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성철] "히잡은 신앙일까? 패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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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히잡은 신앙일까? 패션일까?"

기사입력 2018.11.0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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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자카르타 도로에서 정복을 입고 교통정리를 하는 여경, 이민국에서 민원업무를 보는 여성 공무원, 맥도널드 계산대에 서 있는 판매원, 횡단보도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 익명의 여성들… 모두 히잡을 썼다. 공무원이 쓰는 히잡은 정복에 어울리는 짙은 갈색이고,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직원들은 검은색이 일반적이다. 횡단보도에 서있는 청바지 차림의 젊은이들은 옷보다 더 화려한 색상의 히잡을 쓰고 있다.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카락과 귀와 목을 덮는 스카프를 아랍어로 히잡(hijab), 인도네시아로 질밥(jilbab), 영어로 베일(veil)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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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은 공식적으로 히잡 착용이 허용되지만 의무는 아니다. [사진: 인도네시아 경찰청]
 
그렇다고 모든 인도네시아 여성이 히잡을 반드시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인도네시아 여성지도자인 렛노 마르수디 외무장관과 수시 뿌지아스뚜띠 해양수산장관은 공식적인 자리든 비공식적인 자리든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다. 조꼬 위도도 대통령의 영부인 이리아나 여사는 장소에 따라 히잡을 쓰기도 하고 벗기도 한다. 유숩 깔라 부통령의 부인인 무피다 깔라 여사는 늘 히잡을 착용한다. 

히잡의 종류.png▲ 히잡의 종류 [사진: 구글 이미지]
 
 “왜 히잡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자카르타에 근무하는 한 직장여성은 “헤어스타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얼굴 선을 바꿀 수 있어 예쁘게 보인다”고 답했다. 히잡이 종교적으로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외부 시선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도구라는 통념에 위배되는 답으로,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히잡의 색상이 검은색이나 흰색처럼 무채색에 무늬도 없었지만 지금은 색과 무늬만이 아니라 소재와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또 히잡에 어울리도록 디자인된 옷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김형준 강원대 교수는 저서 ‘히잡은 패션이다’에서, “히잡이 패션 아이템으로 전환되면서 차별화, 고급화, 브랜드화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히잡은 여성의 미적 표현과 이슬람이 조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논평했다.  

한 언론사 근무하는 모 여기자는 히잡을 쓰는 이유에 대해 “밤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중교통을 탈 경우 히잡을 쓰면 집적거리는 남자들이 줄어서 편하다”라고 말했다. 수하르또 정권인 신질서시대(Orde Baru)가 붕괴된 1998년부터 수년 간 이어지는 혼란기에 일부 무슬림 여성들은 사회불안과 성범죄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수단으로 히잡을 착용했다. 정치 · 사회적 격변기에 이슬람세력이 약해진 국가권력의 빈틈을 채우면서 사람들은 종교적 정체성을 좀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게 됐다. 

내가 1980년대 말에 인도네시아에 첫 발을 디뎠을 때만해도 히잡을 쓴 여성은 흔하지 않았다. 한국계 제조공장에서는 작업장의 안전을 위해 히잡을 쓰는 직원의 채용을 꺼렸고, 드물게 히잡을 쓰고 온 여직원에게 히잡 착용을 통제하면, 이 여직원이 속한 이슬람사원의 지도자가 회사를 방문해 항의하는 정도였다. 사회학자 누르 아이샤 꼬따루말로스는 자신이 학생이던 1993년에는 히잡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필수요소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히잡을 쓴 여성을 시골사람, 근본주의자, 극단주의자 등으로 보았다며, 이슬람 의상은 중동스타일을 모방한 것으로 여겼다고 설명했다. 

신질서 시대에는 중앙집권 강화와 종교집단이 정치세력화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을 의도적으로 억눌렀다. 하지만 장기집권을 꾀했던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슬람 세력을 회유하고자 1990년에 인도네시아지식인무슬림연합(ICMI)을 결성해 이슬람 지도자들을 참여시키고, 공립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히잡 착용이 허용된 것이다. 또 현대화와 세계화에 반대하면서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는 여성들도 생겨났다. 1998년 이후 개혁시대에는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는 지방조례가 제정될 정도로 히잡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디안뻘랑이의 히잡.jpg▲ 패션아이템으로서 히잡 [사진: 구글이미지]
 
2008년 자카르타 패션위크 개막식에 무슬림의상 패션쇼가 열렸다. 무슬림의상이 패션산업에 중요한 부분이 된 것이다. 지방자치제 확산에 따라 2000년대 초중반에 이슬람법을 적용하는 지역이 늘고 연예인들이 히잡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예인들은 이슬람 금식 성월인 라마단과 무슬림 최대 명절인 르바란 때는 히잡을 썼다가 상황이 바뀌면 히잡을 벗는 등 융통성을 보였다. 또 품이 넉넉하게 디자인된 무슬림 옷 대신 일상복에 히잡을 쓰는 여성들도 늘었다. 히잡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으면서 무슬림패션이 패션산업의 일부로 성장했다. 

2010년대에는 히잡을 쓴 여성을 공식 행사장이나 무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선출직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은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여성이면 스스로 히잡을 쓰고 남성이면 부인에게 히잡을 쓰게 했다. 맥도날드와 피자헛 같은 외식업체 종업원만이 아니라 국가대표 운동선수들도 히잡을 쓰고 경기를 했다. 

성지순례 아구스 부부1.jpg▲ 정치인 아구스 유도요노 부부. 아구스 부인은 평상시에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지만 특별한 시기에는 히잡을 착용한다. [사진: 구글이미지]

히잡 착용은 시대에 따라 다른 반응을 이끌어냈다. 사회학자 누르 아이샤 꼬따루말로스에 따르면, 수하르토 집권기에는 히잡을 쓴 여성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취업을 하지 못했다. 직장에서 히잡을 쓰는 것은 더 이상 승진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그는 졸업사진을 찍을 때 히잡을 쓴 학생은 졸업앨범에 실지 않겠다고 해서 일부 학생들이 억지로 히잡을 벗어야 했지만 누구도 항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요즘은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으면 신앙이 없거나 종교적 위선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제 여성들이 히잡을 쓰도록 강요당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10년 전후로 개인소득이 증가하고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패션을 포함해 이슬람 문화의 상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점도 히잡 착용의 한 요인이다. 또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서 다시 부상함에 따라 이슬람 복장을 선택하는 무슬림들이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은 2억6천만명의 인구가 있고, 이중 85% 이상이 무슬림이다. 이슬람 패션산업이 성장하고 있고, 정부도 이를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난 30년 간 인도네시아의 종교 지형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고 이에 따라 히잡 착용의 패러다임도 변했다. 신질서시대 붕괴 후 히잡 착용이 늘면서 오히려 히잡이 가지는 종교적 중요성은 희석됐다. 이제 히잡은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들에게 선택이고 언제든 다시 벗을 수 있는 패션아이템 중 하나이자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앞으로도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히잡, 여성, 패션 등에 대한 인식은 긴 시간을 두고 바뀔 것이다.  [데일리인도네시아] 

참고문헌: 
1. '히잡은 패션이다' (김형준 지음 / 서해문집)
2.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연구 (이정은 / 2003년 이화여대)
3. 자카르타포스트 (2017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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