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鏡 - 시의 거울에 마음을 비추어보다 <박정자>
환지통은 절단된 신체 부위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감각과 통증이라고 하죠. 머리의 인식이, 잃어버린 팔이나 다리를 인정하지 못해서 수긍할 수 없어서, 현실로 앓는 생생한 아픔입니다.
‘사랑은 거기 어디 있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윤석산 시인은 한 몸이던 어떤 사랑을 여의었기에 서러움도 잊은 채 저렇게 걷고 있는 것일까요. 칼날에 베이듯 예리한 통증을 견디며 살고 있는 당신은 또, 차마 잊지 못할 무엇을 잃고서 봄이면, 봄마다 그리 심하게 환지통을 앓고 있나요.
봄볕이 환해서 더 아픈 환지통입니다.
봄이 오는 뚝길을 걸으며 -환지통 .4
/ 윤석산
오늘은
사랑은 거기 어디 있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노트북 화면에 '나'라고 쓰고, 다시 그 옆에 '그대'라고 쓰고
우리가 만날 곳을 만들기 위해 '봄이 오는 뚝길'이라고 쓰고
아주 나른한 햇살 속을 걷고 있습니다.
가다가 쪼그리고 앉아 민들레꽃을 보고, 개망초꽃도 보고,
휘파람을 불며 다시 걷고 있습니다.
저기 새물내 맡고 오르는 숭어들이 퍼득하고 뛰어오르네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비늘들.....
놈들은 누구랑 알을 낳고 바다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사랑은 거기 어디 있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그냥 걷고 있습니다.
박정자
1991년 시인 등단하여 <그는 물가에 있다> 등 6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사람과 사물의 내면에 귀기울이는 시창작으로 경기문학상과 서울신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