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인도네시아 근현대 건축, 건축가 이야기/김의용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칼럼] 인도네시아 근현대 건축, 건축가 이야기/김의용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8.11.22 12: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글·사진: 김의용

20세기 초, 전 세계를 하나의 건축언어로 통일하려고 시도했던 국제주의 건축의 시대가 저물면서, 모더니즘의 적자라고 주장하는 다양한 새로운 건축적 시도들이 1970년대 말부터 일어나게 된다. 역사를 희화한 포스트 모더니즘, 근대건축을 극단까지 끌고가서 해체하려는 해체주의 건축,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모더니즘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비판적 지역주의 운동들이 대표적인 새로운 건축경향들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의 근대화 과정은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시작되었다. 서구 열강에 의한 식민 지배는 기존의 전통적인 역사와 문화와 완전히 이질적인 서구 문화를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일방적으로 이식하면서,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문맥을 파괴하였다. 일본의 식민 지배도 자국의 전통건축을 이식하기 보다는, 어설프게 모방한 서양의 고전주의 건축을 식민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또는 지역성)과 근대건축의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결합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가 제3세계의 건축가들의 오래된 고민이자 숙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20 세기에 식민지에서 해방되는 여러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한국을 포함하여), 인도네시아도 해방 이후에, 근대건축에 대한 호감과 더불어 민족주의적 시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과정을 거친다. 정치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건축적 성향들이 극과 극을 오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더욱 거칠고 모질다는 특성이 있다. 근대건축이 해방된 국가의 상징처럼 수용되는 경우도 있고(상황은 다르지만 이탈리아 근대건축의 전개와 비슷하다),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근대와 전통의 어설픈 형태적 절충, 완전한 전통건축으로의 복귀, 민주주의적 사회질서의 새로운 건축까지, 인도네시아 근현대 건축은 대단히 격정적인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상황을 보여준다.

김의용1.JPG▲ 스닌 시장(Pasar senin), Jakarta, 15, Aug., 1962 :자카르타 주지사와 중앙정부의 관료가 전시회에서 근대화 시장 프로젝트의 모형을 감상하고 있다. 당시 국가주도의 대형 프로젝트는 완전한 모더니즘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마치 러시아 구성주의 건축 또는 이탈리아 합리주의 건축을 보는 것 같다.
 

근대적 의미의 인도네시아 건축가들은 모질고 긴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를 지나고, 독립이 쟁취된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식민통치의 편리함을 위해 고등교육된 쁘리야이(priyayi) 지식인 계급이 그 바탕이 되었다. 식민모국인 네덜란드 대학 커리큘럼을 이식시킨 국립반둥공대 토목학과를 졸업하여 건축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었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신생 독립국가의 상징으로 근대건축을 국가적 상징으로 이용하려 하였기 때문에 유럽에서 학습한 인도네시아 근대 건축가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실질적으로 초기 인도네시아 건축계는 네덜란드 유학파 건축가들이 주도했는데, 그들은 전통 건축의 직설적 모방을 지양하고 근대건축의 언어를 적용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바로 이들이 인도네시아 현대 건축계의 1 세대이자 대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도네시아 최초의 건축 그룹인 아탑(ATAP)이다. 총 4 명의 건축가로 구성된 건축그룹 ATAP은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유럽식 건축교육을 받은 이들은, 당시에 유럽에 만연한 근대건축을 직접 자국 인도네시아에 실험적으로 작업하는 선도적인 건축가들이었다.

김의용2.JPG▲ 왼쪽 위에서 오른쪽으로 비안포엔(Bianpoden), 한 아왈(Han Awal), 파문축(Pamuntjuk), 수원도(Suwondo) 등 건축가로 구성된 건축그룹 아탑(ATAP). 2006 년 PDA 간담회에서
 

실제로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수카르노 대통령 집권기 동안 서구 근대건축은 이들을 통해서 수준 있는 건축적 결과로 표현되고 실행되었다. 현재 구도심이라고 칭할 수 있는 모나스(Monas) 인근의 대형 건축물들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더 질서있고 균형잡힌 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근대건축의 언어들이 가지고 있는 단순성의 미학을 충실하게 문법에 맞게 구현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ATAP의 일원인 한 아왈(Han Awal)이 설계한 꼬따 인띠(kota Inti)의 계획안을 보면 전성기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언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김의용3.JPG▲ 마치 청계천의 세운상가를 보는 듯한 이 계획안은 전체적으로 근대건축의 언어를 적용한 계획안이다. 전통적 형태에 기대기보다는, 근대건축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구현한 것으로 읽혀진다. Kota Inti 건축모형, 1963, 건축가 한 아왈(Han Awal)
 
경제정책의 실패로 몰락한 수카르노의 뒤를 이어 집권하게 된 수하르토 대통령은 강력하게 하나된 인도네시아를 이룩하기 위하여(Pancasila), 민족적 정통성과 하나된 국가를 국정 목표로 삼았다. 수하르토 정부의 이런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체계는 군부독재 체재로 변질되어, 향후 30 여년간 장기집권으로 이어진다.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정권은 늘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강조하여 대중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묶어버리려는 속성이 있다. 수하르토 정권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의 국가로 통합”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건축은 문화적 전통(특히 국수주의적인 문화)에 기반해 있어야 한다는 기본 방침을 고수했다. 문화적 전통을 구현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과거의 전통적인 건축형태를 복제하여 새로운 건축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것이다. 마치 한국 군부독재시기의 조악한 전통형태의 조합 또는 부분적으로 전통형태를 뒤섞어 국적불명의 건축물을 양산하는 것과 거의 유사한 양태를 보여준다.

김의용4.jpg▲ 현재(2018년) 자카르타 관공서 건축물들의 형태는 모던한 몸통에 전통형태의 지붕을 흉내낸 형태적 절충주의 건축물들이 대부분이다. 수하르토 30년 군부독재시대의 국수주의적 건축문화가 그대로 잔존하고 있는 증거들이다.
 
전통 형태의 복제가 지역성과 역사성을 담보해준다는 이런 사고방식이 지금도 여전히 인도네시아 건축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지식인 건축가들의 토로는 이곳의 건축계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건축에서 지역성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반드시 건축설계시 고려되어야 할 하나의 요인임에는 분명하나, 전통 형태 차용만이 지역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마치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양복을 입고 갓을 쓴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의식수준인 것이다. 장기간의 수하르토 집권기에 인도네시아 건축계는 토론과 탐구보다는 침묵과 추종의 시간이었다. 결국 지식인 건축가들의 비판적 사고까지도 통제되고 억압되면서 건축가들의 비판적 창작력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변화되었다. 대표적으로 근대적이고 전위적인 건축가 모임으로 출발한 “아뜰리에6 (Atelier 6)”의 경우도 지역성과 전통성에 집착하는 수하르토의 건축에 적합한 절충주의 건축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시기는 생각보다 매우 길었고 깊었고, 뿌리깊게 각인되어 있다.

김의용5.jpg▲ UI 대학 본관동(GPAUI), 아틀리에 6, 1984
 
보다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민주화 시기를 맞이하여, 1980년대 후반 일단의 건축학과 학생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들어진 “아미(Arsitek Muda Indonesia)”는 우민화된 전통 회귀에 반대하면서, 건축의 본질적 가치를 지향해야하는 입장을 가졌다. 해방 이후 결성된 근대건축가 모임인 “ATAP”과 “아뜰리에 6”의 뒤를 잇는 인도네시아 건축운동의 계보라고 생각할 수 있다. AMI 모임 결성 이후 이들은 전시회, open house 행사, 세미나 등을 통하여 새로운 건축적 실험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후 이들의 뒤를 있는 진정한? 젊은 건축가들의 모임인 “AMI NEXT”, “AMI LAST”등의 모임이 계보를 잇고 있다.

김의용6.jpg▲ 왼쪽부터 1) AMI 건축가들의 오픈 하우스 행사 초대장, 2) 살리하리 센터(Komunitas Salihari) 일종의 문화센터로 4개동(전시장, 공연장, 까페, 사무실)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동을 AMI의 건축가들이 각각 한 동씩 설계했다, 3)AMI 건축가인 안드라 마틴(Andra Martin)의 주택 작품, 4)AMI 건축가 이리얀토 푸르노모 하디(Irianto Purnomo Hadi)의 까페 작품
 
실질적으로 현재 AMI 건축가들은 왕성한 건축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 공모전의 심사위원, 국가 건축 자문위원, 대학교수, 스타 건축가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면서 인도네시아 건축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으나 친목 모임 이상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공동의 건축적 목표가 없다는 점등이 이 모임의 한계로 보인다. 결국 AMI 건축가들이 뛰어난 작품과 활동량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어떤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운동(movement)”으로써의 역할은 한계가 있는 듯 보이며, 사뭇 밀폐적인 사교 모임의 일환으로 보인다는 것도 폭발력을 가진 선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한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AMI의 기본적인 건축 활동을 이해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면서 세대 간의 간극도 메워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많은 건축가들은 철학적이지도, 사회적인 관심도, 창의적이지도, 심지어는 진지하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나 이러한 문제는 인도네시아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나 발생하는 보편적인 상황이다. 결국, 아방가르드(avant-garde)적 자세로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작업하는 소수의 지식인 건축가들이 미래의 인도네시아 건축계를 주도할 것이다.


김의용: PT.MAP A&E INDONESIA 건축설계사무소 법인장,군나다르마 대학 건축학과 교수

인문창작클럽(INJAK)
인문창작클럽 (인작: 회장 이강현)의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임입니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저작권자ⓒ데일리인도네시아 & dailyindonesi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