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에세이] 데와다르의 섬, 까리문자와/노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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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데와다르의 섬, 까리문자와/노경래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8.08.3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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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노경래


저는 14세기에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아미르 하산(Amir Hasan)이구요. 워낙 오래되어 제가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831 까리문자와 위치.jpg▲ 까리문자와 위치
 
저는 자바 북쪽의 까리문(Karimun)이라는 작은 섬의 서쪽 기슭에 누워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제가 이슬람을 최초로 이곳에 전파하였다 하여 저를 풍광이 좋은 이곳에 묻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묻혔을 때는 까리문 앞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울창해진 잠부메라(Jambu Merah) 나무와 데와다루(Dewadaru) 나무 틈새로 푸른 바다가 살짝 보일 뿐입니다. 저는 이른 새벽 통통배의 소리에 잠을 깨고, 하늘을 붉게 물든 노을이 사라질 때 잠을 청합니다.

830 아미르 하산 묘지.jpg▲ Amir Hasan(Sunan Nyamplungan) 무덤
 
저는 자바해가 내려다보이는 중부자바 꾸두스에 있는 무리아산(Gunung Muria) 기슭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이슬람을 자바에 전파한 성인 중 한 명인 수난 무리아(Sunan Muria)의 아들입니다. 

저로서는 좀 억울한 측면이 있으나, 사람들은 제가 어릴 적에 버르장머리가 없이 자랐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엄격한 아버지는 저의 그런 꼴을 보다 못해 저를 집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자바섬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든 집을 떠나 목적지도 없이 보트를 타고 무작정 북쪽 바다로 나갔습니다. 정처 없는 유배를 떠난 것이죠. 며칠 동안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간 후에 조그만 섬에 표착했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겨 도착한 것이 지금의 까리문입니다. 

지금이야 스마랑에서 비행기로 30분이면 도착하고, 쯔빠라의 까르띠니(Kartini) 항구에서 고속 페리를 타면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요.

마자빠힛 설화에 따르면, 자바섬은 원래 바다 위에 떠다니는 낙엽 같아서 사람이 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바신의 명령이 따라 비슈누와 브라흐마신이 인도의 스메루산(Semeru, 須彌山)의 일부를 떼어 자바로 옮긴 후 자바섬을 인도와 밧줄로 연결시켜 고정시킴에 따라 사람이 살 수 있게 하였다고 합니다.

비슈누와 브라흐마신이 떼어온 인도의 스메루산을 지금의 동부자바에 옮겨 꽝 내려 놓은 바람에 파편이 튀어 까리문자와(Karimunjawa)가 되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후문에 따르면, 저를 쫓아낸 저의 아버지는 무리아산 정상에서 제가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을 지켜보셨다고 합니다. 제가 아버지의 시야에서 가물가물 점차 보이지 않게 되자, 자바어로 ‘Kremun-kremun’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Kremun’은 자바어로 ‘희미하다’라는 뜻입니다. 자바에서 보일 듯 말 듯하다 해서 후세 사람들이 이 섬들을 ‘Karimunjawa’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저의 아버지가 저를 쫓아낸 것이 아니라, 저를 교육시키고자 했다는 것을 좀 철이 들어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희 부모님은 ‘저 멀리 자바 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까리문아 간밤에 잘 잤느냐’고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까리문 해안가에서 파도에 휩쓸려 온 나무 막대기를 주어 지팡이로 삼으면서 이 섬의 안쪽으로 향했습니다. 허기지고 지쳐서 잠시 쉬기 위해 이 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으니 바로 아름다운 나무로 자랐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나무를 데와다루 또는 저의 또 다른 이름을 따서 냠뿔룽(Nyamplung) 나무라고 부릅니다. 

830 데와다루 나무.jpg▲ 데와다루 나무
 
이 나무는 이 섬에서 많이 번식이 되었죠. 제가 죽자 사람들이 이 나무를 제 무덤가에 많이 심기도 했구요. 이 나무는 정말 목질이 무겁고 단단하여 철목(鐵木, ironwood)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러니 이 나무로 돈 좀 벌어보겠다고 하는 장사꾼들이 마구잡이로 벌목하는 바람에 이제 이 섬에서 이 나무를 찾는 것이 여간 쉽지 않습니다. 이 섬의 읍내 광장(Alon Alon Karimunjawa)에서 매일 열리는 야시장에서 보따리 장수 아줌마들이 이 나무로 만든 목걸이나 묵주를 팔고 있으며, 군인들이 부하들 군기 잡는데 쓰는 지휘봉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왜 이 나무가 스리랑카의 나라목(國木)이 되었는지는 저도 모를 일입니다. 

까리문 야시장.jpg▲ 까리문 읍내 광장에서 열리는 야시장
 
이 섬에서 데와다루는 찾기 힘들게 되었지만, 망그로브 숲은 참 울창합니다. 까리문자와 섬들은 그야말로 수많은 망그로브 뿌리가 떠 받치고 있는 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생태관광이라는 명목으로 망그로브 숲에 산책길을 조성하여 입장료를 받는 곳도 생겨났습니다. 망그로브를 잘라내고 망그로브 숲을 보호하겠다는 웃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에게는 현지인이 내는 입장료의 10-20배를 받고 있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겠으나 이곳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앞으로 망그로브 숲을 잘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좋게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까리문자와는 구글 지도로 보아도 보일락 말락 하는 2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면적은 제주도의 4% 정도 될 것입니다. 이 섬들 중 그나마 가장 큰 섬은 제가 누워있는 까리문입니다. 남북 길이가 14km 정도됩니다. 

저를 시작으로 까리문자와에 점차 사람들이 몰려와 거주하게 됩니다. 현재 까리문자와에는 약 9천명이 살고 있습니다. 자바족이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 부기스족과 마두라족 순으로 많습니다. 자바족은 주로 농업과 서비스업으로, 부기스족은 선원 등 어업으로, 마두라족은 건어물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족들이 쓰는 공용어(lingua franca)는 인도네시아 표준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어가 아닌 자바어입니다. 바하사를 공부 좀 했다는 외국인들도 전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걱정 없습니다. 당신이 까리문자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바디랭귀지로라도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입니다. 

옛날에 뱃사람들에게는 까리문자와가 발리보다 더 알려졌습니다. 발리는 오랫동안 해적들의 기지 역할을 한 반면, 까리문자와는 무역로의 중간 기착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두라의 소금을 칼리만탄으로 보낼 때, 말루쿠의 향신료를 자바를 거쳐 유럽으로 보낼 때, 말라카 해협을 거쳐 호주로 오갈 때,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경쟁적으로 티모르 지역의 백단향을 유럽으로 보낼 때, 자바에서 중국으로 공물을 보낼 때 이 섬을 거쳐 갔습니다. 

1293년 싱아사리(Singasari) 힌두왕국을 침입한 쿠빌라이 칸의 군대와 정화 제독이 이끄는 대함대도 이 섬을 지나 자바섬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최근에 이곳에서 발견된 도자기는 중국 명대의 것이라고 합니다.

대항해시대에 서양의 항해자들에도 까리문자와는 이미 익숙한 섬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까리문자와는 Chirimao, Carimon Jawa 등의 이름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오스만 터키 항해자,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항해자들의 기록에 까리문자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메르카토르의 친구이자 경쟁자였고, 플랑드르(벨기에 북부)의 지도 제작자이며 지리학자인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가 1570년에 만든 <동아시아 지도>에서도 까리문자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선 이후 서양의 많은 생태학자들이 까리문자와의 해양 생물다양성과 원시림에 관심을 갖고 방문하였습니다. 이들은 까리문자와의 산호초, 해조류, 망그로브 숲, 저지대 열대 강우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섬의 물은 염분이 많아 식수로 쓸 수 있는 물이 많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부분 에메랄드 빛 바다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백사장, 물고기 니모와 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스노쿨링을 하기 위해서 3박 4일 일정으로 이곳을 다녀 가십니다. 

830 클레앙섬 망그로브.jpg▲ 글레앙섬(Pulau Geleang) 앞 바다의 망그로브
 

네덜란드 사람들이 까리문자와를 ‘자바의 카리브(Caribbean van Java)’라고 했다는데, 저는 카리브를 가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평하는 것에 대해 살짝 기분이 나쁩니다. 카리브를 가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까리문자와가 더 낫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까리문자와의 풍광은 그렇다고 치고 숙박비, 음식비, 관광 패키지 비용은 주머니가 가벼운 분들에게도 괜찮은 수준입니다. 머물 수 있는 숙소의 등급도 다양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다만, 까리문섬은 작은 섬이어서 택시가 없기 때문에 숙박업체에서 알선하는 자동차를 이용하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해야 합니다. 가격이 좀 비싸다고 생각되면, 스쿠터를 렌트하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관광 안내를 하는 사람들의 고민 중 하나는 서양인들은 해변에서 햇볕에 그을리는 일정을 선호하는 반면, 동양인들은 가급적 햇볕에 타지 않은 일정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이 부쩍 느는 추세이기 때문에 저도 점차 고민이 깊어갑니다. 물론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의 아름다운 바다와 백사장, 바다 속 멋진 산호초와 물고기떼를 자랑삼아 보고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곳을 다녀 가신 분들 대부분은 앞으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점차 늘면 이곳이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 주민들의 생계도 걱정해야 되니 말이죠. 기왕에 이곳에 오시려면 바다가 아름다운 건기에 오시기 바랍니다. 

까리문자와에 이토록 많은 것을 주신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인문창작클럽(INJAK)
인문창작클럽 (인작: 회장 이강현)의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임입니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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