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鏡 - 시의 거울에 마음을 비추어보다 <박정자>
꽃이, 봄꽃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고 화사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서른 나이를 지나면서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꽃들이 그럴 수 없이 예뻐 보이고, 꽃그림 앞에 더 오래 머물게 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자연의 신호인지 모릅니다.
이 봄날에, 나무들이 더 빛나고 더 환하게 보이는 것도......, 조바심 반 넉넉함 반으로 비탈을 밟고 있는 나이의 마음 탓인 거라고 단정 지어봅니다.
오늘은 먼 곳까지 나가 꽃피는 나무를 오래 바라보다 돌아왔습니다.
산벚꽃을 보며
/ 전재승
황사 바람 부는 봄날
가까이 또는 멀리 보이는 산에
산벚나무 여기저기 꽃을 피우니
가뜩이나 흐린 풍경이 환하게 밝다
쉰 살에 접어들면서
머리털이 약쑥같이 희어진다는 옛말처럼
내 머리에도 산벚나무 꽃이 피었다
거울 속의 시간과 공간을 상깃상깃 밝히면서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칼을 보며
저만큼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해 본다
산벚나무 연분홍 꽃을 피워
봄 한철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나이 오십에 공자는 천명(天命)을 알았다는데
어쩌다 밤잠을 못 이루며 뒤척이는 밤에
내 영혼도 저리 환한 꽃을 피울 것인가
산벚나무 가지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박정자
1991년 시인 등단하여 <그는 물가에 있다> 등 6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사람과 사물의 내면에 귀기울이는 시창작으로 경기문학상과 서울신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