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에세이]길 위에 서 있는 남자/이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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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길 위에 서 있는 남자/이동균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8.12.0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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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 있는 남자

이동균 

Cikupa 새로운 장소로 회사를 이전한지도 어느덧 3년이 흘러간다. 2년 가까이 세를 얻어 사업을 하다가 지난 3년 전 9월경에 회사의 조그만 사옥을 완공하고 현재의 장소로 이전했다. 아직까지 갖추어야 할 것이 남아있어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는 있지만 진정 내 회사라는 곳에 일을 하니 마음은 무척 편안하고 가볍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는 사업환경이 달라 사업장의 장소를 옮기는 것만 신고하는 것에 대하여서도 여러 가지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에 따른 비용도 많이 들고 서류도 많이 변경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듯이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며 하루하루를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며 견디고 있다. 

오늘은 연휴가 끝나는 시점의 첫 월요일이라서 자카르타 시내가 차량으로 번잡할 것 같아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서 길에는 차량들이 많지는 않아 비교적 가볍게 시내를 빠져 나와 회사로 향하는 시외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고속도로 주위의 길가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어 화창한 봄날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한국 고향의 무궁화 꽃, 철쭉과 비슷한 꽃들, 촛대나무 꽃, 캄보자 꽃들이 서로 마주 보고 인사하듯 피어 있었다. 잠시 동안 여러 꽃들의 모양을 감상하고 있을 즈음, 회사로 가는 약간 좁고 구부러져 있는 막바지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은 언제나 울퉁불퉁하며 벌레 먹은 과일처럼 파여 있다. 

그 삼거리 갈림길에는 거의 매일같이 한 남자가 원추 모양의 큰 고깔 밀짚모자를 쓰고 서있다. 그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있고 늘 눈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늘 새까맣게 탄 한 손에는 호미가 들려져 있고 주위에는 흙을 담는 삼태기 같은 바구니가 놓여 있다. 그리고는 차량들로 막히고 비좁은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에서 흙먼지가 날리는 환경에서도 연신 한 손으로 수신호를 하면서 차량들이 서로 뒤엉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날씨는 오전에 좀 이른 시간이지만 적도의 태양으로 이글거리는 뜨거운 날씨 아래에서 길 위에 남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이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남에게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다. 길 위에 남자는 많은 통행객들에게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꾸어 주는 것에 대한 행복을 주기 위해 본인은 희생과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회사를 출근하는 길은 몇 가지 길이 있는데도 굳이 비포장 길을 택하는 이유는 말없이 일하는 길 위의 남자의 따뜻한 마음을 느껴 보기 위함이다. 거의 3년 동안 이 길을 이용하고 있지만 그는 거의 매일같이 나와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요즘같이 인도네시아도 서로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하고 인간다운 사람 냄새 나는 정이 점점 없어지고 오직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목적에만 치중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이다. 날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처절하게 싸워야 하고 일단 승리하였더라도 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 또한 패배자는 다음번의 기회에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불타는 열정으로 자신을 더 한층 달구어야 한다. 

그러나, 먼지 풀풀 나는 곳에 있는 길 위에 남자는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의 편리함을 주기 위해 일을 한다. 얼마 전에 퇴근길에 조그만 선물을 그 사람에게 건넸다. 나의 작은 선물이지만 이 사람은 거친 두 손으로 공손히 받으며 정중한 예의를 표했다. 잠시나마 서로 간에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이동균_길2.jpg
 

약 60대 초반은 되어 보여지는 허름한 차림의 남자, 왠지 마음이 끌린다. 나와 비슷한 연배 때문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시간을 내어 달라고 해서 같이 식사라도 하고 싶다. 그리고 길 위에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어디서 왔고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자카르타 도심에 있다가 찌구빠 땅그랑으로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산다. 이런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인도네시아가 점점 내 몸 가까이 들어오는 기분이다. 회사 앞의 작은 정원에 꽃도 심어보고 열대과실 나무도 자라게 하고 잔디밭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알루미늄 방수시트로 만든 케노피를 추가로 설치해서 시원하고 안락한 환경도 만들었다. 여기에 가끔 커피 한잔을 들고 나가 옹기종기 모여 만든 질서 있게 가꾸어진 정원을 감상하는 기쁨도 느껴본다. 

그리고 길 위에 서서 일하는 남자를 생각하며 나도 여기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무엇을 인도네시아 사회에 봉사하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도 생각해 본다. 오늘 아침에 회사에 도착하면 회사를 한바퀴 천천히 돌아보면서 작은 만족이라도 더 찾으며 느낄 것이다. <끝>

인문창작클럽(INJAK)
인문창작클럽 (인작: 회장 이강현)의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임입니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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