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젝 이미지 [사진 : 고젝 웹사이트]
고젝, 열악한 대중교통과 교통체증 등 결핍을 기회로 급부상
고젝의 생활밀착형 서비스, 개인운전기사와 입주가사도우미 임금 상승 반영해 상품화
자동차는 공유하고 서비스는 아웃소싱… 산업지형 바꿔
디지털경제를 통한 무현금 사회로 이동… 투명한 재정·세무 행정 촉진
동남아 1위 그랩, 우버 인수… 인도네시아서 고젝 독주에 저지 나서
[편집자주] 이 글은 인도네시아 관련 토론·연구단체인 인도네시아포럼 서울센터의 3월 정기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글 :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온라인 차량 호출서비스인 고젝(Go-Jek)과 그랩(Grab), 우버(Uber) 뉴스가 요즘 인도네시아 언론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에도 연일 보도되고 있다. 자카르타 거리에서는 고젝과 그랩, 우버 유니폼을 입은 오토바이 운전기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예전에는 “차가 없어서 못 나가요”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우버 타고 갈게요”라고 말한다. 휴일에는 운전기사를 부르는 대신 음식배달서비스인 고푸드(Go-Food)와 장보기 서비스 고마트(Go-Mart)를 이용한다. 고젝이 최근 3~4년 새 가져온 변화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던 시기인 2015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고젝. 고젝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산업지형을 흔드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고 데이터 사용료가 저렴해지는 등 인터넷 환경이 개선되면서, 스마트폰이 주요 인터넷 접속기기로 자리를 잡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임금과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도시화와 핵가족화를 넘어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가족 수가 줄고 주거공간이 소형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입주가사도우미 대신 출퇴근하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게 됐고, 개인운전기사 대신 직접 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고젝은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상품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취약한 틈새에 서민들의 주요 이동수단인 오토바이택시인 오젝(Ojek)을 스마트폰으로 호출하는 서비스인 고젝을 끼워 넣었다. 교통체증과 개인운전기사 관리의 어려움에 직면한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전달하고(Go-Send) 음식도 배달(Go-Food)해준다. 가사도우미가 하던 일은 장보기(Go-Mart)와 청소(Go-Clean) 등을 서비스로 상품화했다. 가구 같은 큰 물건을 옮기는 이삿짐 서비스는 고박스(Go-box)로, 아픈 몸으로 긴 줄을 서야하는 의약품 구매를 대행해주는 서비스는 고메드(Go Med)라는 브랜드로 상품화했다. 또 영화표를 포함한 티켓을 예매해주는 사이트 고틱스(Go-Tix)도 출시 직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어 고젝은 서비스 구입 비용을 처리하기 위한 결제서비스 고페이(Go pay)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고젝은 지난해 연말 3개의 핀테크 업체를 인수했다. 인도네시아는 고페이 등 온라인 플랫폼들이 도입하고 있는 디지털화폐를 통해 디지털 경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는 은행계좌를 보유한 성인이 35% 정도이고 신용카드 보유자는 4% 정도로 금융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 고젝 발표에 따르면 2017년 12월 기준으로 고젝 플랫폼에서 거래에 직접 참여한 모바일 회원은 주당 1,500만 명에 달한다. 이 회사와 협력하는 운전기사는 약 90만 명이다. 식당 등 협력업소는 12만5천개이며 이중 80% 이상이 중소기업이다. 또 고페이를 통해 월간 1억 건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 그랩 이미지 [사진: 그랩 웹사이트]
고젝은 자사의 이런 데이터를 활용해 소액대출사업을 펼치고 향후 보험 등 금융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고젝은 인도네시아국영은행 BNI와 협업해 고푸드 가입 식당들이 소액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고푸드 가입 식당의 거래실적을 담보 대신 활용하는 것이다.
고젝의 사업 방향은 무현금사회와 디지털경제를 추구하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책과도 일치한다. 정부는 세수입 확보와 재정·조세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화폐 이용을 장려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한 직접 보조금을 현금으로 지급했으나 이제는 전자화폐로 지급하기 시작했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고젝은 2010년 미국 하버드대 MBA를 졸업한 젊은 창업자 나디엠 마까림이 설립했다. 마까림은 오젝에서 착안해 고젝을 만들었다. 초기 고젝은 대중적인 메신저 BBM(블랙베리 메신저)을 기반으로 오토바이 운전기사와 승객을 연결해 주는 작은 콜센터 회사에 불과했다. 고젝은 2015년 1월 스마트폰 사용 인구가 증가하는 시점에 고젝 앱을 런칭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이후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던 다양한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면서 지금은 생활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중개하는 플랫폼이 됐다.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고 있는 고젝이지만 앞날이 만만치 않다. 고젝과 그랩 등 차량호출서비스 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거리에는 전통적인 택시가 줄었다. 인도네시아 양대 택시회사 블루버스와 익스프레스 소속의 택시기사들은 고젝과 그랩의 영업을 금지시켜달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이후 고젝과 블루버드, 그랩과 익스프레스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협업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27일에는 고젝 기사들이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운행요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이미 영향력이 커진 고젝과 그랩을 대중교통으로 분류해 기사의 고용 안정과 승객의 안전을 보장할 법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동남아시아 1위 차량 호출업체인 그랩이 세계 1위 업체인 우버의 동남아 사업을 인수함에 따라, 앞으로 인도네시아 시장을 놓고 그랩과 고젝 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싱가포르에 본부가 있는 그랩은 우버의 동남아시아 사업 인수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전역의 117개 시·군에서 여행, 배달, 온라인결제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합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고젝으로서는 인도네시아 시장을 지키면서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다른 시장으로 넓혀 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자동차,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등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동시에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꾼 상품들이다. 나는 2015~2018년 인도네시아의 대표 상품을 ‘고젝’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분간 고젝은 디지털 경제로 이행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정부와 협력하는 중요한 민간 축으로 역할을 하며 인도네시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