빌려 내외곽에 손님들이 꽉꽉 들어찼다. 우여곡절 끝에 축하인사와 선물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외국인 친구가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축하해주는 것에 대해 무척 고맙다며 리차드d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호텔로 돌아와 딸아이를 재우고 다음날 또바 호수에 갈 버스 일정과 사모시르 섬에 들어가는 배편을 숙지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리차드였는데 자기들 신혼여행을 조금 미루고 멀리서 온 친구들을 위해 토바 호수를 2박 3일로 갈 터이니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결혼을 축하해주러 온 것이지 너에게 신세 지러 온 것이 아니다’라는 내 얘기에 우리 말고도 싱가폴, 자카르타, 술라웨시에서 온 친구들이 9명이나 더 있고, 이 친구들과 추억을 위해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드는 생각은 ‘사람과의 인연을 참 소중히 생각하는 친구로구나’라는 것, 두 번째 들었던 생각은 과거에 식인 습성이 있었고 지금도 한 성깔 하는 바딱족들이 많은 또바 호수 주변에 대한 경계심이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속물 같지만 ‘여행경비도 많이 줄일 수 있겠구나…’라는 세 번째 생각이 들었었다. 

김기역 배 위에서.jpg▲ 배 위에서 [사진: 김기역]
 
  1월 9일 아침 정말로 호텔 앞으로 미니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에 올라서자 싱가폴에서 온 커플과 술라웨시에서 온 두 친구, 그리고 자카르타에서 온 두 친구, 그리고 메단에 사는 리차드의 가장 친한 친구 세 명이 있었다. 다들 젊고 팔팔한 젊은이들이며 미혼인데 나 혼자 어린 딸까지 대동한 중년의 아재였기에 조금 서글펐지만 여행을 즐거워하는 딸아이를 보니 흐뭇하기 그지 없었다. 4시간 정도 차량으로 이동 후 호수에 다다르자 정체가 심각했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항구로 들어가는 차량들과 나오는 차량들이 속절없이 뒤엉킨 상황이었다. 기사분과 다음날 픽업시간을 맞추고 모두 하차하여 항구로 걷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의 어시장처럼 시장들이 펼쳐지고 좌판들이 펼쳐져 있었다. 항구에 들어서자 호수에 비치는 햇살들이 물비늘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분명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바다 내음이 전혀 없이 찰랑찰랑 파도 치는 부두 모습이 참 아이러니했다. 

  배에 올라 사모시르 섬으로 향하는 길에 리차드가 또바 호수와 사모시르에 대한 전설을 들려줬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와 유사한 느낌이었다. 리차드는 싱가폴 친구들과 나를 배려해서 또박또박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옛날 옛날 이곳에 또바라는 청년이 낚시를 하다 낚은 대형물고기의 화신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모하여 결혼하여 살게 되는데 그 조건은 여인의 정체를 아무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었어. 둘은 아들을 낳았는데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웠지만 아들은 자랄수록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 또바가 홧김에 버르장머리 없는 것이 ‘물고기의 자식’이라며 아들을 꾸짖고 말았지. 이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아들을 산 높은 곳으로 피신하게 하고 자신은 슬픔 속에 강물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이 때 천둥, 번개와 폭우로 강물이 범람하게 되고 또바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아. 불어난 강물들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사람들이 이 호수 이름을 다나우 또바로 지어 주었고 호수 안의 섬에도 사모시르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바로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의 이름이 사모시르였대.” 이야기가 왠지 서글픈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눈앞에 펼쳐지는 사모시르 섬은 이야기 속의 서글픈 아들의 모습이 아닌 무척 웅장하고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모습이었다. 

김기역 게임 후.jpg▲ 게임을 마친 후 [사진: 김기역]
 
  선착장과 바로 연결된 숙소에서 방을 나누고 식당에 모여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뒤 두 친구가 나서서 웃음버섯으로 만들었다는 부침개와 맥주를 사들고 와 게임을 하자고 했다. 이마에 동물 이름을 붙여두고 서로 질문을 던져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자기 이마 위의 동물 이름을 맞추는 게임인데, 최후까지 동물이름을 맞추지 못한 두 사람은 웃음버섯과 맥주를 먹거나 숯으로 얼굴을 칠해야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가고 몇몇은 웃음버섯과 맥주로 실없이 웃어 대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중년인 나로서는 정말 오랜만의 놀이였고 바보처럼 낄낄대며 웃어도 하나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게임이 끝난 후 찰랑거리는 파도 위의 정자(?)에서 멀리 보이는 별빛들이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아 보였다. “아빠는 네가 매일 저런 짙은 어둠속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네 꿈을 키워가면 좋겠어…”라고 하자 딸아이가 씨익 웃는다. 사실 이 이야기는 딸아이의 할아버지, 즉 내 아버지가 나에게 들려주신 말이다. 해남 땅끝에서 진도로 넘어가 배를 타고 두시간이 넘는 거리에 ‘독거도’라는 섬에 여름방학을 보내기로 했고 그때가 1984년이다. 기센 물살의 파도가 팡팡 터져 대는 독거도의 커다란 바위 위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보며 나에게 해 주신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때 나도 국민학교 4학년이었고 그날 밤 보았던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잊지 못한다. 그 때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클레멘타인’노래를 딸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모기 때문에 방으로 피신하고나자 노래를 부를만한 분위기가 못되어 그만 두고 말았다.  

김기역 오토바이.jpg▲ 오토바이 일주 [사진: 김기역]
 
  아침이 되자 모두들 분주해졌다. 식사를 신속하게 마치고 짐들을 챙겨 한 방에 모아 잠금장치를 확인한 뒤 모두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 앞에 모였다. 6대의 오토바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토바이를 나눠 타고 섬 안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푸른 숲과 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중간중간 너무 예쁜 집들이 있어 물어보면 외지인들이 지어 놓고 종종 놀다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리차드 말로는 또바 호수 근처와 사모시르 섬의 개발권은 철저하게 현지 토착민들에게 있는 것이어서 주소지를 그 곳으로 옮겨 살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곳의 자연 환경은 편법(현지 토착민들 명의로)라도 집을 짓고 연중 잠시나마 쉬어 가는 곳으로 충분하게 느껴졌다. 오토바이의 매력은 기동성도 있지만 여럿이 함께 달리면 묘한 동료애와 전투력이 생기는 것이었다. 마치 예비군복을 입으면 동질화 되는 예비군처럼… 뜨거운 햇볕과 더위 때문에 멀리 가기 힘들다고 판단이 들자 모두 숙소로 돌아와 짐을 찾고 배를 기다렸다. 통통거리는 배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공간이 많았고 이곳저곳 둘러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푸르디 푸른 하늘에 각양각색으로 떠다니는 뭉게구름들 사진들을 찍으며 딸아이와 이야기 나누다보니 어느새 미니버스가 기다리는 선착장에 다다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또바 호수를 직접 보고 거닐어보았다는 성취감에 잠시 뿌듯해졌다. ‘둘째 아이가 자라 4학년이 되면 그 때 또 와야지…’ 다짐하며 버스에 올랐다. 

김기역 논에서.jpg▲ [사진: 김기역]
 
  리차드는 이후에도 120미터 길이의 시삐소삐소(Sipiso-piso) 폭포와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한 브라스따기(Berastagi)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그곳에서 온천을 함께하며 우리는 또다른 추억들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지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격의없이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아침 자룸그룹(Djarum Group)이 운영한다는 꽃이 만발한 놀이동산은 정말 깨끗하고 예뻤으며 15도 정도의 기온 덕분에 정말 상쾌하고 즐거웠다. 메단에 다시 돌아와 기념품들을 사기 위해 들른 시장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한 과일과 물건이 가득했다. 딸아이는 토끼와 말 구경에 정신이 없었고 평소에는 입도 대지 않던 옥수수를 신나게 뜯어 먹고 있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에도 슬픔같은 것이 끼어들 틈새가 없었다. 서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우리 또 만나요!” 인사했고 그것이 서로 거짓이 아님을 느꼈다. 

김기역 포구에서.jpg▲ 선착장에서 [사진: 김기역]
 
  시간은 야속하게도 멈춤없이 흐를 것이고 점점 줄어들어가는 수명 속에서 우리는 조바심 나는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호의가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면 그 웃음소리들과 추억들이 따뜻한 액자로 남아 가슴에 걸린다. 살다가 보면 불현듯 바라보게 되는 그 액자에 가만히 웃고있는 그들을 보면 내 발걸음은 어느새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이 되도록 살아가라고 또바에서의 친구들에게 배웠고 그러고 싶어졌다. 야속한 시간도 따듯한 추억들 앞에서는 속절없는 신세가 된다.


*** 인문창작클럽(INJAK) 
  인문창작클럽 (인작: 회장 이강현)의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임입니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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