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영민展 ‘두 마리 토끼’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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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展 ‘두 마리 토끼’의 공존

기사입력 2018.06.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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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2.jpg

글 :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국장
 
남도의 항구도시 목포에 위치한 성옥기념관 전시실에서 ‘두 마리 토끼’라는 주제로 화가 김영민 작가의 전시회가 오는 6월 30일까지 열린다. 이어 10월에는 한 달 동안 호텔현대목포 갤러리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작품으로 ‘두 마리 토끼 2’ 전시가 이어진다. 김 작가의 회화는 주로 여러 인물을 하나의 인물로 추상화하여 복잡한 인간관계 내면의 세계를 드러낸 작품들과 인간과 자연의 유기체적 결합을 통해 서로 대상화 되어 대립되는 관계를 극복해보려는 작품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전시작품들은 몇 점의 추상작품을 제외하고 보기 편한 풍경그림으로 가득했다. 아담한 전시장을 꽉 메운 30여 점의 작품들은 종이 위에 수채물감으로 그려낸 들판과 숲, 호수와 시골마을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보여준 특유의 강하면서 밝은 선과 색의 힘은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자연을 담은 풍경 작품은 의외였다. 심적 변화가 있었던 걸까?

김 작가는 올드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오랜 시간 풍경화를 그리지 않았다며, 이런 선입견 형성에 교육도 한몫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스스로를 이방인이나 타인으로 간주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작가의 태도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는 예전에는 작업실에 갇혀있을 때 편안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자신이 있는 곳 어디에서 든 화구를 꺼내 작업을 하는 모습에 스스로 놀란다고 했다. 이제 그는 변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전시된 작품들은 지난해 중국 여행부터 1년 동안 집중해서 자신의 주변을 그린 그림들 중 일부다.

김영민 1.jpg
 
작가는 2010년까지 7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얼마 되지 않아 직장에 취직했고 10여년을 직장인으로 보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작업의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이어갔지만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귀국했다. 시골 도시인 김제에 정착, 화가로 돌아온 그의 삶은 쉽지 않았다. 새로 시작해야 된다는 부담감과 생계에 대한 의무로 수 년의 시간을 흘려 보냈고 작업 포기란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그 시점, 갑작스럽게 참여하게 된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작품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김 작가는 3회의 개인전을 열고 3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전시를 둘러보며 문득 작품 속 어디에도 전시 주제인 ‘두 마리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속담과 관련 있나? 전시 주제가 궁금했다.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도 지금껏 작업을 지속해왔던 인간의 감정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라며 "다만 인물 대신 풍경이 등장하며 또한 작품 속 주제에 관한 이미지를 담아내는 대신 작품이 나오게 된 작가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보이지 않는 토끼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두 마리 토끼는 살아가며 수없이 선택의 상황에 내몰리는데, 선택의 중요 기준이 되는 일과 삶, 이성과 본능, 개인과 사회, 욕망과 순수, 사랑과 증오 등 내면을 채우고 있는 이중적인 갈등의 심리상태이자 그 과정에서 표출되는 강박과 공포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라며 "과거에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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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가 속한 미술계에서도 이러한 강박은 뚜렷하다. 수많은 작가와 수많은 작품들, 수많은 이론과 떠도는 주장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작품을 바라보는 기준처럼 되어왔고 관객의 정보량과 경험은 쏟아지는 작품들 속에서 자신만의 보편적 명품을 판별하는 기준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작가는 그 이면에 ‘공포심’이 자리하고 있으며, 공포심은 작품을 타자화하며 수평적인 대면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았다. 만약 관객들이 공포심으로 작품을 대하게 되면, 관객은 작품 자체와의 대면보다 작품을 감싸고 있는 다양한 정보의 수집과 소비에만 집중하게 되어 결국, 관객과 작품은 서로 대립할 수 밖에 없다. 관객이 소비하고자 하는 정보의 근거로만 작품은 가치를 가지며 결국 소비된 작품과 작가는 사라지게 된다. 작가는 항상 이 지점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두 마리 토끼’라는 전시 주제는 내 안의 공포심으로 인해 결국 소비되어 사라져 버리는 우리들 사이에 맺고 있는 관계를 빗댄 것이다. 보다 나은 관계의 정립 즉, 토끼의 화해와 공존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나 자신에게 먼저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강박과 공포심은 정보를 수집하고 소비하고 픈 감정을 내 안에 자석처럼 끌어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미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공포의 감정을 지니며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과 생존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종착점에 평화와 공존보다 상대를 향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자신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집어 든 리플릿에 적힌 작가의 말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림을 언어로 분석하고 예술을 머리로 이해한다. 정보로서의 가치가 소비된 그림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지식정보의 유령은 그림을 타자로 대상화하고 공포의 감정을 작가와 사회에 남긴다. 두 마리 토끼는 공포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일상과 예술, 나와 타자, 개인과 사회의 대립 없는 공존을 위해 던지는 일종의 화두다. 그림 속, 두 마리 토끼는 없다. 하지만 둘의 이야기는 어디든 숨어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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