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성철] 암스테르담서 자카르타 숨은그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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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암스테르담서 자카르타 숨은그림찾기

기사입력 2018.07.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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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jpg▲ 중부자바 주 마글랑 지역에 있는 보로부두르 불교사원에서 사라진 불상의 잘린 머리 부분이 암스테르담 열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글 :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네덜란드어로 ‘GEEN INGANG’, 바로 그 아래에 영어로 ‘NO ENTRY’(출입금지)라고 써놓은 붉은색 표지판.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이민국 입국심사대 입구의 유리문 상단에 부착된 표식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카르타에 서민들이 사는 ‘골목’ 또는 ‘통로’라는 의미의 Gang(강)이라는 단어가 연상이 됐는데, 네덜란드어 사전을 찾아보니 ‘통로’라는 뜻이 있었다. 익숙한 단어가 보이는 순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샌가 사라지고 암스테르담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지난 6월 인도네시아 무슬림의 최대 명절인 이둘피트리(일명 르바란) 연휴를 이렇게 네덜란드에서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어에서 골목이라는 의미 '강'의 어원이 네덜란드어에서 유래됐는 지는 연구가 필요하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터미널 내 매점에서 음료를 마시며 일정을 정리하는데 인도네시아말이 들렸다. 현지에 사는 인도네시아사람이 입국하는 인도네시아 지인을 마중 나와 만남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이어 공항터미널을 빠져 나오는 동안 인도네시아사람으로 보이는 여러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잘 정돈된 수많은 운하를 거쳐 여장을 풀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는데 호텔 1층 로비 안쪽에 마마 마깐(Mama Makan)이라는 이름의 인도네시아식 식당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프랑스,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 여타 유럽국가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국가다. 북유럽 특유의 변덕스럽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다른 유럽국가와 비교해 문화 유적과 유물이 많지 않아 유럽여행 목록에서 뒤쳐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다른 유럽 국가를 가기 위해 잠시 들러 박물관 등 암스테르담 주변의 관광지만 살짝 보고 간다. 한국인들에게는 풍차와 튤립, 2002년 월드컵의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감독 히딩크 정도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를 인도네시아와 연관된 나라로 바라보면 여행지로서 매력이 달라진다.  

식당.jpg▲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인도네시아식 음식점. [데일리인도네시아]
 
애초 암스테르담 여행 목적이 현지에서 인도네시아의 흔적을 찾는데 있는 만큼 둘째 날 일정은 암스테르담의 명물 전차(Tram)를 타고 종점에서 종점으로 여행을 떠났다. 곳곳에서 인도네시아 음식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도심에 위치한 삼뿌르나(Sampurna)라는 식당 간판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들어갔다. 인도네시아 서부수마트라의 빠당 음식으로 소고기에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어서 조린 ‘른당’(Rendang)을 주문해 인도네시아 맥주 빈땅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으로 보이는 식당주인에게 인도네시아말로 식재료의 조달방법에 대해 묻자,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라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신중화(新中華)라는 상호의 중국식 식당에서는 돼지고기구이인 ‘바비 빵강’(Babi Panggang)을 비롯해 여러 가지 요리를 인도네시아식 이름으로 표기했다. 중국계로 보이는 식당 종업원은 내가 자카르타에서 살고 있다고 하니 반가워하며 친절하게 접대했다.

이원복 교수가 쓴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편에 따르면, 2009년 기준 네덜란드의 인구는 1,650만명이며 이중 네덜란드 원주민은 1,320만명(80.6%)으로 가장 많고 이어 서유럽 출신이 143만명, 인도네시아 출신이 39만명, 독일인이 38만명 순이다. 인도네시아인은 식민지배 기간에 유학생, 관리, 고위층 자녀의 신분으로 이주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네덜란드에 협조했던 인도네시아인들이 대거 현지로 도피했다. 지금도 유학과 관광 등을 목적으로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네덜란드를 방문하거나 체류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암스테르담의 속살을 엿보기 위해 셋째 날부터 박물관 탐사에 나섰다. 시내 동부 지역에 5층 높이로 웅장하게 서있는 열대박물관(Tropen Museum)은 과거 식민지 개척시대에 인도네시아, 수리남과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탐험가들의 전리품과 수집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특히 이 박물관의 수십만 점의 유물과 사진 가운데 절반 가량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져왔다. 정교한 장식과 화려한 색이 그대로 보존된 전통 의복과 장신구, 끄리스와 와양꿀릿, 섬세하게 조각한 불상과 힌두신상, 그 시절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과 동영상 등은 역사·예술적 가치와 보존 상태에서 인도네시아에 있는 박물관 전시품들을 압도했다. 인도네시아관의 20~30%를 차지하는 파푸아 전시관은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파푸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국립박물관(Rijks Museum)에는 19세기 자바전쟁의 영웅인 디뽀느고로 왕자를 소재로 그린 ‘디뽀느고로의 왕자의 체포’가 있다. ‘디뽀느고로 왕자의 체포는 네덜란드 화가 니콜라스 피에네만이 먼저 그렸고, 이후 인도네시아 화가 라덴 살레가 이를 모티브로 자신의 감정을 넣어 다시 그렸다. 대중적으로는 라덴 살레의 그림이 더 잘 알려져 있고, 일부 평론가들은 라덴 살레의 그림이 더 잘 그렸다고 평가한다. 2012년에 인도네시아 국립미술관에서 라덴 살레의 작품을 처음 보았고, 당시 옆에 니콜라스의 그림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전시회 해설사가 나중에 암스테르담에 가서 원화를 확인해보라고 추천했는데, 진짜 그 말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빠뿌아.jpg▲ 암스테르담 열대박물관에 전시된 파푸아 사람을 형상화한 밀납인형. [데일리인도네시아]
 
미술사에서 손꼽히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도 국립박물관 1층에서 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전시관 입구에 걸린 있는 고흐의 초상화 작품에는 고흐가 인도네시아 영향을 받아서 색채가 밝아졌다는 설명이 걸려 있었다. 이후 방문한 빈센트 반 고흐 박물관에서는 어두운 톤의 고흐의 전기 작품과 밝은 톤의 후기 작품을 대비해 전시하면서, 그가 일본 화풍, 프랑스 화풍, 열대 식민지 영향 등으로 화풍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가 식민지배국으로서 인도네시아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반대로, 네덜란드도 인도네시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여행을 준비하면서, 자카르타의 옛 이름인 바따비아가 네덜란드의 옛 종족의 이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네덜란드는 16세기 말에 지금의 수도 자카르타인 자야까르따를 점령한 1619년 3월 바따비아(Batavia)로 개칭했다. 바따비아족은 게르만족 계열로 과거 뛰어난 토목기술과 불굴의 의지로 험한 땅을 개척한 것으로 유명하다. 네덜란드는 동인도의 수도를 바따비아로 이름을 붙이고 운하와 도개교 등 토목과 건물을 암스테르담의 축소판으로 만들었다. 암스테르담을 거닐면서 계속 자카르타의 꼬따 뚜아(Kota Tua)가 연상되는 이유였다. 

네덜란드를 소개할 때 많이 언급되는 장점이 관용이다. 실제로 내가 방문한 박물관의 설명과 읽은 여러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경제적인 목적으로 인도네시아를 지배한 만큼 그리스도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16세기 유럽 종교개혁 시기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우수한 인재들이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번화한 중앙역 광장에 서서 둘러보면 다양한 종교, 인종,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다. 문득 인도네시아가 국민의 85% 이상이 무슬림이면서 이슬람국가가 아니고 지금도 다소 종교와 종족간 분쟁의 불씨가 있지만 다문화와 다종교를 가진 넓은 군도를 통일국가로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네덜란드로부터 이같은 관용을 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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